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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커밍아웃한 썰.txt
게시물ID : bestofbest_1229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러멘디
추천 : 337
조회수 : 34662회
댓글수 : 3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8/15 23:26:33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8/13 18:23:37
평화롭던 A시의 12월 겨울 날씨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산악지형에 위치한 우리 부대만은 달랐다.
 
국방부가 그 지역에서 가장 날씨가 궂은 곳만 골라서 부대를 세운다고 해도 밑을 정도로
 
내륙이라고는 밑기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였다.
 
 
"통신보안, 동원과 상병 XXX(필자)입니다. 무엇을.."
 
"야, 나 연대 동원과장인데, 동원장교좀 바꿔줘."
 
언제나 거만함의 대명사로 각 대대 동원과에서 미움을 한몸에 받던 연대 동원장교가 왠일인지 매우 침울한 목소리었다.
 
마침 자리에 동원장교가 없어서 동원담당관님께 전화를 돌렸다.
 
"전화 바꿨습니다. 네. 네?"
 
20년동안 군대 짬밥을 먹었던 담당관님조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담당관님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흡사 주름들이 좆이라고 잠깐 보였던 것은, 분명 다가올 날의 전조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하던 담당관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야, 우리 부대에 2작사령관님 오신댄다."
 
 
국방부의 시계는 멈추었다.
 
......
 
 
그때 우리 처부인 동원과의 인원은
 
물상병인 나. 물론 처부로 편입된지 2주밖에 되지 않았고, 사수는 전역했다.
 
이등병인 후임. 얘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전입을 왔다.
 
그리고 1년간 처부에 몸담았던 내 동기. 녀석이긴 한데 착하긴 하지만 매우 모자라는 친구.(결국 나중에 짤림)
 
나와 동시에 처부에 투입된, 나의 전 중대장이었던 동원장교.
 
그리고 우리 부대에서만 4년정도 근무하신 담당관님.
 
매년 우수부대 지정이 되다 보니, 제2작전사령관님이 우리 부대를 사열하신다는 것이었다.
 
것도 2작사 예하부대 전 부대를 대표해서 말이다.
 
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나를 포함해 전 대대, 아니 사단 전체가 약 3개월간 지옥이 펼쳐졌다.
 
 
-예전 어떤 여자아이가 물어봤다.
"그게 그렇게 힘든거에요?"
"어..니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공장이..핸드폰 관련이지?"
"네. 삼성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 납품하는 하청업체지만요."
"어. 그 공장에 이건희 회장이 니 일 잘하나 보러온거라고 생각하면 돼."
"......"
 
 
바로놔도 가지 않을 것 같았던 3개월이 지나가고
 
대망의 사열이 이루어졌다.
 
인원이 너무 없었기에 행정병인 내가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주차를 도우고 있던 상황.
 
타 사단의 사단장부터 해서 군단장으로 추정되는 2스타, 3스타들이 레토나를 타고 마구마구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차에서 내릴 때 마다 경례구호를 붙여야 하지만, 매우 귀찮은 이유로 1스타 이하부터는 경례조차 붙이지 않았다.
 
멀리서 헬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전 부대원이 긴장을 하기 시작했으리라.
 
그리고 우리 사단장 목소리가 그렇게 큰 지 처음 알게 되었다.
 
 
 
주차가 끝나고 처부에 대기상황. 지금 사령관님은 예비군 교장 시찰중이었다. 조교들이 매우 힘들어하겠지. 하지만 난 안심할 수가 없었다.
 
상황실에서 pt자료중 내가 진행해야 하는게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동원장교가 해야 했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내가 진행하게 되었다. 그것도 첫빠따로.
 
분주한 상황실 분위기를 뒤로하고 연습에 연습을 하는 수 밖에....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지도 모르겠다.
 
발표가 끝나고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끝남과 동시에 이루 말로 다 할수 없는 해방감이 들었다. px에 있는 후임을 불러다가 담배나 피러 가기로 하고, 휴게실로 향했다.
 
 
망할. 점심시간.
 
대체 왜 2작사령관이 대대급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는 거였을까.
 
대체 왜 우리 부대 식당은 휴게실 바로 옆이었을까.
 
황급히 담배를 끄고 입김인지 담배연긴지 분간 안되는 목소리로 충성을 외쳤다.
 
2작사령관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다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졌다.
 
어깨를 두드리면서 '병사가 참 대단하다', '이 부대 예비군은 걱정 할 필요가 없겠다'는 둥 격려섞인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느껴지는 도합 스무개가량의 별들이 날 지켜보는 시선은 내 귀에 들어오는 사령관의 말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분명 머릿속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우렁차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사랑합니다!!"
 
아뿔싸.
 
드디어 순탄치많은 않던 내 군생활에 드디어 적신호가 꽃피는구나 생각했다.
 
머리, 아니 눈 앞마저 하얘졌다. 대체 난 누구고 여기가 어디인가. 아니, 대체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말로 다 할수 없는 고차원적 물음에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즉, 멘탈이 붕괴되고 말았다.
 
눈치없기로 소문난 후임마저 날 바라보는 표정이 매우 안쓰러웠다.
 
맑고 고운 소리 영창이 스타카토로 울려퍼질 무렵, 2작사령관은 껄껄 웃으며 자신도 모든 병사를 사랑한다고 한마디 하면서
 
내 등을 툭툭 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사령관 이하 수행원들이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 한 후, 그야말로 완전히 다리가 풀려벼러서 주저앉아버렸다.
 
 
 
 
 
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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