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장편 : 10] 그와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게시물ID : readers_255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강지강이
추천 : 0
조회수 : 2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28 15:56:07
옵션
  • 창작글

한줄 소개 내용 : “다른 사람의 죽음을 막을 거라면 일찍 접는 게 좋을 거야. 그것만큼 헛된 게 없거든.”

*

“이 분은 2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에요. 연세가 지긋하신 노신사셨는데, 다시 말하면 제 손님이었지요. 신기하게도 이 분은 본인의 사망 날짜를 묻지 않으셨고 배우자분의 날짜를 물어보시더군요.”

“배우자분이요? 그걸 알 수 있어요?”

“아… 제가 신기가 있는 무당은 아니라서요. 그분께 정중하게 제 앞에 있는 본인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더니 혹시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느냐고 하셔서 한번 시도해보겠다고 했지요.”

“사진은 처음 시도하셨어요? 거리에 보면 사진 촬영소 같은 곳 보면 사진 걸려 있잖아요? 길 가다가 사진 보시지 않으셨어요?”

“아… 사방천지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사망 날짜로 꽉 차 보이는 데 그걸 볼 겨를이 없었어요.”

“아아… 죄송해요. 제가 의심하는 게 아니라…”

“네네 알고 있어요. 오해하지 않아요. 하던 말 계속 할게요. 그래서 저는 그분이 지갑 속에서 꺼내는 사진 한 장을 볼 수 있었지요.

그분의 배우자분도 똑같이 나이가 지긋하셨어요. 혹여 보이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고 말하는 듯 바로 숫자가 보이더라고요.”

“아! 그럼 그분은 혹시…?”

“네, 지금 이 노신사 옆에 있는 묘비의 주인이세요. 날짜를 보니 할아버지께서 할머님보다 먼저 돌아가시는 걸로 보였지요. 그래서 할아버지께 보인 그대로 말씀드렸지요. 제 말을 들으신 할아버지께선 호탕하게 웃으시고 나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랬군요. 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네, 저도 궁금해서 여쭈어보니 웃음을 멈추시곤 제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내가 이 할멈과 그동안 살아온 나날을 생각해보니 하나도 잘해준 게 없는 거야. 이제 서로 늙어가니 이제 곧 죽는 걸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이 할멈에게 이제라도 무얼 해주면 좋을지 생각하던 중에 자네 가게가 눈에 보이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이 할멈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어떡하나 고민했지.

자네가 고맙게도 내가 할멈보다 먼저 죽는다고 말해줬으니 이제 불안감 없이 무얼 해주어야 할지만 생각하면 되지 않나? 고맙네.>

저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했어요. 배우자분보다 사망 날짜가 단 하루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요.”

“네? 굉장히 신기하네요? 뭔가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나가시는 것까지 웃으면서 대화를 했지요. 분명 할아버지께선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그동안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그와 같이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를 많이 사랑하셨던 거지요. 저는 그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하루 밖에 차이 나지 않는 격차를…”

“그럼… 설마?”

“네,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방문하신 지 몇 달 후에 먼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다음 날인 배우자분의 사망 날짜가 되자, 그날 우연치 않게 할아버지의 상담을 기록한 종이를 보게 되었지요.

하루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거지요. 보통 상담자분들은 주소 적는 걸 꺼리는데 할아버지께선 농담조로 이곳과 가깝게 살고 있으니 시간 여유가 되면 배우자를 잘 보살펴달라고 말씀하시며 적었으니까요.

저는 주소를 보고 황급히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말씀대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계셨지요. 거주지가 파악되자마자 바로 가게에서 뛰쳐나와 무작정 뛰기 시작했어요. 뛰고 또 뛰었어요.

그리고 집 앞까지 당도하게 되고 굳게 잠겨 있을 줄 알았던 현관문은 당기니 맥없이 열리더군요. 이때 신기하게도 흥분되었던 마음이 바로 진정되었고 죽음을 목격한다는 직감에 천천히 한 발자국씩 집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지요.

집 복도에서 거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서니 나란히 누워계신 두 분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더군요.

두 분은 이불을 덮으시고는 잠들어 계신 것처럼 누워 계셨어요. 비록 할머니 옆에는 약통이 있었지만… 그래도 할머니께서 그런 선택하신 것에 대해선 존중해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했습니다. 안방에서 나와 거실을 거치는 순간 식탁 위에 펼쳐진 쪽지가 눈에 띄었고 왠지 모르지만, 다가가 쪽지 안에 적힌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젊은이, 고맙소.>

저는 읽자마자 황급히 뛰쳐나왔습니다. 잘못한 것처럼 무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걸 떨쳐내려는 듯이 제 가게까지 한달음에 뛰었습니다. 뛰어가는 동안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뒤를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게 앞에 도착했어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가게 문을 닫았지요. 이 상황에 그 누구도 어느 손님도 맞이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날은 눈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참회의 눈물이었는지 애도의 눈물이었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애써 끊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결심했었지요. 제 능력을 의심하기로 말이죠.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만, 이를 의심하기로 했지요. 꼭 한 사람이라도 살려내어 제 능력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시키고 싶었습니다.”

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한 번 묘비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감정에 북받쳐 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의 애도에 같이 참여했습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됐느냐고요? 물론 제가 신고한 후에 장례식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안치시켜 드렸지요. 하지만 뉴스에선 ‘노부부의 동반자살’이라는 말로 두 분의 사랑을 퇴색시켰지만 말이죠.”

저도 그 뉴스를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동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말에 세상 참 삭막하다고 말을 했던 거지만, 이렇게 전혀 다른 이야기일 줄은 몰랐지요. 다르게 말하면 두 개의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지요.

“그런 이야기가 있을 줄 몰랐네요. 당신이 절박하게 구제하는 일을 벌이는 것도 이해가 가네요.”

는 제가 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확실히 와 저의 사이가 어느 정도 좁혀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는 꽤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어? 또 뵙네요?”

제 뒤편에서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에 일차적으로 놀랐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이 를 안다는 것이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도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해 했지만, 그녀에게 곧 인사를 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한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었지만, 한복이라고 하기엔 화려한 색채가 눈에 띄어 어느 직업에 걸맞은 의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직업일지는 그녀가 말하는 어투에 따라 유추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다른 분과 함께 오셨네요? 애인이신가?”

생각보다 더 그녀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처음 듣는 이에겐 공격적인 어투로 느껴졌습니다.

“아닙니다. 저와 함께 동행하게 되신 분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힘드시겠어요. 할아버지 만나러 오셨군요? 이곳에 많은 영이 있는데 그중에 한 분이실 수 있는데 원하신다면 불러드릴까요?”

그녀의 말투를 더 분석할 필요 없게 그녀는 스스럼없이 무당임을 밝혔고 여전히 직설적인 어투로 일관하였습니다.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할 여지가 있는 어투임은 분명했지만, 무례한 어투에도 는 차분하게 답변했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분에게 애도를 표했고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전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곳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묘지는 죽은 이를 많이 볼 수 있는 장소 중에 하나지요. 매일 볼 수 있는 영이라 지겹지만, 제 영적 능력을 수련하기 위해는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가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저는 반대이고 싶네요. 하루빨리 이 능력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는 이미 그녀와 구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 능력까지도 아는 듯해 보였습니다. 저는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기로 했습니다.

“영적 능력도 없는 사람이 사자(死者)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요. 딱하기도 해라. 오늘 거기 갔다 왔지요? 당신한테서 그의 영혼이 딸려오다 말았어!”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저희가 다녀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녀는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시도 하지도 못했습니다. 한 발자국도 아닌 한참 늦게 행동했으니까요.”

“내가 말했잖아 포기해."

“그렇게는 못합니다. 저는 꼭 제 능력을 깨야겠습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죽음이란 것도 자주 느끼면 하나의 일상과도 같다고. 익숙해질 즘이면 하나의 꿈과도 같아. 다음 날이면 죽음보다도 생의 움직임이 득실거리거든. 혹시 알아? 현실도 하나의 꿈일지. 우린 꿈 안에서 생과 사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을지 누가 알아? 그러니까 인연과 삶, 죽음을 영원히 못 바꾸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지.

자연적인 흐름을 거스른다고 그것이 바뀌겠나? 흐르는 시냇물을 손으로 막아봤자 흐름이 바뀔까? 아니잖아.”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고집을 못 꺾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죽는 날짜가 보이지? 무당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볼 수 있어도 자기 죽음은 보질 못하지. 왜일까? 무당에 붙은 귀신은 무당의 영적 능력을 흡수하며 살기 때문이야. 만약에 무당이 자신의 날짜를 본다면 어떡할까?

나처럼 이런 수련을 하겠어? 무당도 이런 점에서 모든 사람과 공평하지. 하지만 당신은 다르지 않아? 무엇보다도 당신의 죽음부터 초월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행동은 무의미하지 않겠어? 당신의 죽음을 희생으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막을 거라면 일찍 접는 게 좋을 거야. 그것만큼 헛된 게 없거든.”

저는 둘의 오가는 대화 속에서 묵묵히 침묵을 지켰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만큼 인상적이었지요.

“말씀 감사합니다. 더 듣고 싶지만, 저희는 일정이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들었을지도 의문이지만요.)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는 그녀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제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오늘 저 분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분의 말투가 신경이 쓰이셨을 수도 있지만, 무당이라는 직업을 가진 분은 언제나 직설적인 편 같습니다. 오늘은 저 혼자가 아니라 당신까지도 끼어들게 했다는 점에서 저분이 화가 난 것 같네요.”

“전 괜찮아요.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우리 어디로 가죠?”

“혹시 배 안 고프세요?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저는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고 오늘 를 위해 동행했던 노력이 생각나서 냉큼 알겠다고 승낙했습니다.

묘지공원에 나올 때쯤엔 해는 사라지고 없었고 어둑한 밤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주위에 불빛이 많지 않아 밤하늘은 무수히 많은 별로 빛을 내었습니다.

과거에서 오늘까지 방향에 지침이 되었다던 북극성이 눈에 보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진 않을까 하며 기대해보았지만, 그것은 제 몫이라고 말해주듯 묵묵히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생각은 떨쳐내고 무얼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