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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주의)아무리 내가 병신이라고 해도 나는 따스한 사람이고 싶다.
게시물ID : freeboard_13309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키보드힐러
추천 : 5
조회수 : 26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7/03 05:03:37
네시..
 
한국은 다섯시 일 테니 제법 늦은 시각이다.
 
 
뚱땡보지만 마음은 착한 마누라와 세살 된 진짜 뚱땡보 아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이 하루하루를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자며 여기 까지 왔는데,
 
어제와 그제는 집에 들어오자 마자 소파에 쓰러지다 시피 앉아서 울다 잠들었다.
 
오늘은 출근하진 않았지만 지금도 소파에 쓰러지다 시피 앉아있고, 모니터엔 뭐가 묻은 것 같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입으로 들어온 이 회사에서 나는
 
입사 당일부터 병신이였다.
 
경력직 밖에 뽑지 않는 이 회사에서의 신입이었던 나는,
 
외국어 회화 가능자만 입사 가능한 이 회사에서의 토종 한국인이었던 나는,
 
숱한 멸시와 천대, 구타 속에서도 '노력해서 어엿한 1인분이 되어 인정받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니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나아지겠지...하며.
 
 
몇 년이 지나고, 1인분 쯤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역시 나는 병신이였고,
 
멸시 천대와 구타는 여전했다.
 
외국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르고 들어와서 정말 빨리 늘었다는 칭찬도,
 
실수도 많고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수고했다는 칭찬도,
 
나의 병신이라는 타이틀을 벗겨 주지는 못했다.
 
 
마치 궁녀와도 같았다.
 
으리으리한 궁궐 속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 음모, 권모술수가 판치는 것을 보고도
 
못 들은 척, 그 자리에 없었던 척, 항상 정해져 있는 대답만 하며 살았다.
 
친분을 쌓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일 뿐더러, 가벼운 농담이라도 던졌다간
 
뒤통수를 맞거나 멱살을 잡혔으니까.
 
나 외의 선배들이 서로 인격모독에 가까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즐거워 할 때에도,
 
나는 맞을 각오로 가벼운 농담을 조심스레 꺼내곤 으레 얻어맞거나 ㅁ1친놈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대해 불평하다 결국 이직을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고, 나에겐 과분하게 좋은 회사라고만 얘기했을 뿐이다.
 
누가 누구를 욕하더라도, 뭐가 맘에 안들어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었을 뿐, 듣지 않았고, 동조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일까..
 
여태껏 한 번도 대인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본 적 없는 나였지만,
 
여기서의 나는 눈치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다.
 
나이 차이는 제법 나지만, 동갑내기 친구 처럼은 아니여도 동네 형처럼은
 
웃으며 따르고 싶었다. 뭐가 어찌 되건 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건 나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함께 들어온 입사 동기들이 모두 나가고 나만 남았다.
 
어깨에 노란 견장을 찬, 백일 휴가도 못 나가 본 이등병같은 생활을
 
6년 반이나 해 냈지만, 어깨에 견장은 여전히 그대로다.
 
 
 
해외 주재원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
 
병신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굴려 써먹을 수 있어서 나를 뽑아주셨다고 믿고 감사하며
 
기꺼이 여기까지 왔다.
 
이 곳에서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나에게 할당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믿고 감사해 하며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병신이지만..
 
 
 
업무 외 적인 부분에서 받는 지적들.
 
이미 6년 반이나 이어진 병신 취급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내가
 
여전한 인신 공격에 표정이 어두워지면 웃으라고 뺨을 때렸다.
 
벌써 십년도 더 된 취미, 커피에 대한 취향도 으레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한국보다 더 무더운 이곳에서, 오랜만에 제법 잘 만들어 진 시원하고 알싸한 더치커피 한 잔을 음미하는 것 조차
 
ㅁ1친놈의 여전한 지랄이였다.
 
식사 같은거야 영양 밸런스 맞게 양 껏 먹으면 될 뿐,
 
반드시 쌀밥과 김치, 국일 필요 없이 현지 음식이나 과일, 빵같은걸로도
 
얼마든지 식사가 될 수 있고, 바쁘면 거르는 것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겐 선택권 없는 1일 2식의 한식이 강제되었다.
 
물론 주말에도.
 
 
최근 2년간 다닌 해외 출장 중에 만난 외국인 동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경악할 뿐이였다.
 
내 업무에 반드시, 그리고 굉장히 도움이 될 타 부서 업무를 배우고 싶다고 건의했다가
 
다시 한 번 병신이 된 내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히려 그런 건의가 없는 직원은 업무에 대한 열의가 없는 걸로 간주될 뿐이니..
 
여하튼 해외 출장은 나에게 장기간의 유급 휴가와도 같았다.
 
나이 차가 10년이 넘어도 동료 모두가 친구였고, 거칠게 내뱉은 농담으로 승천시킨 광대는 셀 수 조차 없었으니까.
 
그런 사람들과 하는 일이 따분하고 비효율 적일 이유도 없다.
 
출장이 끝나던 날의 송별회도, 다음 출장에서 재회했을 때의 반가움도,
 
나와 다음 출장지에서 다시 만날거란 생각에 준비해 온 선물도,
 
정말 못 잊을 추억들이다.
 
 
 
 
자꾸만 과거형으로 적으니까 왠지 퇴사라도 각오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자야지...
 
 
 
6년 반.. 그리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래도 잘 참아 왔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룩해 냈다고 믿는다.
 
이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버텨 왔는지 조차 모를 지경에 이르렀지만,
 
모르지.. 정말 내가 병신이였기 때문이었을 지도.
 
그래. 난 정말 병신이였을 거다. 눈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선배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강제로라도 빼앗아서 대신 들었어야 했을 거고,
 
뭔가를 얻어 먹을 땐 가장 싼 걸로 선택했어야만 했을 거고,
 
항상 눈치를 살피고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조치를 했어야 했을 거고,
 
듣고 싶은 말이 뭔지 더 필사적으로 생각했어야 했을 거다.
 
괜찮다고, 직접 들겠다는 말을 왜 믿어서는 안되는지,
 
항상 얻어먹기만 하는 입장도 아닌데 좀 더 맛있는걸 먹어서는 안되는지,
 
다른 일이나 생각을 하다가 미리 조치를 못하면 안되는지,
 
내 생각을 말해선 안되는지,
 
난 여전히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으니까, 아마 병신 맞을거다.
 
 
 
지난 이틀 간 내 얼굴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나 보다.
 
뭐,,그랬겠지.. 나조차도 그렇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질질 짜던 내 자신이 어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한 자루의 횃불이 있다.
 
당한 대로 갚아 주지 말자, 입에 담지도 못할 험한 말을 듣더라도 나는,
 
건물 옥상에서, 한강 다리에서 돌아 내려오게 할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나는 여전히 병신이지만, 나에게 당신들은 존경하는 선배이고,
 
이제라도 가능하다면, 친한 동네 형처럼 따르고 싶다.
 
나중에라도 누군가 나에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해준다면,
 
진심으로 괜찮다고,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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