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장편] <이미징> 선구의 시간 cp.1
게시물ID : readers_256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컨빌리
추천 : 0
조회수 : 3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06 15:30:06
<이미징> 선구의 시간 1 - 1
 

어느 순간 사회에서 잠이란 사치의 상징이 되었다. 이우주 박사가 개발한 디멜론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었다. 그는 본래 물리학, 화학, 생물학에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수많은 연구들과 이론들을 발표하며 국내에서 차츰차츰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각인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뇌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에 디멜론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는 뇌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돕는 멜라토닌과 각성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세로토닌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던 중에 인간이 하루를 활동하면서 몸에 쌓인 피로물질인 유산을 분해시킬 수 있는 단백질을 발견 했고 그 단백질은 세포내에 있는 어느 특정 알파 단백질의 형질변환을 시켜 만들 수 있었다. 단백질이 작용을 하게 되면 몸에서 멜라토닌이 분비가 되는 것이 줄어들고 유산을 분해시켜 에너지원으로 다시 사용하게 됨으로써 잠을 자지 않고도 잠을 잔 것과 마찬가지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실용적으로도 아주 훌륭했다. 잠을 자고 싶을 때 한 알을 복용하면 10분도 되지 않아서 효과가 일어났고 효과는 약 72시간 즉 만 3일 동안 유지되었다.
1,2 차 임상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처음 사용이 된 곳은 군대였다. 일반 군대는 아니었고 국가 간 분쟁지역으로 파병된 군인들이 복용을 했고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부작용으로써 처음 걱정 되었던 우울증 부분에서 야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여러 국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약을 사들였다. 그 덕에 이우주 박사는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국가에서 약물을 관리하고 군인들에게만 보급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크게 사회적으로 변할 것은 없었지만 국가의 만류에도 박사는 대중들에게 약을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돈을 원했으면 100달러 이상으로 값어치를 지정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약은 5달러 이하, 한국에서는 더욱 싸게 3000원에 팔았다.
사람들의 잠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처음에는 소식을 접한 상류층들이 자기들의 여흥을 위해 마치 마약처럼 복용하게 됐고 잠이 없어지고 밤이 없어지니 두 배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모두가 약을 복용해서 놀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 자신의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었지만 아니었다. 그 남은 시간에도 일을 할 사람들이 생겼고 그만큼 노동력의 값이 싸지게 되었다. 일 할 사람이 많아지니 그만큼 노동력의 값어치는 떨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정부는 전혀 예측을 하지 못했다. 결국 정부에서는 법으로 노동시간을 정해주고 임금에 대해서도 하한치를 지정해 놓고 사회에서 속속들이 나오는 문제들을 바로잡는 일에 거의 모든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경쟁적이었다. 디멜론의 출현으로 디멜론을 판매하게 된 국가는 그만큼 경쟁력이 상승했고, 그것들을 본 여러 다른 경쟁국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떻게든 디멜론의 자체적인 생산권을 얻어 판매를 하기 위해 안달이 났다. 결국 모든 국가에서 디멜론이 만들어지고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쉽게 그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국민들이 자체적으로 잠을 포기하게 된 것도 이 경쟁 부분에서 낙오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생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먹었고, 누군가에게는 더 놀기 위해서, 누군가에게는 운동을 더 하기 위해서, 게임을 더 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섹스를 더 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돈을 더 벌기 위해 사람들은 잠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
 

작은 선술집에 남자둘이 사케를 마시고 있었다. 선술집의 주인이 한명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그의 친구였다. 주인이 푸짐하게 나온 배를 비비며 친구의 빈 술잔에 사케를 따라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다 접고 싶다는 거야?”
주인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 안주인 작은 와사비 과자는 전혀 줄지 않고 오직 하얀 도자기 병에 사케만 그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선구야. 누구나 슬럼프에 빠진다.”
자신이 없어. 씨/발.”
선구는 잔에 담긴 사케를 홀짝 마셔버렸다.
야 그럼 휴재를 하던지. 그런 식으로 가야지 갑자기 이런 식으로 잠수 타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런 건 진짜 병/신새/끼나 하는 거다.”
병/신? 씨/바. 술이나 따라봐
선구의 말에 주인은 일어나서 물을 가져왔다.
그만마시고, 냉수 먹고 속 차려라.”
.”
선구는 그가 따라준 냉수를 목덜미로 흘리면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는 웹툰 만화가였다. 요일마다 1위를 찍거나 그런 만화는 아니었지만 나름 마니아층을 보유한 어느 정도 인기도 있는 만화가였다. 웹툰이라는 컨텐츠는 정말 시대가 바뀌어도 인기는 식지 않았다. 다만 잠이 없어진 세상에서 요일은 말 그대로 1일이 지났음을 암시하는 것일 뿐이었다. 웹툰 작가들도 요일에 맞춰 연재를 하던 것이 바뀌어서 1주일에 2~3번을 연재하는 형식으로 변했고 선구는 그런 상황에 맞지 않는 타입이었다.
어떻게 일주일에 그렇게 많이 그리냐고. 사람이 생각은 하고 그려야 할 것 아니냐. 그림은 문제가 안 돼. 내 만화는 스토리 중심이라고. 스토리 전개가 안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냐.”
연재 횟수를 줄여봐 그러면.”
가게 주인인 중식은 선구의 오랜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15년을 만났으니 거의 불알친구나 마찬가지였다. 선구의 이런 푸념이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선구가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푸념을 받아줄 수 있는 건 거의 중식이 뿐이었다. 그걸 알고 있으니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답을 찾고자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에 맞게 그에게 대답을 해주고 있을 뿐.
잘릴 걸. 내가 무슨 1위하는 작가도 아니고. 내가 잠자고 일어나니 여고생이 되었다.’ 같은 1위 만화를 그리는 작가였으면 그랬겠지. 사이트 먹여살려주는데. 아무튼 휴재를 하던. 튀던 해야겠어. 형처럼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거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말야.”
또 형 이야기냐.”
무슨 또 야.”
시작은 달랐지만 매번 끝은 그의 형 이야기였다.
술만 취하면 저 지랄이구만.”
대단한 사람이지. 형은
선술집에 손님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형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거의 2시간은 계속 떠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테이블 위에 있던 형광등이 깜빡 거렸다.
대단하긴 하다만. 누가 모르냐 대단한 사람인 거를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선구는 그렇게 외치면서 딸꾹질을 해댔다.
그래그래.”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었다고.”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자꾸 깜빡깜빡 거리는 게 갈아 버릴 때가 됐나.”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다시 하는 순간 중식은 아 이 술자리가 끝이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중식의 술집은 24시간 매일매일 열려있는 가게였다. 세상은 이제 24시간을 주기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원래 쓰고 있던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굳이 바꾸어 쓰지는 않았다. 잠이 사라지니 오히려 밤에 장사가 더 잘됐다. 그걸 선구도 알고 있었기에 해가 뜨는 아침 새벽에 나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었다고...”
어휴.. 컨셉이냐? 술 취한 척 하는 게.”
에이 지/랄 말고 한 병 더 가져와!”
너나 지/랄 말고 집으로 가세요. 나도 장사해야지. 안 그래도 마누라가 너 오면 받아주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마누라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온다. 이제 곧 올 거야. 너 있는 거 보면 진짜 끽이야 끽
중식이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목을 가리키며 좌우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씨/발놈. 혼자 사는 사람 서럽다. 그러지 마라.”
니 나이 이제 서른 중반이다. 홀아비 코스프레는 그만해.”
에이 씨/발. 좆/같은 세상 씨/발!”
너가 씨/발이다.”
씨/발!!”
손님이 있었으면 물론 이렇게 떠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술이 완전히 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형광등 하나가 결국에는 꺼져버렸다.
에이. . 돈 줄테니까 형광등이나 사와라. 예비분 다 떨어졌어.”
손님한테 이러기냐.”
선구가 정색하자 중식이 말했다.
손님 술값 다해서 12만원 나오셨습니다.”
중식이 포스 기기로 걸어가자 선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 몇 개 사올까요?”
이새끼. 씨/발. 컨셉 맞네.”
 

 

 

 

 

<이미징> 선구의 시간 1 - 2
 

우주는 선구에게 어린 시절부터 우상의 존재였다. 그는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은 부류였다. 선구는 그의 옆에서 그에게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다만 선구는 그와는 달리 예술적인 면에서 재능이 뛰어났고, 우주는 그에 비해 학구적인 스타일이었다. 뭐든지 그만의 사고로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혹은 현상에 대해 생각했다. 둘은 일찍이 부모가 죽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의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그 둘이 알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우주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 쪽을 공부했던 선구가 돈은 더 필요로 했지만 선구의 경우에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당연하게 받으면서 살았던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을 그는 전혀 느끼면서 자라지 못했기에 다른 애들과는 뭔가 결핍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고 크게 불행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할아버지가 그 둘에게 잘해주었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듬직한 형이 있었으니까.
우주는 선구보다 세 살이 많았기 때문에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못했다. 다만 우주는 학교가 끝나면 항상 선구를 데리러 와서 집으로 같이 하교를 했다.
선구는 우주가 고등학교 3학년을 이제 졸업하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확정 되었을 때가 문득 생각이 났다.
!”
우주가 남색 교복을 입고 교문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선구는 등에 맨 가방을 달랑 거리면서 그에게 달려갔다.
. 끝났구나.”
우주는 학교에서 천재라고 인정을 받았고, 학교 측에서 부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중학교 시간에 맞춰 학교를 일찍 하교하는 것에 대해 학업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물론 선구는 그 사실을 나중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알았지만 그 시절에는 알 수 없었다.
형 대학교 합격했다며!”
그렇지. .”
오히려 선구가 자랑스러워하면서 어깨가 으쓱했다. 우주는 좋아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 별론데 반응이.”
별로긴 좋지.”
할아버지도 엄청 좋아하시더라. 가문의 영광이라고.”
우주가 방방 뛰는 선구의 어깨를 토닥였다.
형이 이제는 너랑 같이 오래 못 있어도 괜찮아?”
에이. 무슨 내가 그 정도로 보여. 형이나 잘해 학교 가서 털리지 말고.”
선구가 우주의 배에 주먹을 갖다 대며 말했다. 둘은 나이가 세 살이 차이가 났지만 덩치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나중에는 선구가 그보다 한 10센티는 더 크게 자랐고 중학교 때는 거의 비슷했다.
짜식. 가자. 밥 먹으러. 할아버지가 돈 주셨어. 짜장면 사먹으라고.”
굿. 짜장면은 언제나 옳다.”
우주는 선구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그렇게 좋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물론 선구의 기억에는 그가 그렇게 표정이 어둡다는 것이 있지는 않았다.
우주는 대학에 들어갔어도 자주 선구와 연락을 했다.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나 하루 종일 있었던 일 선구는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과학이야기도 자주 했다. 그 시절 선구는 과학이야기 보다는 여자이야기가 더 흥미가 있었지만 우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공대라서 그런 건가. 형이면 엄청 잘생긴 얼굴인데. 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돌이켜 보면 여자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왜 죽는지 아느냐. 왜 늙는지 아느냐. 이 세상의 차원은 어떻게 돼있는지 아느냐. 10차원에 대해. 눈에 안 보이는 물질 등등 머리 아픈 이야기뿐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그에게 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웹툰 작가가 돼서 그런 이야기를 쓰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재미는 없었지만 멋있었다. 자기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우주는 이미 갔다 온 것처럼 느껴졌다.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한 건 할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선구가 대학에 진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주위 사람들은 손자들을 대학에 보냈으니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어서 돌아가신 거라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우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며칠을 할아버지의 관 앞에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선구에게 말했다.
 

나 유학 갈 거야. 선구야.”
유학?”
그래. 학교에서 좋은 기회를 줬거든.”
잘됐네. .”
장례식장이라 평소의 밝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선구는 형이 자랑스러웠다.
멀리 가는 데 괜찮지?”
에이 걱정 마. 친구들도 있고
그의 말대로 우주가 떠난 뒤 선구는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서 정말 재밌게 대학생활을 보냈다. 형이 그립기는 했지만 그보다 노는 것이 더 재밌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후는 형의 모습을 거의 뉴스에서 많이 봤다. 한국 최초의 노벨 화학상이니, 세상을 바꾼 과학자라느니 그에게 형은 점점 멀어지는 존재였지만 역시나 자랑스러웠다. 마라톤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참 앞에 형이 달려간다고 해도 언젠간 골에서 만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비록 그 후 졸업해서 웹툰 공모전을 나가고 좋은 성적으로 입상해 연재를 시작하게 되어 웹툰 작가가 되었지만 형에게 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형이 만드는 것과 자신이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까.
 

***
 

형광등을 사가는 동안 예전 생각이 들었다. 선구는 5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중식이 시킨 형광등을 사서 술집에 돌아왔다,
아니. 벌써 다 치운 거야?”
중식은 그가 떠나자마자 이때다 싶어 술상을 모두 치워버렸다. 중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야 그래도 니가 손님인데 대가리 위에서 형광등을 갈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형광등을 안갈면 어두워서 눈 나빠진다고. 형이 임마 너 생각해서 그런 거야.”
아 그랬구나. 고맙다.”
친구밖에 없지?”
.. 그렇지. 깨고 싶다.”
뭐를? ?”
아니. 니 대갈통
선구가 빈병을 찾는 시늉을 했지만 이미 다 치워버린 후였다. 하는 수없이 형광등을 들어 광선검 마냥 휘둘렀지만 이내 재미가 없어져서 중식에게 넘겨줬다.
사왔으면 니가 좀 해주지. 정이 없구만.”
중식이 받은 형광등을 들고 의자에 올라가며 말했다.
새끼. 정은 니가 없지. 마누라 때문에 부랄친구 내쫓는 새끼가 정 타령이야.”
마누님이다. 너도 알게 될거다. 그 분을 건드리면 아주 주옥 된다는 거슬.. 허허.”
거슬은 씨/발. 것을 이겠지. 안 해 결혼. 간다.”
선구가 한손을 들고 터벅터벅 문 쪽으로 걸어가자 중식은 그를 잡지 않았다.
. 그래 잘 가라. 연재 문제는 잘 해결하고 임마.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먹고는 살아야지.”
선구가 들고 있던 한손을 중지만 남기고 다 접었을 때 중식은 피식 웃으면서 형광등을 갈아버렸다. 선구는 먹고 살 걱정은 전혀 없었다. 형이 남긴 재산을 모두 자기가 받았기 때문이다. 우주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실종 신고를 했지만 그가 실종되기 2년 전부터 이유 없는 실종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바로 사망신고 까지 할 수 밖에 없었다. 재산 상속은 당연히 하나 남은 혈육인 선구가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돈은 거의 어마어마했다. 거의 10조에 육박하는 돈이었기에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억대도 아닌 조대의 돈을 받았지만 선구는 손도 대지 않았다. 형이 죽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멜론이 상용화가 되고나서 생긴 사건 중에 가장 큰 사건이 바로 이 실종사건 이었다. 지금은 거의 인구의 10% 이상이 실종을 당했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갑자기 실종이 되는 것이라 여러 이유를 찾고는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밝혀낸 사실은 전혀 없었다. 지구상의 인구가 이제 거의 100억 명이었는데 그중에 10억 명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실종신고가 들어왔지만 당사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는 사회에 큰 문제로 자리 잡혀 사망처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실종처리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여러 세금과 유산상속, 혹은 보험처리에 대한 문제로 인해 실종된 지 3년이 지나면 무조건 사망처리가 되는 법안이 통과 되었다. 물론 찬반 의견이 서로 대립했지만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강했다. 도덕적인 문제보다는 금전적인 문제가 더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비단 실종의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실종을 가장해서 폐륜살인을 저지르거나 보복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사회는 점점 혼란해졌다. 실종되어버린 사람이 일반 시민들만이 아니고 경찰, 소방대원, 의사 등 많은 전문직인 것 때문에 치안이 약해진 것도 있었다. 결국에 정부는 살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cctv를 더 설치하는 등의 정책을 내서 어떻게든 혼란 해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이론들을 제기 했지만 학설로 인정받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만약에 당사자가 실종이 아닌 사망을 했다면 시체를 검안해서 원인이라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상황은 시체는 없고 감쪽같이 사람이 사라지니 원인을 찾기가 정말 하늘에 별따기 보다 힘들었다. 오히려 기독교 신자들이 말하는 사람이 감히 신이 만들어 놓은 규율을 파괴해버려서 그렇다라는 것이 국민들이 믿는 정설처럼 되어버린 실정이었다.
실종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제였다. 아직도 어디에서는 실종이 되고 있었다. 우주의 경우는 그가 실종 됬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왜냐면 그가 실종되기 며칠 전에 자신이 사람들이 왜 사라지는 것이냐에 대한 것을 알아냈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그의 측근 혹은 연구실에 있는 거의 모든 동료들의 진술이었다. 때문에 그가 사라진 것에 대한 수많은 루머들이 나타났다. 사실은 밝힌 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 자신의 말이 공론화가 되니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사라지고 허풍쟁이가 될까 무서워서 잠적했다는 설도 있었고, 아니면 신의 소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기독교 광신도가 그를 살해했다는 설. 혹은 그가 다시한번 과학계의 큰 업적을 남기는 것을 시기한 동료 과학자 중 한명이 죽인 것이 아니냐는 설. 많은 루머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의 실종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바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이 거의 그가 사라진지 1년이 다 되었을 때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믿는 형의 실종을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왜 사라지는지 알아냈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형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왜 형은 사라진 거지? 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이번 웹툰이었다.
형이 사라진지 5년 만에 그린 웹툰. 그렇기에 어느 때처럼 빠르게 쓸 수 없었다. 내가 우주가 되어야 한다. 우주의 생각. 형의 생각을 알아 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니 오히려 스토리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이미징> 선구의 시간 1 - 3
 

8평 남짓한 원룸 방. 서른넷의 나이에 아직 홀아비인 사람의 전형적인 어지럽힘이었다. 깔끔한 사람은 그렇지 않겠지만 선구는 깔끔한 타입은 아니었다. 벽지는 여기저기 다른 벽지로 덧대어 있었고 가장 구석에 있는 꼭짓점 부분은 검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8평이 그렇게 좁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원룸텔의 공유면적이 꽤나 넓은 편이라 거품평수가 조금 있었다. 방에는 필요는 없지만 1인용이라고 하기엔 조금 큰 침대와 책상,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와 전자레인지뿐이었다. 책상에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와 컴퓨터가 있었다. 컴퓨터 옆에는 핸드폰이 있었는데 선구는 일부러 그것을 키지 않았다. 연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오늘이 마감 날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분명 전화가 쏟아질 것이다.
컴퓨터 벽에 붙어있는 마감은 생명. 지키자 내 생명이라는 문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상시에 마감을 일찍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담당자가 연락을 하고 찾아오고 닦달을 하곤 했다.
잠이 없어진 사회에는 밤과 낮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는 인공 태양까지 개발이 돼서 밤에도 밝은 낮처럼 환한 세상이 되었고 자는 사람이 없으니까 예전처럼 밤이니까 집에 찾아가면 안 된다는 그런 에티켓도 사라진 상태였다.
형 진짜 나 좀 살자.
그의 담당자가 그에게 항상 하는 말이었다. 그때는 마감일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어도 결국에는 마감을 했지만 지금은 아예 그리지도 않았으니 걱정이 되긴 됐다. 오히려 미안해서 연락을 안 한 게 정작 마감일이 되자 더 미안해졌다.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또 생각하기 귀찮아졌다. 취기가 올라오는 것도 있었고 아예 포기한 상태가 되어버리니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진 것이다.
핸드폰은 킬 생각이 없었다. 분명 부재중전화가 와있겠지. 반쯤 포기한 상태니 미안한 감정과 걱정되는 감정도 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졌다. 선구는 작게 구석에 박혀 있는 창문 쪽으로 향했다. 한쪽으로 모여 있는 커튼을 당겨 창문을 막으니 방안이 깜깜해졌다. 깜깜해진 방안에서 그는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숨을 내쉬다 들이마시니 숨에서 술 냄새가 느껴졌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천장이 보일 때 즈음에 눈을 감아버렸다.
평소에는 컴퓨터 본체소리가 우웅 우웅 하면서 들렸는데 이제는 켜져 있는 건 작은 미니 냉장고뿐이었다. 조용한 방안이라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졸음이 밀려왔다. 숨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까마득한 어둠속으로 자신의 숨이 빨려 들아 가는 것 같았다. 심장소리도 숨소리를 따라 어둠속으로 스며들어갈 때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지고 반대로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
 

사람이 없는 텅 빈 놀이터에 한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다. 8살 남짓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는 조용히 앞을 바라보며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그네에 몸을 맡겼다. 푸른 저녁노을이 아이의 눈앞에서 천천히 사라져가고 선선한 바람이 소년의 얇은 머리칼을 스쳐지나 갔다.
반대쪽의 울타리에서 다른 좀 더 나이가 많은 아이가 지나가는 게 보이자 아이는 그네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달려갔다.
 

!”
반대쪽의 아이는 그 소리에 아이에게 다가갔다.
선구야.”
!”
선구는 우주를 눈앞에 두고 기뻐서 그를 끌어안았다.
많이 기다렸지. 집에 들어가자.”
어디 있었어. 한참 기다렸잖아.”
선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우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선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야.”
무슨 소리야.”
선구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우주의 손을 잡았다.
네가 알고 있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야. 선구야. 나는 걱정 하지 마. 알았지?”
선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머금고 있던 눈물을 볼에 또르르 흘려보냈다.
너의 삶에 충실해. 답을 찾고 싶다면.”
무슨 답?”
우주는 선구의 손에 손가락으로 303이라고 써주었다. 그리곤 조용히 그를 보며 웃었다.
이게 뭐야? .”
!
푸른 노을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늘은 검게 변했다. 선선했던 바람은 매섭게 놀이터의 모래들을 날리며 강하게 불고 있었다. 선구의 머리칼이 이리저리 엉망으로 바람에 날리고 눈에는 모래알들이 들어가 더 이상 뜨고 있을 수 없었다.
!
-! 거기 있는 거 알아!
띵 동-
모래바람이 결국에는 회오리로 변하고 선구의 손을 잡고 있던 우주를 집어 삼켰다. 선구도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갔으나 회오리바람은 예외 없이 선구의 몸뚱아리도 집어 삼켰다.
-내가 그냥 열어버린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느끼기 직전에 선구는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띠디디딕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밖에서 빛이 들어오자 방 안이 환하게 밝혀졌다. 문 앞에는 화가 나있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그의 담당자인 필승이었다. 필승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 형 진짜.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인지 선구는 멍하니 침대에서 앉아있었다.
. 뭐야 울어?”
선구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자 필승은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형광등을 키고 침대 쪽으로 가자 선구가 자세히 보였다. 눈이 퉁퉁하게 부어있고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필승은 얼른 방 안의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었다.
 

형 뭐야. 무슨 일이야?”
미안하다. 필승아.”
그의 첫마디는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이제야 상황이 파악이 된 듯 선구는 더 이상 멍하니 있지 않고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니. 형 얼마나 그렸는데. 내가 편집장님한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랬어.”
미안.”
왜 그래. 반도 안 그렸어? 스토리가 생각이 안 나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했잖아. 전화도 꺼놓고 이게 뭐야
선구는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하나도 안 그렸어.”
?”
필승은 순간 잘못 들었나하며 다시 물었다.
하나도 안 그렸다고.”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몇 시간 늦은 적은 있었지만 선구가 이렇게 아예 그리지 않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래. . . 잤어?”
잠을 자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느낄 수 없었지만 울었다고 하기에는 그의 눈이 너무 부어있었다. 선구는 말이 없었다. 거의 암묵적인 동의였다. 연재를 하지도 않고 잠까지 잤다는 사실에 필승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담당자 매뉴얼 중 하나가 작가와 감정적인 마찰을 갖지 말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를 잡고 막 쏘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울증이야?”
아니야. 그런거. 그냥 쉬고 싶어.”
선구의 말을 듣고 필숭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말을 해주지...”
미안해. 필승아.”
잠시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잠시 동안의 침묵은 필승이 끊었다. 그가 선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편집장님한테는 아프다고 전해줄게. 얼마나 쉴 생각이야.”
모르겠어. 자신이 없어.”
평상시의 발랄한 선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뭔가 그를 압박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물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필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 달. 세 달로 하자. 하아. 이번 작품은 잘 되고 있었는데. 조회 수도 계속 늘고 있고 사람들 반응도 좋았다고. 형 이대로 끝내지 말자. ?”
그의 말에 선구는 아무 말도 없다가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필승아.”
진짜 괜찮은 거지?”
. 괜찮아.”
선구의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가라앉아서 나아지지 않았다.
 

선구의 시간 1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