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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다.
얼마나 어렸을 적이냐 하면, 성인이 된 지금 돌아보았을 때 흐릿하고 토막토막 큰일들만 기억날 정도?
그보다 더 어렸을 적은 기억이 희미하고, 그 시절도 그런 일이 있었다 싶은 때만 기억을 살살 더듬으면 어렴풋이 그려지는 정도.
그렇다고 아주 어렸을 때는 아니고 그때 당시 친구들하고 놀았던 거, 엄마 아빠 부부싸움 한 거,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 크게 다친 거. 그런 것 들은 확실히 기억나는 정도.
그런 와중에도 사실 오래된 사건이라고 해도 유난히 기억에 남아, 얼핏 생각만 나면 눈앞에 선해지는 그런 기억들이 있지 않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종류의 이야기다.
그때 당시 외가는 그 해안가 지방에서 나름대로 큰소리 칠 정도로 살았던 있는 집안이었다.
아, 외할아버지가 사업만 안했어도……. 그놈의 조선사업 투자만 안했어도 지금처럼 자녀들에게 손 벌리면서 아쉬운 소리 하고 지내실 분들은 아니셨던 거다.
물론 이 얘기가 내 인생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일지라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넘어가자. 아니, 모니터로 글을 읽고 있으니까 보고 있는 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어마어마한 만석꾼은 아니었어도 나름 돈 좀 만지던 집안인지라, 본인 집도 큰 편이셨는데. 중요한건 집의 스케일이 아니라, 그 집 뒤에 산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고 그 산의 주인도 외할아버지였다는 거다. 집 앞에 흐르는 개울에다 그 주변에 위치한 꽤 넓은 밭들도 전부 외할아버지 거였고. 본인은 농사를 안 지으시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싸게 밭 빌려주시고 농작물 판 돈의 일부만 가져오시곤 했다.
그 환경이 우리 엄마 아빠에게는 물려받을 든든한 재산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나에겐 여름방학마다 놀러갈 수 있는 좋은 놀이터 정도의 개념이었지.
놀러 갈 때마다 이모네 가족도 함께 모여서 온 외가식구가 한데 모이곤 했었다.
우리 집이 친가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가족 모임이다 하면 꼭 외가 모임이었어.
이모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러니까 나에게는 이종사촌들.
나보다 나이가 네 살 많은 형과,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
뭐, 나는 외동이라서 그냥 형 동생으로 호칭하는 게 편할 거 같으니까 알아서 이해해줘.
내 기억으로 집 뒤에 위치한 산허리에는 나무로 지어진 낡은 창고가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외할아버지가 낡아서 위험하니까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지만 어른이 있을 때는 괜찮다며 한 번 창고구경을 시켜줬을 적에 보여주었던 총알구멍.
예전에 육이오 전쟁이 있었을 당시 이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었고, 그때 창고에 숨어있던 국군을 향해 북한군이 총탄세례를 퍼부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보여주신 게, 나무기둥에 뚫려 있는 몇 개의 구멍.
원래 외벽에 총알이 엄청 많이 박혀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무다보니, 그렇게 벌집이 되어버린 판자는 금방 바스러져 그냥 다 뜯어버리고 새로 벽을 만들었댄다. 창고를 수리하고 남은 총알 자국은 기둥에 남아있는게 다라고.
구멍을 들여다보니 구멍 끝에 진짜로 납탄이 박혀 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그 총알 구경을 갔었다.
사촌들에게 창고 구경 가자고 바람을 넣었고, 사촌들도 그냥 대청마루에만 앉아 수박 까먹기만 하는 것 보다야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것이 더 좋을 나이였었기에 흔쾌히 따라나섰었지.
서론이 길지?
미안해, 오랜만에 추억 얘기를 하니까 한도 끝도 없다ㅋㅋㅋㅋ
사실 그때는 집에 돈 걱정하는 얘기도 없고 생활에도 여유가 넘쳐서 나쁜 추억은 솔직히 별로 없었거든.
그놈의 조선사업!!! 아오!!!!
그 뭐랄까. 외국 영화 보면 애들이 비밀기지 하나씩 가지잖아?
그, 나무 위에 아빠들이 지어주는 나무 집.
산허리에 있는 그 창고가 말야, 나무 위에 있진 않았지만 하여튼 나무로 만들어졌고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있어서 우리한테 좀 그런 분위기로 다가온 것 같아.
피터팬이 데려다주는 네버랜드에 있을 것 같은 그런 애들 기지.
그 창고에는 너구리 박제라던가 산호가 들어가 있는 유리 상자, 나무로 만든 황소 장식에 아령이나 철봉 같은 운동기구까지 진짜 만물상 같았어.
그 날 우리가 창고로 올라가자마자 본 건 당연히 나무기둥에 총알구멍들이었고, 지금은 손가락이 굵어서 안 들어가겠지만 그때는 어릴 때라 손가락이 들어갔거든? 손가락 넣어서 납탄 만져보고 신기하다고 난리치기도 하고. 지금이야, 다 자라서 손가락이 안 들어가는 건 고사하고 창고도 없을 거야. 그 집하고 산 팔자마자 거기다 무슨 골프장 짓는 단 소리가 있었거든.
우리는 창고에서 재미나게 놀았어.
새하얀 먼지가 밤하늘의 우아한 미리내처럼 창가의 밝은 햇살 병풍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밤 아름다운 미리내, 어둔 밤 지나가는 나그네의 길목을 밝혀주기 위해 그리도 길었나.
낡고 어두운 창고 안에서도 미리내는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주기 위해 그렇게 내려 왔나보다.
이렇게 시 쓰고있닼ㅋㅋㅋㅋㅋ
저질 시 미안.
근데 진짜 낡았어.
그냥 걷기만 해도, 먼지가 풀풀 올라올 정도로.
하물며 애들이 놀자고 들어갔는데 그냥 걸어 다니겠어?
미친 비글들처럼 뛰어 놀고 매달리고 부딪치고 난리가 났었지.
그러다가 형이 갑자기 떡 하고 멈춰 서는 거야.
있지, 여럿이서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일시에 조용 해 지는 거.
나하고 동생은 왜 그러나 싶어서 형을 쳐다봤어. 그 나이 때에는 아무래도 나이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무심코 따르곤 하잖아? 성인들도 마찬가진가, 여튼.
근데 형이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는 거야.
나는 순간 겁이 나가지고 형의 눈을 살펴봤다?
근데 형이 날 딱 쳐다보더니 앞을 보고 날 보고 앞을 보고 날 보고. 눈동자 왔다 갔다 하면서. 딱 느낌이 오더라고, 아 동생 놀려먹는구나. 나도 한 장난 해가지고 형에게 동참한다고 같이 뒷걸음질을 쳤어. 솔직히 동생이 좀 약은 면이 있었으면 안 속았을 테지만, 솔직히 동생은 약고 자시고 할 나이가 아니었거든. 딱히 나보다 훨씬 어린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소리 하면 좀 그런가? 근데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났었는데도 정신연령은 좀 격차가 컸었어. 하긴 화장실도 혼자 못가서 어른들 끼고 가는 어린애가 무슨 깊은 속이 있다고 그걸 안 속겠어. 오히려 내가 좀 조숙하고 발랑 까졌었던 거 같아.
하여튼 그러다 형이 말하더라.
“야, 저기 창고 구석에 보이냐…….”
그 말 하는 순간 동생이 울음을 빵 터뜨리는 거야.
난 완전 웃겨가지고 입꼬리 막 올라가는데 그걸 참고, 입술 앙다물면 팔자주름 심하게 나잖아? 딱 그 상태. 근데 또 한 술 더 뜨고 싶더라고. 그래서 형한테 맞장구를 쳤다?
“형!! 창문에도 있어!!!!”
그러니까 형하고 동생이 딱 창문을 쳐다봐.
나중에 생각했는데, 하지 말았어야지 싶더라.
동생이 자지러지게 경기를 일으키면서 우는 거야.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꺽꺽대면서 무슨, 솔직히 이렇게 표현하면 웃긴데 병아리가 사람만한 허파를 가지고 비명지르는 것 같은? 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우는데 형이 다급했는지 동생을 안아들고 내 손 잡은 다음 냅다 창고 밖으로 뛰는 거야.
산을 막 뛰어 내려오는데, 어우 나 같은 등신이 또 있나.
거기다 대고 상황극에 푹 빠져서는
“형, 뒤에 엄청 따라와!”
하니까 형하고 동생이 홱 바라보고.
동생은 더 경기 일으키고 형은 더 냅다 달리고.
나는 어차피 다들 산 내려가느라 정신 없으니까 내 얼굴은 못 보겠지 싶어서 낄낄대고 웃으면서 따라갔지.
눈치 빠른 사람들은 눈치 벌써 다 챘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형하고 동생이 난리가 났어.
창고에서 귀신 봤다고.
귀신 봤다면서 난리치다가 형이 나 돌아보면서 ‘너도 봤잖아! 같이 봤잖아!’ 할 때, 난 뭔가 잘못 되어가는 걸 깨달았지.
형 말로는 구석에서 깨진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생쌀을 퍼먹고 있는 남자를 봤다는 거야. 손으로 우악스럽게 쌀을 집어다 입안에 퍼 넣고 있었대. 그래서 동생은 너무 어리니까 안 보여 주는 게 낫다 싶어서 그나마 한 살이라도 나이가 더 많은 나를 보면서 너도 저게 보이냐고 물어본 거야. 솔직히 동생은 어떻게든 들고 뛰겠는데, 나는 내 발로 도망가 줬으면 싶었었대. 그런데 내가 창문에도 있다고 소리를 치고, 형이 창문을 바라보니까 진짜 창문에도 누군가가 있었더라는 거야. 머리통에 피 칠갑을 해가지고 얼굴 반이 썩어서 추적추적 흘러내리는 썩은 시체 같은 사람이 말이지.
그 창문 밖에 있는 남자가 우리를 딱 지켜보고 있었대.
그리고 그 순간에 동생이 창가를 보고 경기 일으키면서 울어버렸고, 생쌀을 씹어 먹던 남자도 고개를 홱 하고 돌아 본거지.
솔직히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지금도 말을 안 해줘.
그 썩은 시체 같았던 사람보다 뭔가 더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했나 보더라고.
지금도 솔직히 그 얘기 하면 그 사람이 자기얘기 하는 거 알고 따라올 거 같다나.
하여튼 그러고 나니까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형은 몰래 동생 들쳐 업고 조용히 창고를 나올 생각이었는데 그 뭔지 모를 것들이 확 쳐다보니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나봐. 그냥 한 손으로 동생을 어깨에 들쳐 메고, 내 손 꽉 붙들고는 냅다 뛴 거야.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제야 형이 장난이 아니라 진짜 다급했었구나 싶더라구.
내가 한 번 손에 이끌려 뛰어가다 넘어질 뻔 했거든?
아니 거의 반 쯤 넘어졌었는데, 형이 뛰면서 확 잡아 끌어서 다를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뛴 거야. 만화에서 보면 누가 손 붙잡고 냅다 달리면 뒤에 사람이 흩날리는 담요 같은 것처럼 하늘대면서 끌려가잖아? 진짜 그랬었어, 네 살 차이가 난다고 해도 똑같은 어린애들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솔직히 본인도 신기했었대.
한 손으로 동생을 어깨에 메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동생을 잡아 끌면서 산을 뛰어 내려온 거지.
그런데 더 사력을 다 쥐어 짤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뒤에 엄청 따라온다고 소리쳤을 때 뒤를 돌아봤는데. 정말로 그 이상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는 거야.
와, 지금 쓰면서도 소름 돋는다 진짜.
이 글 처음 시작은 그랬다 이랬다 저랬다 이러면서 썼는데 나 지금 말투 바뀐거 봐, 진짜 지금 생각해도 몰입 무진장 된다니까.
집에 가까워 질 때 즈음, 뒤에서 더 이상 따라오는 소리는 안 났다는데 그래도 패닉상태인지라 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온갖 비명을 다 지르더라고.
지금 네발로 기어 다니는 사람들이 산에서 따라 내려오고 있다고.
당연히 외가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
나도 그제야 사건의 위중함을 깨달아 뒤늦게 겁먹고 펑펑 울고 말이야.
형은 동생을 살리려고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동생은 트라우마 남을 정도로 놀라서 경기를 일으키는 와중에 나란 놈은 그게 장난인 줄 알고 낄낄대면서 그 위급한 상황을 즐겨가며 장난을 쳤다니. 심지어 나중에 진짜인 걸 알고 뒤늦게 울어 제낀 게 더 멍청하다고 생각해. 흑역사도 그런 흑역사가 있나, 형은 진짜 영웅 같았고 동생은 몹시 불쌍한 아이의 모습이었는데 그 사이에 찐따 같은 내가 끼어있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말에 형이 굉장히 놀라더라고.
내가 가리킨 곳마다 정확하게 그 뭔지 모를 것들이 서 있었어서 장난이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대. 심지어 동생은 들쳐 메고 도망가는데 나까지는 형이 힘에 부쳐서 손만 잡고 뛰었다고, 그게 너무 미안했다나? 나도 많이 겁 먹었을텐데 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형이라서 그냥 손만 잡고 뛰었다고, 차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했다고. 형이 정말로 너 까지는 업을 수가 없었다고.
…….
형 뒤로 후광이 보이는 것 같더라.
형이 그렇게 사력을 다해 도망 왔는데, 정작 그것들 위치를 정확히 짚어서 알려준 내가 아무것도 못 봤다니 형도 처음에는 못 믿더라고. 괜찮다고, 여기 도망 다 와서 아무것도 없다고. 안심하고 말해도 된다고. 그런데 뭐, 난 진짜로 아무것도 못 봤는데 뭘 말하겠어. 정말로 장난이었다고 했지.
그 길로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온 가족이 근처 절에 찾아갔어.
솔직히 산하나 넘어갔으니 근처는 아니었지만 하여튼, 이런 일에는 아무래도 종교에 기대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잖아? 그 동네에도 종교인이 있긴 있었는데, 그게 교회 목사님인지라 영 신용이 안가서 ㅋㅋㅋㅋㅋ
목사님이나 교회 비하는 아니야 미안.
그런데 찾아간 곳도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질 않더라고?
왜 애들은 어른들이 하는 일들은 거의 다 엄청 신용하잖아?
어릴 때 아버지는 슈퍼맨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야.
그런 시절의 내가 봤는데도 이 절은 아니다 싶더라고. 거기 스님이 딱 얘기 들어보더니, 뭔가 이거다 싶은 느낌도 안드는 게 눈에 확 들어오고. 밍기적 밍기적 하면서 이상한 불가 쪽 얘기만 조금 하다가, 결국 한 게 누군가한테 전화를 거는 거였어.
그때 당시에는 휴대폰 이란 게 없었고 삐삐하고 공중전화가 다였단 말야.
그러니까 그 절에 있는 쇠로 만들어진 유선전화로 전화를 걸어서는 ‘거기 무슨무슨 선생님 계십니까?’ 하고 뭔가 얘기하더니 식사도 하면서 좀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그러고 밥이 나왔는데 살짝 데친 산나물들에 절인 무가 다라서 무슨 맛이 있나. 솔직히 스님들도 맛난 거 챙겨먹을 건 다 챙겨 먹더만 거기 스님은 무슨 불가생활을 하드코어모드로 하시나 음식이 매우매우 사찰음식이더라. 특히 어린애가 먹기에는 너무 맛없고 빈약한 식단이었지. 근데 또 식사하는 와중에 동생이 토를 한거야. 어린 게 너무 놀랐나 싶더라고.
그래서 스님이 식사 마치고, 그 부른 사람 올 때까지 불경 읊어주고 우리 앉혀 놓고 뭘 해줬어. 기독교로 따지면 축복기도 해줬다고 보면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경 읽기 끝나고 잠깐 그 자리에서 스님이 마음 좀 가라앉히라고 꿀차를 줘서 마시고 있는데, 누가 노크를 하더라고.
나무 살로 만든 미닫이문을 두드리니까 진짜 덜컹덜컹 하는 소리가 나서 확 돌아봤는데.
나는 솔직히 무슨 무명천 옷 입은 도인 같은 사람이 올 줄 알았거든?
아니야, 그렇지가 않더라고.
정장을 딱 빼 입은 말쑥한 아저씨가 매우 예의 바르게 들어오시는 거야.
난 막 도인 같은 사람이 ‘계십니까!’ 하고 들어와서는 ‘너희는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에 들어갔구나! 영가들이 노했어!!!’ 하고 호통 칠 줄 알았거든.
그래, 인생이 전설의 고향 같지는 않더라고.
그런데 이 아저씨는 무슨 진짜 어디 회사원같이 차려입고 와서는 조용히 들어오면서 ‘스님, 잘 지내셨어요?’ 하고 자기 방석 자기가 들고 와 깔아 놓고 앉더라.
그 순간에는 그 아저씨에 대해 뭐 알지도 못하면서 못 미덥기만 하더라.
아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TV나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당당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오지 않아서 실망했었나봐. 아냐, 분명 실망했었지. 첫인상은 분명히 그랬어.
솔직히 애들이 헛거 본거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사실 외할아버지도 땅값이 싸서 그 산을 산거지 안 그랬으면 그냥 냅뒀다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전쟁 중에 사람이 많이 죽어나간 산이라서 흉흉한 소문도 돌고 느낌도 안 좋았다나. 양지바른 산인데도 느낌인지 어쩐지 영 기분 나빠서 주인인 본인도 집 바로 뒤에 있는 산인데 잘 안 올라갔다고 하시더라고. 땅 투자 개념으로 싸길래 샀을 뿐이지, 자기도 그렇게 피해 다니는 산인데 목숨보다 귀한 손주들이 그런 데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찝찝하고 불안하셨겠지. 그래서 위험하니까 어른들 없을 때는 창고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던 거고.
그러다가 손주들이 귀신들을 잔뜩 보고 왔다고 사색이 돼서, 말 그대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뛰어내려오니 무슨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났구나 싶으셨더래.
그래서 지체 없이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였고, 우리 가족 모두 그런 외할아버지의 선택은 정말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 무서운 얘기 쓴다고 쓰는 건데 정작 귀신 얘기가 별로 안 나와서 미안하네 ㅋㅋㅋ
근데 진짜 내가 겪은 거다 보니까 막 무슨 공포소설같이 다급한 추격전 벌어지고 괴상망측하게 생긴 귀신이 관절꺾기 보여주면서 따라오고 그런 자극적인 건 별로 없어 ㅋㅋㅋㅋ
하여튼 그 선생님이라는 분이 앉으셔서
“많이 놀랐지 아가. 그래도 이 아저씨가 도우러 왔으니까 아가가 무슨 일인지 이야기 해 줬으면 좋겠네?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이니까, 용감하게 한 번 얘기해 볼까?”
진짜 유치원 선생님들보다 더 자상하고 인자했어.
형은 그 말에 또 끅끅대면서 울고 울고 우는 걸 계속 삼키면서 설명을 하는데, 진짜 하나도 안 빼놓고 설명하려고 애를 많이 쓰더라고. 그러다보니 얘기가 길어지기도 하고 한 얘기 또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 선생님은 말 한 번 안 끊고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더라.
생쌀을 퍼먹고 있던 귀신, 반 쯤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 채로 창문 안을 노려보던 귀신, 그리고 산 아래로 따라오던 수많은 네 발로 기어 다니던 귀신들 얘기까지 다 했어.
썩어 문드러진 귀신은 도토리묵 같이 생겼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재미있네.
생쌀 먹는 귀신 얘기는 그 선생님 귀에다가 대고 얘기하더라.
난 그래서 끝까지도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못 들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듣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그리고 설명이 끝난 다음, 선생님이 형을 한 번 다독여주고 안심시켜 주더라고.
그 다음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네 하고 우리 부모님하고 스님까지 다 앉혀 놓고는 얘기를 했어.
애들이 잘못 봤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그건 염두에 두시라고 못을 박고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는 정말로 귀신을 마주쳤고 그 귀신들이 눈도장 찍고 따라왔다는 걸로 간주하고 행동할거래. 왜냐하면 형이 얘기하고 동생이 그 말이 틀림없다고 동조했던 모든 묘사들이, 그 귀신이란 걸 실제로 본 게 아니라면 성립하기가 힘들 만큼 정확하게 이야기 한 거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진짜 뭔가 봐도 확실하게 봤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일단 썩어 문드러진 귀신은 어떤 사고였든지 안 좋은 일을 당해 고통스럽게 비명횡사한 귀신이래. 그래서 흉측한 죽은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고. 그리고 네 발로 기어오던 귀신들은 객사한 귀신들이라는 거야. 그 얘기를 듣고는 외할아버지가 예전에 그 산에서 국군하고 북한군이 싸워서 많이들 죽었다고, 혹시 그 분들 영가는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래.
그런 식으로 귀신들이 생겼으면 대한민국에는 군인 귀신이 절반은 이상은 될 거라고, 아닐 거라고 하더라고. 양지바른 산이라도 지맥이나 수맥에 따라 음기가 차는 요건이 있는데, 음기가 많으면 이래저래 객사해서 떠도는 귀신들이 잘 모이게 된다고 하더라. 그건 도깨비 터 하고는 또 다른 거래.
비명횡사한 귀신은 분노나 슬픔이 많아 평상시 아무 일도 안 저지르고 얌전히 떠돌았더라도 잘못 건드리면 언제든지 악귀로 돌변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고 했고, 객사한 귀신들은 배고픔과 갈증을 많이 느껴서 양기 많은 산 사람이 눈도장 한 번 찍히면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 따라가서 기를 빨아먹는다고 하더라구? 대게 제삿밥 못 얻어먹고 굶주린 귀신들이라서 속히 말하면 산 사람 집에 흙발로 들어와 앉아 밥 얻어먹으려고 한다나? 이건 잘 모르겠네. 살면서 산 사람 양기가 죽은 사람 음기를 쫓아내서 귀신들이 싫어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이 선생님은 귀신이 사람 양기를 빨아먹기도 한다니 뭐가 옳은 건지.
하여튼, 근데 중요한 건 쌀 퍼먹던 귀신이래.
그거 알아?
건드리면 안 되는 귀신이 몇 있는데, 아 지금 쓰면서도 상상 되서 소름 돋는다. 춤추는 귀신하고 웃는 귀신, 저주하는 귀신, 그리고 쌀 퍼먹는 귀신이래.
근데 그 얘기 하는데 형이 화들짝 놀라더라.
왠지 알 것 같았어.
형이 웃는 귀신 얘기에서 놀랐거든.
쌀 퍼먹는 귀신이 웃고 있었나봐.
뭐 진짜 얼마 전에 개봉한 그 일본인 귀신 나오고 막 뭐냐 어린애가 ‘뭣이 중헌디!!!’ 하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그 영화처럼 누가 굿이라도 해 줬으면 뭔가 시원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 선생님은 그런 건 없었어.
그냥 어디서 대추나무 몇 그루 작은걸 캐 와서는 집 뒤에 한 줄로 나열해서 심더라구. 그리고 귀신들한테 눈도장 찍힌 손주들은 이제 다시는 뒷산에 올라가지 말라나?
그리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시뻘건 이파리들이 잔뜩 달려있는 나뭇가지를 갖고 와서는 우리 몸을 막 털고 쓸고, 그다음에 온 집안을 쓸어대면서 돌아다니시더라. 진짜 하루 종일 날 저물때까지 집안 구석구석 다 쓸고 다녔어. 얼핏 설명하기에는 대추나무가 귀신 쫓는데 큰 효과가 있고, 자기가 가지고 온 무슨 나무의 가지도 그런 효과가 있어서 집에 몹쓸 기운 쫓고 좋은 기운 북돋아주는데 좋다고 그러더라구. 외할아버지가 하는 김에 산에도 몇 그루 심어주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그건 안 된대. 귀신들 사는 데에 함부로 귀신 쫓는 짓을 하면 오히려 해코지 하러 기를 쓰고 따라올 수도 있다고, 귀신들 있는 데에 함부로 훼방 놓는 거 아니라고 하더라구. 진짜 대추나무 이런 거 심어서 쫓아내는 게 아니라 무당이 와서 큰 제사 지내주며 기분 좋게 달래주는 행동을 한다 해도, 이런데 에서는 그런 달래주는 행동조차도 역살 맞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와 무슨 퇴마록 읽는 줄.
그 창고에 쌀 항아리도 외할머니가 산신님 드시고 산 아래 우리 집 좀 굽어 살피소서 하고 놓은 거였는데, 귀신이 파먹고 있으니 굳이 지금 뺏어서 귀신 해코지 당할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쌀을 더 이상 채워 놓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해서 더 이상 쌀도 채우시지 않아. 사실 그날 이후로는 그 창고에는 얼씬도 안하신다고 했었지 아마.
하여튼 그러고 갔어 그 선생님이.
솔직히 이 글 끝날 때 까지, 너희들이 지금까지 읽어왔던 무서운 얘기들처럼 긴장감 넘치는 부분들은 하나도 없어.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여기까지 이렇게 구구절절 쓸 일도 없었겠지.
좀 이야기 끊고 올린 다음에 여러분들 반응 좀 보고 괜찮다 싶으면 썰을 마저 풀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얘기는 별거 없어 보여도 쓰는 내가 계속 소름 돋아 죽겠어 ㅋㅋㅋㅋㅋ
근데 내가 배짱이 없어서 혹시나 반응이 시원찮으면 어쩌지 싶은 거야 ㅋㅋㅋㅋㅋ
다음 편을 써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다음 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다면 ㅋㅋㅋㅋㅋ 솔직히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나잖아.
그래서 좀 길어도 끝까지 마저 쓰기로 했어, 여튼 이어서 가봅시다.
있잖아, 그 선생님이 가기 전에 우리들은 적어도 보름정도는 이 외할아버지 집에 머무르고 어디 나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 아빠는 납득했는데 이모부가 납득을 못했어. 만약 선생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빨리 이 동네를 떠야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더라구. 나도 그 얘기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야. 오히려 이 집은 지금 귀기도 다 몰아내고 나름대로 대비를 거쳐서 깨끗해져 있는데, 이 집 밖으로 나가게 되면 언제 귀신들이 들러붙을지 모른다는 거야.
악담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셔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집으로 돌아가다 그대로 비명횡사 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구.
악담 같은데 무슨 악담이 아니야…….
근데 이모부도 납득하고 온 가족이 다 납득 했어. 나쁜 미래를 얘기했지만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귀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 한해서지만.
나는 어린 나이니까 귀신이 백프로 있다 싶어서 또 그런 부분은 철썩 같이 믿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이모부는 반신반의 했나봐. 솔직히 어른이 되면 귀신이 반드시 있다고는 할 수 없게 되잖아? 그래도 이모부는 실제로 자기 아들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울고불고 했으니 거짓이던 아니던 선생님의 말을 지킬 수밖에 없었겠지. 거짓일수도 있지만 행여나 진실이라면 싶거든.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날부터 외가에 머무르면서 현관문 밖으로는 발 한 짝도 못 내밀고 지내게 됐어. 그 선생님이 깨끗해진 집안에서 냄새를 지우고 귀신들이 잊어먹게 한 다음에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딱 보름만 기다리라고 하더라구. 자기도 자주 들러서 계속 그 나뭇가지로 쓸고 다니는 거 뭐라고 하는지 까먹었는데, 그거 해주면 좋기는 한데 자기한테 해코지가 돌아온다고 자기가 매일 안와도 괜찮기는 하니까 마음 놓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하고 갔었어서 그 후로는 외할아버지가 그 나뭇가지 받아서 매일같이 집안 쓸고 다녔어.
우리도 기운이 다 빠지고 충격도 많이 받았고, 솔직히 집안 분위기가 밝게 하려고 애쓰기는 하는데 그 와중에도 엄숙한 뭔가가 있더라. 그래서 어린애들이라고 마냥 뛰노는 일은 없었어. 외할아버지는 그날부터 맨날 맨날 장에 나가고, 그 선생님한테도 수시로 전화를 해서 귀신 쫓는데 뭐가 좋은지 물어봐가지고 이것저것 들고 오셨어. 선생님이 애들은 절대 현관 근처에도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어른들도 웬만하면 들락날락 많이 하지 마시라고, 위험하다고 했는데 외할아버지는 무슨 고집이 그렇게 셌던지 외할머니가 극구 말리는데도 굳이 장에 나가서 뭘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더라구. 아마 자식들 손주들 위험하지 말라고 자기가 겁나도 그냥 용기내서 다니신 거 같아. 지금 생각해도 짠하네.
천일염도 잔뜩 사가지고 오시고, 어디 명산에 약수라고 한가득 떠오시고, 복숭아도 한가득 사오시고,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그렇게 좋다던데 어디 없냐고 수소문 하시고.
그러다가 일주일 즘 돼서 말이야.
자다가 오줌 마려워서 깼어.
사실 무서운 꿈 꿨거든.
한 밤중에 엄마가 밥을 차려줘서 나 혼자 독상 받아서 먹고 있었는데, 방 한 구석에 보니까 그 쌀 먹는 귀신이 구석에 머리 처박고 생쌀 퍼먹고 있더라고.
그러다 내가 쳐다보니까 그 귀신이 쌀 먹는 걸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아보더라?
귀신 얼굴이 보이겠다 싶을 때, 딱 깼어.
무서운 꿈꾸니까 오줌보 터질 것 같더라고.
근데 또 무서운 괴담들 같이 오줌 마렵다고 혼자 밖에 있는 화장실 가고 그런 건 말이 안되지?
외할머니가 우리 밤에 화장실가기 무서울 테니까 방 안에서 볼일 보라고 요강 갖다 두셔서 괜찮았어. 스댕 요강에 볼일 보니까 요강이 오줌발 때문에 막 소리 내면서 울리더라?
난 또 누가 밖에서 들을까봐 겁나서 오줌발 조절하면서 싸고…….
그러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더라.
그래서 창 밖을 막 바라보는데, 조금 있다가 말이야.
나무 사각사각 거리는 잎사귀 소리 있지?
숲에 들어가도 바람에 따라 잎사귀 나부끼면서 서로 스쳐서 소리 내잖아 사각사각사각.
그 소리가 나는 거야.
솔직히 집 바로 뒤가 산이니까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 했는데, 뒷산에서 나는 그런 나름대로 거리가 있는 소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집 바로 뒤에서 나는 소리인거야.
머리가 쭈뼛 서더라.
집 뒤에 뭐가 있겠어?
뒷마당에는 장독대하고 수돗가가 다야.
그리고 또 있긴 있었지.
뒷담 바로 밖에 에워싸듯이 심어 둔 대추나무들 말이야.
분명히 그 대추나무들이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였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위화감이 확연하게 와 닿은 부분이 뭐였냐 하면, 조금 거리가 있는 산은 정작 나무가 많아도 조용한데 유독 가까운 대추나무들만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는 거야.
근데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거야.
나는 바로 옆에서 자고 있던 엄마를 막 부르는데,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몸이 말 그대로 굳어버리더라고. 용기를 내서 엄마를 부르는데, 진짜 모기소리 정도 만큼밖에 소리가 안 나와. 조금만 소리를 내도 저 뒷담 너머에 뭔가가 담벼락 뛰어넘고 집에 들이 닥칠까봐 말 그대로 공포감에 몸이 마비 된거야. 그러다가 목소리가 안 나니까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손을 꺼냈지. 더워서 이불도 안 덮고 자곤 했는데, 무서우니까 이불 속에 숨게 되잖아. 그러다가 밖에 공기가 이불 밖으로 나간 손에 느껴지니까 더 현실감이 느껴져서인지 무섭더라.
손가락 쭉 뻗어서 엄마 등을 쿡 찔렀어.
근데 그 순간에 진짜 대추나무 다 부러질 것 같이 소리가 있는 대로 들려오는 거야.
이러는데도 안 일어나는 엄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밉더라구.
밖에서 나는 소리는 엄마가 깨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어.
진짜 나무 다 부러져나갈 것 같이 우득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대추나무가 흔들리더라고.
그때, 진짜 큰 소리가 났어.
무슨 무지 짧은 천둥소리 같았는데, 나는 그게 영화에서 자주 듣던 그런 소리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 왜 있잖아.
총 소리 말야.
진짜 뜬금없는데, 총 소리 같은 게 나더라고.
뭔가 터지는 큰 소리가 나더니 주변 일대에 다 메아리치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잠잠해졌어.
대추나무 흔들리던 소리까지 다 잠잠해졌어.
그리고 긴장감이 풀리더라.
빽 하고 울어버렸어.
뒤늦게 엄마가 일어나서 얘가 왜 이러냐고 어디 아프냐고 수선을 떨었는데.
왜 엄마는 이렇게 무서웠는데 안 일어났냐고 내가 징징대고 엄마는 또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안아주고, 그러다가 엄마 끌어안고 잤지 그날은.
다음날 날이 밝고 닭 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자마자 엄마는 머리도 정리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나서 외할아버지 방으로 달려갔어. 나도 그때 깼는데, 엄마 따라가서 외할아버지한테 얘기해야겠다 싶어서 따라 나갔지. 근데 외할아버지 방에 이모네 식구들이 먼저 와 있는 거야.
외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너희도 대추나무 소리 들었니?”
어제 그 세차게 울리던 대추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형하고 동생도 들어서 깨고, 밤새 떨다가 밤을 지샜다는 거야.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어른들은 한 명도 없었어, 애들만 들은 거지. 그래서 내가 형한테 총소리도 들었냐고 물어봤다? 그러니까 들었다는 거야, 그 총 소리 들리자마자 대추나무 흔드는 게 싹 없어졌다고.
외할아버지가 그 얘기 딱 듣더니 뒷마당으로 나갔어.
다른 식구들도 죄다 따라 나갔지.
뒷마당에서 뒷담 바깥을 내다보는데.
대추하고 대추나무 이파리들이 다 떨어져 있더라.
나무에 달린 게 듬성듬성 조금만 보이고 대게는 다 떨어져 있는 거야.
대추나무를 그래도 한 열 그루는 심었었는데 그 열 그루가 다 그 모양이 되어버린 거야.
나는 그때 무서운 것보다 내 말 맞지 않냐고, 어제 밤에 누가 무지막지하게 흔들었다고. 이제 믿을 수 있냐고 그런 걸 물어보면서 부모님한테 확인 받았던 기억이 있네.
그날 아침 먹을 때, 외할아버지가 얘기하시는데 떨어진 대추가 다 썩어서 못 먹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물론 기분 나빠서 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정말 다 썩어 있었다고 하더라고. 쭈글쭈글 해 질 때까지 뒀다가도 먹는 대추가 어떻게 썩었는지 뭔가 보여주신 것도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게 말씀 하시더라.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또 그 육이오 전쟁 이야기를 하시면서, 총 소리가 들리자마자 소리가 사라진 건 이곳에서 전사한 국군 장병 영령님이 지켜주신 게 아니겠냐는 말씀도 하시더라고.
그건 좀 모르겠다.
설마 싶기도 하고, 내가 다른 소리를 총 소리라고 착각했을 뿐 인거 일수도 있고.
하여튼 그때는 어렸으니까 뭔가를 보고도 잘못 알아듣거나 착각하기도 쉬운 나이였잖아?
그런데 분명한건, 뭔가가 대추나무를 다 흔들어 놨다는 거지.
그 이후로는 별 탈 없이 보름이 지나서, 이모네 식구하고 우리 식구는 집에 돌아갔어.
다음에 몇 년 동안,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사업 투자 잘못해서 집하고 땅 다 팔아먹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 전 까지 말이지.
그래도 대여섯 번 정도는 외가에 놀러 갔었는데, 산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지만 어쨌든 별 일 없이 잘 다녀왔었어.
지금은 그 집도 땅도 산도 다 팔아서 어찌 됐는지 모르고, 외할아버지도 이사를 아예 다른 동네로 가셔서 왕래가 끊긴 것 때문에 그 스님이나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고 말이야.
외할아버지는 그 후로도 내가 있을 때, 술 한 잔 하시면 꼭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 너는 호국영령이 지켜준 목숨이니까 함부로 막 살지 말고 애껴가며 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애껴가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좀 극적이려면 그 선생님이 쌀 퍼먹는 귀신 위험하다고 강조 했잖아.
그럼 좀, 왜 그런거 있잖아 여운 남는 거.
총소리가 난 그날 이후로 창고에 간 외할머니는 쌀을 담아둔 항아리가 산산히 부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은 내용이 있었으면 정말 도마뱀정점 이었을텐데 그 이후로 두 분 다 창고는커녕 산에는 얼씬도 안하셔서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
쌀 퍼먹는 귀신하고 웃는 귀신이 그렇게 무섭다더니 그 후에 뭔 얘기가 전혀 없네.
물론 그런 소식은 아예 안 들려오는 게 희소식이지만 말이야.
모르겠다.
진짜 귀신이 있는지 아니면 어린 그 시절 사촌들과 내 착각이었는지, 어쨌거나 그때 자상하게 돌봐주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감사하고 마음고생 많이 했던 우리 부모님도 감사하고.
우리를 서슴없이 도와주셨던 스님과 그 이름 모를 선생님도 감사하고.
만약 외할아버지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 날 밤에 도와준 그 누군가도 굉장히 감사하다.
나도 솔직히 반신반의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뭐 꼭 다 믿어달라는 마음은 없어.
나도 그때 내가 겪은 것들만 간신히 기억할 뿐이고, 나머지 그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나 외할아버지의 조치 같은 건 내가 나중에 커서 부모님한테 드문드문 물어보기도 하고 부모님이 또 기억나면 이야기 해 주시기도 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뿐이야. 결국 내가 직접 겪어서 보고 기억하는 것들 빼고, 나머지 돌아가던 상황과 정황은 그 때를 잘 기억하는 부모님이 해주신 얘기를 기억하는 것뿐이지.
얼마 전에 6월 25일 이었잖아.
그래서 떠오르더라.
솔직히 어디 가서 얘기도 잘 못해.
이거 얘기하면 마지막이 왜 그런 식으로 끝나냐고 지어내려면 똑바로 지어내라고 하더라ㅋㅋㅋ
귀신얘기나 잘 할 것이지, 그런 건 별로 없고 무슨 선생님 얘기에 결말이 총 소리 나면서 끝나는 거냐고 ㅋㅋㅋㅋㅋㅋ
나더러 이야기 지어내는 데에는 재능이 없다는 소리들을 하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
그래, 이거 픽션 맞아.
지어낸 거야.
해주려고 했던 이야기가 다 끝나니까 별로 할 얘기가 없네.
꼬리는 길게 붙이지 않을게.
이 글이 끝나고 내가 무슨 후기를 붙이던 간에, 이 글 밖에서도 나는 본문 내용이 픽션 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고 너희도 딱히 이 허술한 이야기를 믿지도 않겠지만 그냥 흘러가는 인터넷 글들 중에 하나라고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두서없이 내 추억과 어렴풋한 기억들을 뒤섞어 이야기하는 컨셉의 지어낸 이야기를 말이야. 끝까지 읽어준 사람들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고마워.
항상 좋은 하루 되고, 행복한 일만 있어라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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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위 내용은 실화 괴담이 아니라 픽션입니다.
다 만든 이야기구요, 작성자도 사실은 글 내용과는 다르게 주인공처럼 천방지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렸을때는 사촌 형들이 두고두고 겁주면서 괴롭혔던 기억들밖에 없네요.
좀 적당히 놀리고 풀어줄것이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계속 겁주고 어휴 그렇습니다 어렸을때 저는 겁쟁이 였습니다.
하여튼 지어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바래요 ㅎㅎ 감사합니다!
출처 | 나, 작성자, 윈스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