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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장사할 때 겪었던 공포 경험
게시물ID : panic_881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훈이아빠
추천 : 31
조회수 : 4640회
댓글수 : 24개
등록시간 : 2016/05/29 09:25:46
 20여 년 전 성남의 달동네에서 군고구마 장사할 때의 경험입니다. 그간 까맣게 잊고 살았다가 이곳 오유의 공포 글을 읽다가 불현듯 그때의 일이 선명하게 되살아나서 글을 씁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후배 자취집에 얹혀 살았어요.  생활비는 없고 돈은 필요하니 취업하기전까지 뭐든 임시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3~4년 전에 수원역 주변에서 군고구마 장사 해봤던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슬쩍 던졌더니 후배 녀석이 확 땡긴다며 오히려 더 부추기는 바람에 15만원씩 출자하고 '가로수','벼룩시장'을 뒤져 중고 군고구마통 딸린 리어커를 구했습니다. 생고구마 10박스를 사니 당장 내일 생활비도 없었죠. 다음날부터 성남 중앙시장 주변을 두드렸습니다.  

모든 장사가 그렇지만 군고구마장사도 쉽게 보이는 반면 신경 써야할 게 많습니다. 이미 수원역에서의 경험이 있어서 예측 가능한 난관임에도 쉽지 않았어요.  노점 텃새는 그나마 쉽게 풀렸습니다. 수원역에서는 노점상들이 노골적으로 가로막아서 전철역 앞에서 못하고 세류동쪽 기차역 부근에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성남 중앙시장쪽으로 진출한지 이틀만에 우리를 어여삐 여긴 시장입구 비비안(속옷) 사장님이 자기 매장 문 옆에서 할 수 있게 해주셔서 텃새들의 시샘을 받으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거의 매일 속옷 사장님과 직원들에게 너무 많이 익혀 팔리지 않은 재고 군고구마를 자발적으로 드렸습니다. 

 노점단속반도 복병입니다. 밤늦게는 시장이 파장이라 버스정류장 근처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노점단속반에게 고구마'서랍'을 뺏겨, 시청에 가서 돌려달라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매일 땔감을 공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원역 인근에서 했을 땐 공사판, 목공소, 동네를 가리지 않고 장작을 구하러 다니다가 목재상사를 발견하곤 밤마다 개구멍을 통해 잘려진 나무 떨거지들을 안정적으로 공수했습니다. 성남에선 주변에 그런 곳이 없었어요...ㅜㅜ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고구마 연통에 '땔감을 제공해주시는 분들께 군고구마 한봉지 무료!'를 광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 하나가 그해 겨울을 오돌오돌 떨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땔감을 걱정하면서 장사를 하던 어느날 오후, 집앞에서 장사를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땔감을 잔뜩 가져오며 살갑게 말을 겁니다.
 "아이구, 학생들이 고생이 많네. 땔감 구한다길래 어제 밤에 퇴근하면서 저 밑에서 주워왔어. 난 요 아래집 살아." 
공사판에서 썼던 굵고 긴 각목으로 리어카에 실을 수 있게 톱으로 서너번 자른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와! 고맙습니다. 아저씨, 오늘 밤 늦게 파장하고 올 때 한봉지 드릴께요.^^"
"고구마는 됐어... 수고들 해~" 
그러면서 돌아서 집에 들어갑니다. 그다음날에도 또 그다음날에도 장작들을 던져주다보니 금방 친해졌습니다. 공사현장 다니는 목수라고 했습니다. 
"형이라고 불러" 
조씨였고, 당시 조영남이 자니윤쑈에 나와서 중국에선 형님을 따거?라고 한다며 자기는 조딱이라고 했었던지라 이 양반을 우리들끼리 있을땐 '조딱'이라고 칭했습니다. 급기야는 반지하 사는 우리의 창문을 두드려 깨워 아침까지 먹으러 건너가는 사이가 되었죠. 다가구주택의 1층이었는데 부인과 돌이 채 안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밥값도 세이브되고 장작 걱정도 안해도 되니...ㅋㅋㅋ 이때까진 어려운 우리를 하늘이 도운다고 생각했어요... ㅜㅜ 

 열흘쯤 지났나요? 아침을 먹으러 오라길래 건너갔더니 부인 얼굴이 이상해요. 한쪽 눈이 팬더처럼 멍이 든거에요. 속으로만 흠짓했다고 생각했는데 들켰습니다. 
"어~ 저 여편네가 말을 안들어서..." 
그땐 우리가 좀 친해진 줄 알고 
"에이~ 형님, 그래도 형수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그러셨어요~ 또 그러심 신고합니다? 하하하" 
다음 날엔 마루와 마당의 경계에 있는 미닫이 유리문이 박살나 있었고 마루는 추워 안방에서 조용히 아침을 먹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왠지모를 불안을 감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장사 끝난 새벽 1시에도 술먹자고 불러냅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한테 막하진 않았어요.  '문제의 그날' 이후로 우리는 집을 빼고 도망가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후배는 그 다가구 건물 통째로 아버지가 증여해 준 것이라 건물주였어요. ㅜㅜ  

문제의 그날은 한달여 장사하면서 돈좀 벌었다는 소문에 후배들이 갑자기 쳐들어 왔습니다. 장사를 일찍 접고 반지하에서 일곱이 둘러 앉아 고기를 구워먹었습니다. 술안주로 '조딱'도 올라왔습니다. 골때리는 아랫집 형님 이야기에 다들 재밌다며 깔깔거렸고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반지하 창문이 똑똑... 조딱이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동생들 친구들이 왔능가?" 
후배가 문을 열어주니, 잠시만... 하더니 아래 수퍼에서 소주와 안주거리를 잔뜩 사들고 오더군요.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젊은 친구들이 모인지라 허물없는 농도 오고갔습니다. 뭣땜에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조딱이 놀러온 후배 하나에게
 "머라? 이 ㅅㅂ넘이 뒈질라구 악을 쓰냐!" 
분위기는 쏴해졌고 놀러온 후배 한 넘은 약간 당황해서
 "아닙니다. 형님. 헤헤" 
그러면서 웃더라구요. 조딱이 일어나길래 기분 상해서 가려나보다 하고 그냥 배웅하려고 저랑 집주인 후배가 일어났어요. 근데 갑자기 부엌서 칼을 들고 옵니다... ㄷ ㄷ ㄷ 앉아있던 후배들은 일제히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습니다. 일촉즉발은 이런 데에 갖다쓰는 겁니다. 조딱과 후배들이 대치하는 형국에 집주인 후배와 저는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었습니다. 
"앉아, 앉아들.. 안앉냐??!! 왜 덤빌라구?" 
다들 앉지못하고 있으니까 조딱이 먼저 앉더니 칼로 안주거리를 찌릅니다. 씨익 웃으면서 
"안앉냐! 어이 동생, 이리 옆에 앉아"
 터지는 심장을 숨기고 저와 후배는 양 옆에 앉았고, 놀러온 후배들도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려 최대한 벽에 가까이 앉았습니다. 웃긴건 조딱 양 옆에 행동대장처럼 우리가 양반자세로 앉았고 다섯은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는 거죠...ㅜㅜ 칼때문인지 경계심에 무릎을 꿇은 탓도 있었지만 어째든 영화 넘버쓰리 송강호 분위기가 돼버렸습니다. 끝도 없이 말도 안되는 훈계와 아재개그에도 우리의 리액션은 마구 터졌습니다. 칼을 들고 있으니 도리가 없었어요... 마음속으로 내일 신문과 뉴스에는 제발 나오지말자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바들바들 떠는 다리와 팔이 야속했죠... 

정말 다행히도 새벽 3시경에 조딱은 들고 있던 칼을 부엌에 거두고 피곤하다며 돌아갔습니다. 가고 나서 서로 숨죽인 허탈한 웃음만 났습니다. 긴장했던 탓에 온몸이 욱씬거렸어요. 가성의 수근거림... 창문 밖에서 들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큰소리도 못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고 가려던 후배들은 첫버스가 다니는 새벽 5시경에 허겁지겁 집을 나섰습니다.

 부엌칼 에피소드 이후엔 우리는 조딱에게 너무나도 깍듯해졌습니다. 조폭 똘마니 된 기분? ㅜㅜ 얼마후 부인과 아들이 가출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날부터 우린 종종 거기서 자야했습니다. 아침밥도 차려야했어요.ㅜㅜ 부인과 아들은 열흘만에 잡혀왔고 얼굴이 멍투성이였습니다.  밤낮 가리지않고 부인의 곡소리가 들렸습니다. 신고하자고 하다가도 정말 무서워서 실행에 못옮기던 와중에 2차 가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에게 우리는 온갖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소모품이었습니다. 욕은 기본이었고 때린 적은 없지만 손이 올라간 적은 몇 번 있었어요... 시도때도 없이 불렀고 안오면 반지하방으로 쳐들어왔고 상전 모시듯 해야했습니다. 칼을 들었던 게 떠오르니 평소와 같았던 말투에도 무서웠습니다. 군고구마 장사로 힘들어서 살빠지는 게 아니라 조딱땜에 스트레스로 여위어갔습니다. 우리는 웃음기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조딱은 동네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습니다. 동네사람들과 시비로 언성이 높아지고 주먹다짐도 있어서 말리기도 했죠. 동네사람들이 조딱 피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우리도 피합니다... ㅋㅋㅋ ㅜㅜ

 해방은 815처럼 왔습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고 있는데 경찰 사이렌 소리에 깼어요. 밖에 나가보니 조딱이 수갑에 채워져 연행되는 겁니다. 동네 주민들이 수근거리는데, 저 아래 길가에 주차된 차 몇 대를 해머같은 연장으로 박살을 냈다는 겁니다. 행인도 때려눕혔다고 ㄷ ㄷ ㄷ 
눈마주칠까봐 주민들 뒤에 숨어서 지켜봤습니다. 경찰차가 떠난 후에 우린 남자끼리지만 와락 껴안았습니다. 밤마다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아침밥 안차려도 된다!!! ㅜㅜ 

 저는 다음해 초 인천쪽에 취업해서 그집을 떠났습니다. 조딱이 잡혀가지 않았다면 후배를 홀로 두고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이후 후배와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잘해줬던 후배인데... 쩝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땐 두달 가까이 공포에 떨며 탈출할 궁리만 했었네요. 그러고보니 그 놈은 우리와 친해지기까지 딱 세번만 땔감을 줬네요.ㅋㅋㅋ  지금도 길가다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을거에요. 조딱의 얼굴과 멍든 부인의 얼굴은 사진처럼 머릿속에 박혀있습니다.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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