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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까마귀
게시물ID : panic_890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30
조회수 : 2072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7/05 21:16:36
까마귀

내가 대학 3학년일 때 일이다.
마침 시험 전이었으니 아마 7월 쯤이었을 거다.
당시에 나는 건축 20년 정도 된 원룸 맨션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방은 제일 꼭대기의 4층 제일 안쪽이었다.

그날 나는 친구 집에서 시험 공부를 위해 서로 노트를 교환해서 보고 있었다.
공부가 끝난 후 편의점에 들렀다 오는 바람에 새벽 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
평소대로 계단으로 올라가려는데 계단 근처에 고양이 두 마리가 싸우는 것 같았다.

캬약! 하며 위협하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가갔더니 잠깐 내 쪽을 보더니 어딘가로 도망쳤다.

고양이 싸움 구경했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좀 전까지 고양이들이 있던 곳에 뭔가 검은 덩어리 같은 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상처 입은 까마귀였다.
한쪽 날개 뼈가 부러진데다 다리도 다쳐서 꼼짝도 못하며 파닥이고 있었다.
아까 그 고양이들이 이 까마귀를 사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자리에서 벗어나면 다시 고양이들이 와서 까마귀를 죽이겠지..
괜시리 까마귀가 불쌍해서 잠시 방에 피신시켜 주기로 했다.
동물 병원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시간도 시간이니 갈 수 없었다.

까마귀가 푸드덕 거려서 더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방으로 옮기고
베란다 쪽에 놔주었다.
여기는 4층이니까 고양이도 못 오겠지.
안심하고 내일 시험을 위해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베란다를 내다봤더니
까마귀가 조금 건강을 되찾았는지 발을 질질 끌며 움직이고 다녔다.
나는 어제 편의점에서 샀던 남은 반찬과 물을 줬지만 먹지 않았다.

다들 알겠지만 까마귀는 경계심이 매우 많은 동물이라
사람이 버린 건 먹으면서, 사람이 준 건 안 먹는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서 일단 시험을 치려고 학교로 갔다.

날밤까기해서 공부한 것 치고는 시험은 만족스러웠다.
친구와 내일 시험을 대비해서 오늘도 같이 공부하자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와서 베란다를 봤더니 까마귀가 죽어있었다..

베란다에서 탈출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 같았다.
부러진 날개가 엉망으로 꺾여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여기서 까마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시체를 어딘가에 매장하고, 기도를 해주고, 상심하는 순서를 따라야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뭔가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베란다 너머에 있는 풍경을 보았다.
그쪽에는 맨션 베란다와 평행하게 설치된 전선이 있었다.
거리는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베란다에서 밖을 보면 일단 그것이 먼저 보인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봐서 정면에 있는 전선과 전봇대 사이에 있는 구간이...
새카맸다.

뭐지 생각했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까마귀 무리였다.
무서울 정도로 많은 까마귀가 전선의 그 구간에만 모여 있었다.

게다가 내가 그쪽을 바라본 순간, 까마귀들이 일제히 울어제꼈다.
까악 까악하고 시끄러운 그 울음 소리가 그야말로 소음 공해였다!
나는 서둘러 베란다 문을 닫았다.
겁이 났지만 베란다에는 가장 윗층의 특권이랄까,
새 쫓는 용도의 그물망이 쳐져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도 그 울음 소리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바로 집에서 도망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망칠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이야.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일단 내일 칠 시험 과목 노트를 복사하게 해달라고 하려고
휴대 전화로 친구를 편의점까지 나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멀리 나오게 하는 건 미안하니까, 친구 집 근처의 편의점에 나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보다 친구가 먼저 편의점 쪽에 와 있었다.

편의점 유리창 너머 서서 책을 읽는 친구가 보여서 자전거를 끝 쪽에 댔다.
그때 뒷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가 철봉으로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식을 잃을 뻔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냈다.
아얏! 하며 머리에 손을 대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내 발 밑에는 내용물이 가득찬 캔이 찌그러져 굴러다녔다.
아무래도 이 캔이 머리에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왔다는 걸 봤는지 친구가 편의점에서 나오더니 깜짝 놀랐다.
친구는 반신반의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범인은 분명 까마귀라고.
편의점 지붕에 있던 두 마리 까마귀 중 한 마리가, 위에서 떨어뜨린 게 틀림 없다.

그리고 친구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상처는 크지 않았고, 두개골 함몰 같은 것도 없어서 안심이 되었다.
친구가 집까지 태워다줄 테니까 오늘 공부하러 오지 말고 얌전히 쉬라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가 이것저것 도와줬으니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게다가 노트도 복사해줬고.

우리 맨션 앞에 도착해서 친구 차가 가는 걸 본 후, 그 전선을 바라봤다.
아직도 두 세 마리 남아 있었지만 무리는 해산한 것 같았다.
나는 안심하고 입구로 돌아갔다.

내가 맨션에 들어가려는 순간, 위에서 흰 무언가가 떨어졌다.
내 코 끝을 스치며 땅에 떨어졌다.
쾅 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까악 까악하는 울음 소리가...

헉하고 올려다보니 세 마리 까마귀가 내 머리 위에서 빙빙 날아다니고 있었다.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떨어진 걸 보니 흰 비닐 봉투였다.

봉투가 찢어진 바람에 안에 가득찬 돌멩이를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만약에 머리에 맞았더라면...
날 죽이려는 거구나...

무서운 나머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그 까마귀 시체를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인근 공원에서 손으로 구멍을 파서, 까마귀를 묻고 간이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합장하며 "미안하다 미안해"하고 소리를 내며 말했다.
주변에서 감시할 그 까마귀들에게 들리도록..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후로는 까마귀들이 공격하지는 않는다.
글로 쓰고 보니 별로 안 무서운 것 같은데, 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49529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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