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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로 보는 쩌리 삼국지]육적편
게시물ID : history_123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렛이리
추천 : 22
조회수 : 1415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10/25 20:57:22
머리나 식힐겸 재미로 보고가는
 
정사로 보는 쩌리 삼국지입니다.
 
오늘은 전에 말씀드린대로 오의 인물중 하나를 골랐는데요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동오에 손권을 설복하러갔을때
 
괜한 언쟁을 걸었다가 굴욕을 당한(?) 이미지로 유명한
 
육적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육적陸績은 한나라말기 여강군의 태수를 지낸 육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후에 가세가 기울고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당시 구강九江에 있던 원술을 만나러가게 됩니다.
 
이에 원술은 매우 기꺼워하며 감자甘子(귤)를 대접했는데
 
육적이 돌아가려 원술에게 인사를 하다가 그만 숨겨가려던 귤 3개를 떨어뜨립니다.
 
원술曰'육랑陸郞은 어찌 손님이면서 귤을 숨겼는가?'
 
하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육적曰'돌아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기특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 회귤고사라고하여 지극한 효성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합니다.)
 
후에 손책이 오군에서 장소,장굉,진송등을 상석에 앉히고 천하 일을 의논하는데
 
모두 무력으로 평정해야함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때 육적은 나이가 어려 가장 말석에 앉아있었으나, 기개 넘치는 목소리로
 
육적曰'옛날 관중은 제나라의 환공을 보필하며 제후를 여러번 규합하여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전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공자는 먼곳의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덕을 쌓아서 오게한다했습니다.
          지금 의논하는 자들은 도덕으로 천하를 얻을 생각은 않고 무력만을 사용하려합니다.
          제가 아직 어리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라고하여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이처럼 육적은 덕을 숭상하고 용모가 건장하며, 천문 역법이나 산수등 모든 학문에 박식하였으며,
 
우번이나 방통등과도 깊은 교류를 맺고 있었습니다.
 
다만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어떤 생각이 있으면 이를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꺼림을 받아 결국 울림(오의 변방지역) 태수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편장군에 봉해지면서 병사 2000명을 받았으나, 본래 다리에 질병이 있고 학문에만 뜻이있어
 
병사를 인솔하여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군사적인 일(전쟁이나 내란)이 있을때도 저술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나
 
결국 32살에 죽게됩니다. 아들로는 육굉과 육예가 있습니다.
 
정사의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육적은 연의에서는 다소 경솔한(?) 느낌이 나는 인물로 나오나
 
실제로는 누구보다 학문을 숭상하고, 효심이 깊은 인물입니다.
 
또한 정사에서 육적전, 제갈량전, 손권전 어디에도 육적과 제갈량이 언쟁을 하는 기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후에 더해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 드라마 중에 염석전기(廉石傳奇)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울림태수로 있던 육적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 드라마의 내용을 조금 소개하며 육전편을 마치겠습니다.
 
염석이란 말은 관리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때 배가 너무 가벼워 배가 안정되지 않자
 
염석이라는 큰 돌을 올리고 비로소 배가 안정되어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전임 관리들은 재임시 너무 많은 재물을 착복하여 배가 무거워졌고
 
무거워진 배는 느리고 곧 해적의 표적이 되곤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육적은 재임시 누구보다 청빈하고 백성을 위하는 관리로 돌아갈때 염석이 필요할 지경이었다는 이야기 내용으로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육적과 같이 청빈한 관리는 참 드물었던 모양입니다.
 
왠지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참 큰 이야기네요.
 
부족한 글인데도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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