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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v7김대중과 노무현/진실이 악에 묻히는 일이 오늘 일만은 아니리라.
게시물ID : society_11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4159265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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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6/05/25 06:10:45
http://afreecatv.com/gtv7 방송메모/방송후기 게시판
16/5/22 일 2:10:10 - 2:35:50 방송 메모. ​
1.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1-1. IMF
IMF란
후진국을 금융 지원해준다는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후진국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
​세계 대자본의 침략적인 금융 침략자들이다.
IMF에 도움을 요청했던 나라들은 다 망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아르헨티나인데
아르헨티나가 남미에서 두 번째 인가 세 번째로 부자였는데
독재정치가 오래되고, 외환위기가 왔을 때 IMF를 청원했다가
정치 회복이 안되는 게 아르헨티나다.
​그리스도 마찬가지고 모든 나라가 IMF 체제로 들어가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이다. 그냥 후진국에 묶여버리는 것.
왜냐?
저들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구조를 조정한다. ​
어느 나라나 경제의 기본은 노동자들이 먹고살고
제대로 세금을 안정적으로 내야 나라가 운영이 되고
노동자들이 먹고살아야 생산이 안정적으로 되는 것인데
IMF에서 하는 일들이 무엇이냐면​
제일 먼저 노동자들을 대량 실업자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을 당시 IMF 시기에
하루에 몇 천 개씩 부도를 내는 것이다.
일부러 부도를 내게 해준다. 돈을 못 돌게 해서 부도를 내게 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을 전부 다 실업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비정규직 하급 노동자로 다시 재고용할 수 있으니까.
중소기업의 정규직을 잘라야 하는데
그 회사가 망해야 잘리고 그래서 실업자가 대량으로 생산이 돼야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할 것이라는 것.
노동자들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쁜 놈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IMF가 지배하고 나가면 쪽박을 차고 다시 재건이 안되는 것.
노동자​들이 완전히 망해서 재건이 안되는 것.
그런데 유일하게 IMF를 겪었는데
바로 선진국으로 재진입 한 나라가 우리 나라밖에 없었다고 한다.
​ IMF에게 구조조정을 당했는데 유일하게 다시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을 IMF 총재가 자서전에 썼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적 리더십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단결된 의지가
세계에서 가장 단 기간 안에 IMF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기 안에 IMF를 극복한 사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뛰어난 경제적 리더십과 대한민국 국민의 단결된 마음이었다.
그 덕분에 IMF를 신속히 극복했던 것이다.
1-2. 김대중 대통령의 두 가지 정책.
그리고 나서
김대중 대통령이 두 가지 정책을 펴는데
​한 가지가 공공 근로 제도이고 또 하나가 내수산업 활성화를 위한 신용카드 활성화.
이 두 가지 정책을 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원래 김영삼 때까지는
연봉 5600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만 신용카드를 발급했던 것을
연봉 3300까지 낮추라고 그랬다.
​그랬더니 이 신용카드 회사 놈들이
그 3300까지 낮추라고 해서 제한을 없앤 법을 악용을 해서
무제한을 만들어 버린 것.
그래서 가난한 서민들에게 고리대금업을 했고
330만 명의 신용 불량자가 나오게 된다.
​이 신용불량자가 나오게 된 이유는 뭐냐?
​신용 카드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 이런 것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리곤 신용카드를 길에서 마구 만들어준 것.
그래서 정부에서 그러지 말라고 제한을 두며 통장 얼마 이상만 만들어주라고 했는데
금융회사에서 말을 듣지 않았다.
왜? 이미 금융회사의 주권이, 금융회사의 대주주들이
외국계로 넘어간 것. 카드회사의 대주주들이.
그래서 그 대주주들이 국가를 대상으로 제재를 가한 것이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무제한 발급하게 되고 330만 명이 신용 불량자가 된 것이다.
​이자를 못 갚아서.
그걸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그 330만 명을 개인파산을 인정해 주었다.
이 사람은 개인파산이다. 그러니 이자는 카드회사가 포기해라. 본전만 갚게 하라.
그것이 개인 회생 제도.
330만 신용불량자를 구제하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나름의 방법이었던 것.
​김대중 대통령이 썼던 두 가지 내수 진작 제도가
공공 근로 제도. 갑자기 직장을 잃은 아버지들에게 실업수당을 준 것.
공공 근로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중산층에게 신용카드를 주어서
현찰을 쓰는 것은 좀 아깝지만 신용카드를 쓰면
소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그랬던 제도였던 것이다.
1-3. 김대중 대통령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그다음 김대중 대통령의 세 번째는
온 국민 건강보험제도.
건강 보험 제도가 원래 있었는데
지역 건강보험 제도와 직장 건강보험제도가 따로 있었던 것.
그래서 내는 사람의 돈도 틀리고 조건도 틀리고 그랬던 것인데
국민건강보험제도라고 모든 주민번호만 대면
전국 어디에서나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만들었다.
그다음 네 번째로 만든 것이
공무원과 군인에게만 있었던 공적 연금을 국민들까지 확장한 것이
국민연금제도이다.
그래서 국민 복지의 안전망을 만들고,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김영삼 이전으로 복구해 낸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1-4. 배턴을 이어받은 노무현 대통령.
그다음 노무현 대통령이 그 상태에서
330만 신용불량자들에게 개인회생제도로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당시 유행했던 말이 패자부활이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나라가 아니라,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란 말이 유행했던 것이 노무현 정부 초기이다.
그래서 경제를 다시 살려내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그때 실업자들이 너도 나도 자영업을 했다.
창업을 많이 하고 창업 지원을 많이 해주었던 것.
​젊은 친구들에게는 스몰 오피스, 홈 오피스라는 소호 제도로
많은 자본이 없어도 소자본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인터넷 쇼핑몰 같은 기회를
많이 열게 해준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청년 실업으로 심각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그래서 청년들이 청년실업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때가 노무현 정부 때였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말에 드디어 한국 경제는
무역 규모로 따졌을 때 11위에 올라가게 됐던 것.
그래서 IMF를 겪고 유일하게 선진국에 재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10년이 그 나라 대한민국 서민들이
가장 잘 살았던 그런 때였던 것.
그런 두 대통령을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하했던 것이 손학규.
2.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인물인가?
봉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실 저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할 줄 몰랐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김영삼이 IMF로 나라를 말아먹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집권할 수가 없었고
사실 저들의 목적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집권을 맡긴 이유가 뭐냐면
김대중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려고, 독도 공동수역도 김대중 탓으로,
비정규직도 김대중 탓으로 몰아가려고
김대중이 집권하도록 이인제가 출마하게 놔두었던 것이다.
모든 문제를 김대중에게 덮어 씌우려고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나 지혜롭게 IMF를 탈출해 버린 것.
그리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에 뭘 알게 되었느냐하면
2005년 가을인데
대기업에 지금 쌓여 있는 돈이 160조 원이다. 그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며
노무현 대통령이 대로 하였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너희 지금 기업하기 어렵다기에 노동자들 비정규직으로 하는 것을 다 봐줬는데
160조 원이나 쌓아놓고 왜 정규직으로 만들지 않느냐?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열받아서 2005년에 비정규직 법을 만들어라.
비정규직으로 2년을 근무하면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된다는
법을 만들어달라 하고 요청을 했던 것.
그러자 재벌들이 열린우리당에서 돈 받아먹는 자들과(열린우리당 1/3 정도)
한나라당에게 손을 써서 법을 바꿔버렸다.
2년이면 무조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되는 법을, 이름은 비정규직법인데,
사내하청을 허용하는. 아웃소싱을 허용하는 법을 딱 끼워 넣었던 것.
열린우리당에서 재벌들하고 놀아난 자들이 그것을 해주었다.
열린우리당에서 돈 받아먹은 1/3과 한나라당과 합치니 170석 나왔었다.
그래서 이것들이 아웃소싱 사내하청 이것을 허용하게 한 것.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2년을 기다렸는데 만들어진 법이 그랬던 것.
이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면서 마구 속상해하며 북한에 갔던 것.
북한에 가서 10.4 선언을 하면서 일단 한반도를 평화 정착을 해야 된다...
3. 경제 말고도 전쟁 공포를 사라지게 했다.
김대중 노무현 둘이서 10년 동안 한 것이 무엇이냐면
전쟁 공포를 사라지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했던 것이 기차 타고 유럽 가는 것.
아시아 하이웨이를 통해서 대륙으로 갈 수 있도록
남북 간의 통일을 하자는 그 얘기와 기차 타고 유럽 가자는 것.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서 유럽으로 왕래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게
김대중 대통령의 맨 처음 구상이었다.
그래서 통일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김대중은 옛날에 북한의 사주를 받아 5.18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쓴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대에 하지 못하고 그래서 한 것이 뭐냐면 6자 회담의 틀을 만들었다.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 명분. 한반도에서 모든 핵무기를 무찌르자.
그래서 김정일을 설득해야 된다. 그러니 미국과 일본도 협조해라.
중국과 러시아도 협조해라. 그래서 남한이 북한을 설득하도록 도와달라.
이것을 김대중 대통령이 6자 회담의 틀을 만들고​, 6자 회담이 가장 많이 됐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동안 6자 회담을 계속해서
결국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직전까지 간 것이다.
그래서 2008년에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김정일이 영변 핵시설을 폭파시킨 것.
그것이 6자 회담을 통해서 여섯 개 나라가 합의한 내용이었다.
영변에 핵시설을 폭파시키고 외국에 핵 전문가들이 와서
더 이상 북한에 핵시설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 주면
부시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고, 봉쇄를 풀고, 경제를 활성화시켜주기로
노무현 대통령 때 약속을 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영변 핵시설을 폭파했는데
부시가 그래도 악의 축이라고 그런 것.
그래서 김정일이 충격 먹고 뇌졸중에 중풍에 걸렸다.
그리고 나서 8월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누명을 씌워서 2009년에 죽였던 것.
​이것이 2008년 김정일 사망사건의 배경이다.
​4. 김대중 노무현이 10년 동안 해낸 일
4-1. 언론, 민주 정치, 경제, 전쟁위기와 비핵화의 꿈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해낸 일은
김영삼 정부가 말아먹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다시 선진국 대열로 이끌어 올린 것.
그다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뭔지를 가르친 것.
그래서 민주적인 정치 참여의 길을 가르쳐 준 것이 큰일이고 ​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을 위한 발판을 다진 것.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때 6자 회담의 성과물로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실현한 것.
그래서 그때 금강산 관광을 많이 갔던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가 깨어진 것.
그래서 이명박 때 전쟁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사람들이 안 믿었다.
전쟁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안 믿게 된 것이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북한하고 왕래하면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편견이 깨진 것.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약식으로 설명하면
언론에게 자유를 주고, 민주 정치가 발전할 수 있도록
협치의 정치의 본을 보여주고, 무너진 경제를 바로 세우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화하고, 비핵화의 꿈을 실현하는 문턱까지 가고.
​ 4-2. 10.4 선언과 6.15 선언
6.15 선언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합의한 내용은 이렇다.
6자 회담을 통해서 비핵화를 노력하자.
10.4 선언이 무엇이냐면
서해 바다를 전쟁의 바다가 아닌 평화의 바다를 만들자.
그래서 공동수역을 해서 군인들은 절대 경기도 앞바다에 나타나지 않고
황해도와 경기도 사이는 평화의 바다를 만들자고 했던 것.
그리고 해수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서
경제적으로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이 결합해서
새로운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만들자.
이것이 전부 다 노무현 때 10.4 선언으로 약속된 바이다.
5. 미국의 공화당 리. 이명박
5-1. 미국의 무기 산업자들. ​
그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말아먹은 것이 이명박.
이명박은 미국의 공화당 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때 대통령이 민주당인데 이명박은 공화당하고만 친했던 것.
왜?
공화당은 미국의 무기 산업체의 후원을 받는 당이다.
그래서 미국의 무기 산업자들이 장사를 하려면 북한은 적으로 존재해야 된다.
그래서 북한과의 모든 평화 노력을 깨라며
미국의 공화당이 두 가지를 없애라고 했던 것
금강산 관광을 없애고, 개성공단을 없애라.
그래서 금강산 관광을 없앤 것이다. 박왕자 사건으로.
박왕자 사건을 핑계삼아서 금강산 관광을 없애고
개성공단도 폐지하고 싶었지만 개성공단을 폐지하면
국내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돈을 뺄 것이라 못 했던 것.
그러다 박근혜가 개성공단을 철수시켰는데
그것이 누구의 요구냐 하면
미국의 공화당에 돈을 대는 무기 사업자들의 오래된 요구였다.
그래서 지금 개성공단을 폐쇄해서
북한이 입은 피해는 3000몇 억이고
남한이 입은 피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4조.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
5-2. 박왕자 사건. 금강산 관광의 폐지.
박왕자 사건이란?
2008년 여름에 박왕자라는 사람이
금강산 관광을 갔는데
당시에는 금강산 관광을 아무나 다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을 갔던 사람들 중에 박왕자라는 사람이
아침에 혼자서 산책을 간 것이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에서 관광객이 갈 수 있는 허락된 공간이 있는데
이 박왕자 씨가 왜인지 모르게 그 허락된 공간을 넘어간 것.
그래서 북한에서 산책하지 말라는,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경고를 무시하고 산책을 간 것. 그래서 북한이 발포해서 죽인 것이다.
근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한나라당 어느 지역의 여성위원장이었던 것
당시에 금강산 관광이 1인당 200만 정도 들었는데
그래서 가난한 서민들은 못 갔고 돈 많은 한나라당 당원들은
금강산의 이름이 4개이기에 일 년에 4번씩 금강산 관광을 갔던 것.
한나라당 당원들이 많이 갔다 왔는데
그 당원들 중에 하나가 박왕자 씨였고
그 박왕자 씨가 총을 맞아 죽은 것.
그러자 그걸 핑계삼아서 이명박이 금강산 관광을 폐쇄시켜 버린 것.
그래서 결국 남한의 안전망이 동, 서 하나씩이었는데
하나가 무너지게 된 것
그것이 박왕자 씨 사건. 한나라당 여성위원장.
그래서 금강산 관광은 폐지되었다.
이 금강산 관광이 북한에 왕래를 하는 민간 교류였고
북한에 현찰을 주는 것이었고
북한의 경제봉쇄를 뚫고 북한 사람들 먹여 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었는데
그 돈을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쓴다며
금강산 관광을 폐지시킨 것
​6.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7주기.
노무현 대통령의 7주기.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도 올해가 7주기이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3개월 만에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김대중 대통령 굉장히 나이가 많으셨는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시고 뙤약볕 아래서 너무 고생하셨고
사실 신체적인 고통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김대중 대통령이 그 뒤로 굉장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6월인가 7월에 입원을 해서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혼수상태에 빠진 김대중 대통령을
김영삼이 자신이 가서 용서하고 화해했다고 했다.
용서의 주체는 김대중 대통령인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용서할 수 있는 주체는 김대중 대통령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혼수상태였는데 이놈들이 자기네들이 용서하고 화해를 했다는 것.
그리고 나서 며칠 뒤에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8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리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어야 된다.
7. 망치부인의 당시 상황과 모든 별이 지다.
망치부인은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8월에 방송을 접으려고 했었다.
왜냐면 방송하면 안 되는 목 상태였기에.
원래 4월까지 방송 안 하고 5월에 우연히 노무현 대통령 시계 사건 때문에
잠깐만 방송하려고 켰는데 그때 누가 스티커 900개를 쏴서
일주일 내내 시청자가 밀어주는 방송이라고 리스트 상단에 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주일만 방송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나서 방송 접으려고 했는데 또 누가 900개를 쏜 것.
그래서 5월에 방송을 하다 셋째 주, 넷째 주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를 하고
6월 7월 방송을 하고 목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8월에 방송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8월 초에 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곧 돌아가신다는 생각에 방송을 접지 못 했던 것.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이 2009년에 돌아가셨다.
2009년을 시작으로 김수환 추기경도 돌아가시고 법정 스님.
그리고 나서 11년 겨울에 김근태 의원까지.
그래서 모든 별이 다 졌다는 이야기가 그때 나왔었다.
중요한 인물들이 그때 전부 다 돌아가시면서
우리를 이끌어줬던, 우리 민족에게 지도자적인 길을 알려주셨던 분들이
한 번에 다 사라지는 바람에 우리가 더욱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2012년에 새로운 신진인사들이 많이 나타나고
새로운 지식인들이 나타나서 팟캐스트라던가 SNS를 통해서
정치적인 입장을 많이 보이게 된 것.
그러다가 2016년 총선을 치르게 된 것.
8.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 ​
노무현 대통령 7주기를 맞이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을 보았는데
그러면 이 두 대통령은 완벽한 대통령이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라면
소위 신자유주의를 무비판 적으로 수용한 면이 있다.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에 가서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지만
사실 너무나 늦은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 재벌들의 욕심에
처절하게 짓밟히는 걸 막아내지 못 했다.
그것이 아쉬움이다.
​9. 좌익 대통령, 좌파 대통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편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좌익 대통령이다, 좌파 대통령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럼 정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 대통령이었다.
정책이 보수였다. 그것을 도리어 좌파라고 얘기하는 놈들이 미친x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철저히 법을 지키고
자본주의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소위 좌파라고 얘기한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나아가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인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게 아니었고 보수 정권이었다.
그래서 자본주의 정부가 더욱더 발전하고 시장이 확대되는 것을 목적으로
정책을 쭉 추진했던 것.
다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자본주의에 발전과 성장을 목적으로 하되
복지정책을 강화해서 서민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도 동시에 추구했기 때문에
우리가 좌파라고 오해하고 많은 언론에서 빨갱이라고 욕을 하니까
복지정책 때문에 좌파로 오해를 하지만
실제로 다른 나라의 좌파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적용한다.
우리나라는 부자들에게 누진세 없다. 도리어 부자들일수록 세금을 깎아준다.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적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보육, 무상교육
이런 것을 확장시키는 것이 좌파적 정책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무상정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상급식이라던가 이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좌파라고 오해한 건
개 무식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이 부분도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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