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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인도네시아에서의 밤
게시물ID : panic_889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8
조회수 : 286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07/01 21:05:38
인도네시아에서의 밤

여름 방학 때 단기 봉사 활동으로 동남 아시아에 갔을 때 일이다.

우리 그룹은 베트남, 캄보디아에 갔다가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에 갔다.
체재 기간은 2주일 정도였고, 처음에는 시가지에서 활동했지만
마지막 5일은 지방에서 학교 일을 돕게 되었다.

그곳은 정글의 울퉁불퉁한 길을 3시간 이상 차로 간 곳에 있는 촌락이었는데
인구 수는 1000명 정도였다.
하지만 의외로 학교는 괜찮았다.
이웃 촌락에서도 애들이 다니는 학교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학교에 인접한 기숙사에서 잤는데, 유럽에서 온 봉사 단체도 머물고 있었다.
2인 1실을 배정 받게 되었는데, 모처럼 만났으니 유럽 애들과 섞어서 자게 되었다.
나와 같이 방을 쓴 애는 조지라는 네덜란드인이었다.

키도 크고 훤칠한 데다, 얼굴도 뭐랄까 우락부락해서 좀 무서워서
사이좋아지긴 글렀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의외로 친화적인 성격이라 안심이 되었다.
아키하바라 이야기로 완전 들떴다 ㅋㅋ
덧붙여서 방은 침대가 두 개 있는 살풍경한 방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은 그 날 밤부터 일어났다.

첫날부터 힘 쓰는 일만 계속하는 바람에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뻗었다.
자기 전 일과라며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조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잠든 것 같다.
아마 9시 쯤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떠졌다. 주변은 어둑어둑했다.
베갯맡에 둔 손목시계를 보려고 목을 움직이다가 두 가지를 깨달았다.

일단 온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그리고 침대 옆에 누가 있었다. 서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반라 상태에 천 쪼가리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가슴이 납작했으니 남자라고 생각했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자가 서서히 자세를 앞으로 숙였다.
내 얼굴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어두웠던 얼굴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시야의 한 구석에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을 보고 말았다. 보랏빛이 감도는 생기가 없는 표정이었다.
생김새는 현지인인 것 같았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눈동자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그를 향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간 죽임 당할 것 같아.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나는 그대로 기절했던 것 같다.

이튿 날, 눈을 뜨자마자 방 안을 둘러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조지도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나는 조지를 깨워서 어젯밤에 무슨 일 없었냐고 물어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꿈 꾼 거 아니냐며 웃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다른 멤버들에게도 말했지만
다들 엇비슷한 반응이었고, 쓸데없는 걸로 난리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그날도 첫날보다 훨 중노동을 하는 바람에 바로 잠들어버렸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시간을 보려고 했더니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가……
양쪽에 있었다.
왼쪽에 반라의 남자, 오른쪽에는 왜소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른쪽은 벽일 텐데 분명 누군가 서성이고 있었다.
뿌연 느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노인인 것 같았다.
그러자 노인이 몸을 굽히기 시작했다.

그것과 동시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눈동자가 움직였다.
싫어.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않은데..
검붉은 주름진 얼굴에 눈, 코, 입이 제각각 구멍이 나 있다.
입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뭐라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날 보며 뭐라고 하는 걸까.
뺨에 차가운 냉기가 닿았다. 얼굴 주변에만 온도가 다른 느낌이었다.
오른쪽 사내도 어느 틈엔가 수구리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이 더욱 다가오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도 조지에게 확인해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하며 이번에는 둘로 늘었다고 말해봤지만 역시나 비웃을 뿐이었다.
같이 식사하던 현지 스탭은 걱정하는 듯 했지만,
그녀도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조지는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너 일본인이라 원망 받는 거 아냐?
 예전에 일본군이 인도네이아에서 얼마나 심한 짓을 했는지 모르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인도네시아 아이 쪽을 보니 인상을 찌푸리며 나와 조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날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육체 노동은 별로 하지 않아서
밤 늦게까지 조지와 잡담을 했다.
조지 네는 내일 돌아가게 되었고, 그는 드디어 문명 사회로 나간다고 좋아했다.
나는 잠드는 게 무섭기도 했고, 그날은 새벽 1시 넘어까지 깨어 있었다.
역시 눈이 떠졌다. 곧이어 공포가 날 덮쳤다.
검은 실루엣들이 침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키는 제각각 달랐지만 반라의 사람들이 언뜻 언뜻 보였다. 아이도 있었다.
내가 눈을 뜨길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시야를 뒤뎦는 얼굴, 얼굴, 얼굴.
검푸른 얼굴, 보랏빛 얼굴, 하얀 얼굴. 하지만 모두들 무표정했다.

노려보는 건 아니었지만, 도무지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이제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공포가 온 몸을 흘렀다.
게다가 지는 이틀과는 다르게 기절하지도 않았다.
오늘 밤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 안에서 사죄의 말을 끝없이 되풀이 했다.
전쟁 때는 죄송했습니다. 일본군이 잘못했습니다.
다가오는 얼굴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에 뭉클하는 감촉이 닿았다.
그때 왠지 입이 열리며 숨이 하아아하고 새어나왔다.
그대로 숨을 들이쉴 수 없어서 기절했다.

그날 아침은 공포가 너무 선명히 남아서 속이 좋지 않았다.
조지가 너 얼굴이 새하랗게 질렸다고 했다.
내 상태를 보고 다른 멤버들도 이제서야 걱정이 되었는지 오늘은 쉬라고 했다.

하지만 방에 혼자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낫다고 거절하며
그날은 인도네시아 여자애들과 같이 식사 준비 당번을 하게 되었다.
조지 네 단체는 낮 정도에 출발했는데, 출발할 때 나에게
"네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가 이 마을 사람을 학살한 거 아냐?
 일본은 예전의 잘못을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으면 안 돼"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소리를 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일본인들에게 아무 일도 없는데 나만 이렇다는 걸 달리 설명할 수 없으 니까.
내 옆에 있다가 조지의 말을 같이 들은 인도네시아 아이는
복잡한 표정을 띄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거기 있기 거북했다.
그리고 나흘 째 되는 날 밤, 인도네시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내일이면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밤엔 그 방에 혼자서 자야 한다.

누가 같이 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여자애도 아니고 괜한 자존심에 말을 꺼내지 못 했다.
차라리 밤을 샐까 했다.
돌아갈 때 차 안이나 비행기 안에서 자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1시 반 정도 되자 피로가 덮쳐오더니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잠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꿈도 꾸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반쯤 일어나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딱히 속이 안 좋지도 않고 오랜만에 맞이한 상쾌한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현지 스탭과 작별식을 했는데
그때 어제 같이 일하던 여자애가 어젯밤 일을 묻길래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더니
묘하게 납득한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짚히는 구석이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여자애가 소근거리며
"용서 받은 것 같아" 라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너는 원망 받은 게 아니라, 반성하라고 한 거야"
"반성?"
"맞아. 너도 포함해서라고 해야 하나"
"포함하다니?"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심한 짓을 했다고 그 사람이 했지만
 네덜란드인이 더 심한 짓을 했어"
"아.. 뭐?!"
"그 사람은 정해져 있었던 거야. 반설할 여지도 없었어"
그제서야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지막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따라서 간 거였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267234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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