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여섯.
어느 면에서 보든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오유징어답게 싱글인 것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많게 느껴지는...
싱글이라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많지만
그래도 장점만 보면서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래도 회사 생활에서만큼은 단점으로 작용하는 면이 더 많은 것 같군요.
올해로 직장생활 23년째를 맞고 있는데,
그동안 옮겨다닌 직장을 가만히 꼽아보니 10군데가 넘더군요.
평균으로 따지자면 한 직장에서 2년 꼴이지만,
꼭 그랬던 건 아니구요.
어렸을 때 여기저기 적응 못한 채로 한참을 떠돌다가,
98년에 입사한 회사에서 11년을 근무하고,
그 이후에 다시 지금까지 도무지 한 곳에서 버티질 못하네요.
11년 근무한 그곳에서 참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일도 많이 배우고...
아직까지도 그때의 인맥들로 먹고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회사는 대표도 임원도 없이 저와 몇몇 남은 사람들의 손으로
직접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중소기업이 망하는 데에는 뭐 여러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제가 다녔던 그곳의 경우엔 대표의 전횡이 가장 큰 문제였지요.
그 이후에 해외에 있는 회사에도 취업해보고,
또 꽤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과 함께 한 직장에서 3년을 채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이곳저곳 방황을 하다가,
올해들어서 문득,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노숙을 면하지 못하겠구나" 싶은 불안감에
마음을 굳게 먹고 소개받은 곳에 입사를 하게 됐어요.
이제 딱 2주째 접어듭니다.
그런데...
아! 이건 또 지금까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를 선사하고 있네요.
입사전 인터뷰에서는 직원수 37명에 이번달 매출만 19억을 찍고,
이 업계에서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컨셉의 경영을 한다는
대표의 열정에 감동해서 제안받은지 이틀만에 덜컥 결정을 했는데...
관리자로 들어와본 회사에 실제로 일하는 직원은 달랑 5명,
나머지는 모두 외주 인력이었구요.
네. 이건 뭐 저도 실무를 직접 챙기면서 직원을 어떻게든 충원하면 되니까요...
크리에이티브를 다루는 업종에서 대표의 마인드는 시어머니 사단장보다 더한...
입사한 첫날부터 저에게 회의 자리에서 바로 말을 턱! 내려놓기부터 시작해서,
제안서 작업 한 페이지 한 페이지까지 일일이 잔소리하며,
직원들을 쥐잡듯이 잡는데....
제가 출근하기 시작한 날, 한달 된 다른 직원이 그만두는 사람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이겠거니... 했는데, 결국 이유는 회사와 대표에게 있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떡같이 버티며 잘 생활하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네요.
저보다 나이는 한참 아래이지만, 이미 아이도 있고... 가장이지요.
오늘도 회사에 나와 당장 눈앞에 걸린 제안서를 작성하는데,
갑자기 대표가 불러서 제가 쓴 제안서를 처음부터 홀라당 뒤집고,
그걸 다른 친구에게 맡겨버리더군요. 위에 이야기한 책임감 있는 가장.
졸지에, 제안을 지휘하던 자리에서 지휘봉 뺏기고 하던 작업마저
중단한 채 맥없이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중간중간 수시로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네요.
참고로, 저는 이 회사에 임원급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임원이 해야할 일이 대표와 실무 관리자 사이의 중재와 통솔인 걸로 알고 있고,
지금껏 그렇게 일을 해왔는데, 여기서는 사장 비서라도 돼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도 적응도 안되고...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회사 분위기라 어찌해야할 지 정신이 없는 상태네요.
그래서 불현듯 의문이 듭니다.
내가 뭔가 잘못된 걸까? 나는 애초에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었나?
아예 직장생활이란 걸 할 수 없는 존재였던가?
휴일날 회사 나와 일하다가, 대표에게 말도 안되는 쿠사리를 먹고 나니
제정신도 아닌 것 같고... 내상에 신음하다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모양입니다.
좀 있다가 이 글을 다시 보면 이불을 뻥뻥 찰 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래도, 오유니까...
어떤 넋두리라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오유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한번 지껄여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