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가 불특정 범죄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남역에서 정신질환자가 여성을 상대로 칼부림을 한 것이다. 그의 행동이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신이 제압가능한 사람이 여성뿐이었는지는 모른다.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것은 그가 정신질환자라는 사실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남성혐오자들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에 의한 사건이라고 단언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사회는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은 언제나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고, 남성은 잠재적 살인자들이다.
이러한 주장을 남성들이 곱게 볼 수 없다. 본인을 잠재적 살인자로 규정하는데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일반화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남성혐오자라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남성혐오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쏟는 시간때문에 재발방지를 위한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공론화 할때는 그에따른 근거가 있어야한다. 근거가 없는 주장은 단순한 감정배설일 뿐이다. 남성혐오자들에게는 근거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들은 이야기를 사례로 들지만 이는 그들의 생각일 뿐이지 근거가 될 수 없다. 근거가 없는 감정배설을 일삼다보니 이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감정싸움뿐이다. 설령 남성혐오자들의 말을 다 들어줘도 답이 없다. 지금 그들은 해결책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오로지 감정을 배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혐오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이성적 판단이나 해결방안 모색에 관심이 없다. 어떤 사안에 있어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는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게다가 때때로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인정해야 하므로 불편하기까지 하다. 반면 감정을 배설하는 일은 단순하다.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자기만족까지 느껴지는 일이다.
최근 설명충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설명하는 사람을 벌레로 비하한다. 이 단어가 혐오론자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해준다. 어떤 사안에 대한 설명마저 거부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상황에 대한 설명도 거부하는데 타인의 주장이 받아질리 만무하다. 이들에게 이성을 기반으로한 토론과 토의는 귀찮은 일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법의 제정 혹은 개정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예방 방안과 폭력성향을 보이는 정신질환자의 감시강화 방법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서 자기만족을 위해 감정을 배설하는 남성혐오자들이야말로 잠재적 살인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