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할머니 품에 남겨졌습니다. 공사판을 떠돌며 생활비를 버느라 허덕이는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할머니는 산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뒤 밤이 하얗게 새도록 할머니는 그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나는 할머니 없는 빈 집이 싫었고, 할머니가 캐오는 산나물이 너무 싫었습니다. 숙제를 다하고 나면 으레 손톱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밑의 까만 물을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선생님께서 " 토요일까지 부모님을 다 모시고 와야 한다, 다들 알겠지?" 모시고 갈 사람은 할머니 뿐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허름한 옷, 구부정한 허리, 손톱밑의 까만 땟국...... 무엇보다 선생님이 할머니 손톱밑의 까만 때를 보는게 싫었습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오시래요&! quot; 하는 수 없이 내뱉긴 했지만, 너무 속상해서 저녁도 굶은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하..할머니!!"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지영아,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아드린 할머니의 손은 퉁퉁 불어 새빨간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초라한 할머니를, 특히 할머니의 손을 부끄러워 한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에서 피가 나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