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9.사마양저(司馬穰苴)
게시물ID : history_12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10
조회수 : 161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0/19 21:35:11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국법무사 영필행(國法無私 令必行)
 
지난 안평중편에 잠깐 언급됐던 사마양저(司馬穰苴)는 제경공시대에 안영의 추천으로 제나라 대장군에 오른다.
재상 안평중과 동시대 인물이며 제경공이 천하를 제패하여 진(晉)나라로 넘어간
천하의 패권을 되찾아 맹주로 추대되는데 큰 공을 세운 명장이다.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일약 대장의 자리에 올라 외적을 몰아내고 잃었던 국토를 회복하였으니
그 공로가 매우 크다 할것이다.
 
사기열전에는 병법가들이 여럿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손자병법을 쓴 손무와 그의 손자로 알려진 손빈.
그리고 오자병법을 쓴 오기 등이 있고 그와함께 사마양저병법을 만들어낸 사마양저가 있다.
 
이 사마양저병법은 전양저가 직접 지은것은 아니고 그 후손들이 양저의 병법을 논하여 만든 병법서인데
이 병서가 후세에 여러 병법가들의 기초가 되었으니 감히 양저를 병가의 조종이라 할수있지 않을까 한다.
 
손무.손빈.오기 등의 병법가 이야기는 바로 다음편 손자.오기열전에서 다루기로 한다.
 
나라의 법을 지키는데 사사로움이 없었으며 명령을 반드시 실행했으니
이를 높이 여겨 사마양저의 열전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ㅡㅡㅡㅡㅡ사마양저(司馬穰苴)열전ㅡㅡㅡㅡㅡ
 
성은 전(田) 이름은 양저(穰苴).
전양저는 안평중편에 나온 장수 전개강과 일족인데 제나라의 권문세가인 전씨가문이긴 하지만
신분이 첩의 소생인 서출인지라 전씨가문에서도 대단히 여기질 않았고 제나라 동해바닷가에서
고기잡이나 하며 살고 있었다.
 
일전에 안평중의 계략으로 전횡을 일삼던 제나라 삼걸(전개강.고야자.공손첩)이 일시에 죽었는데
그래도 그들은 제나라 국방을 일임했던 장수들인지라,
노소공 앞에서 그런자들은 매로때려가며 부리는 사람들이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제경공은 누구로 그 뒤를 이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때 안영이 한사람을 천거하니 그가 바로 전양저 이다.
사기의 기록에서 안영이 제경공에게 한 말에 따르면 전양저는,
"문장은 능히 사람을 감동시키며,그의 무력은 능히 적을 위압할수있습니다.
참으로 그는 보기드문 명장의 소질을 갖고있으니 이미죽은 삼걸보다도 월등하리이다"
라고 소개된다.
그러나 제경공은 그가 전씨 일족이라는것이 께름직해서 며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수일후 제나라 삼걸이 다 죽은걸 기회로 제나라를 침범하려는 진나라가 제나라 경계를 침범해 쳐들어 왔다.
또 바로 연달아서 역시 연나라도 제나라 군사가 약할것으로 알고 제나라의 북방으로 쳐들어 왔다.
이에 깜짝놀란 제경공은 즉시 안평중에게 많은 예물을 주어 동해 바닷가로 보내 전양저를 초빙해 왔다.
양저는 제나라 궁궐로 들어가 제경공과 만나고 병법에 관해 많은 설명을 하였는데
제경공은 양저의 탁월한 식견을 듣고 즉시에 대장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양저에게 병차 오백승(乘)을 주어 연나라와 진나라의 군사를 물리치도록 분부했다.
 
<여기서 잠깐,당시 고대중국의 병력은 수레의 댓수에 따라 이야기 하는데
병차를 세는 단위인 승(乘)은 병차의 숫자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군대도 나타낸다.
병차 한 대에 갑사병이 보통 120명에서 많게는 150명이 따르니 500승의 병력이라면 6만 이상의 군대가 계산된다.
앞으로 독자들은 이 글에서 병차 몇승 이란 말을 많이 볼것인데 그때에는 1승당 대충 100명으로 계산하여
300승이면 3만.1000승이면 대충 10만 정도로 헤아려 주면 거의 틀림이 없을것이다.>
 
그때에 양저는 제경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은 미천한 신분으로 갑자기 주공을 모시게 되어 일국의 병권을 맡게 되었으니
장차 신의 명령에 인심이 복종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니 바라건대 평소 주공께서 총애하시는 신하 한분을 골라 전군을 감독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경공은 자기가 총애하는 대부 장가 를 양저에게 붙여주어 군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양저가 장가에게 "내일 오(午)시까지 군문에서 기다릴테니 대부께서는 시간에 늦지말고 나오셔서 함께 떠나십시다"
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오(午)시가 되었을때 양저는 이미 군문에 나와 군리를 불러 명하였다.
"뜰에 막대를 꽃아 해시계를 만들고 물시계를 설치하여 시간을 재어라"
그러나 오시가 넘어도 장가는 오지 않았다.
원래 젊고 혈기방자한 장가는 갑자기 감군의 자리에 올라 교만해져서 주변사람들의 환송연에 참가하여 술을 마시고 즐겼다.
시간따위는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고 태연하게 잔치를 즐겼다.
양저는 오시가 지나고 미시가 지나도 장가가 오질 않으므로 막대기를 뽑고 물시계를 쏟아 버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무렵에야 장가가 나타나니 양저가 묻는다.
"감군은 어째서 이제야 오는게요?"
"오늘 멀리 출정한다고 친지들이 잔치를 차려줘서 늦었소이다"
"대저 장수된자는 명령을 받은 그날로 자기 집을 생각치 않고, 군중에서 한번 약속하면 가족을 잊는법이다.
지금 적군이 침범해서 상감께서 밤에 잠도 못이루시고 음식의 맛도 모를지경인데
어찌 친지와 술을 마실 여가가 있는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소?"
 
양저가 군정사에게 묻는다.
"장수가 시간을 어기고 늦게 오면 군법에 어찌 다스리도록 돼있는가?"
"군법에 의하면 사형입니다."
 
장가는 사형이란 말을 듣고 그제서야 움찔한다.
양저가 명령하자 군사들이 장가를 결박해서 끌어왔다.
"저놈을 밖으로 끌어내어 목을 참하라!"
그때 장가를 따라온 부하들이 궁궐로 사람을 보내어 제경공에게 장가의 구명을 청했다.
크게 놀란 제경공이 신하에게 절부를 주어 보내어 양저에게 장가를 살려줄것을 명했다.
제경공의 사자가 수레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며 절부를 높이 쳐들고 군중으로 수레를 몰아갔다.
그러나 이미 장가의 목은 땅에 뒹굴고 있었다.
이때 양저가 그 수레를 멈추게 하고 다시 군정사에게 묻는다.
"군중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수레를 달리지 못하는 법인데 저리 법을 어기는 자가 있으니
저런자에겐 어떤 벌을 내려야하는가?"
"군법에 의하면 사형입니다."
이말을 들은 제경공의 사자는 깜짝놀라 황급히 변명한다.
"제맘대로 법을 어긴게 아닙니다. 저는 상감의 분부를 전하려 왔습니다."
양저가 말햇다.
"상감의 명을 받고 온 사자를 죽일순 없다.
그대신 저 수레를 부숴버리고 그 말의 목을 베어라"
자기가 타고온 수레가 산산조각나는걸 본 사자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에 대소삼군이 누구할것없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소문이 빠르게 퍼지자 제나라의 접경지대를 침략하던 진나라와 연나라 군사들이
제나라 군사가 강한것을 알고 모두 물러갔다.
그러나 양저는 진과 연의 군사들을 추격하여 잃었던 땅을 모두 되찾고
진과 연의 군사들을 수없이 목베어 대승을 이루었다.
진나라와 연나라는 제나라에 뇌물을 바치고 화평을 청하였다.
개선하고 돌아온 양저는 교외에서 대오를 풀고 제경공에게 승전을 보고하였다.
제경공은 크게 기뻐하여 양저에게 대사마(大司馬)<삼군 총사령관> 에 임명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마 전양저가 갑자기 높은 벼슬에 오르자 그나라 대부들인 포씨.국씨.고씨 등이 양저를 시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세 가문이 끊임없이 양저를 중상모략했고 제경공은 어쩔수 없이 양저를 해임 했고
양저는 그때문에 울화병이 생겨 결국 죽고 말았다.
그 뒤에 전(田)씨 일족이 점점 강해져서 강태공의 후손인 제나라 임금을 죽이고 차차 세력을 키워
몇대후엔 제나라의 왕이 되는데
강씨의 나라에서 전씨의 나라가 될때 전양저를 모함한 일때문에 고씨와 국씨는 몰살을 당하게 된다.
전씨로서 제나라의 첫번째 왕이된 제위왕은 옛날 사마들의 병법을 논하게 하고
양저의 병법을 덧붙이게 해서 [사마양저병법] 이라 이름하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 나중의 일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마양저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제경공은 국내의 일은 안영에게 모두 맡기고 군사의 일은 사마양저에게 맡겨
제나라는 날로 부강하고 사방이 무사했다.
그래서 제경공은 날마다 사냥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마치 예전의 제환공이 관중에게 모든일을 맡기고 놀듯이 놀았다.
어느날 제경공이 궁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심심하여 재상 안영의 집으로 술과 음식을 옮기게 하고 안영의 집으로 행차하였다.
 
제경공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안영은 황급히 관복을 입고 띠를 두르고 홀(笏)을 잡고 대문밖에 나가 섰다.
임금의 행차가 당도하자 제경공이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에 안영이 영접하여 묻는다.
"어느 나라에 무슨 일이라도 났습니까? 또는 국내에 무슨 변이라도 생겼습니까?"
"별로 다른일은 없도다"
"그러시면 이밤중에 어찌하사 신의 집에 행차하셨습니까?"
"승상이 나랏일에 수고가 많은지라 과인이 혼자 좋은 술과 음식을 즐길수 없어 함께 즐기고자 왔노라."
안영이 대답했다.
"청컨데 임금께선 나라에 관한 일과 다른나라제후에 관한일이 있거든 신과 함께 상의 하십시요.
상감의 주변에 좋은 술과 좋은 음악을 함께 즐길사람이 많을것이니 신은 이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영의 말을 듣고 제경공은 무안해 졌다. 하는수없이 수레를 돌려 사마양저의 집으로 향했다.
사마양저가 제경공이 자기집으로 온다는 기별을 받고 갑옷과 투구를 쓰고 손에 창을 잡고
대문밖에 나와 제경공의 수레를  영접했다.
사마 양저가 제경공에게 물었다.
"혹 다른나라 제후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왔습니까? 아니면 대신들중에 누가 반역이라도 했습니까?"
"그런일은 없다."
"그러시면 이밤중에 어찌하사 신의 집에 행차하셨습니까?"
"장군이 군무에 수고가 많은지라 과인이 혼자 좋은 술과 음식을 즐길수 없어 함께 즐기고자 왔노라."
사마양저가 말했다.
"적군을 막고 역적을 죽이는 일이라면 청컨데 신을 불러 상의 하십시요.
상감의 주변에 좋은 술과 좋은 음악을 함께 즐길사람이 많을것이니 어찌 갑옷을 입은 신하가 필요 하겠습니까?"
이말에 제경공은 술마실 기분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궁으로 돌아가려다가 대부 양구거의 집으로 찾아갔다.
제경공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양구거는 상감의 수레가 오기전부터 행길에 나가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부르며 제경공을 영접했다.
이에 제경공은 양구거의 집으로 들어가서 관과 겉옷을 벗어놓고 양구거와 함께 밤새 마시고 새벽 닭이 울고서야 궁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안영과 사마양저가 궁으로 들어가 제경공에게 전날밤의 일을 사죄하며 간했다.
"앞으로는 밤중에 신하의 집을 찾아가서 술을 즐기는 일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그대들 두사람이 없다면 과인이 어찌 나라를 다스릴수 있겠소?
그러나 만일 양구거 같은 신하가 없다면 나는 심심해서 어찌 살겠소..
나는 앞으로 그대들의 직무를 방해하지 않을테니 그대들도 내게 너무 간섭하지마시오..."
안영과 양저의 공로는 두기둥이 하늘을 지탱하는것과 같으니 다른 신하들과는 사뭇 격이 달랏다.
또한 전에 안영편 에서 말했듯이 제경공 역시 좋은 인재를 등용했고 만사를 그들에게 맡겼기때문에 천하에 그 이름을 널리 펼수 있었던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 사마양저 열전을 살펴 보았다.
한 나라의 군대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전시에는 군주의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을수 있다는
기개를 보여주고
또한 승전한 후에는 도성까지 개선하여도 무방한것을 교외에서 대오를 풀어 군주에 대한 예를 잊지 않았다.
사마양저는 군인이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구별하여 항상 그 본분을 잊지 않았으며
항상 군주에게 충성을 잊지 않았으니 만세에 군인된 자들의 모범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대저 군이란것은 항상 국가의 물리적 힘이 모인것이니 비상시 국가의 위험을 막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나,그렇지 않을때는 오히려 주권자의 안위에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했다.
그리하여 근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이 민간의 정치에 참여하는것을 막고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철저하게 지켜도록 하는것인데
 
우리나라의 군은 해방이후에 항상 그 본분을 잊고 정치에 관여하였으며
때로는 군사정변을 일으켜 오히려 정치와 권력의 중심으로 나서기 까지 했다.
5.16때는 예전 왜왕에게 충성서약을 한 박정희가 그리하였고
저 12.12 사태이후 전두환의 신군부가 또 나라의 주권자들을 억누르고 정권을 찬탈하여
군사독재의 시절을 이어갔으니 우리 국민들은 항상 총칼의 그늘에서 숨죽이며 억압을 받았고
그 총부리의 하수인인 중정과 안기부등에게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기도 하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군부독재시절은 갔다고 하는 21세기의 시대에 우리가 과연 군부와 정보부의 마수에서 정말 벗어났는지 다시한번 살펴보지 아니할수가 없다.
 
저 설치류의 정권부터 다시 시작된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이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조류정부에서는 국정원장은 물론 경호실장과 국가안보실장까지
모두 육사를 나온 군출신으로 메워졌으며
특히 유신시절의 박정희 정권을 쏙 빼닮은 군의 요직점거형태는 참으로 가관이라 아니할수 없다.
또한 지금의 국회의장은 하나회 출신이니 이제 이나라는 고려시대 무신정권으로 돌아갈것인가?
 
특히 남재준 국정원장은 육참총장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군 개혁에 반발하여
정중부의 난 을 거론했던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는 진정 이시대의 정중부가 되어 국가 정권을 뒤엎고 새로운 무신정권을 이루려 하는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됨을 그칠길이 없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