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를 맞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의 환경조각전은 정규교과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졸업을 위한 필수과목입니다. 매년 그러하듯이 학기의 시작 시점에서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지도교수와 상의하여 정식절차를 밟아 교내의 여러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는 야외조각전 형식을 티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작품명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의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제작 의도는 일베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현재 존재하는 가치의 혼란, 극단적 대립 그리고 폭력성 등 일베 논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회가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이분적인 대립이 심각해지는 현상을 걱정스럽게 생각하며 던진 조형언어입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의 입장에서도 그 원인과 현상에 대한 담론은 건강한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반응이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작품을 훼손하는 방식 또한 우려되는 안타까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란을 위한 논란을 생성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고 사회에 대한 한 미술학도의 관심이라고 여겨주시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더불어 공공장소에 놓이는 야외조각으로서 공론적 책임도 함께 고민하는 교육환경을 지도하고 조성함을 조소과 교수들의 입장을 대표하여 말씀드립니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제작의도 홍기하 홍익대 조소과 4학년
일단 작품 의도 표명을 많은 분들이 기다려 주신 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저의 작품은 조소과 환경조각전 전시의 참여작이며 전시 오픈은 31일(화요일)입니다. 작품의 캡션이 안 달린 점은 저의 신분과 의도를 숨기려 한 것이 아니라, 오픈 전날에 작품 설치를 미리 한 것이며, 오픈 후에는 작품의 제목과 저의 이름이 작품(의 캡션)에 달립니다.
저의 작품이 설치된 장소가 외부인들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이며, 저의 작품은 공공성이 생명입니다. 미술계 안의 사람들로 한정된 관객이 아니라 더 다채로운 시각과 의견들을 받아들이고자 가장 다양한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곳을 택했습니다.
저의 작품은 제가 일베를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를 단정 짓는 이분법적인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제 작품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입니다.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라는 것을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이것에 대한 논란과 논쟁이 벌이는 것이 제 작품의 의도입니다. 또 작품이 이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시각에서 이 작품의 제작자가 "일베다",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일베가 사회 다방면에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해석했으면 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모든 의견들도 작품의 의도로써서받아들이고 있고 저와 제 작품의 의도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난, 거짓된 정보들, 그리고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도 일베가 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온라인의 폭력성을 저는 작품 제작자로서 받고 있고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비추려는 것이 저의 의도입니다.
저의 작품은 지금과 같은 수많은 논란이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며 몇 개월간 교수님들과 논의를 하며 제작되었고 작품의 의도와 설치 장소에 대해서도 학과를 통해 절차를 밟아 공식적인 허가를 받았습니다. 몇몇 분들이 원하시는 작품 철거는 저의 작품 의도에 빗나가고, 그럴 당위성이 없기 때문에 철거 계획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비난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작품을 훼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작품을 통해서 이것이 왜 예술이냐, 작품이 아니라 쓰레기다, 관객에게 혐오감을 준다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없다 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데 이렇게 예술의 정의와 범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건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없기 때문에 각자 저의 작품을 통해서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볼 수 있어서 대중과 거리가 먼 현대미술을 한걸음 더 가깝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