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선구의 시간 cp1이 먼저 나와야 되는데
욕설이 너무많아서 필터링을 못넘기네요.
그건 수정을해서 올려야겠어요
둘의 순서는 그렇게 상관이 없으니 일단 프라고부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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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징> 프라고의 시간 1 - 1
프라고의 나침반은 아직도 돌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그것은 마치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회전했다. 그의 업무는 외관상으로는 매우 단순한 일이었다. 입국이 승인되어 들어온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검사하고 검사지에 도장을 찍어 최종적인 입국 허가증을 주는 업무였다. 프라고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이 아주 적합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생각이 마치 그들이 말을 하듯이 귀로 들려왔다. 그들의 생각이 입국에 알맞지 않는다면 곧바로 돌려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소녀도 마치 그것을 알았다는 듯이 그를 입국관리자로 선출을 해버렸다. 거절은 할 생각도 없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아마 소녀가 아니었다면 그 하얀 숲에서 정처 없이 계속 헤메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무들과 대화를 하며 그곳을 터전삼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왔는데 그것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것이 생각이 날 때 까지 그는 조용히 업무를 충실히 했다.
“입국관리자. 제가 오기 전에는 누가 있었죠?”
프라고가 맞은편에서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음- 이름이 뭐더라. 특이한 이름이었는데. 아 앵코. 앵코였지 아마?”
소녀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책을 보면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디 있어요? 그 분은.”
“죽었어.”
전혀 뜸을 들이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는 그게 태연한 대답이었다고 받아들였다.
“왜요?”
“아. 참 궁금한 것도 많다. 흠. 걔는 너가 오기 전에 -캐피탈-에 당했어. 우리 쪽 입국관리사무소를 덮친 거지. 아마 입국을 하는 척하면서 들어온 녀석들 중에 그쪽 끄나풀이 있었나보더라고. 사라졌어. 그냥 먼지처럼 솨~ 뭐. 이제는 너가 있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내 걸 건드리는 거는 내 성격에 아아아아아주 어긋나는 거라서. 뭔가 우리 쪽에서도 반응을 보여줘야겠지? 그쪽에서도 각오는 하고 그런 행동을 했겠지.”
소녀는 의자에서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는 웅변하듯이 말했다. 발을 책상위에 올려놓아서 파란 원피스가 살짝 다리위로 올라가 매끈하고 얇은 다리가 프라고의 눈에 들어왔다.
“저도 위험한 거 아닌가요?”
프라고의 말에 소녀는 책상에 완전히 올라서서 점프를 했다. 그리고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더니 그의 책상 위에 올라섰다. 책상 위에 하얀 구두가 올라왔으나 ‘또각’ 하는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프라고는 소녀를 멍하니 바라봤고 소녀는 그의 앞에서, 그러니까 책상 위에서 무릎을 모아 쪼그려 앉았다.
“나 푸링의 이름을 걸고 지켜줄게.”
푸링이 프라고의 코에 자신의 코를 갖다 대며 말했다. 소녀의 호언장담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사실은 소녀의 입에서 나는 옅은 후리지아 향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푸링이요? 이름이?”
벌써 이곳에 온지 수일이 지났지만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저 이 건물의 건물주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그 외의 정보는 모르고 있었고 어찌 된 일인 지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았다.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소녀의 볼이 사탕을 머금은 것 마냥 부풀어 오르자 프라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엽네요. 푸링이라는 사람은.”
“참는다. 참아. 서류나 잘 검토해.”
푸링이 다시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날아갔다. 날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깃털처럼 천천히 그곳으로 둥둥 떠다녔다. 그것이 소녀의 능력인 것 같았다. 자신도 남의 생각을 들을 수 있듯이 소녀는 소녀 나름대로의 능력이 있을 거라고 마냥 생각을 했었지만 자동차가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는 것 외에 날아다니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생각을 듣는 것도 소녀의 생각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별 대수롭지 않은 능력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소녀가 자리에 다시 앉아 다리를 올리고 손톱을 정리하고 있으니 프라고는 보던 서류를 다시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캐피탈은 뭐에요?”
“너. 그런 건 너가 알아봐. 자꾸 귀찮게 할래? 방을 따로 지정해야겠어. 귀찮게 시리.”
소녀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자 이내 프라고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서류를 집었다.
“지켜 주셔야죠. 저”
“하아. 다루기 귀찮은 놈이 구만. 12층으로 내려가면 설명충 하나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봐. 나는 이제 입 닫고 있을 거니까.”
설명충이라는 말이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가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방에서 나가는 거라 뭔가 신선한 이끌림이 있었다. 그가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나서 책상 너머로 걸어 나가려고 하자 푸링이 책상을 쿵 하고 한번 치더니 입을 열었다.
“어허. 서류는 다 확인하고 가야지. 조금 후에 입국심사다.”
“네.”
프라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서류가 두껍지는 않았지만 전혀 줄지 않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듣는 것은 쉬웠지만 서류를 확인 하는 것은 좀처럼 요령이 생기지 않았다. 서류에 써져 있는 내용은 어차피 직접 심사와는 판이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보지 않자니 수많은 사람들을 심사해야 되니 1차적으로 거를 건 걸려야했다.
프라고는 다시 조용히 앉아 쉴 세 없이 돌아가는 나침반을 한번 바라보고 서류를 확인 했다.
***
12층은 엘리베이터로 손쉽게 갈 수 있었다. 하얀 엘리베이터 안은 거울도 없었고 그저 숫자로 된 수많은 층들이 적힌 버튼만 있을 뿐이었다. 프라고가 12라는 버튼을 누르자 문이 닫히고 살짝 공중에 뜨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12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곧바로 커다란 방 하나가 있었다. 그냥 12층 전체가 한 방으로 되어있는 구조였다. 많은 책들이 원형 책꽂이에 꽂혀 있었고 원형 책 꽃이는 마치 숲에 있는 나무처럼 방 전체를 메꾸고 있었다. 프라고는 오히려 그것들이 숲속의 나무 보다는 사막에 있는 선인장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문에서 가장 먼 반대편, 거의 크게 쉰 걸음은 걸어야 하는 곳에 책상 하나가 있었고 그곳에는 대머리를 한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잘 정리된 하얀 수염이 턱과 콧등에 일정하게 나있었다. 한 반쯤 다가가니 그가 한손으로 턱을 괴고는 자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그는 앉아 있었음에도 넓은 어깨와 풍만한 풍채가 한눈에 들어왔다. 프라고가 그의 책상 바로 앞에 도착하고 그를 깨워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바로 그가 눈을 뜨고 책상에 손을 올려놓았다.
“자는 줄 알았지?”
사실 프라고는 그의 -놀래 켜야지- 라는 생각을 들었지만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다.
“네. 주무시는 줄 알고 있었어요,”
프라고의 말에 그는 약간은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아예 놀라지를 않네. 신입인가? 이번에 입국관리자가 새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네. 반가워. 난 기록관리자 만추.”
아예 모든 생각이 들리는 것은 아니라 이름은 알 수 없었는데 그가 바로 이름을 이야기해 주자 프라고도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국관리자로 들어오게 된 프라고입니다.”
“프라고? 신기한 이름이구만.”
프라고는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정확히는 무언가 강한 사념이 있을 때에 한해서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방금같이 놀래 켜야지 와 같은 깊은 생각이나 악의를 갖고 있다면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일상 대화 중에서는 다른 생각이 거의 들리지는 않았다.
“신기한가요? 저는 흔하다고 생각했는데.”
“음 글쎄. 흔하지는 않는데. 이곳에 기록을 다 뒤져봐도 프라고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가 없어.”
만추가 일하고 있는 12층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나 인물들의 특징 들을 저장해 놓는 곳이었다. 원형 책꽂이에 꼽혀있는 책들도 모두 그가 기록을 해놓은 것들이었다. 그는 엄청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열람을 할 수 있도록 기록을 해서 정리를 해두는 일을 하고 있었다.
“프라고. 자네에 관한 것도 얼른 기록을 해놔야 겠구만. 흠흠.”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어떤 일로 여길 찾아오셨어? 푸링이 보냈나?”
“네. 그분이 궁금한 게 있으면 이곳으로 가라고 하셔서.”
만추는 책상에 있던 책을 덮고 바로 옆에 있는 책꽂이에 책을 넣었다. 그리고는 프라고를 바라보며 표정을 약간 찡그렸다. 짙은 눈썹이 마치 갈매기 날갯짓처럼 구부러지는 게 보였다.
“하여간 그 녀석. 귀찮은 건 나한테 떠넘겨. 시간 없으니까 빨리 물어봐.”
만추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프라고는 생각했다.
<이미징> 프라고의 시간 1 - 2
“앵코라는 사람은 어떤 분이셨죠?”
프라고의 첫 질문은 푸링이 말해준 앵코라는 사람에 관해서였다. 물론 소녀가 알려줬지만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만추는 찡그리던 눈썹을 다시 원상태로 만들고 왼쪽 수염을 살짝 매만지며 말했다.
“앵코라. 자네가 오기 전에 있던 입국관리자였는데. 자네가 어떻게 알지?”
“아 푸링님이 말해주셨어요. 그저 죽었다고만 말씀하셔서.”
그는 프라고의 말을 듣고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 정도 뿐? 그렇지. 그렇지. 푸링 그녀석이 앵코를 진짜 싫어했거든.”
“왜죠?”
프라고의 질문에 그는 조금도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그 자식. 로리타 콤플렉스였거든. 물론 이곳에 어린 여자아이가 많이 없긴 하다만. 푸링 그녀석의 생김새 때문에 아주 미친 듯이 쫓아다녔어. 아주 병적이었지. 이런 적도 있었다고. 언제 한번 푸링한테 하얀 오버니 스타킹을 선물해서 푸링이 좋다고 신고 다녔었지. 그러다 잠깐 그걸 벗어 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주워서 말이야. 냄새를 맡고 있더라고. 그걸 딱 들킨 거지. 그래서 그날 이후로 아예 방 13층 독방으로 옮겨 버린 거야. 미친/놈이었지. 그 후로는 푸링이 아주 소름끼치게 싫어했어. 녀석은 천을 자기 마음대로 물건으로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어서 자주 푸링의 옷을 만들어 주거나 인형을 만들어 주고는 했는데. 그 이후로는 그 녀석의 물건은 전혀 걸치지도 않더라고. 뭐 나중에 앵코 녀석이 자기 독방에 푸링의 모습을 본 딴 인형들을 엄청 만들어서 진열해 놓은 걸 보고 인형을 다 태워버린 적도 있었어. 그때 앵코 녀석 표정을 봤었어야 했는데. 인형들이 죄다 이상한... 뭐 말 안 해도 알겠지.”
“상상이 가네요.”
-봉제인형으로 그런 느낌을 내기는 참 힘든데 말이야. 그거 하난 인정한다.-
만추의 생각이 들려왔다. 그 덕 다른 인형들의 모양이나 디테일 적인 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미친/놈이라고 욕은 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의 작품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프라고는 어렴풋이 알아 낼 수 있었다. 나중에 살색의 그것까지 생각을 해내는 것을 보면 어렴풋이가 아니라 아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미친/놈이었어. 그렇게 푸링 녀석과 떨어지게 되고나서 사고가 나버린 거야. 푸링이 그 녀석을 엄청 혐오하기는 했지만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건 여기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 캐피탈이 공격을 해온 거야.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고 그 쪽에 변신술에 능한 사람이 있던 게 분명해. 아니면 그렇게 철통 보안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 우리 쪽 보안 책임자는 아주 철저한 사람인데 그렇게 된 걸 보면 머리도 엄청 좋은 놈 같아. 바로 위 위층에서 나와 입국심사실로 들어가서 사고가 난거지. 총 두 명이었어. 입국심사실은 투명한 창문 밖에서 푸링이 눈으로 감시하면서 진행되는 데. 한 명이 자기 얼굴 피부를 벗고 손으로 앵코의 목을 댕강. 베어 버렸대. 그리고 나머지 한명이 그 머리를 들고 피부를 벗은 그 남자 손을 잡고 사라졌다는 거야. 그 둘 중에 손을 잡고 순간이동을 해버린 놈이 마지막에 푸링을 보면서 약간 미소를 짓는 걸 보고 푸링이 유리를 깨부수고 난리가 났지만 뭐. 이미 사라져 버린 후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 “그 사람들이 캐피탈이라는 건 어떻게 안거죠?”
만추는 허리를 피고 의자 등 받침을 살짝 뒤로 밀고는 팔짱을 꼈다. 그러더니 고갯짓으로 프라고의 뒤쪽에 있는 작은 간이 의자를 가리켰다. 이야기가 길어지겠구만. 이라는 생각이 들려왔다. 프라고는 조용히 의자를 들고 와서는 그의 책상 바로 옆에 앉았다.
“푸링말로는 그 놈들이 캐피탈 고유의 손짓을 하고 갔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말야.”
그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쭉 피고 손등을 보이며 밑을 향해 손을 꺾었다. 그것이 캐피탈의 고유 마스코트 같은 것이었다.
“뭐. 그것만으로 무슨 증거가 되겠냐만은. 심증이란 게 있잖아. 캐피탈 녀석들이 우리한테 불만이 많아. 그것도 아주우우우우우 많거든. 최근에 루믹스톤을 우리 쪽에서 많이 수집하고 있거든. 그것 때문에 분쟁지역이 많이 생겼어. 원래는 각자 맡고 있는 섹터가 있었는데 루믹스톤은 한정 되어있거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빈 섹터를 찾아서 점령하고 루믹스톤을 채광하고 그쪽도 아마 그렇게 하고 있었겠지. 그러다가 섹터가 서로 겹치고 싸움이 붙은 거야.”
“루믹스톤이니 캐피탈이니. 모르는 것들이 더 생겨가는 것 같아요.”
프라고가 나침반이 있는 반대쪽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푸링이 회중시계는 흰색의 금속이 외관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었다. 투명한 화면에 바늘은 하나뿐이었고 숫자는 1부터 10까지 총 원을 10등분하고 있었다. 프라고는 바늘이 10을 가리키는 때가 입국 심사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마침 바늘은 9와 10의 반 정도를 지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다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으니 만추가 말했다.
“이제 재밌는 이야기를 할 타이밍인데. 일이 생겼군?”
“예. 뭐. 만추님이랑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알았다면 서류 정리를 빨리 하고 나올 걸 그랬어요.”
만추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좀 유식하긴 하지-
그는 자존감이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생각을 곰곰이 들어보면 항상 자기자랑을 늘여놓곤 했다. 반대로 뭔가 다른 이에게 흠으로 반영될 부분의 경우는 꼼꼼하게 안으로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럴 때일수록 프라고는 그 흠을 더 캐치하기 쉬웠다. 일단 그것을 숨기겠다는 명백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강한 사념 같은 게 느껴졌으니까.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푸링이 노발대발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프라고는 하나를 더 물어보고 사무실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의 눈에 만추의 표정도 얼른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로 입을 열 수 있었다.
“캐피탈 그들은 누구에요?”
만추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표정은 어딜 갔는지 사라지고는 이제 프라고와 대화를 하는 데 재미를 들린 모양이었다. 끼고 있던 팔짱을 빼고 책상에 손을 올려놓고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지. 우리 텔로스보다 먼저 건설된 곳이야. 이 세계로 유입되는 많은 인구들이 그쪽에 있지. 우리가 푸링을 필두로 여러 인재들이 모였다면 그 쪽은 코스모스가 수장이고 점차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어. 여러 분쟁지역을 안고 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곳들을 흡수해가고 있어. 덕분에 많은 나라가 사라지고 있지. 처음에는 여러 괴물 같은 것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고 모인 집단이었는데 그 집단이 크기가 커지면서 지금의 캐피탈이 됐다고 하더라고. 우리의 경우는 캐피탈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기도 하니 그쪽이 싫어할만 하지. 애초에 캐피탈에 덕을 보면서 안전하게 살아가던 놈들이 나와서 자기들에 반하는 나라를 만든 거니까. 캐피탈은 많은 루믹스톤으로 여러 가지 일을들 하고 있어. 루믹스톤의 경우 하나하나의 힘이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거든. 창조와 파괴 두 개의 힘을 모두 갖고 있다고 봐야 돼. 캐피탈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지 도저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게 뭔지 알아야해. 그게 우리 텔로스의 존재의 이유기도 하고. 어느 한쪽에 힘이 강해지면 나머지 반대쪽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캐피탈을 견제해야해.”
누구냐는 질문보다 많은 것들을 횡설수설 말하는 것이 프라고의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듯 보였다. 프라고도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머릿속에 정리해 나갔다.
푸링에게 텔로스는 하나의 국가가 아닌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추는 텔로스가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만추님. 입국 심사가 끝나고 시간이 생기면 다시 들러도 될까요?”
프라고의 말에 만추는 일어서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 그래. 신입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푸링 녀석이 안 그래도 설명충이니 뭐니 놀려대서 기분이 찝찝한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입을 여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충이라는 말은 진짜 싫어하는데. 한마디 말해줘. 그 녀석한테. 충 말고 다른 것 좀 해달라고.”
“하하하. 예.”
프라고가 그에게 짧은 웃음을 남기고 인사를 했다. 만추도 그를 향해 손을 올리고는 다시 책을 꺼냈다. 이번에는 아주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책이었다.
<이미징> 프라고의 시간 1 - 3
서류상으로 입국 심사가 완료된 인원은 총 세 명으로 추려졌다. 텔로스에 인원이 들어오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입국 지원서를 써서 심사를 받고 입국을 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텔로스 자체에서 좌표를 찍어 입국할 사람을 선정해 데리고 와서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셋 모두 좌표를 구해서 데리고 케이스였기 때문에 해당 공간으로 텔로스 직원들이 공간 이동을 해야 했다.
프라고도 이러한 방법으로 텔로스에 들어왔기 때문에 방법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캐피탈에서 선수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자.”
푸링이 프라고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프라고는 공간이동을 해서 입국을 시키러 가는 처음이었기에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푸링이 있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 않았다.
“캐피탈과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쓸어 버려야 쥐. 그냥 이렇게 퍽”
푸링이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질렀다.
“일단 처음은 누구로 갈까.”
프라고가 소녀의 말에 서류를 넘겨서 첫 장에 있는 자를 보여줬다.
“이름 마리오네. 생긴 게 꼭 황소처럼 생겼구만. 별로 끌리지는 않는데 우리 쪽 전투원이 시급하니까. 어쩔 수 없지. 난 꽃미남이 좋은데. 후우우우우. 일하기 싫다. 게다가 9지구 쪽이네. 9지구. 하필? 프라고. 우리 가지말까?”
“9지구가 왜요?”
“하. 그 쪽 섹터가 공간이 계속 늘어나는 구간이거든. 공간이 계속 생기면 귀찮은 일들이 생긴단 말야.”
푸링의 말에 프라고는 바로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럼 다른 사람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푸링이 비웃으면서 말했다.
“이 짜식이. 남자가 무슨 이렇게 포기가 빨라. 그러면 매력 없어.”
“남자라고 포기가 느려야 한다는 게..”
“아. 여기서 남녀평등 뭐 이런 거 말하지 말고. 참 귀찮은 녀석이야. 그냥 가자. 뭐 별일 있겠어.”
푸링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지하 B2 버튼을 눌렀다. B2층은 차고였다. 그곳에는 각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들이나 다른 탈 것들이 많이 있었다. 차고에 도착하자 바로 반대편에 푸링의 검은 승용차가 둘의 앞으로 이동했다.
“나의 애마. 왔구나 왔어.”
빠른 속도로 달려와 마치 살아있는 듯이 푸링의 앞에 한 바퀴를 돌면서 정차했다. 그 바람에 소녀의 하늘색 원피스가 살랑 거렸다. 소녀가 엄지와 검지를 딸깍하고 튕겨내자 운전석 방향의 차 문이 열렸다.
“야- 타”
소녀의 말에 프라고는 조용히 뒷좌석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지 않자 푸링을 쳐다봤다. 그러자 푸링이 뒤를 돌아보며 뒤 창문으로 말했다.
“내가 너 운전기사냐? 앞에 타 앞에. 하~ 진짜. 예전에는 말야. 너가 입국을 처음 한 거니까 내가 뒷좌석에 앉혔지만, 넌 이제 내 부하직원이잖아. 난 사장이고. 알겠니. 모르겠니.”
“네.”
프라고의 짧고 간결한 대답에 푸링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 넌 무슨 반응이 이렇게 재미없냐.”
“제가요?”
“아니다. 아냐. 이렇게 반응이 없는 게 어떨 때는 더 좋아. 시끄러운 것보다야 뭐.”
푸링이 운전대를 잡자 프라고가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공간이 생기면 무슨 귀찮은 일이 생겨요?”
“하. 대머리가 말 안해주던?”
소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자 소녀의 머리에서 처음 소녀를 본 날 맡았던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흘러내렸다.
“입국심사 때문에 도중에 나왔죠. 루믹스톤이라는 것 에 대해서만 듣고 왔어요.”
“그 루믹스톤 때문에 그래. 이쪽 세계는 계속 해서 공간이 쌓이는 구조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간과 공간들이 만나서 세계가 되는 거지. 아무튼 공간은 계속 늘어가고 서로 따닥따닥 붙어있는 구조에서 공간과 공간의 뒤틀림이 발생한단 말야. 거기서 나온 공간의 부스러기가 루믹스톤이야. 이해가 되냐?”
“어렵네요.”
“하. 뭐 그냥 보석이라고 생각해 보석. 어쨌든 그렇게 루믹스톤이 생기면 그 공간은 아주 불안정해져. 괴물들도 자주 출몰하고 공간의 뒤틀림 때문에 지진이나 진동도 자주 일어나. 아무튼 괴현상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 루믹스톤을 노리는 캐피탈이나 다른 도적 같은 놈들이 있거든. 우리 회사의 채집자들이 보통 9지구에 파견 가있거든? 그쪽 애들이 많이 죽어. 그 놈들이랑 자주 무력으로 충돌해서.”
프라고가 소녀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희 두 명으로는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어. 그리고 나 못 믿어? 그냥 가자면 가는 거지 말이 많아.”
“하지만.”
프라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는 페달을 밟았다. 순간 승용차의 바퀴가 멈추고 앞머리부터 공간의 일그러지고 조금씩 사라지더니 이내 완전히 차고에서 사라져버렸다. 프라고는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는데 주위는 긴 은하수를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별 같은 부스러기 들이 보였다. 루믹스톤이었다. 그것들은 제각각 다른 빛을 뿜으며 발광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을 하는 것이어서 그 빛들은 마치 각각 시냇물의 물살처럼 보였다. 차량의 내부가 심각하게 흔들리다가 다시 번쩍 하고 빛이 나오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 이미 그들이 원하던 곳으로 도착을 할 수 있었다.
푸링이 차에서 먼저 내렸고 뒤따라 프라고도 서류를 들고 내렸다.
“종이 쪼가리는 넣어놔.”
바깥 공기가 축축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것들이 피부에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치 고래의 뱃속 같은 느낌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어두침침한 곳에서 하늘에서는 끈적끈적한 침이 흐르듯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녀가 손가락을 딸각 하더니 빗물은 소녀를 빗겨갔다. 마치 소녀의 주위에 다른 무언가가 베리어처럼 덮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프라고는 홀랑 젖은 몸으로 소녀에게 말했다.
“저는요?”
“귀찮아 그냥 가. 하필 골라도 이런 곳을 골라요.”
푸링이 짜증을 내자 프라고가 말을 하려고 했다.
“그건... 푸링님이 고르..”
“닥쳐. 좌표를 바로 그 녀석 근처로 찍었으니까.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찾아 봐.”
당장 앞의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일상의 저녁과 같은 어두움에 앞은 커다란 모래 언덕들이 즐비했다. 나무나 그런 것들 보다는 모래 언덕과 돌로 만들어진 이질감을 주는 피조물들이 보였다. 지평선 너머 까지 건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프라고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누군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의 머릿속으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 분명했다.
소녀는 발바닥에 축축한 모래도 묻는 것도 싫었는지 바닥 바로 두 뼘 정도 위를 유유히 떠서 다니고 있었다.
“아직이야? 무능력하구만.”
“잠시. 집중 좀 할게요.”
푸링은 그의 말에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축축한 베리어 안에 들어가 있어서 다른 어떤 것들은 느낄 수 없었다. 소리의 경우는 진동으로 인해 들을 수 있었지만 냄새나 촉각 같은 것들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프라고가 무언 가를 발견해야했다.
-먹어. 먹어. 먹어. 더. 더. 더.
프라고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언덕 위쪽에 뭔가 있어요!”
프라고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위에서 최대한 힘을 내서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푸링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언덕의 위쪽을 바라봤다.
검은 무언가의 몸에서 심연의 어두운 것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화산에서 용암을 내뿜기 전에 검은 수증기가 나오듯이 그것은 마치 뭔가 터질 듯 보이는 폭탄 같았다.
-먹어. 먹어. 먹어.
프라고가 언덕의 아래쪽에 도착했을 때 푸링은 무언가 피부 살갗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야!”
언덕의 위쪽에서 어두운 무언가가 마치 촉수처럼 뾰족한 끝을 가지고 프라고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프라고가 멈췄을 때 이미 그것은 그의 몸 바로 앞에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푸링의 손이 그의 배 쪽 바로 앞에서 그 촉수를 막아 세웠다.
빨간 피가 푸링의 손에서 흘러내렸다.
“트라우마? 젠장 할”
-크크크. 먹어. 먹어. 먹어.
검은 그것은 마치 액체인 것처럼 언덕 아래로 흘러내려 오더니 이내 거대한 공룡처럼 굳어서 그들의 앞에 섰다.
프라고의 시간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