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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11~12화 리뷰] 너와 나의 차례
게시물ID : drama_456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밀덕덕
추천 : 18
조회수 : 189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06/08 23: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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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안해졌다.

8화부터 11화까지 고구마를 박스채로 우겨 넣어주던 작가와 감독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아니면 2화 이상 극적 갈등을 강제로 이어나가면 제대로 망하는 테크라는 걸 이제야 깨닳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제 좀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너무 편안해서 갈등해소를 위해 등장한 장치들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하기야 작가가 여전히 뒷통수를 날릴만한 무언가를 두 세개쯤 스페어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래도 뭐... 이젠 좀 아무 생각없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볼만한 여건은 갖추어졌다고 보여진다.

솔직히 남자주인공이 너무 깝깝했다. 그냥 깝깝하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고집도 드럽게 쎄서 남의 말도 안 듣고 그냥 지멋대로 사는 스타일. 이런 남자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 그냥 나쁜 놈이다. 어릴 때의 뒤틀려진 심보가 그냥 고착된 케이스다. 흔한 일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박도경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런 사람이 바라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모성애쪽일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모성애가 넘쳐서 전 인류에 대한 박애를 실현할만큼 속이 넓은 여자 아니라면 가만히 스쳐지나가는게 좋을 것 같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인생의 쓴맛을 스스로 드링킹하기로 작정하신 남자주인공의 재탄생을 기념하며 시작해보자.
 
가능한 짧게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것만 넣어도 꽤 길드라. 미리 사과 말씀 드리겠다. 한태진과 전해영 이야기까지 넣었으면 더 길어졌을 것이다.
 
이하의 글에서 전혜빈의 오해영은 전해영, 서현진의 오해영은 서해영으로 언급하겠으므로 유의하시길 바란다.
 
 

1. 죽음과 재생 (Death & Rebirth) - 박도경
 
 
지난 리뷰에서 에반게리온 이야기를 했었으니 이번에도 비슷하게 시작해보겠다. 거기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끼얹어서.
 
 
오메데토~. 알을 깨고 나온 걸 축하한다, 박도경. 그런데 어쩌냐 인생은 실전이드라.
 
 
흔히 말하는 죽어야 고쳐진다는 속언처럼 죽기 직전에서야 '사랑해'라는 말이 나온 박도경(36세. 남. 음향기사) 되시겠다. 그렇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 아,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어야 다시는 뻘짓 못하지.

사실 이건 꽤 신빙성 있는 속설이다. 필자도 그랬거든. 흑역사다. 교통사고나 뭐 이런 거면 밝히겠는데 안 그래서 못 밝힘. 셀프 신상털이를 원하는 사람도 없을테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12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대로 끝내는 걸 택한 뒤, 이 여자 저 여자 다 떠나 보내고 혼자 불행하게 살기로 결심한 그 마음 그대로 혼자 삽질하다가 차에 치어 죽어가면서야 주마등 속에서 자기 인생의 가장 후회되는 것이 '이대로 끝내겠다던 그 결심'임을 깨닭은 남자의 술회였다.
 
허지아 여사도 장회장과 헤어지게 되고 집도 되찾고 아버지 작업실도 복원하고 원하던 것은 다 이루었는데... 단 하나 서해영이 없는 인생의 끝을 본 박도경의 마지막 모습이었달까.
 
죽는 그 순간에서야 그녀에게 진정 용서를 구하지도 사랑한다 말해주지도 못한 사실이 뼈에 사무치는 미련으로 남아 과거의 자신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차 안에서 박도경이 울었던 것은  죽어버린 미래의 박도경이 미처 흘리지 못한 통한의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의 마음이란게 정말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없이 동일하다면 현재의 박도경은 미래의 박도경을 통해 이미 한 번 죽었고 현재 살아있음을 자각함으로서 다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사일여, 무시무종, 무명무시종.
 

박도경은 혼자 질질 짜다가 '그래, 결심했어 2탄'과 함께 차를 몰고 달려간다. 시청자야 10화에서의 모습을 알기 때문에 이 놈이 호떡 뒤짚듯이 깨갱하며 금세 말을 바꾸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 때와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박도경이 서해영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2개였다. 서해영의 파혼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망설임.
 
10화에서의 결심이 죄책감을 이겨내고 그 여자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는 않겠다는 결심이었다면 12화에서의 결심은 일단 죽을 때 죽더라도 남들처럼 자신도 제대로 표현해보겠다는 결의였다. 10화에서의 사라지는 걸 인정하면 엄한테 힘 쓰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이 실제로 완성된 건 12화였던 것이다.
 
10화의 결심이 알 속에서 삐악거리며 어미에게 자신이 깨어났음을 알리는 것이었다면 12화에서의 결심은 부리로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갈 결심을 굳힌 것이었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을 깨고 나온 새끼는 어미가 이미 다른 새끼들을 데리고 둥지를 떠났기에 젖은 털을 말리지도 못하고 먹이를 구하지도 못한 채 홀로 차갑게 죽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 또한 세상의 섭리다.
 
박도경이 스스로의 망설임을 극복했다 치더라도 가장 중요한 관문이 남아있다. 박도경의 거부로 인해 상처입은 서해영의 마음. 
 
 

2. 비겁함의 댓가 - 박도경
 
 
박도경은 어차피 자신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 나쁜 놈일 때 접는 게 맞는다며 애원하는 서해영을 뿌리쳤었다. 일견 더 이상 상처주지 않겠다는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결단으로 보이겠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내 사정이 이러이러한데 네 생각은 어떠냐'하고 한 번이라도 물어보긴 했나? 한태진과 박도경이 결과적으로 뭐가 다르지? 
 
 
이건 작게 보면 내 사정은 내가 제일 잘 아니 너와 관련된 일이지만 내가 가장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식의 오만한 결정이고 크게 보면 죽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비겁한 결정이었다.
 
더 큰 잘못은 서해영만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와 가족에게도 사실을 숨긴 채 혼자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서해영이 슬퍼하는 건 안 되고 가족들이 슬퍼하는 건 괜찮나?
 
아니, 상식적으로 서해영의 친구인 희란이 계속 PD일을 하는 한 언젠간 박도경이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이 서해영의 귀에 들어가게 될텐데 그런 식으로 정리하면 서해영이 슬퍼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과연 이대로 끝내겠다는 결정이 진정 모든 슬픔을 홀로 감내하겠다는 숭고하고 배려감 넘치는 현명한 판단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박도경이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며 이전의 결정을 번복하기는 했으나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은 책임져야할 것이다. 끝까지 비겁하게 밀어내고 도망쳤던 사실에 대한 책임. 
 
 
그런데 진짜 골 때리는 건 현재의 박도경에게 있어서 서해영의 대응이 아주 핵심적인 문제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엄청 이기적이고 일방적으로 보이겠지만 박도경에게 현재 가장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서해영이 받아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후회없이 해보느냐이다.

미처 표현해주지 못한 것들을 전부 쏟아붇고 나서도 서해영이 받아주지 않았을 때, 또 다시 박도경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면 그 때 그가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는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더 과거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해볼만큼 해봤으니 이대로 만족하며 미련 없이 죽을 것인가.
 
 
누군가는 박도경이 자신이 미래의 자신이 보내는 죽음에 이르는 환각으로 인해 망설였음을 고백하면 서해영이 곧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는 서해영의 성격이라면 그걸로는 택도 없어보인다. 오히려 더 많이 쳐 맞지 않을까 싶다.
 
"언제 죽는 지 미리 알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나? 내일 죽으면 오늘은 사랑 안 할 거야?" 하면서 더 때릴 것 같은뎅. 
 
 
 
3. 죽음과 재생 (Death & Rebirth) - 서해영
 
 
하여튼 박도경이 이제야 '사랑한다면 일직선'을 외쳐도 서해영이 그걸 넙죽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해영이 돌아온 박도경을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별게 아니다.
 
 
서해영: "너한테 그렇게 쉬웠던 나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렇게 쉬웠던 나를 어떻게 이렇게 쉽게 버리니. 어떻게 이렇게 쉽게 버리니."
 
 
버려지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이 드라마의 내용상 서해영은 박도경에게 버려짐으로서, 박도경과의 사랑이 파탄으로 치달음으로서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10화에서 왔다갔다 안 한다고 했던 놈이 금세 태도를 바꾸고 다시 밀어내며 이대로 끝내자고 했는데, 대체 이놈의 말을 어떻게 믿고 다시 만나보겠다고 그리 쉽게 결심하겠는가. 하물며 자신이 피해자이고 박도경이 가해자였음이 만천하에 밝혀진 뒤 그리움을 도저히 참지 못해 먼저 찾아가 매달렸음에도 버려진 상황에서. 
 
물론 서해영이 결국엔 박도경을 다시 받아주기는 할 것이다. 서해영에게 여전히 박도경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음이 위의 대사 직후 이어지는 발언에도 드러나 있으니까.
 
 
서해영: "나는 니가 아주아주 불행했으면 좋겠어. 매일 밤마다 질질 짰으면 좋겠어. 나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으면 좋겠어. 나는 이대로 너를 생각하다가 홧병으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니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으면 좋겠어."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저주가 담긴 발언이지만 가만히 보면 이 대사는 여전히 박도경에 대한 애정이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괴로우니 너도 똑같이 괴롭고 자신이 잊혀지지 않길 원한다는 내용이다. 사랑은 사랑인데 애증으로 바뀐.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고 꾀병을 부리는 어린 아이의 심정과 비슷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나 이렇게 아프니까 나를 봐달라는 그런 것.
 
박도경이 정말 진심으로 뉘우치고 그게 서해영의 마음에 전해진다면 아직 남아 있던 애정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는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박도경은 죽었지만 현재의 박도경이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버려졌지만 아직 버리지 않은 서해영의 그 마음 때문에.
 
 
 
4. 바톤 터치 - 서해영
 
 
필자가 서해영이 박도경을 다시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박도경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12화 마지막에서 박도경은 자신의 내적인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고 정면으로 부딪히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준 상처지만 그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결의. 그렇다면 박도경과 닮은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닌 서해영은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해영은 1화부터 12화까지 변화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젠 변해야할 시기가 되었다. 서해영이 변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서해영에게는 스스로 극복해야할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작가가 매우 교묘하게 연막을 쳐놓아서 눈치를 채기 힘들었겠지만 서해영 역시 나름의 한계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1화부터 12화까지 아주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그걸 보여주었다.
 
맨날 술 먹고 울고 이리저리 채이고 밟히고 그럼에도 자기 마음에 솔직해서 자신이 비빌 구석인 박도경에게 대차게 들이대고... 사실 시청자들은 그저 짠하고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저렇게까지 이리저리 치이니 불쌍할 수 밖에.
 
그런데 동정심과 빠심을 걷어내고 보면 이 여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까놓고 보면 이 여자는 뭔 일 생기면 술 먹고 속 앓이 하며 울고 여전히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으며 심심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의지하고자 한다. 설령 자신을 예전에 차버린 남자라도.
 
무엇보다 질투가 원인이든 피해의식이 원인이든 서해영은 전해영에게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맨 정신인 채 당당하게 마주선 적이 없었다. 피하고 쭈그리고 억울함에 멱살 잡고 때리려고만 했을 뿐.
 
 
그동안 불필요한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아왔지만 서해영은 사실 약한 수준의 회피성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꽤 있다.
 
타인의 평판에 민감하고 눈치와 촉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자하는 본능이 강하며, 3급수 1급수 발언을 보면 타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작았고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한다.
 
일견 소심하고 상처입은 흔하고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하나씩 따져 보면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성과 상당수 일치한다. 그저 피해자라는 선입견과 안쓰러운 모습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전해영이 빼어난 외모를 바탕으로 연극성 성격장애에 가깝게 성장했다면 서해영은 촉과 눈치를 바탕으로 회피성 성격장애에 가깝게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져보면 박도경에게 들이댈 때에도 서해영은 비빌 구석을 줄 때엔 들이대고 단호하게 밀어내면 한 걸음 밀려났다. 9화의 키스씬 이후에도 박도경의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희란의 의견을 듣고 나서야 확신을 가졌고 집까지 찾아갔으나 결국 뒤돌아 나오고 말았다. 그 때 그녀가 '왜 재고 있니'라고 혼잣말하던 걸 생각해보자.
 
'니 생각따윈 필요없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거야'하는 진짜 아무것도 재고 따지지 않는 태도는 실제로는 거의 희미했던 것. 
 
박도경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로 마음을 먹었듯이 서해영 역시 자기 자신의 문제를 극복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자신의 모습을 찾아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서해영의 입장에서 이걸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이 바로 박도경과 다시 만날 것을 결심하는 것일 거다. 다만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온전히 두 발로 서서 스스로의 마음에 충실한 채로.
 
역설적으로 말해서 도경이 마지막까지 서해영을 밀어냈기에 서해영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마음에 기대어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태진과 박도경 두 명 모두에게서 한 발짝씩 물러나 조용히 자기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당기면 당기는대로 밀면 밀리는대로 흔들리는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이후의 여파까지도 각오할 수 있도록.
 
 
 
5. 누에와 나비
 
 
라디오 사연 고백 씬에서 의아함과 황당함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게 아주 잘 꾸며진 극적 장치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기댈 곳이 아무데도 없고 심심했기에 서해영은 술김 + 미친 마음에 그저 생각없이 그렇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서해영은 사회적인 자살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동시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원수를 사랑하게 된 서해영을 미쳤냐고 말할 것이고 억울하게 파혼 당한 남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상황도 납득할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파혼하게 되면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르는 건 피할 수 없으니까.
 
 
원래 약혼자였던 한태진 Vs 자기 인생을 망친 원수 박도경 Vs 둘 다 포기하기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선택에 주목하게 될 것이고 이런저런 말로 그녀를 흔들게 될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자면 한태진을 선택해야하는데 이미 마음이 떠났고 박도경을 선택하자니 미쳤냐는 소리를 들을 판이다. 둘 다 선택하지 않자니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그녀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한태진을 선택할 경우 서해영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전해영과 마찬가지로 껍데기 뿐인 인생을 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대로 박도경을 선택할 경우 그토록 타인의 눈치를 보던 삶에서 벗어나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떳떳하게 미친 여자로 살아야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서해영의 선택은 아주 단순하게 흐를 수 밖에 없다. 자기 인생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전해영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보다 이미 미쳐있는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더 속 편하니까.
 
한 마디로 이미 미쳐있는 여자주인공이니까 미친 사랑을 택한다는 것.
 
다만 박도경과 같이 사는 내내 미친 선택을 한 여자라는 사실이 끝업이 꼬리표를 달고 다닐 것이므로, 이제까지와의 자신과는 다르게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박도경과의 사랑을 결심하는 건 서해영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완전히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 전체의 눈총에도 맞설 걸 각오한 입장에서 전해영과 비교하는 몇몇쯤이야 식후 간식거리가 되겠지.
 
물론 그 와중에도 박도경에게 맹세할 것을 요구할 건 분명하다. 마지막 기회를 줄 건데 이번에도 헷갈리게 할 경우 길가다 등에 칼 꽂히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 인줄 알라고.
 
 
 
6. 박도경의 착각 혹은 거짓말
 
 
이왕 박도경의 미래 환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부연으로 짚고 넘어가볼 부분을 끄집어내 보자. 박도경은 서해영과 바닷가에 가서 '언제부터 좋았냐'는 물음에 고등학교 반장선거 셀프투표 고백 때부터 좋아했다고 말한다.
 
이거 진짜일까?
 
박도경은 서해영과 현실에서 직접 마주치기 전부터 환각을 보았다. 왼팔에 깁스를 하고 걸어오는 서해영을 길에서 만나는 환각. 그리고 이후에도 커피숍에서 어깨빵 사건으로 또 다시 그녀를 만나며 환각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박도경이 보는 환각이 단순한 이미지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도경은 환각을 통해 교통사고 당시의 통증을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또 그 여자를 환각 속에서 볼 때 어떤 느낌이 가장 강렬하게 드냐는 물음엔 "짠해서 미칠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고 자기 인생이 아주 쓸쓸하게 끝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 적도 있다.
 
즉 박도경이 보는 환각은 이미지와 감성이 동시에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흥미로운 부분이 존재하는데 미래의 박도경이 전해주는 환각에 이미 그녀를 사랑하게 된 마음이 담겨져 있을 거라는 점이다. 환각을 보며 뽀얀 자체 뷰티 모드 처리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현재의 박도경으로서는 황당한 일이겠지만 미래의 심정이 고대로 전달되다보니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이뻐보였을 것이다. 어깨빵 이후  술자리에서 뜬금없이 '이쁘댔어요'라고 박도경이 말한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그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박도경은 언제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12화 이후의 박도경에게 다시 물어본다면 그는 아마 대답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좋았어."
 
처음에는 그게 사랑하는 감정이란 걸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 확신하고 난 다음에는 생각이 바뀌었을테니까.
 
 
 
이외에도 꽤나 할 이야기가 좀 남았지만 필자의 체력이 완전 고갈된 고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한태진씨 미안해.. 밀린 게 몇 번 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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