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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록이 없으면 공적도 없다?
게시물ID : history_261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미르
추천 : 5
조회수 : 95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29 03:45:39
(편의를 위해 반말로 작성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는 틀린 말이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기전체로서 실록이나 기거주같은 사서 기록 방식이 아니다. 진수의 삼국지는 간결하고 중복을 피하여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서술할때 관련된 인물의 기전에 쪼개서 실어놨기때문에 하나의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려면 관련 기전을 모두 읽고 사건순으로 분류해야되는 어려움이 있다. 
대개 문신들이 무장보다 열전 기록 순위가 위에 위치하는데 이는 해당 문신들이 나라의 건국에 구조적으로 무장보다는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수의 삼국지에 대한 특징을 알려면 중국사학사 같은 개설서를 읽는 것이 필수다. 중국사학사 같은 개설서를 읽고 유지기의 사통으로 사서의 특징에 대해 파악해야만 틀린 소리를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연관된 개설서나 논문 등을 가능한 많이 읽어야 당시 시대상황이나 사실에 좀더 정확히 접근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기록이 없는데 고관인 경우 낙하산 인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명성이 실재보다 부풀려져있다는 경우는 유염이나 허정의 기록으로 증명이 된다. 기록이 간략한 경우는 위나라보다는 촉나라, 오나라의 초반부 인물, 원소, 유표, 유장, 동탁, 여포 등의 인물 들에게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점이다. 그에 소속된 인물이 공적이 없는데 단지 낙하산 인사라 쓰였을까 라고 하면 대개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유파의 경우 유비, 제갈량, 장비, 조조의 인사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으나 기록은 상당히 간결하다. 이는 그가 부풀려진게 아니라 실록같은 기록방식이 아니기때문에 모든 기록을 갖출 수 없어 생기는 것이다. 
촉나라는 집단이 초반에 여러차례 붕괴했기에 그들의 온전한 기록을 확보하기 어려웠을것이고 이는 손견의 부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 원소같은 대군벌도 결국엔 실패했기에 온전한 역사기록을 갖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기할 기록이 없는 이상 어떤 인물이던 그들 생전의 영향력이나 관직 등으로 파악하면 대체로 사실에서 크게 엇나가지않다고 보면 된다.
출처 http://blog.naver.com/smh2829/22072193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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