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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벽의 낙서
게시물ID : panic_890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19
조회수 : 151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7/05 21:15:10
벽의 낙서

며칠 전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었는데
그때 당연스레 화제가 된 게 우리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던 사건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좀 특이한 곳이라서
3층짜리 건물 중 가장 윗층이 1, 2학년 교실이고,
2층이 3, 4학년 교실, 가장 아래 1층이 5, 6학년 교실이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던 사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랐으니
아마 우리 학교가 좀 특이한 경우인 것 같다.
학교 건물 자체는 콘트리트로 만들었고, 그럭저럭 지은 지 좀 되었는지
복도 벽이 더러워서 어린 내 마음에도 더럽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6학년이 될 때까지 깨닫지 못 한 게 있었는데
1층에 있는 6학년 2반 교실 앞 복도만 벽이 깨끗하게 다시 칠해져 있었다.
저학년 때는 고학년 반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으니까 몰랐던 거지만.

원래 있던 콘크리트 벽과 비슷한 색의 페인트로
6학년 1반 경계점부터 6학년 3반 경계까지 모두 칠해져 있었다.
거기만 더럽지 않아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새로 칠한 그 벽 오른쪽 아래 쯤(3반 부근)에
아주 옅게 연필로 "←여기"라고 써 있는 게 보였다.
"←여기"라고 적힌 부분을 봐도 아무 것도 없는 그냥 벽이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건물의 여기저기에
"왼쪽으로 #걸음 걸을 것" "똑바로 #걸음 걸을 것" "위를 볼 것" "오른쪽을 보라"
뭐 이런 낙서를 써놓고, 그대로 가보는 놀이가 유행했기 때문에
"←여기"도 그 놀이 중 낙서된 거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2주 정도 지났던가, 친구 Y가 교실 밖에서 날 불렀다.
가보니 복도 벽의 "←여기"의 화살표 끝에 파란 얼룩이 있었다.
5cm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얼룩이었지만,
딱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있어서 나와 Y랑 둘이서
"우와 신기하다" 뭐 그런 소릴 했다.

다음 날, 그 얼룩이 갑자기 두 배 정도로 커져 있었고,
"←여기"라는 글자가 쓰인 곳까지 퍼져 있어서 이제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얼룩 형태가 사람 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 얼룩을 보기 시작했고,
형태가 바뀌기도 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온 반에 "저주의 얼룩"이란 소문이 돌았다.

그 이야기가 선생님 귀에도 들어갔는지,
그 날 학급 회의 시간에서 "별 것 아닌 그냥 얼룩이니 신경 쓰지 말렴"이라고 하셨고
반 강제적으로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 주가 끝나 다음 월요일에 교실에 가봤더니
세상에 복도 벽의 얼룩이 있던 부분이 완전 다 떨어져서
그 부분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금이 갔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상태였다.

내가 교실에 가보니 이미 복도에서 봤는지 소란스러웠고,
조례 시간에 선생님이 올 때까지 우리 반이랑 옆 반 애들이 난리 법석을 떨어서
"분명 이 벽 안에 뭔가가 있어" "시체가 묻혀 있어"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고
반에서 나서기 좋아하는 K가 커터 칼로 그 금 사이를 긁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혼구멍을 내셨다.

그날 점심 시간에 K가 질리지도 않는지 "아침에 하던 거 계속 해보자"고 했다.
벽을 계속 긁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혼나는 게 무서워서 싫다고 했지만
K가 "여기 한 번 봐봐"라고 해서 봤더니
긁혀서 떨어진 벽에서 색이 다른 부분이 보였다.

잿빛 벽에 검고 굵은 선으로 횡단보도 같은 모양이 그려진 게
떨어진 부분에서 보였다.
"이거 나머지도 보고 싶지?"
K가 말했다.

K는 커터 칼을 들고 허물어진 벽 부분을 긁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페인트칠이 벗겨져갔다.
그리고 벽에 써진 "조(組)"라는 글자나 나왔다.
횡단보도처럼 보인 건 오른쪽에 있는 且 때문이었다.

뭔가가 더 있다는 건 분명했다.
반 남자애들 절반 가량이 모여서 벽 페인트를 벗기기 시작했다.
콤퍼스 바늘로 찌르는 애도 있고, 자 모서리로 찍는 애도 있고,
조각칼까지 꺼내들고 온 애도 있었다.
참고로 나는 그냥 옆에서 보기만 했다.

대체적으로 이럴 땐 벽 뒤에 시체가 숨겨져 있니, 글자가 빼곡히 써져 있니,
부적이 붙어 있니 뭐 그런 게 흔한 패턴인데
나도 당시에 들은 무서운 이야기 중 몇 개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이 벽을 벗기면 있는 것도 그런 걸까?
그렇게 기대함과 동시에 선생님한테 들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심장까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점심 시간이 반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벽의 페인트는 다 허물어졌다.
안에서 나온 건 귀신도 아니고, 아이가 쓴 그림이었다.
"헤이세이 2년 6학년 2반"이라고 써져 있었다.
아마 당시 졸업한 애들이 그린 그림이겠지.

서른 명 정도되는 남학생, 여학생을 그린 그림이
단체 사진처럼 나란히 서서 그려져 있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 얼굴 하나 하나에 빨간 페인트로 "×" 표시가 되어 있던 점이다.
특히 제일 윗단에 있는 세 번째 아이는 ×가 완전히 덮어져 있고,
아래 써 있을 이름 부분은 조각칼 같은 걸로 긁어내어져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께 혼날 거라고 각오했지만
5교시에 선생님이 오자마자 갑자기
"오늘 5교시는 체육관에서 자습이다. 가방에 교과서하고 다 넣고
5교시가 끝나면 그대로 집에 돌아가도록 해.
청소도 오늘은 됐으니까 교실에 오지 말고 그대로 집에 가렴"
라고 할 뿐, 전혀 혼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1층 교실은 출입 금지였다.
우리는 급히 지은 가건물에서 남은 6학년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1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려서 그 일이 화제가 된 것이다.

그때 담임 선생님도 와 계셔서
"선생님 그거 기억 나세요? 그거 대체 뭐에요?"하고 물었지만
"그런 게 있었니? 기억 안 나는데"라며 얼버무리셨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일을 기억한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53484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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