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코는 어미의 꼬리를 붙잡는다. 나의 귀는 크디크지만 비행을 겁낸다. 나의 발엔 쇠사슬, 지푸라기, 당신의 머리카락 꽁꽁 묶여 움직일 수 없다. 나의 이빨 쓸모없는 나의 이빨. 내 발바닥을 노리는 새앙쥐 그놈이 만들어 낸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2. 검은 화면이 켜지고 하나, 둘, 세 마리의 코끼리가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서워 눈물을 뚝 그쳤다. 이후로 엄마는 내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코끼리를 보여주셨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시끄러운 양 대신 말없이 춤을 추는 코끼리를 셌다. 하나, 둘, 셋 하면 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함부로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아무리 슬퍼도 울지 말아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엄마는 더 이상 내게 코끼리를 보여주지 않으셨고 나는 잠든 척할 줄 알게 됐다. 검은 화면 속에 갇힌 코끼리를 다시 보게 되는 날, 바로 그 순간 울어버릴 내가 오늘도 스스로 울음을 틀어막는다.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 춤을 추는 코끼리는 디즈니 에니메이션 <덤보>에 나와요. 저는 아예 기억이 없는데, 언젠가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말도 못 할 적의 나는 울다가도 엄마가 <덤보>만 틀어주면 눈물을 그쳤다고. 참 신기하게도. 전 잘 울지 않는 아기였대요. 혼자 누워서 잘 놀고 잠도 잘 자고 엄마, 아빠가 아침을 다 드시고 나면 그제야 느릿느릿 일어나는 착한 아기였대요. 그대로 자랐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 보니 고집불통에 속만 썩이는 사람이 되어버려서는. 엄마는 지금도 제가 다시 갓난아기였을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