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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임계질량 - 슈퍼 노바
게시물ID : drama_459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밀덕덕
추천 : 15
조회수 : 12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6/26 01:21:20
갑자기 왜 리뷰 제목에 슈퍼 노바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진짜 먼 생각이지.
 
하여튼 또 오해영에 대한 남은 이야기들을 시작해보도록 하자.
 
솔직히 이제 편히 볼 일만 남은지라. 리뷰할 게 없는 거 같아서 이전에 조금씩 써놓았던 거 짜집기 한 것이라 내용이 좀 뒤죽박죽이다.
 
 
 
1. 새드 엔딩 - 불변
 
 
박도경은 이미 한 번 죽었다. 서해영을 밀어낸 박도경이 결국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했다는 미래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내용은 서해영을 밀어내지 않은 박도경의 모습일 뿐이다.
 
사실 필자는 박도경이 죽어버린 미래가 어떻게 흘러간 건지 미궁으로 남을 거라 생각하고 14화 리뷰를 작성했었는데 작가는 사실 친절하게 힌트를 주고 있었다. 그냥 필자의 추리력이 모자랐던 것 뿐이었다.
 
 
13화에서 박도경은 서해영의 마음을 돌릴 3번의 기회를 얻었다.
 
 
집주인 할아버지, 길거리, 병원.
 
 
각각의 상황에서 박도경은 짜게 굴었던 상황의 환각을 보았고 결국 그것과는 다르게 짜게 굴지 않음으로서 서해영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박도경이 짜게 굴었을 때의 서해영은 한태진의 전화를 받았고, 한태진의 손을 잡았으며 물컵을 던져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깊이 파고 들어가 보자.  
 
서해영이 박도경을 밀어내면서 정말 한태진과 다시 사귀었던 것인가를 말이다. 박도경이 짜게 굴었던 경우 서해영은 한태진의 전화를 박도경 앞에서 대놓고 받았고 박도경이 보란 듯이 한태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 서해영이라는 여자는 전해영을 속여보자고 썸 타는 것처럼 연기하자고 제의했던 여자이기도 하다. 서해영이 박도경 앞에서 한태진과 다시 만나는 것처럼 굴었던 것이 박도경을 상처주기 위해 일부러 보란 듯이 저지른 연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추론의 가장 큰 증거는 바로 병원씬이었다.
 
서해영은 박도경에 대한 애증으로 인해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다시피 했고 그 결과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런데 박도경이 어떤 행동을 했던 간에 서해영은 병원에 실려 왔다.
 
만약 서해영이 정말 한태진과 다시 만날 마음이 있었다면 과연 서해영이 병원까지 실려올 이유가 있었을까.
 
박도경이 밀어내든 밀어내지 않든 서해영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은 한태진이 서해영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별 다른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밥 먹는 꼴 보기 싫다고 말한 남자와 만날 때마다 밥 먹는 거 예쁘다고 말한 남자가 떠오를 것이 뻔하다. 또한 한태진과 박도경이 워낙 얽혀 있으니 서해영에게 한태진은 애증의 대상인 된 박도경의 생각을 떠올리는 촉매제 밖에는 안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도경이 밀어냈다고 해서 과연 한태진과 서해영이 예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거의 확신한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한 부분이다.
 
이 드라마는 각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그럼으로서 그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박도경과 서해영이 결별하고 끝내 한태진과 서해영도 결별하게 되면 그들에겐 아무런 변화의 요소도 남지 않는다. 박도경은 자책 속에 홀로 남고 서해영은 타인에게 실망할 것이고 전해영 역시 박도경을 놓친 자신을 더 미워했을 것이며 한태진은 자기 잘못을 끝까지 모른 채로 남았을 것이다.
 
이후 한태진은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사업도 재기하지 못한 채 폭망했을 것이고 서해영에게 또 한 번 차여버림으로서 '남탓만 하던 습성' 그대로 모든 증오와 분노를 박도경에게 쏟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박도경이 교통사고로 차에 치어 죽게 된 것이 아닐까.
 
너무 확대해석한 것 아니냐 싶으시겠지만 서해영을 밀어낸 박도경을 차로 치어 죽인 건 한태진일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한태진이 끝내 자신의 모자람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남탓만 하며 모든 일의 원흉인 박도경을 죽이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 이게 새드 엔딩 루트의 흐름이었을 것이다.
 
 
 
2. 해피 엔딩 - 변화, 전해영
 
 
짜게 굴지 않고 자기 속마음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박도경은 서해영과의 재결합에 성공했다. 서해영은 남들이 다 미쳤다고 말하는 사랑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이전과는 달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기로 했다.
 
14화의 보리밭 씬 전후로 서해영이 '오해영'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다시 되찾는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2화의 보리밭에서 미래 박도경의 죽음을 통해 현재의 박도경이 다시 태어난 그곳에서 14화의 서해영은 오랫동안 자신이 아닌 이쁜 오해영을 지칭하던 이름인 '오해영'이란 자기 이름을 되찾았다.
 
전해영이란 그림자를 털어내고 오해영이란 자기 명찰을 가슴에 다시 달게 된 서해영이랄까.
 
박도경은 그저 죽음으로부터 피하지 않겠다며 자신이 새로 태어난 그 의미 깊은 장소에 그녀를 데려감으로서 자기 결심을 단단히 다지고 싶은 생각이었겠지만 우연치 않게도 바로 그 장소에서 서해영 역시 자기 이름을 되찾았으니 두 사람 모두 보리밭에서 재탄생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도경은 '옆집남자'에서 '옆집오빠'로 밖에 진화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변화도 의미한다.
 
예전부터 필자는 각 등장인물들간의 유사성에 대해서 주구장창 써왔는데 박도경과 서해영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서해영과 전해영 역시 비슷한 구석이 많으며 심지어 박도경과 한태진, 한태진과 서해영, 전해영과 한태진 역시 비슷한 측면이 매우 많은 인물들이었다.
 
처음엔 브라흐마(인도 신화속 신, 얼굴이 4개다)를 떠올리며 일인사역의 사이코 드라마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은 바로 전해영이었다. 15화에서 박도경은 전해영과 예전에 갔던 카페에서 그녀와 찍었던 사진을 찾다가 전해영이 남긴 글귀를 발견한다.
 
 
전해영: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2016년 6월 10일.
 
 
반으로 잘라간 사진 대신 남긴 그녀의 글귀엔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전해영은 1년전 동정과 연민은 사랑이 아니라며 배신감을 느끼고 박도경으로부터 도망감으로서 복수한 여자이다.
 
그랬던 그녀가 박도경에게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는 건 박도경의 사랑 방식이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결국엔 사랑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전해영은 '불쌍하고 짠한 거 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품는 감정이야'라는 박도경을 말을 이전에 들었고, 박도경이 자신에 대한 애증으로 엄한 한태진을 망하게 했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자신을 사랑했었음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두 사건을 통해 전해영은 비록 자신이 오해했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박도경 나름의 사랑이었을을 알게 되었지 않았을까. 
 
 
물론 박도경의 마음에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 역시 알아차림으로서 포기해야만 함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별은 결국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와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한 자기 자신의 문제였음을 자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전해영이 박도경과 다시 만나게 된 서해영에게 '축하해'라며 말했던 것도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박도경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의 잔재가 작용한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박도경과 완전히 끝난 상황에 서해영이 지난 세월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고백함으로서 아무런 편견없이 서로간의 동질감과 열등감을 자각하고 상호대등한 관계가 형성된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전해영이 크게 한 방 날려주길 바라고 있긴 하다. 결혼식날 하얀 예복 입고 가서 박도경 옆에 나란히 서서 결혼 사진 찍는 정도의 복수. 아마 다른 의미에서 박도경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은뎅. 평생 그래보지 못한 여자의 똘끼와 일탄은 때론 유쾌할 수도 있다.
 
 
3. 해피 엔딩 - 변화, 한태진
 
 
한태진 역시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게 너무 느리고 아직 벽을 깨고 있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한태진은 초장부터 '자기가 차버렸지만 미련이 남아 다시 돌아온 예전 애인'의 모습을 고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13화에서 한태진은 서해영이 그만 만나자고 말하자 조금 만 더 만나보자며 '내가 미안해서 그래'라고 말했는데, 이게 바로 미련이 남은 예전 애인들의 전형적인 멘트중의 하나다.
 
자기 잘못으로 이별한 사람들의 경우 비슷한 사고 과정을 거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잘못한 것만 떠오르는 것'이다. 원인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예전 사람보다 자신에게 잘 해주지 않거나 혹은 다른 연인을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운 경우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예전 사람처럼 자신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결국 예전 사람이 떠오를 수 밖에 없고 그 사람과 헤어진 것이 자신 때문임을 자각하게 되면 잘해주지 못한 게 떠오를 수 밖에 없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어 봐야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동시에 무의식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재고 따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연인을 만드는 게 어려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타인과의 관계가 어려울 수록 자기를 받아줬던 사람이 떠오를 수 밖에 없고 그제서야 자기가 잘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미안해하거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가를 재고 따지게 된다. 
 
 
너무 비관적이라거나 상대가 개과천선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고 또 어떤 계기로 개과천선할만한 바탕이 있는 놈이면 예전에 그러고도 남았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변화하기 마련이다. 각자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자기 잘못 때문에 헤어진 놈이라면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니었거나 변화해봤자 거기서 거기인 놈이라는 뜻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연인의 잘못으로 헤어진 분이 계시다면 기죽거나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 그 놈이 나쁜 놈이니까. 오히려 인생에서 빨리 꺼져준 것이 다행이니까.
 
 
하여튼 한태진은 서해영 대한 미안한 감정이라는 첫발은 잘 내딛었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아직 알고 있지 못했다.
 
 
이 남자의 결정적인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너무 자기본위의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탓만 한다는 점이다.
 
 
한태진: "나 구치소에 있다 나왔어. 너랑 헤어진 다음 날 구속 됐어. 결혼식장에서 구속될 뻔 했어. 그럼 너희 집 풍비박살나고 너 무너졌을 거야. 오래 있을 줄 알았어, 몇 년 살다 나올 줄 알았어. 백프로 너 나 기다린다고 했을 거야. 그냥 내가 너 차고 가는 게 맞았어."(9화 중후반)
 

한태진이 서해영을 찾아와 파혼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때의 대사다. 서해영 집의 풍비박살, 서해영의 좌절, 기다려야하는 부담감 등등 일견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처럼 보인다.

근데 이 발언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일단 왜 차고 가는 게 맞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에러다. 설령 헤어져야 한다고 해도 차이고 가는 게 맞는 거다.

한태진의 사정에 의해 파혼하는 것이니 선택권은 어디까지나 서해영에게 있어야 한다. 정 짧은 여자가 되든 정이 긴 여자가 되든 한태진은 서해영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태진은 자기가 차고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차는 건 괜찮고 차이는 건 안 되는 건가. 대체 어디까지 자기본위에 이기적이면 이런 생각이 나오는 거지.

이리저리 허울 좋은 핑계를 늘어놓았지만 결국 자기 자존심 때문에 그랬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파혼의 가해자이면서 끝까지 피해자인척 코스프레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태진이다.
 
 
한태진: "밥 먹는 게 꼴보기 싫다는 게 말이냐?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었어야지."
 
한태진: "내가 어떤 액션을 취할지 다들 주시하고 있을 텐데..."
 
 
한태진이 남탓만 하는 하는 인물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발언이다. 자기가 먼저 물어봐 놓고 막상 일이 잘못되니까 왜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지 않았냐며 나이트 웨이터에게 역정을 내고 박도경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전혀 기분 좋지 않으면서도 남들 눈치 탓에 멈추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가 서서히 자신의 문제를 알아채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발언들은 그의 문제점을 들어내면서 동시에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기도 했고 박도경에게 복수한다고 서해영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임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태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박도경은 한 번 죽어야 바뀌었고 서해영은 1화부터 14화까지 울고 불고 온갖 마음고생을 해야했으며 전해영 역시 울고 매달리고 박도경과의 사랑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서야 변화를 시작했다.
 
 
징조는 있지만 아직 임계점을 넘지 않은 것.
 
 
그런 와중에 서해영이 찾아와 파혼 당시 그녀가 느꼈던 감정을 고백했음으로 인해 한태진은 진정한 문제가 자기 자신에게 있었음을 자각할 계기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를 위해 했던 행동이 실제로는 그녀를 더 아프게 만들었으며 서해영에게 그런 건 사랑으로 보이지 않았음을 듣게 됐으니 이렇든 저렇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서해영과 박도경이 한 번씩 한태진을 찾아가 쳐 맞고 따지지 않았다면 한태진이 과연 스스로를 돌아볼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누군가는 서해영의 행동이 한태진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라고 너무 이기적이거나 가혹하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위에도 말했듯이 박도경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자신을 변화시켜 왔고 서해영 역시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은 고통을 겪어왔다.
 
게다가 언제부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서 따지는 일이 이기적이거나 가혹한 일이 되었나. 곰곰이 따져보면 한태진은 그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서해영에겐 어디까지나 가해자일 뿐이다.
 
과거엔 자기 자존심 때문에 대못을 박고 도망간 남자이고 지금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쥐어패고 있는 남자니까.
 
 
 
4. 천하제일 불쌍대회 - 오발탄 시청자 버전
 
 
워낙 한태진이 불쌍하고 박도경과 서해영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 한 번 제대로 따져보도록 하자. 꽤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극의 진행상 따져보고 넘어갈만한 주제이기도 하니까.
 
 
한태진은 사업도 망했고 여자도 잃었다.
박도경은 사업도 망했고 언제 죽을 지 긴가민가 하다.

박도경이 한태진을 망하게 한 것은 결혼할 여자를 착각했기 때문이고
한태진이 박도경을 망하게 한 것은 원인제공자를 착각했기 때문이다.

박도경이 한태진의 차를 뒤에서 한 번 박고 면상 한 대 때렸고
한태진은 박도경의 면상을 세 차례 두들겼고 나중엔 차로 밀어버리려 한다.

박도경은 한태진을 망하게 할 의도는 있었지만 결국 다른 이에 의해 한태진은 이미 망한 상태였고
한태진은 박도경을 망하게 할 의도로 차압도 들어갔고 만날 때마다 주먹질을 해댔다.

정리하자면 한 명은 의도는 있었지만 실행되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의도도 있었고 실행도 했다.

실제 입은 피해를 기준으로 보자면 과연 누가 더 불쌍한 걸까.
 
 
박도경은 그래도 서해영은 얻지 않았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한태진은 다 잃었지만 박도경은 그래도 서해영은 얻지 않았냐고.

뭐, 그렇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게 천하제일 불쌍대회고 우승상품으로 서해영을 주는 대회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언제부터 서해영이 물건처럼 이리저리 함부로 누구한테 주고 말고 따질만한 대상이었나. 서해영은 입도 손도 생각도 없이 그저 누군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물건에 불과한 건가.
 

만약 서해영이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때는 누가 더 불쌍한 거지?
 
새드 앤딩 때처럼 차에 치어 죽은 박도경과 차로 밀어버린 한태진 중 누가 더 불쌍하다고 해야할 것인가?
 
 
이 질문이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를 다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지금까지 극의 진행상 한태진은 일의 전말을 잘 모르고 박도경이 자신의 사업과 여자 모두 빼앗아갔다고 생각하기에 저러고 있다. 박도경이 맞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논리를 보면 그렇다.
 
그런데 만약 한태진이 이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서 엉뚱하게 박도경을 쥐어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박도경이 자신의 사업도 여자도 다 빼앗아 갔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사업은 친구 때문에 이미 망한 거고 여자는 빼앗긴 게 아니라 여자가 먼저 매달렸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래서 모든 정당성과 명분을 잃고 그저 오해와 착각 때문에 엄한 놈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태진은 박도경을 어떻게 대해야할 것인가.
 
 
그저 착각했을 뿐이니 니가 이해하라고 말해야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그저 무시하고 모른 척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적반하장으로 이유따윈 이젠 상관없고 그저 니가 미우니 계속 맞으라고 해야하는 걸까.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알아차린 한태진이 박도경에게 사과해야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게 이미 불쌍한 한태진을 더욱 나락으로 밀어넣는 느낌이겠지만 박도경에게 당해도 싸다고 말했던 도덕적 잣대가 한태진에게만은 적용되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한태진을 불쌍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실제로 모두 잃었으니 불쌍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불쌍하다고 그가 했던 행동을 모두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게 더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가 불쌍할 수는 있지만 노숙자가 저지른 범죄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 아닌가.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아주 간단하다.
 
누가 누구에게 진짜 총질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예전에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원인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곳에 총질을 하고 있는 오발탄들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태진과 박도경의 문제를 보며 시청자들 역시 원인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곳에 총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발탄 시청자 버전이랄까.
 
 
물론 시청자들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꼬아놓았고 함정을 교묘하게 파놓았으니까.

박도경을 가짜 가해자, 한태진을 가짜 피해자로 설정해놓고 이후엔 두 사람의 입장을 바꾸어 진짜 가해자와 진짜 피해자로 둔갑시킬 때 오는 혼란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한태진에게 몰입해 있던 시청자는 비록 이성은 한태진이 가해자가 되었음을 알아도 그걸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박도경이 계속 나쁜 놈이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거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걸 유지하도록 떡밥을 던져 왔다.

사과도 제대로 안 했고 일부러 차를 가져다 박기도 했다.
 
박도경에게 몰입해 있던 시청자의 경우엔 비록 이성적으로는 한태진 역시 불쌍한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박도경이 맞을 때마다 한태진의 행위가 지나치다고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도록 극이 진행되고 있다.

자기가 왜 망했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고 박도경을 만날 때마다 쥐어 패고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극을 구성해 놓다보니 시청자도 헷갈릴 수 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몰입의 에스컬레이션 문제고 주관과 객관이 부딪힐 때의 불협화음이며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하여튼 누가 더 불쌍한지, 누가 천하제일 불쌍대회의 우승자인지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뭘 따지는가. 둘 다 불쌍한 놈이지. 누구나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건 자기 자신이니까.]
 
 
그러니 두 사람 중 누가 더 불쌍하고 누가 더 나쁜 놈인지 따지는 건 그만 두도록 하자. 적어도 이 드라마에선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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