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지하도
지하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섯 남짓한 칸의 계단
바닥과 벽 그리고 원기둥을 빼곡히 두른 타일, 눈물인양 타일을 타고 흘러내리는 녹물
지하도 한켠에서
기괴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
초등학교 일학년 정도로 보이는 그 아이의 얼굴엔 핏기가 사라 진지 오래.
마치 하얀 직쏘 가면을 쓴 듯한 모습.
계단을 타고 노는 아이들.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 등에 업힌 네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남자아이는 다리 한 쪽이 없다
무릎 아래로 허전한 잘린 한쪽 다리의 바짓단이 , 여자아이가 뛸 때마다 바람에 펄럭인다.
그 주위로도 깔깔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이 여럿
하나같이 활짝 웃고 노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기괴함이 느껴진다.
꺄르르 소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피부색
생기 없는 발랄함
아마 내가 느낀 기괴함은 여기에서 온 것이리라
방치된 후줄근한 건물의 화장실이 연상되는 지하도
바닥과 벽 그리고 원기둥을 빼곡히 두른 타일, 눈물인양 타일을 타고 흘러내리는 녹물
기분 나쁜 온도의 기둥
수많은 기둥 중 하나를 골라잡아 그 뒤에 몰래 숨어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
알 수 없는 기분 나쁨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들키고 싶지 않다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나는 저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러다
핏기 없는 얼굴 하나와 눈이 마주친다.
입은 활짝, 아니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크게 웃고 있다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낄낄거리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나에게로 오고 있다
낄낄 소리가 가까워진다
여자아이가 등에 업은 남자아이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잘린 다리의 남자아이가 나에게 기어오기 시작한다
얼굴은 여전히 활짝.
아니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입을 크게 벌려 웃어 보이며
힘을 짜내어 나에게로 기어온다.
기분 나쁨. 무서움.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일단 도망간다.
껌껌한 지하도를 뛴다.
그때 발견한 화장실 하나.
어느새 나는 문 닫힌 화장실 안.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방울
또옥, 또옥,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듣기 싫은 기분 나쁜 소리
쾅! 쾅!
문 두들기는 소리
끼익- 철컥-
문 열리는 소리
문 앞에 서있는 자전거 한 대
그 위의 하얀 가면을 쓴 것 같은 핏기 없는 얼굴
“잠깐 기다려 봐 , 내가 누굴 데려 올 거야. 어디 가지 말고! “
자전거를 내 팽개치고 뒤 돌아 사라지는 남자아이
열린 문 앞에 홀로 남겨진 자전거
그 뒤로 펼쳐진 암흑
녹이 슨 수도꼭지를 돌려
마른 얼굴에 찬물세수를 해본다.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
“여기야 여기”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남자아이의 목소리
그 너머 들려오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
빨라지는 내 심장박동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듯
덩달아 빨라지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
까르르 깔깔깔
그 위로 입혀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머리는 백지상태
어느새 문 앞까지 다가온 발걸음 소리
출처 | 오늘 꾼 내 꿈 가위를 눌리거나, 이런 기분 나쁜 꿈을 꾸거나 하루하루 잠드는 것이 지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