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6살 여징어입니다.
저희집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난했어요. 엄마가 아무것도 없는 아빠랑 결혼했거든요.
아빠는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셨습니다. 반면 엄마는 여군 간호장교로 지원하셨다가 외할아버지의 엄청난 반대로 못가시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직하셔서 일을 하셨는데 외할아버지가 엄청난 고학력자이시기도 했고 어쨌던 본인도 고등학교까진 나왔으니까
비슷한 학력의 사람을 만나야지 했는데 아빠가 초등학교 중퇴라는걸 결혼 후에 아셨답니다. 물론 그땐 이미 제가 있던 상황이죠.
아 저는 장녀입니다. 엄마가 정확히 뭘보고 아빠랑 결혼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두분은 아직 결혼식도 못 올렸습니다. 그냥 혼인신고만 했죠.
외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엄마의 결혼을 말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퇴인게 문제되는건 아빠가 그것에 대한 엄청난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그 열등감을 자식인 저와 제 동생에게도 표출하시는 분입니다. 게다가 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니 제대로된 직업도 없이 공사 일용직을 뛰셨습니다. 그것도 하루 뛰고 힘들다고 몇달씩 쉬고 하루 뛰고 몇달씩 쉬고의 패턴이었죠. 생활비는 엄마와 외할머니께서 버셨습니다.
외할머니는 공장에 다니시며 일을 했고 저희 엄마는 별별 일을 다 하셨습니다.
목욕탕 청소일을 하시다가 미끄러지면서 돌아가실뻔도 했고 다른 일을 하시다가 다치쳐서 허리와 무릎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집안 물건을 집어 던지고
엄마에게 폭언을 하고 때때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죠.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은 그런 장면들뿐이죠.
26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빠는 술을 마시면 폭언을 합니다. 하지만 저나 동생이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나서부터
아빠가 심하게 그럴때마다 아빠랑 싸우다싶이 했고 지금은 폭력은 행사하지 않으십니다. 폭언도 예전보단 줄어들었구요.
그 폭언 역시 아빠 자신의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밖에서 무시당하고 들어오는걸 엄마한테 푸는거죠.
술 값으로 엄청난 돈을 쓰기도 했고 말도 안되는 보증을 서기도 했습니다.
식구들이 다 같이 자는 방과 각종 집안 물건들을 뒀던 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방이 있는 좁은 집에서
저 모든 것들을 보며 어린 저는 그때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꺼라고 매일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그래도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술을 안 마신 맨 정신일때는요. 아빠 본인도 할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자랐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지란 생각이 강하신 분입니다. 경제적 형편이 안되서 저희에게 지원을 못해주는 것도 늘 속상해하셨죠.
문제는 제가 그런 것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엔 아빠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모습이 저에겐 굉장한 상처로 남았어요.
엄마에게 하듯 폭언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늘 남과 비교하셨습니다. 친구 아들 누구는 지원 안해줘도 좋은 대학 잘만 가더라
누구는 취업만 잘하더라 류의 말이었죠. 저도 친구들 아빠와 비교하면서 소리치고 싶었지만 결국 참고 말아요.
유년기부터 쭉 봐온 아빠의 모습들 때문에 우울증도 생기고 성격적인 결함도 큽니다. 그리고 굉장히 부정적이죠.
어디서 보니까 애착관계가 형성되어야할 시점에 부모와 제대로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의 증상들이 딱 제 경우더라구요.
제가 15살 되던 해 아빠는 이렇게는 안되겠다 느끼셨는지 자격증을 따시고 자영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3,4달동안 수익이 한 푼도 안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엄마가 아프셔서 일을 하시는건 힘들었기 때문에
저희 식구는 빚을 내서 생활비를 쓸 수 밖에 없었고 수익이 들어와도 그 빚을 갚는데 썼기 때문에 남는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 두분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셨고 제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때 등록금을 내줄 형편도 안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동생도 모든 등록금을 학자금 대출로 충당했습니다. 제가 제 이름으로 학자금이 2천 5백 가까이 있고
동생도 엇비슷하게 있는 상태죠. 알바를 한다고 한들 생활비를 쓰기에도 벅찼습니다.
재작년부터 몇개의 학자금 거치 기간이 끝나 이자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자를 낼 돈이 없었죠.
그래서 몇개월씩 연체하다 겨우 내고 겨우 내고를 반복하다 보니 저 역시 신용이 바닥을 기더군요.
졸업을 목전에 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은 모두 저만치 멀리 가 있는데 저는 여전히 그 자리.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 부모님의 인맥으로 인턴이나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은 둘째치고
부모님이 등록금을 내준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도 학자금 이자가 몇달이 연체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춘기를 겪는 시절에 저는 겪지 않았는데 그게 뒤늦게 지금 오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모든걸 부정적으로 보고 자꾸 주저 앉는 제가 혐오스럽기도 하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 사는건가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이런 생각도 자주 드네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난다는데 그런 생각을 가질 여유도 없네요.
오늘처럼 아빠가 또 술을 마시고 돌아와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내시는 밤이면 너무 힘이 듭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버티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