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영씨.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저희도 문지영씨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저는 장은형이예요. 문지영은 제 고등학교 친구일 뿐이라니까요?"
"문지영씨. 만약 정신감정을 노리고 이러는 거라면 그만두세요. 살인미수죄가 그렇게 녹록한 죄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법이 우습습니까?"
"변호사님,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세요."
part 1. 그녀의 이야기.
안녕. 내 이름은 문지영이야. 그런데 내 이름은 구은별이기도 하고, 김지현이기도 해.
무슨 이야기냐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처음 취직을 한 곳은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회사였어. 들어갈 땐 꽤 큰 회사였어.
그땐 개나소나 다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던 때였거든. 나는 웹디겸 홈마겸 했어.
그런데 얼마 안되어 싸이월드니 블로그니 하는게 생겨난거야. html로 만드는 홈페이지 따위는 필요가 없어진거지.
당연히 회사는 쫄딱망했지.
그래도 내 능력을 인정받아서 나는 다른 업체로 옮기면서 그 바닥에서 꽤 오래 있었어.
자연스럽게 내 업무도 바뀌어갔지.
어느새 나는 남의 블로그나 SNS를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
남의 블로그나 SNS를 관리한다는 게 말이되냐고?
생각해 봐. 그 바쁜 사람들이 자기 트위터니 페이스북, 인스타를 어떻게 다 관리하겠어.
그냥 사진 몇장 찍어서 나한테 날려주면 나는 그 사진들을 뽀샵하고, 적당한 태그를 붙이고 그날의 일상을 지어내서 올리는 거야.
너희들이 보고있는 SNS 스타들은 다 나같은 사람들 손에서 탄생하는 거라니까.
처음엔 제법 잘나갔지. 내가 손대는 sns마다 팔로워가 최소 몇천명씩 붙었으니까. 의뢰인들도 많았고, 사무실도 운영했지.
뽀샵만 전문으로 해주는 어시를 둘이나 거느리고 일을 했었다니까. 물론 전화받는 애는 따로 있었고.
어쩌다 망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어느새 점점 의뢰가 줄기 시작했고, 내 밑에서 뽀샵일이나 하던 애들이 독립해 나가기도 하고...
그 중간에 남자 문제도 좀 있었고...
정신을 차리고보니 사무실도 없어지고 혼자 살던 오피스텔도 날아가고...아, 그 오피스텔은 내가 사귀던 남자가 해 준 거였는데
싸우니까 방 빼라고 그러더라고. 치사해서 부모님이 사는 21평 임대 아파트 작은 방으로 들어갔어.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였거든. 대출도 좀 있고.
그때 관리하던 계정이 여섯개였나 일곱개였나. 제일 큰게 쇼핑몰 인스타였고, 이제 막 연옌 데뷔 앞 둔 여자애 sns 두개도 관리하고 있었는데
막 떨어져 나가던 참이었어. 나이 먹어서 감성이 올드하다나 뭐라나.
별 수 없잖아. 이미 꺾어진 70인데 어떻게 20대 초반 애들하고 경쟁을 해.
돈 잘 벌때는 제발 집에 다녀가라고 난리치던 엄마 아빠도 막상 내가 집에 들어오니까 참...
아빠는 몰라도 엄마는 그나마 좀 나았는데, 공사판 십장노릇 하던 아버지가 다쳐서 집에 들어앉고 엄마가 아르바이트처럼 나가던 파출부일을
매일 하면서부터 좀 피곤해졌어.
집에만 오면 엄마가 일 다니는 집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나한테 시집 안갈거냐고 쪼는거야.
엄마가 일다니는집 여자가 나랑 동갑인데, 좋은 남편 만나서 얼마나 팔자편하게 사는줄 아느냐고......
그러면서 들이미는 선자리 남자들은 에휴... 말을 말자.
장은형 이야기를 해 달라고?
그래, 엄마가 일 다니는 그 집 여자가 장은형이었어. 나랑 동갑에, 좋은 남자 만나 남매 낳고 사는 팔자좋은 여편네.
옆집 아줌마랑 이야기 할 때 엿들어서 알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무슨 시어머니에 빙의가 된 것처럼 그 여자를 씹어댔어.
얼굴이 반반하니 남편이 아주 공주 모시듯 모시고 산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가 입은 속옷 하나 안빠는 여자라고.
그러다 엄마가 빙판에 넘어져 팔을 다친거야. 그날 나는 세군데서 짤렸어. 한달 수입은 30만원이 됐는데, 집에 내 놓을 돈은 커녕
대출금 이자도 막막한 상황이었지. 아버지는 허리 다쳐 누워있고 엄마는 팔 부러져 누워있는데 집에 돈 나올 구석이라곤 나밖에 더 있어?
엄마가 나한테 파출부 일을 가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사정사정해서 딸 보낸다고 이야기 해서 그 자리 잡아 놨다나.
어쩌겠어. 다른 집은 일당 7만원인데 그 집은 일당 9만원을 준다는 거야. 엄마는 눈 딱감고 엄마 팔 나을 한달만 해 달래.
그런 집 찾기 힘들다고. 그래서 갔지.
우리집에서 버스로 8정거장 떨어져 있는 아파트 단지의 제일 큰 평수였어.
으리으리 하더라고. 단지 입구에서부터 신분증을 맡겨놔야 들여보내주더라.
엄마가 말한 그 집 벨을 누르고 조금 있으니 문을 열어주는데, 깜짝놀랐어.
내 고등학교 동창 장은형이더라고.
그런애들 있잖아. 약간 은따 비슷한 범생이들. 공부는 잘하고 집도 그럭저럭 살아서 선생들이 예뻐하니 애들이 은근 눈꼴셔 하는애.
여고에선 그런애들이 왕따를 당해. 사실 장은형 왕따는 내가 주도했었지. 왜 그랬냐고? 그냥. 얼굴도 예뻐, 공부도 잘해... 재수없잖아.
난 저를 첫눈에 알아봤는데 걘 날 알아보지도 못하더라. 아. 여전히 재수없었어.
내가 SNS 관리 해 줬던 사람들 집하고 비슷했어. 비싼 옷들, 비싼 가구들, 비싼, 비싼, 비싼...
안방 청소하러 들어갔더니 남편하고 찍은 결혼사진이 떡하니 걸려있는데 애들은 남편을 많이 닮았더라.
재수없게 남편도 잘생긴거야.
변호산데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한다는 말은 이미 엄마한테 들었었지.
처음 일 끝내고 일당받아 오던 날은 버스타고 오면서 좀 울었어.
내일은 엄마가 뭐라고 해도 절대 안간다고 다짐도 했지.
그래도 어떡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음날 또 갔지.
며칠 다니다보니 무뎌지더라.
그러면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집에오면 장은형 SNS를 검색해 봤어. 아무것도 걸리는게 없더라고.
내가 검색을 좀 잘해서 남들은 못찾을 것도 추노질을 잘 하는편인데,
아예 깨끗해. 아무것도 없어.
완전 컴맹이더라. 인터넷도 거의 안하고, 인터넷 쇼핑도 안해. 살게 있으면 그냥 백화점 가서 집어오더라고.
그 집에 일다닌지 한 2주쯤 됐을 때였어. 장은형이 컴퓨터 앞에서 낑낑대고 있는거야. 뭘하나 슬쩍 봤더니 애 유치원에 보낼 사진을 고르고 있더라고.
남편이 사진이 취미라 사진을 엄청 찍어대는데, 그걸 또 컴퓨터에 잔뜩 저장만 해 뒀더라고.
알바라도 할까 싶어 물어봤지. 사진이 많은데 저거 앨범으로 만들어두지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반색하면서 사진들을 잔뜩 주는거야. 앨범으로 좀 만들어 달래.
별의 별 사진이 다 있어. 연애때 찍은 사진부터 신혼여행 사진, 애들 백일잔치 사진 돌잔치 사진...
여행도 엄청 다녔더라. 안가본데가 없더라고.
처음엔 그냥 장난이었어.
장은형 SNS 계정을 만들어서 신혼여행 사진 몇장 올렸더니 그게 난리가 난거야.
팔로워가 순식간에 백명이 넘게 붙어.
사람이 기술이 있으면 뭘해. 안써먹으면 그 기술도 녹슬거든.
내 기술 다듬을 겸, 그냥 장은형 SNS 관리 좀 해 줬지.
처음엔 장은형 얼굴은 안올리다가, 좀 흐리게 블러 처리해서 올리다가...
나중엔 내 얼굴로 합성했어.
말했잖아, 나 잘나가는 관리자였다고. 뽀샵으로 얼굴 합성 정도야 껌이지.
그때부턴 일 갈 때 카메라도 가지고 가서 부엌 살림이며 집안 사진도 찍어서 올렸어. 물론 장은형이 없을 때 찍었지.
애들 유치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올 때, 문화센터 갈 때.
내가 은근히 살림을 좀 잘해. 요리도 좀 하고.
팔로워가 만명이 넘었어.
나는 SNS 스타가 됐어. 댓글도 엄청나게 붙고... 내가 워너비라는 사람도 줄을 이었지.
내 2중 생활은 그때부터였어. 현실의 나는 구지레한 21평 임대아파트의 작은 방에 사는 사람이지만,
SNS 속의 나는 70평대 아파트에 변호사 남편에 인형같은 남매를 둔 여자가 됐지.
엄마가 팔이 낫고 나서도 나는 그 집엘 계속 나갔어.
애들도 날 이모이모 하며 잘 따랐거든.
장은형도 늙은 엄마보다 젊은 내가 가서 애들도 봐주고 하는게 좋았나봐.
일당도 올려주며(애들 봐주는 값이라네?) 계속 오라고 하더라.
그때부턴 헷갈리기 시작하는거야.
SNS 속, 그 완벽한 가정에 있는 얼굴은 분명히 나거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장은형이 아니라, 장은형의 가정이잖아.
그 살림 솜씨며, 집안 꾸미는 거 다 내 솜씨잖아.
그러니까 장은형만 없어지면 되는 거야.
내 남편이고 내 아이들이고 내 집이야.
만명이 넘는 팔로워들이 다 알고 있잖아.
나는 내 인생을 찾으려고 했을 뿐이야. 내가 뭐가 잘못됐어?
part 2. 또 다른 그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