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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진보네오콘의 대리전이다 (프레시안)
게시물ID : sisa_1218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남기선짱
추천 : 1
조회수 : 7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2/28 06: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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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러-우 전쟁은 러시아가 침공한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전쟁은 해결되지 않았던, 그래서 쌓이고 쌓였던 모순이 폭발한 것일 뿐이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모든 사태를 촉발시킨 미국 네오콘을 정조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네오콘이 추진한 30년 프로젝트의 정점이다." 제프리 삭스와 마찬가지로 저자 이해영 교수도 러-우 전쟁의 근인(近因)을 미국 네오콘에서 찾고 있다. 70년대부터 발흥한 네오콘 세력은 미국의 정치계에서 뿌리를 내려갔다. 브레진스키가 책 <거대한 체스판>에서 주장했듯이 이들 네오콘에게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핵심이익이 걸린 사활적 지역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미국의 글로벌 패권유지에 있어서 핵심적 요소로 생각했다. 

 

내우(內憂)가 외환(外患)을 만나야 국가적 수준의 재앙이 만들어진다. 동부의 러시아민족과 서부의 우크라이나민족 간의 갈등은 2004년의 오렌지혁명에서 본격화된다. 대통령선거에서 친러시아파인 야누코비치와 친서방의 유셴코가 대결한다. 선거는 야누코비치의 승리였지만 선거부정을 주장하던 유셴코 지지자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다. 재선거결과 유셴코가 집권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친서방 서부와 친러시아 동부의 분열이 폭발한다.

 

2010년 다시 집권에 성공한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쪽으로 경도되기 시작했다. 2013년 하반기부터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시작되었다. 이 반정부시위에 우크라이나 극우집단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시위는 폭력화되었고 경찰의 진압도 잔혹했다. 이런 배경에서 어디에선가 총이 발사된다. 이 발포는 시위대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결국 야누코비치는 국외로 탈출한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노선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정도가 언론을 통해 듣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위대한 민주주의 투쟁 서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막연히 민주주의혁명으로 생각했던 마이단혁명의 실체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시위대를 향한 발포조차 시위격화를 노린 친서방측의 공작이었음을 암시하는 여러 정황증거들도 드러나기 사작했다. 컬럼비아대학 고 스티븐 코헨 교수는 마이단혁명에 대해서 '폭력쿠데타'였을 뿐이라 규정한다. 또한 대표적인 네오콘 빅토리아 눌런드 당시 국무부차관보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사태를 반민주적인 친러시아세력과 민주적인 친서방세력의 이분법으로 보아왔던 관점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서방이 극찬하는 마이단혁명 이후 극우세력은 저항세력에게 고문과 박해를 가차없이 행사했다. 이런 극우조직은 국립경찰을 장악하고 의원의 10퍼센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으로 상장해 갔다.

 

저자는 러-우 전쟁을 패권 질서의 변화라는 국제적 차원에서 이해한다. 저자는 2019년 랜드연구소 보고서나 트럼프 정부 국무부 차관보 A. 웰스 미첼이 작성한 논문 '2전선 전쟁을 회피하는 전략'을 근거로 미국의 전략을 이렇게 요약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21617162031896   <-- 전체 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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