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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빼고 다 오르는게 세상.
게시물ID : sisa_924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ickyo
추천 : 3
조회수 : 5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0/10/26 20:49:25
주부A씨는 전단지를 보며 환호성을 외쳤다.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왠일이야? 우거지 천원세일에 돼지고기 100g에 990원.. 오늘 마트좀 가야겠다. 그녀는 얇은 지갑을 손에 들고 약간 낡은 니트와 면바지를 입은 채 뽀글뽀글한 머리를 하고 마트로 향해 나섰다. 이 마트는 대형체인으로 이뤄진 곳이었는데, 이렇게 시즌 별 정기바겐세일을 할 때면 그녀는 신이났다. 가뜩이나 적은 월급봉투로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주부의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A씨는 베테랑 주부였고, 그녀는 필요한 물건들을 확실하게 캐치해내었다. 평소의 절반값에 집에 먹을 식료품을 구매하며,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도축때 쓰는 고기써는 기계의 칼날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B씨는 한숨이 터져나온다. 매년 물가는 오르고 자재값도 오르는데, 이놈의 부품가격은 올리긴 커녕 매해 고정만 해도 다행이다. 납품수주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건만, 가뜩이나 중국과 동남아의 가격경쟁에 치여 매년 주문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그의 공장에서 나오는 부품은 품질이 꽤 괜찮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고정적으로 주문을 넣어주는 몇몇 기업체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번 달 자재대금을 막아낼 방법에 머리가 아파왔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잘 나갈때에는 그 또한 돈을 좀 만져보기도 했고, 공장도 더 크게 했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주문을 하는 회사들은 더 낮은 단가와 더 높은 품질, 더 많은 양을 원했으나- 그것은 누가봐도 바보같은 요구였다. 더 낮은 단가로 어떻게 더 높은 품질에 양까지 맞춘다는 것인가! 심지어 자재비와 인건비가 있는데! 그렇지만 하청은 언제나 할 말이 없다. 못하면 죽어야 할 뿐이다. 그는 깊어지는 한숨을 쉬며 두 눈을 찡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빠르게 다녀온 뒤에, 벌써 7년이나 공장에서 성실히 일한 C씨는 오늘은 꼭 사장님에게 급여를 올려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장실 앞에서 사장의 한숨소리를 듣고는 결국 또 노크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집안이 어려워 공부도 못했고 그나마 돈 백만원 열심히 벌려고 주말에도 나와가며 일한 일터를 둘러보았다. 그도 한 때 공장에서 꽤 인정받는 기술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이 열명도 되지 않는 공장에서, 그는 다시 박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어차피 하청업이라는게 때리는대로 맞고 시키는대로 해야 살아남는 거니까. 그러나 그는 아직 젊었고 미래도 걱정되었다. 저축을 해서 작게나마 자신의 가게나 공장을 차려보고자 했건만 도저히 이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매년 모든 돈은 다 오르는데, 봉급만 고정이다. 가끔 대체 왜 물가는 오르는데 사람들은 돈을 못버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물건을 더 비싸게 팔고있는데, 신문과 티비에서는 다들 죽는다는 이야기뿐.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공장이야 물건 단가를 못 올리고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더 많이 나온 돈은 어디로 가는걸까?


젊은 나이에 은행의 부장까지 오른 D씨는 마음이 불편했다. 방금 한 중소기업의 대출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도 잘 알고있다. 은행전체로 따지면 정말 얼마 안될 소액의 돈, 그 돈만있다면 아마 저 사람들은 다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 돈을 빌려줄 수 없었다. 그 회사가 살아날 것 같아도 말이다. 왜냐면, 그 돈을 빌려준뒤에 '높은' 투자수익을 올려야 하지만, 저 회사보다는 다른 투자처에 돈을 빌려주는 편이 낫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잘 나가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보다 저런 돈이 없지만 발전가능성은 있는 작은 회사에 투자하는것이 사회적으로 은행의 이상적 행동임은 그도 잘 교육받았다. 그러나 그건 이상론일 뿐이다. 그는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은행에서 빠른 승진을 위해선 냉정함이 필수였고, 그는 그렇게 오늘도 빨간 도장 하나로 실적을 한가지 올렸다.



소를 키우는 E씨는 화가났다. 송아지 한마리에 300만원으로 거래하던걸 갑자기 260만원에 거래하자고 하는것이다. 아니, 해가 갈수록 사료값도 오르고 소 값도 오르고 소고기 값도 오르는데!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축산협과 농협이 정한것에 따르지 않으면 거래가 끊기고 많다. 소라는 것이 팔려야 할 때 팔려야만 제 값을 받는다. 게다가 소를 키우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다. 다른 소키우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다 같이 소를 팔지 않자니 서로를 믿을 수도 없었고 그만큼의 사정도 되지 않았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소를 거래하면서,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대기업이 자기 맘대로 후려치는 것에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그는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해야혀'라는 마음으로 겨우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아마 집에서 그것도 모르고 띵가띵가 게임하는 아들놈은 오늘 핵폭탄을 맞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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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자유경제체제와 함께 움직일 때,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지켜져야하는 단 한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격도, 도덕도 아닙니다. 바로 '공정'입니다. 자유 경제체제는 '자유로운 경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활동의 자유로움과 경쟁진입의 자유로움'을 동시에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원활히 하기위해서 꼭 필요한 두가지가 바로 '공정', 그리고 '사회안전망'입니다.

공정이 필요한 이유는 자본의 크기가 선택지를 억압하지 말아야 하는 데에 있고,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는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일할 수 밖에 없는 '평등한'사람들이 언제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공정은 경쟁을 '효율적이고, 정직하게'만들어주며, 사회안전망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빼앗고 희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결국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이들은 다시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바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공정한 거래'와 '높은 사회안전망'이 없이는, 더러움을 씻을 수 없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의 한계는 '아무리' 도덕적으로 완벽한 기업이라도, 도덕적일 수 없다는데에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윤'이라는 것은, '착취'없이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당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를 누군가가 가져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윤'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윤'의 정도, 즉 '이윤율'은 계속해서 상승해야만 합니다. 자본주의내의 기업이 살아남는것은 '손해'를 피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윤율'을 높게 상승시켜야만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언제나 '최대이윤'을 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가능한 최고의 이윤을 얻지 못하고서는 절대로 기업이 계속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영원히 조직에서 '물질화' 혹은 '소모품화'되게 됩니다. 그들은 착취의 과정속에서 빵조각의 양으로 서로를 향해 비수를 던져야 하지요. 자, 따라서 기업은 도덕적일 수가 없습니다. 몽골의 난민들에게 수도를 끌어다 준 돈은, 탄자니아의 커피농장에서 착취한 돈으로 만든거거든요. 탄자니아의 커피농장 농민들이, 몽골의 난민들에게 수도를 깔아줬다고 참으로 기뻐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벅스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요.


거기에다가, 거대화된 자본-주식회사-는 더합니다. 주식회사는 '이윤'만을 원하는 주주들의 돈으로 꾸려지는 회사입니다. 즉, 회사는 절대로 어떤 결정도 '이윤'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어떠한 기업의 행동도 '최대이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스타벅스가 좋은 일을 하는것은 그 비용 이상의 '이윤'이 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스타벅스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공정무역'이라며 기존의 착취에 아주 약간 조금 더 무언가를 주는걸로 착취행위를 지속하는 이유는, 역시 욕을 먹는 것보다 그것으로 얻는 이윤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사실 공정무역은 이름만큼 '공정'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느껴지는 느낌에 비하면, 그건 하나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타벅스에 악감정이 없습니다. 그저 가장 유명한 예를 들고싶었지요.

스타벅스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대기업'의 의사결정은 확고한 '이윤추구'에만 있습니다. 즉, 절대로 '시민'이 필요로 하는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더 돈이 될 수 있는 가치만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따라서, 구매력 없는 시민은, 그들에게는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계속해서 물가를 올릴 수 있고, 하청을 쥐어 짜 낼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구매력이 없는 시민이 뭐라고 떠든다고 한들, 그들은 구매력 있는 시민에게 만족도를 제공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불법은 단 한차례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도덕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우리는 상호 합의간의 거래'를 하는 것 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싫으면 말아라'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다들 아실겁니다. 싫다고 말면, 내일은 밥이 없는게 소시민의 삶입니다. 인간의 존엄은 '생존'보다 위에 있지 않습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생존'이 당연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1$가 없으면 내일 아침 아이를 굶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도덕, 공정, 투쟁, 연대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선택지가 하나인 것을 던져주면서 '공정한 거래'의 탈을 쓰게 됩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물가도 오릅니다. 총생산도 늘어납니다. 경제성장률은 +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회사는 급여를 동결시키고, 내가 다니는 공장의 사장님은 부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합니다. 바겐세일에 신나하는 주부의 손에 들어가는 월급봉투의 두깨는 그대로이고요. 심지어 '생산자'들은 여전히 가난한데, 그것을 가져다 파는 '중개상'들은 상당히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신기하죠? 높은 물가는 누군가에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주고, 생산에서 소비되는 더 많은 비용또한 누군가에겐 더 많은 이윤일 겁니다. 그런데, 정작 '생산'하고 있는 우리들의 가난은 계속됩니다. 정말 재미있는 통계가 많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전 세계경제는 발전하고 문명화는 더욱 높아져만 가는데, 10년전보다 '식량문제'로 죽어가는 인구가 두배로 늘었습니다. 하하.


기업은 비도덕적인가, 그리고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은 비도덕적인가.

귿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행태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도덕의 기준을 들이대자면 비도덕적입니다. 왜냐하면, 도덕의 근본적인 논리는 '약육강식의 거부'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사람이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약한사람이 억압받아서도 안된다. 이것이 가장 근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업은 결국 '생산자'들에게 '생산수단'을 제공하는대신 그들의 '이윤'을 일부 뺏아갑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거부하는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듭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지켜야 했던 공정거래는 박살이나고, 기업은 계속해서 이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갑니다. 결국 더 높은 이윤율이 한계에 부딫히면 열심히 생산한 사람들은 기업의 먹이가 되어 퇴출- 그리고 이들은 사회의 낭떠러지 끝으로 버려집니다.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왜냐구요? 그들덕분에 '아직' 구매력이 있는 우리는 편리하게 존중받으며 살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겁니다. 


승자는 언제나 다수의 패자가 있기에 존재하고
이윤은 누군가의 손해가 있기에 발생합니다.
내가 손해를 보는것, 내가 패자가 되는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해결책이요? 

기업이 이윤율을 낮추면 됩니다.

그러면요?

기업은 망합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선택지는 세가지밖에 없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느냐, 구조적 모순을 바꾸느냐, 아니면 내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서 모든걸 내려놓고 행복을 자위하느냐. 아마 현대사회에서는 1번과 3번은 각광받고있고, 2번은 불가능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어느쪽이든, 언젠가는 선택'당하게'될 문제이기는 합니다. 이 세가지 선택 모두를 포기한 사람은- 한강다리에서 로그아웃을 하더군요.


이상입니다.

쓰고나니 왜 썼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무식한게 죄입니다. 무식한 이야기니까 그냥 흘려들으세요. 아마 틀린 점들이 많을겁니다.
그저, 우리가 만든 세상은 유사이래 최고의 정글이라는 점은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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