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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 14] 그와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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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지강이
추천 : 1
조회수 : 2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06 18: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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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한줄 소개 내용 : 마치 언젠가는 연락 못할 인연인 것처럼.

***

“그랬군요……. 가 그런 말도 했었습니까?”

“아마 그 여자도 들었겠지. 둘이서 항상 붙어 다녔으니까.”

딸깍이며 돌아가는 시계, 초침의 소리로 둘러싸인 방 안에는 구슬프게 메아리 쳤다.

“시간이 벌써……….”

내가 말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매정하게 방을 나섰다. 앉은 탁자 위에 놓인 펜과 수첩을 다시 가방으로 챙겨놓고 일어서는 찰나에 뒤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그 여자 엄마한테 한번 가보던지……. 연락이 되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는 해왔을 거 아니야.”

“그러죠.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백미러로 보이는 집이 점점 멀어져간다. 오래된 차에서 흘리는 엔진의 신음은 유달리 조용하게 새어나온다.

나침반이 갈피를 못 잡고 제자리를 맴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그가 원하는 방향일까.

*

지영의 집으로 달려온 것은 며칠만의 일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나와 그녀가 연락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횟수가 잦지는 않았지만, 지영은 계절이 바뀌는 때마다 연락을 해왔다. 그녀의 연락은 변화의 신호가 되기도 하였다.

갑작스레 연락이 오고는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나이가 벌서 그렇게 됐어. 라며 너스레 떨면서 멀어진 거리를 코앞으로까지 당기는 대화술을 펼치며 잊을 때쯤이면 그녀의 연락은 그렇게 찾아오기도 했다.

요새 그 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이르자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오다가 뚝 끊겼는데 그런 상황에 괘념치 않았다.

마치 언젠가는 연락 못할 인연인 것처럼.

최근에 그녀는 전화가 아닌 메시지로 연락을 해왔는데 발랄함은 사라지고 진지한 투로 이어지고 맺어져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사람으로 착각했다.

내용은 그대로 적진 않겠지만, 무거워진 그리고 진지해진 그녀의 어투가 나는 나이를 먹고서 하나둘 드러나는 변화의 첫 단계라고 생각했기에 가볍게 넘기고는 나중에 답장할 예정이었다가 까먹고 말았던 것이다.

까먹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24

찾아간 지영의 집은 사람의 부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내가 그새 커진 것일까. 아니면 집이 작아진 것일까. 크다고 느꼈던 집은 남아있는 한 사람에게 맞게 작아져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경쾌한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잠깐의 정적 후에 그녀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렀다. 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강석입니다.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도 안의 상황을 그릴 수 있는 상황이 생경하기만 하다.

문 틈새가 벌어지고 안에서 예전에 맡았던 냄새가 풍겼다.

어, 강석이니? 안 그래도 전화하려 했는데.

아닙니다. 죄송해요. 제가 진즉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녀의 모습은 다행스럽게도 초췌하지 않았다.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풍모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집 안에는 방문했을 때 보이지 않던 종교색이 풍기는 물건들이 즐비했다. 탁자 위며 벽에 걸린 액자며 가까이서 보이는 그녀의 팔목에 둘러진 팔찌에도 그것들이 둘러져 있었다.

무언가에 기댈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은 상상 이상의 힘을 받는 것일까.

“요즘 많이 바쁘지? 내가 부탁한 일도 있고……. 먼 데서 오느라 수고 많아요. 차 한 잔 마셔요.”

그녀는 냉장고를 열어 이리저리 눈짓으로 훑어보고는 최근에 장을 보지 않았다는 점은 인식한 것 같았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미안해. 내어줄게 커피 밖에 없는 데 그거라도 한잔 마셔요.”

처음에는 선의를 거부할 생각이었지만, 갑작스레 커피가 당기는 충동이 일어 선뜻 거부하지 못했다.

“네, 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타 마셔도 되는데요. 어머님 어디에 있나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말을 얼른 이어 붙였다.

“아이고 무슨, 손님이 주방에 들르는 게 어디 있어. 소파에 앉아있어요. 얼른 갖다 줄게요.”

약간은 무안해져 그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소파에 앉아서 멀뚱히 있다가 탁자 위에 서 있는 쇠로 만든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손때가 많이 묻은 것으로 보아 그녀는 원래부터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세히 둘러보니 미세하게 가구 배치도 바뀐 거 같았고 미소가 돋보였던 지영의 사진이 걸린 액자는 다른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태우신 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못 보던 가구도 있었다. 짙은 와인색의 조그만 책상이었고 그 위에는 독서대가 있었다. 독서대엔 방금 읽은 듯한 책이 놓여 펼쳐져 있었고 책장은 바람의 호흡으로 너울거리고 있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차가 담긴 쟁반이 놓였다.

“밖이 많이 춥죠?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부는데 온도가 추운가 봐요.”

어색한 분위기를 푸는 방법으로 날씨만큼 좋은 구색은 없다. 우리의 대화는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간 그녀의 생활과 아까 소파에 앉아서 눈짓으로 관찰했던 궁금한 사항에 이르렀다.

“전에 봤던 지영이의 사진이 없네요?”

짓궂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영의 사진 행방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 대화 이후로 생전에 지영과 나눴던 소식에 대해 물어보는 알맞은 서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그건……. 지영이 방에 있어요. 지금은 신앙 덕분에 다른 걸 몰두할 수 있어서 인지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지만, 한창 갈피를 못 잡고 눈물로 지새울 때는 우리 아이 사진이 계속 방에 걸리어 있으니 진정돼다가도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바람에, 이대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겠더라구요.

그래서 큰 상자를 하나 사서 지영이 물건(보통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유품’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의미를 받아 물건이라고 적어두었다.)을 넣어두고 일단 눈에서 보이지 않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 방도가 통하긴 했지요.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게 없어서…….”

“그렇겠어요. 어머님은 따님을 많이 사랑하셨으니까요. 제가 액자에 대해 여쭈어본 것은 혹시 지영이가 생전, 아니 사고를 당하기 전에 어머님과 소식을 자주 나눴는지 해서요.”

그녀는 눈을 좌우로 굴리며 잠깐 회고하는 듯 했다. 짐짓 생각이 난듯 눈이 크게 뜨더니 아. 하는 탄사를 내뱉고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방에서 흘러 나왔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금방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가 들고 나온 것은 작은 상자였는데 겉모양이 하트 무늬가 조밀하게 박혀있어 제법 아기자기한 맛이 났다.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거기엔 편지들로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지영이가 성인이 된 이후엔 서로 떨어져 살았는데 물론 연락은 자주 주고받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땐 편지를 써서 보내주기도 했어요.”

그녀는 오랜만에 꺼내본 듯이 몇 장의 편지를 이리저리 훑어보기도 하고 그중에 하나는 읽어보기도 하였다.

“어머니, 혹시 지영이가 와 같이 지낸 시기로 추정된 이후부터 보낸 편지들이 있나요? 아니면 직접 언급했던지 하는.”

“아! 몇 개 있어요. 처음엔 생색내지 않다가 나중에는 쑥스럽게 고백도하고 그 사람에 관한 칭찬도 몇 번 한 적이 있었지요. 편지 내용 중에 를 언급한 부분은 적어서 그냥 ‘우리 딸애가 남자친구가 있나보다’하고 넘겼지요.”

“어머니 죄송하지만, 그 부분을 제가 가져가서 읽어봐도 될까요?”

“네, 언급이 별로 많지 않아서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요.”

25

눈앞에는 아까 보았던 하트 무늬가 빼곡한 상자가 있다. 지영이 어머니에게서 가 언급된 부분이 적힌 편지만 가지고 나올 요량이었으나 혹시나 모른다며 다 가지고 가서 참고해보라는 당부에 상자 째로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자 안에 가득 편지가 쌓여있는 모습을 보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던 건 지영이에 대한 연민에서였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살펴볼까. 입으로 중얼거리며 편지를 날짜별로 배열했고 날짜 순서대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 언급된 편지를 뽑아서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지영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편지 내용물의 양에 비해 언급된 부분이 적었다.

그래도 지영의 편지에서 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으로 추정한 편지를 골라 내용을 뽑아 간추렸다.

「 엄마! 전 오늘 오랜만에 산책을 나왔어요. 아직도 살짝 춥긴 하지만, 괜찮아요. 외투를 단단히 입고 나왔거든요. 예전에 떠주신 목도리까지 두르며 중무장을 했으니까요. 혼자 나오진 않았어요. 요즘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일을 하면서 간간히 만나고 있어요. 특별한 사이는 아니고 그 사람과 같이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얘기하자면 복잡하니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 성격상 자주 만나야 해서 오늘은 산책 겸 얘기도 나누고 그랬네요. (이하 생략) 」

「 오늘은 별로 몸이 좋지 않네요. 어제 비를 흠뻑 맞고 돌아다녔더니 그게 원인이 되었나 봐요. 그래서 아침 일찍 병원 가서 진료 받고나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났더니 그나마 나아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감기 기운은 곧 멎을 것 같아요.

어제 왜 비 맞고 돌아다녔냐고요? 아는 사람(‘’ 라고 추정한다.)과 같이 대교를 걷다가 뛰어내리려는 사람이 보여 만류하느라 비를 흠뻑 맞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알고 보니 고등학생이었는데 사연이 참 딱해요. 그 아이 마음 잘 달래주고 집으로 보낸 후에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우산은 없었냐고요? 아시다시피 소나기가 내려서 비가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요. (이하 생략) 」

예전 지영이 내게 남긴 워드 파일에 와 대교를 같이 걷던 중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언급한 일이 떠올랐다. 노트북을 재빨리 키고는 어제 입고 걸어놓았던 외투 속주머니에 있는 USB를 꺼내 노트북 USB단자에 꽂았다.

노트북의 바탕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방금 꽂았던 USB가 연결되었다는 친절한 알림 메시지가 띄어 있었다. 마우스로 지영이 남긴 ‘그.hwp'라는 파일을 실행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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