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연합회에서는 해당 법의 법사위 통과를 환영하면서, 조정절차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의료인과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조정결과에 만족할 수 있도록 공정성과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 근데 강제 조정은 사실 조정이 아닙니다.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법원인데, 또 하나의 사법 기관이 탄생한거죠. 또한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강제 조정이 아닌 상태에서도 상당 수의 의료 기관이 참여를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참여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중재원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참여율을 높이려면 공정성과 전문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입니다. 원래 애초에는 의료 기관 쪽에서 발상한 법안인 만큼, 공정성과 전문성이 보장된다면 참여 안 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근데 자율 참여가 아닌 강제로 조정한다는 것은, 공정성과 전문성을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어차피 자율 참여가 아니고 강제이므로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결국에는 공정성과 전문성에 힘을 기울일 동기 자체가 없고, 그냥 중재원이 또 다른 법원 같은 역할을 하면서 권력을 휘두르게 될 것이고, 그 와중에 부당한 처분을 당하는 의사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건 당연지정제와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건강 보험을 병원들이 받게 하려면 건강 보험의 체계를 합리적으로 만들고 수가를 적정하게 책정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하고 그냥 강제 계약으로 해버렸죠. 강제 계약은 사실 계약이 아닙니다. 그냥 명령에 불과하죠. 때문에 보험의 합리성이나 적정 수가 책정에 관한 동기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제도는 엉망 진창이 되고 수가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죠. 수가 떨어지니까 의사들 특히 외과 의사들이 나락으로 내몰렸고, 살아남으려고 비만 수술 남발 등 이상한 짓을 하다보니 그 와중에 신해철씨가 죽게 된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분석합니다. 비슷한 얘기인 겁니다. 보험을 받게 하려면 보험의 합리성과 질을 높여야 하는데, 해당 노력 없이 기본권 묵살하면서 강제 계약. 결국에는 엉터리 같은 보험 체계와 말도 안 되는 저수가 체계. 의료 사고를 적절하게 중재하려면 중재원이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하는데, 해당 노력 없이 법원의 역할을 자기들이 가지면서 강제 조정. 결국에는 엉터리 같은 중재도 많이 나와서 선량한 의사까지 피눈물 흘리게 만들겠죠. 순서를 바꾼 겁니다. 합리성과 질과 신뢰성과 전문성을 높이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인데, 해당 사항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기 "귀챦으니까" 그냥 남의 기본권 무시하고 법으로 밀어불여서 해결하겠다. 합리성? 질? 신뢰성? 전문성? 그런 거를 추구할 동기 자체가 없어지는 겁니다. 동기 자체가 없는데 이래야 저래야 한다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무슨 동기로 그런 걸 추구합니까? 어차피 강제인데. 그냥 자기들 멋대로 의사들 짓밟으면 되는 겁니다. 사회적 합의? 웃기는 얘기입니다. 당장에 자신들이 이익을 본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다수이고 의사들은 소수입니다. 다수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기본권을 짓밟는 겁니다. 소수가 다수를 짓밟으면 북한이고, 다수가 소수를 짓밟으면 남한이죠. 어차피 똑같은 악랄한 짓입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어떤 아파트 한 동에서 주민들이 모여서 단합을 합니다. 앞으로 관리비는 207호가 다 내자. 207호 사는 가족만 빼고 나머지 주민들은 죄다 찬성합니다. 그러면 이게 민주적인 의사 결정입니까? 다수가 찬성했으니 옳습니까? 이건 범죄죠. 당연지정제든 신해철법이든 결국 다수가 소수를 향해서 범죄 행위를 하자고 단합하는 법들입니다. 조정은 자율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겁니다. 자율성이 없어지면 그건 조정이 아니고 그냥 또 다른 법원의 탄생일 뿐입니다. 조정 기관이 참여율을 높이려면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여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겁니다. 강제로 참여하게 해놓고 공정성과 전문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앞뒤가 바뀌고 순서가 바뀐겁니다. 의료 사고 낸 의사 전용 비민주적인 또다른 법원이 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건강 보험도 마찬가지죠. 세계에서 공보험 채택한 국가는 많지만 강제지정제 있는 국가는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왠만큼만 합리성을 구성해놓으면 환자들이 대부분 건강 보험에 가입해있기 때문에 병원들도 대부분 가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강제로 계약을 체결한다? 그건 최소한의 합리성을 구성할 노력 자체를 안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그 결과가 의료 왜곡이죠. 제 생각에는 그 와중에 신해철씨도 죽은거라고 봅니다.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남이 거부할때는 왜 거부하는지 생각을 해보고 받아들일만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겁니다. 이게 민주적인 태도입니다. 남이 거부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강제로 한다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여자를 상대로 그렇게 하면 성폭력이고, 다른 나라를 상대로 그렇게 하면 주권 침탈이고, 남의 가게에서 그렇게 하면 강도짓이죠. 한국은 이상하게도 의료인들을 상대로 하는 범죄 행위를 굉장히 가볍게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군사 정권 시절의 잔재인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별의별 핑계 대면서 합리화를 시켜버립니다. 공급자는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면서 제 값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시민들은 상대방이 제시하는 합의나 중재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다면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 혹은 의료인들은 그러한 권리 자체가 없군요. 박탈당했어요. 한국은 의료인들에게는 민주 국가가 아닙니다. 아직도 독재 정권 하에서 기본권 뺏긴 채로 착취당하고 있어요. 내 권리는 소중하면서 왜 남의 권리는 그렇게 짓밟으려고 할까 심히 궁금합니다. 굉장히 악랄한 태도죠. 그러면서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독재 타도를 외칩니다. 헛웃음만 나옵니다. 중재원은 최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중재하려고 노력하고, 그에 대해서 신뢰가 쌓이면 저절로 더 많은 의료 기관이 참여하게 됩니다. 신뢰성이 부족한 현 상태에서도 상당 수의 의료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으니까요. 강제 조정은 그러한 노력 자체를 안 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정당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더라도 강제로 조정했으니까 받아들여라. 이게 신해철법의 실질적인 핵심입니다. 최대한 공정하려고 노력하면서 합의를 자발적으로 하게 이끌되, 합의가 되지 않으면 법의 판결을 받도록 하는 것. 이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한국은 의료인들에게는 민주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법률이 계속 남발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