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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독백 혹은 고백 (마지막)
게시물ID : love_122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숭이바라기
추천 : 41
조회수 : 2862회
댓글수 : 56개
등록시간 : 2016/10/04 16: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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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말랐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얼굴엔 핏기가 없었고, 팔은 앙상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마른건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너를 만나고, 습관처럼 조금씩 깨작거렸다.


내가 잘 먹지 못할때, 나를 걱정하는 니 눈빛이 좋아, 배가 부르지 않아도 숟가락을 놓기 일쑤였다.


너와 있지 않을땐, 말라가는 나를 걱정하는 네가 좋아,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생전 말라본적 없던 내가, 너를 만나고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네 앞에서 한번이라도 백퍼센트 진실된 '나'인적이 있었을까.


나는 네앞에서 늘 긴장했고, 그런 긴장감은 늘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네앞에서 나일수가 없었다.


난 너를 가지고, 네앞에서 나의 모습으로 네게 사랑받고 싶었다.







난, 결판을 내기로 했다.


이대로는 내 육체도 정신도 마음도 늦가을 낙엽처럼 다 바스러질것만 같았다.


기약없는 기다림에 너무나 지쳐갔고, 그 기다림에 끝을 내자 마음먹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름 난 그때 비장했던 것 같다.


이것이 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끝을 볼지언정 더 이상의 가슴앓이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여보세요?"

"나야. 오늘 바빠?"

"어... 아니 나 운동갔다 방금 집에왔어. 무슨일이야?"

"잠깐 너네 집에 들를게."

"응?? 무슨 일 있어?"


내 목소리의 미약한 떨림을 니가 알아서였을까.


너는 내심 불안한 목소리로 무슨일이냐 재차 물었다.


"아니...그냥 할말이 좀 있어. 지금 가도 괜찮아?"

"어 와도 괜찮긴 한데... 내가 갈까?"

"아니야, 나 너네집에서 지금 별로 안멀어 잠깐이면 되니까 지금 들를게 그럼."

"별일 아니지??"

"응 별일 아니야 지금 갈게."


너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을거야...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끊었다.


너에게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이날 밤이 지나면,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 밤이 내가 너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니가 보고싶다... 







문을 열어주는 너는 새삼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고, 


나는 괜시리 아 추워를 연발하며 소란스럽게 너의 집에 발을 들였다.


너의 몸에서 나던 라벤더 향이 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날따라 유난히 그 향이 짙은것 같았다.


너는 소란스러운 나의 등장에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곤 이내 웃으며 방으로 들어 가자며 내 손을 잡았다.


난 그날 너에게 최고로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었다.


그날은 내가 너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고 싶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생머리는 백번도 넘은 빗질로 윤이 나고 있었고, 


니가 좋아하던 쇄골이 보이는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던, 아니던, 나는 너에게 오늘 가장 아름다워보여야만 했다.


난 익숙하게 코트를 벗어 너의 옷장에 걸어 놓았고, 너를 보곤 베시시 웃어보였다.


너는 그런 내게 걸어와 내 허리를 감싸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뭐야... 갑자기 평일에 이렇게 이쁘게 차려입고 들이닥치면 어떡하자는거야..."


은은한 샴푸냄새가 내 코끝을 찔렀고, 순간 아무려면 어떠랴...


그냥 이대로 네 옆에만 있어도 좋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생각을 떨구곤, 너를 밀어내, 너의 눈을 보고 말을 뱉었다.


"말했잖아. 할얘기가 있어서 왔어."


너는 잠시 당황했고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다 뭔가를 느낀듯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말없이 너를 몇번이나 안았던 그 침대의 끄트머리에 걸터 앉았고,


너는 꽤나 방어적이던 내 모습에, 의자를 끌어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결 침착해진 톤과 목소리로 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얘기를 하러 온건지 알거 같긴 한데..."


"알거 같긴 해?"


어색함을 깨고자 내가 웃으며 장난스레 묻자, 너 역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말 돌려 하는거 잘 못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그냥 물을게. 우리 뭐야? 파트너야?"


강한 단어선택에 너는 꽤나 놀란듯했다. 


"야! 너는 무슨..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파트너는 무슨 파트너야!"


목소리를 높히며 격양된 목소리로 네가 말했고, 나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 부를수 있을까? 난 너를 뭐라 부르는게 맞을까? 넌 친구야? 애인은 아니고, 그럼 파트너라는 단어밖에 나올만한 단어가 없다. 그치?"


너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잠시 말이 없었다. 


정적이 잠시 흐른 뒤, 니가 말했다.


"미안하다, 니가 먼저 이런 얘길 꺼내게 한거... 나도 생각이 아주 없는 놈은 아니야. 너하고 이런 얘길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너도 아직 전 사람을 잊지 못한거같기도 했고..."


"잊었어."


"....잊었다고? 야 임마, 너 얼마전에도 나랑 할때..."


"너랑 할때 뭐....뭐???"


"너, 나랑 하면서... 아.....몰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그때..... 울었잖아."


나는 할말을 잊고 가만히 너를 쳐다 보았고, 너 역시 싸한 적막이 불편한듯 바닥만 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나는 그때..."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려 하던 찰나, 니가 말했다.


"아니 괜찮아 이해해. 뭐 그날 밤 이후로 나도 마음 불편했어.. 내가 그날...아니다..."


나는 할말을 잃고 너를 가만히 보고있었다. 


어디부터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 니가 하고 있는 오해의 정체가 뭔지.


도대체 넌 왜 내가 아직 전사람일 잊지 못한거라 생각하는건지.


내 시선의 끝이 항상 너라는걸 너는 정녕 몰랐는지 묻고 싶은게 백만가지였지만, 


그 모든 말을 입밖으로 어찌 정리해 어떻게 나열해야 하는지 정신이 없고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정말 최대한 담백하게 너에게 말했다.


"나, 너를 좋아하는거같아. 나 니가 자꾸... 좋아져. 내가 확실하게 아는건, 그거야. 나 너를 좋아해."


너는 고개를 떨구고 잠시의 침묵 후에 말했다.


"나도, 나도 너를 좋아해. 지수랑 헤어지고 여자 안만났던 거 아니야. 근데... 나 정말 너는 틀려, 그냥 만났던 그런 애들하곤. 너를 만나고 잠을 자. 원랜 매일같이 악몽에서 깨곤 했는데, 근데 너를 만나고 나서는 잠을 자기가 편해. 이 침대에서 너랑 잠들었던 그날 이후로, 나 잠을 편하게 자..."


"....."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근데, 나 정말 너를 파트너.. 아 씨발 그런거 아니야."


너는 평소에 하지 않던 욕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채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


"어...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해. 아닌거 니가 더 잘알잖아.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을 해."


너는 내가 뱉은 말에 꽤나 충격이라도 받은 듯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난 복잡하다는 너의 말을, 이해할 듯 이해 할수 없었다.


너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면 지수는 왜 찾아갔느냐고, 왜 그앨 만나서 두번다시 사랑하지 못할거라 말을 하고,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야 했느냐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나는 침묵을 이어갔다.


난, 여전히 네 앞에서 완전한 나이기가 힘들었다. 


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연아.. 너는.. 너무 부서질꺼같고, 너무 약해. 나는 너를 지켜주겠다는 말보단,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겠단 말이 더 하고싶어."


"....그게 무슨 뜻이야?"


너는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앞으로 너한테 잔소리 엄청나게 할거야. 난, 니옆에서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남자친구가 되고싶다."


"어...?"


"나랑 만나자. 정식으로, 니가 파트너 이런 이상한 소리 안할 수 있게, 우리 사귀자."


"...너 그거 ... 진짜야? 진심이야?"


나는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을 애써 감추며 너에게 되물었다.


"나도, 너한테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고있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시작이 암울했잖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세상 다 산 사람들처럼, 너무 힘들었을때 만난거라, 나도 내 감정에 확신이 없었어. 너 힘들어하는거 옆에서 위로도 되고, 동시에 마음도 아프고 그랬어. 근데 니가 먼저 이렇게 말 꺼내게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잘 해보자. 내가 널 강하게 만들어줄게."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너의 말에, 자꾸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너는 그런 나를 보고 내 볼을 만지며 말했다.


"야 너 지금 웃음 참냐...ㅋㅋㅋ 웃어 임마. 좋은거 다 티나."


나는 배게로 얼굴을 가리며 침대에 누웠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설레임을 애써 억누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너는 그런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고, 짐짓 엄한 목소리로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너 이거 이렇게 좋아할 일이 아니야... 내가 남자친구로는 얼마나 잔소리꾼인지 알아? 너 앞으로는 밤늦게까지 안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생활패턴 엉망진창으로 살면 나한테 혼날줄 알아. 건강하게 운동도 같이 다니고, 어? 너 이제 큰일 났다. 후회할지도 모를걸?"


나는 그런 너를 침대로 눕혓고, 너의 위에 올라타 입을 맞췄다.


그동안의 불확신과 초조함과 긴장감이 한순간에 날아 가는 순간이었다.


너는 그런나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나를 다시 안아주었고, 미칠듯이 퍼지던 행복속에서 감자기 불현듯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지수.


그리고, 그 이름이 입밖으로 새어 나왔다.


"지수... 지수는?"


너는 온몸이 언듯 순간 경직되었고, 팔로 눈을 가리며 나지막히 신음을 내뱉었다.


"지수는... 지수는 정말 강해. 그 못된 기집애는, 내가 없어도 아주 잘 살거야. 너랑은... 다르지...."


난 지금 이순간까지도 그때 내가 만약 조금만 둔했더라면.


그저 바보같이 아 그렇구나 알았어 했었더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너의 호흡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알아챌만큼, 너를 집요하게 좋아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너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고, 눈을 가리고 있던 너의 팔을 치운채, 너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지수를 잊었냐고 묻진 않을게. 그건, 대답이 듣고싶지도 않아 아직."


너는 나지막한 신음같은것을 뱉었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는 방금전까지의 환희는 사그러들고, 또한번 숨이 막힐듯한 긴장 속에, 묻지 말아야 했던 그 말을 물었다.


"만약에 있잖아... 아주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있는 와중에... 내일 지수가... 니가 필요하다 연락이 오면..."


너는 황급히 내 말을 잘랐다.


"아니, 지수는... 지수는 내가 필요한 애가 아니야. 그앤 내가 필요하지 않고, 설사 내가 필요하다 해도 나한테 와서 그말을 할 애가 아니야. 그 애는 너랑 달라."


마음이 싸늘하게 얼었다. 


너에 대한 마음이 언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잠재되어있던 알수 없는 끈이 끊기는 기분이었다.


"만약. 지수가 나랑 같다면? 니가 말한 나처럼 지수도 약해진 순간이 와서 니가 필요하다 하면? 그러면 어떡할거니?"


너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지금 꼭 대답해야 되? 너 이거... 한 몇달만 있다가 다시 나한테 물어봐주면 안될까?"


"하............"


나는 고개를 떨구고, 내 무릎에 얼굴을 묻은채 잠시 숨을 멈췄다가 고개를 들면서 너를 다시 바라보았다.


"너는.. 야... 너는 어떻게.... 거짓말도 못하냐?"


넌 말이 없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다시 말했다.


"몇달만... 있다가 다시 물어봐주면 안되? 이걸 왜 지금 물어봐야 하냐... 어?"


니 목소리의 떨림이 온 피부로 느껴졌고, 그런 니가 나는 정말 미웠다.


"나는,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과 기다림이 너무너무너무 힘들어... 그리고 그걸 끝내고 싶어서 오늘 너한테 왔어. 그 끝이 확신으로 매듭지어지길 진짜 정말 바랬는데..."



"....지금...은 말고...."


너의 말을 끊고 내가 말을 이었다.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속내를 도저히 삼킬수가 없었다 나는.


"너는...있잖아...... 거짓말이라도 나한테 확신을 주질 못하는.... 그런 사람이고... 나는 매일밤을 혹시나 오늘은 지수가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까, 혹시나 지수가 돌아오지 않을까, 내일 아침 너에게 끝이다, 미안하단 문자가 오진 않을까, 너와 내 사이는 견고한걸까 그런 수많은 의심들로 또다시 내가 무너지는 꼴은 못볼거같애. 니 말이 맞고, 그리고 또 틀려. 나 진짜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인거 맞는데, 나 차라리 지금 너를 안보면, 그게 내가 강해지는 길일거같애. 지금 니옆에 있잖아? 그러면, 나는 끝없이 한없이 그냥 막... 아......."


"연아...."


니가 눈물이 흐르는 내 두뺨을 어루만지려 손을 뻗었고, 그런 손을 거세게 나는 밀쳐냈다.


"아니 하지마. 그리고, 너 진짜 진짜 나빠. 너, 다른 여자 만나지마. 너 그냥 지수 잡고, 지수랑 다시 만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 지수 만나. 지수 다시 만날거 아니면, 넌 두번다시 여자 만나지마. 너 그렇게 사람 비참하게 하지마... 너 정말... 그러지마."


이를 악물고 너에게 최대한 조용한 목소리로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며 뱉어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나를 보인 순간이었을것만 같다 그 순간은.


몇분전만 해도, 붕 떠있던 가슴이 나락끝으로 떨어졌고, 이런 결과를 어느정도 예상하고 왔음에도 생각보다 너무나 쓰라렸다.

 
억울했고, 동시에 화가 났다.


차라리, 니가 내품에서 잠이 온단 말은 하지 말지.


차라리 그냥 파트너였다 미안하다 말하지.


난 너의 마음의 일부분을 차지했지만, 그게 전부일게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을편이 나을거라 느꼈다.


네 마음의 한구석을 차지한게, 난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다.


나는 숨을 조금 가다듬고, 걸어두었던 코트를 입었다.


"데려다줄게..."


너는 일어나며 차키를 들었고, 그런 너를 보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야... 장난해?"


너는 아마도 처음 봤을 내 모습에 조금 언듯했다.


나는 가방을 매며, 너에게 말했다.


"니가 데려다주는게 내가 좋을거같아? 난 여기서 그냥 갈래. 방에서도 나오지 마. 나 그냥 갈거야 뒤도 안돌아보고... 그리고 있잖아. 나 너 진짜 좋아했어. 너 꽤 매력있어, 나 아무나 그렇게 막 좋아하진 않아. 아까 한말 그냥 한 말 아니고... 너 그냥 지수 잡아 매력발산 해서. 애먼 여자 애먹이는거 그만하고..."


난 짐짓 쿨한척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너에게 말했고, 그때 나는 내가 최대한 멋있어 보이길 간절히 바랬다.


지금까지도 난 그때의 너의 표정이 기억나질 않는다. 웃는듯 우는듯, 알수 없는 그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있었고,


난 그런 널 뒤로 한채 니방 문을 닫고 너의 집을 혼자 걸어 나왔다.







너의 집을 빠져나오고 한참을 걸었다.


걸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심장이 먹먹해서 미칠것만 같기도 했다.


견딜수 없는 공허함이 가슴을 찔럿고, 멋지게 말하고 나온것과는 대조되게, 뒤를 자꾸 돌아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니가 달려와 나를 잡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도 상상도 했다.


물론 상상은 늘 그렇듯이 상상에 지나곤 말았다.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사고, 구석진 골목길로 가서 담배를 물었다.


길게 연기를 내뿜고, 핸드폰을 열어 가장 먼저 너의 번호를 지웠다.


니 번호를 가지고 있는건 아마도 몇날밤을 잠못이루고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할 날 알기때문이었다.


너를 차단하고, 지우고 당장 내일 가서 번호를 바꾸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약하다는 그 말이. 지수는 강하다는 그 말이, 나를 미치도록 자극했고, 그 말은 너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구심점이 되었던 듯 하다.


여전히 시린 바람이 몸을 매웠고, 세모금쯤의 연기가 들어갔을 때였을까, 


나는 거리에 주저앉아 미친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괜찮다 괜찮다 했는데, 나는 또 괜찮지가 않았다.









이것이 만약 완벽한 소설이었다면,


난 너와의 헤어짐 직후 각성이라도 한듯 아마 강인한 여성이 되었겠지만, 내 삶은 소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너와의 헤어짐 이후, 더 부서졌고, 무너졌고, 무뎌졌다.


난 몇주 후, 전남친과의 재회를 했고, 다섯번쯤의 섹스를 가진 뒤, 또 이별을 맞았다.


그는 또다시 알수 없는 잠수에 돌입했고, 그땐 무너졌다기 보단 그저 허탈함에 웃었다.


"x같은 새끼"라며 욕을 읇조리고 그 전의 이별보다 훨씬더 무디게 그를 보내 주었다.


그 후로도 또한번 사랑을 했고, 그 사랑 또한 지독한 그의 집착끝에 비극을 맞이했으며, 나는 그때 즈음 많이 변해있었다.


헤어짐이 아파 울지 않았고, 새로운 만남에 들떠 설레지도 않았다.


그리고 모든 타임라인이 뒤죽박죽 된 지금으로썬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중간즈음에 아마 지수와의 저녁식사도 끼어있었지 싶다.


지수는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언니... 나 오빠랑 요새 만나.... 그 인간의 순정에 내가 졌다 졌어 ㅋㅋㅋㅋㅋ"


지수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수 있는 사랑이 100이라고 칠때, 


내가 그에게 줄수 있는 사랑이 0일지라도, 그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 200이라면. 그건 80과 80을 가진 두 사람이 가진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아니겠냐고.


나는... 먼 옛날 그리했던 것처럼 지수의 등을 후려치며 복받은 년이라 웃으며 눈을 흘겼고,


달라진게 있다면, 뒤돌아 내 가슴을 치고 이해할수없는 감정의 체기를 억지로 집어 삼켜야만 했다.


확실한건, 그날의 저녁식사 후, 나는 더욱더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갔고, 니가 말하던 "강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수와의 저녁식사 역시 몇년전의 일이 되었고,


난 이제 너도, 지수도, 그리고 그때의 내 삶에 있던 많은 부분들에게서도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다.


넌 아직도 200의 마음을 가지고 지수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또다시 상처받고 나처럼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했는지 알지는 못한다만,


날씨가 조금씩 차가워지는 이맘때가 오면, 아직도 그 춥던날 남색코트를 입고 날 기다리던 니가 생각날 때가 있다.


가끔은, 내가 널 본 그 마지막 밤, 너에게 지수를 어찌할거냐 묻지 않았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보곤 하지만,


결국은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이, 끝이 났을거라 혼자 생각하며, 너와 나의 끝이 제법 그럴싸했단 마음으로 또다시 너를 접어넣곤 한다.


그 어떤 인연보다 짧았지만, 그 어떤 인연보다 강렬했기에, 난 아직도 가끔 니가 궁금하고,


난 아직도 가끔 너와의 그 밤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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