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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13.상군열전(商君列傳)
게시물ID : history_12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11
조회수 : 112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0/27 15:32:16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상군열전(商君列傳)
 
얼마전에 독자여러분과 함께 했던 대도무문 (노자.한비자열전)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형명학의 한 갈래인
상군에 대해서 이야기 할 차례가 되었다.
고대 전국시대 말기에 진(秦)나라가 강성해지고 천하를 통일하는 발판을 닦은이가 상군인데
그는 그 당시의 출세법중에 유학이나 도학.또는 병학을 취하지 않고 법술과 형명학을 따른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큰 도덕을 바라보는 도가나 왕도정치를 표방하는 유가보다는 우선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것이 바로 형명학과 법술인듯 한데 어쨌든 상군은 이 형명학으로 변방의 오랑캐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소국으로 중원의
열국반열에 들지도 못하던 진나라가 결국 천하를 통일할수 있는 기틀을 세웠으니 참으로 역사에 남긴 자취가 작지 않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이 형명가는 각박하고 인정이 적어서 항상 그 끝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니
결국 소위 말하는 군자의 길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형명가와 법가는 매양 유세하면 등용되고 승승장구 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듯하니
당시의 선비가 혹할수 있는 매력이 있었던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학문과 술법이 항상 도(道)를 거슬리니 결국 그들은 종국에 스스로의 몸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각국의 군주들도 빠른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발이 느리고 뜬구름 잡는듯한 도.유가의 무리들보다 
일거에 혁신이 가능한 형가.법가를 선호했던것 같다.
하기야 당시는 사방에 전쟁이 넘치던 전국시대 였으니 어느세월에 도덕을 말하고 무위를 찾아
수양하며 세월을 보냈겠는가.
그러니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학문도 유행이 있다고 아니할수는 없을것 같다.
 
상군의 부국강병책으로 진나라의 효공(孝公)은 천하의 패자가 됐고 그의 법은 모범이 되었으니
이에 상군열전을 기술해보기로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앙변법(衛鞅變法)
 
상군(商君)은 위(衛)의 여러 첩들에게서 난 공자중 한사람이다.
이름은 앙(鞅)이고 성은 공손(公孫)씨이며 그 조상은 본래 희성(姬姓)이다.
 
공손 앙은 위나라 임금의 후손이므로 사람들이 위앙 이라고 불렀다.
앙은 젊어서부터 형명학을 좋아 했다.
 
위앙은 날로 쇠약해져가는 위(衛)나라에서 자기 뜻을 펼수 없자  위(魏)나라로 떠났다.
그는 위나라에 가서 정승 공숙좌의 밑에가서 중서자 라는 벼슬을 하였다.
공숙좌는 앙의 현명함을 알았으나 위왕에게 그를 추천하기 전에 병이들어 죽을때가 되었다.
당시 위나라의 왕인 혜왕은 공숙좌 에게 문병가서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대가 세상을 떠나고나면 장차 누구와 정사를 논해야겠소?"
공숙좌가 병석에 누워 말한다.
"저희집에 중서자벼슬을 하는 위앙이란 젊은이가 있는데 그의 나이는 젊으나 천하의 기재이니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면 신보다 십배는 나을것입니다."
"........................"
혜왕이 아무말도 않자 공숙좌가 다시 말했다.
"왕께서 만일 그를 등용하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그를 죽이십시오. 그는 뛰어난 인물이니 만일 그가 다른나라로 가버리면 우리 위나라에겐 큰 후환이 있을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소....."
 
왕이 돌아간후 공숙좌는 위앙을 불러 왕과 나눈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자네를 왕께 천거했으나 왕은 그대를 등용할것 같지 않았네.
그런데 나는 위왕을 섬기는 사람인지라 자네를 등용하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고 말했으니
자네는 어서 이나라를 떠나게."
그러나 위앙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왕께서는 저를 재상으로 임명하라는 정승의 말도 안들었는데 죽이라는말은 듣겠습니까?"
위앙은 태연할뿐 달아나지 않았다.
 
그때에 진(秦)나라의 효공 이 천하에 현명한 인재를 구한다는 포고령을 내렸고 그 소문을 들은 위앙은
자기의 뜻을 펼치고 싶어서 진나라로 떠났다.
위앙은 진효공의 총신 경감 을 찾아가서 효공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경감은 위앙과 많은 대화 끝에 위앙이 현명한 인물인것을 알고  위앙을 효공에게 소개하게 되었다.
마침내 효공을 만나게된 위앙은 복희.신농.요.순 등 고대 성군들의 이야기만 할뿐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효공은 얘기도중에 코를골며 잠이 들고 말았다.
이틑날 효공은 경감에게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가 소개한 사람은 쓸데없는 고리타분한 말만 하니 등용할수 없다" 고 하였다.
 
경감이 집으로 돌아가 위앙을 만나 물었다.
"선생은 어째서 쓸데없는 말만 하여 임금을 화나게 하셨소?"
"저는 임금께 제왕의 도를 말씀드렸는데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시니 다시 한번 만나게 해주십시오"
 
경감은 다시 효공에게 위앙과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효공은 위앙을 다시 만나보기로 하였다.
이에 위앙은 다시 궁에 들어가서 하나라 우왕과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에 대해 이야기 했고
진효공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위앙이 말을 마친후 효공이 위앙에게 이야기 했다.
"그대는 매우 박식하기는 하지만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하오.
지금시대에 그런 이야기는 별로 쓸모가 없으니 그대를 등용하지 못하겠소"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온 위앙에게 경감이 물었다.
"그래 왕이 뭐라 하시던가요?"
"오늘은 왕도를 실천하시도록  말씀드렸는데 임금께서는 제 말이 맘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저는 이제 임금의 뜻이 얼마나 높은지 알았으니 다시한번 임금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경감은 매우 곤란하여 거절하였지만 위앙이 다른나라로 떠날것을 두려워 하여 할수 없이
마지막으로 그를 효공과 만나도록 주선하여 주기로 했다.
효공은 위앙을 등용할 마음이 없었으나 경감이 극진히 권하므로 할수없이 마지막으로 만나주기로 하였고
위앙은 효공을 만나 패도(覇道)에 관하여 이야기 했다.
효공은 패도란 말을 듣고는 몹시 기뻐하였다.
 
위앙은 효공에게 삼황오제의 도를 실행할것을 권했으나 효공은 그것이 너무 길고 먼일이라 하여 관심두지 않았고,
다시 성군의 도를 실행할것을 권했으나 효공은 역시 맘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이제 세번째만에 당대에 이루는 부국강병책을 말하자 효공이 매우 기뻐하였던 것이다.
 
이에 효공은 위앙과 삼일 삼야를 토론 하고 그를 등용하여 좌서장 으로 삼고
도읍에서 가장 좋은 집과 많은 황금을 하사 했다.
 
위앙은 진나라의 여러 법들을 일거에 바꿔 진효공의 인준을받았다.
그 법은 다음과 같았다.
 
ㅡ도읍을 새로 정하여 함양으로 옮기는 일.
ㅡ지역을 현 으로 구분하는 일.
ㅡ토지개간의 일. 
ㅡ모든 전답을 국유화 하고 조세법을 바꾸는일.
ㅡ경제개발과 산업진흥의 일.
ㅡ전쟁과 군공의 일.
ㅡ부정에 관한 일.
ㅡ법령 엄수의 일.
 
위앙은 이렇게 새로운 법을 마련 했으나 그 법을 바로 실시하지는 않았다.
백성들이 새로 바뀐법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모두 허사였기때문이었다.
 
그래서 위앙은 묘안을 짜내었다.
 
3장(1장은 여섯자) 길이의 나무를 도성 남문에 세우고 그 옆에 공고문을 걸었다.
<누구든지 이 나무를 옮겨 북문에 세우는자는 10금의 상을 준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무도 그 나무를 옮기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50금을 주겠다고 상금을 올려 공고하였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더욱 의심을 품었는데 한 백성이 나서서
"상금을 주든 안주든 일단 옮겨놓고 보자" 하고 그 나무를 옮겨 북문에 세웠다.
위앙은 그를 불러 50금을 주고 나라가 결코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런후에야 위앙은 새 법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물론이고 고관 대신들도 불만을 터뜨리고 여론이 분분하였다.
 
위앙은 새 법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자들을 모조리 잡아서 변방의 국경수비대로 보내버렸다.
벼슬아치들이 법에 대해 불만을 말하자 그들을 모두 벼슬에서 내쫓아버렸다.
 
그런데 어느날 태자가 법을 어기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에 대로한 위앙은 태자를 법대로 처단하려 하였으나 태자는 임금의 뒤를 이을 사람이기때문에
처벌할수 없다하여
태자의 스승인 공손 가 에게 얼굴에 먹으로 문신을 새겨버리고
태자의 부(傅:보좌관)인 공자건의 코를 베어버렸다.
 
그후로 아무도 법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백성들은 새 법령을 따르게 되었다.
위앙은 옹 땅을 떠나 함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진나라 전역을 31개의 현으로 나누어 편성하고
국내의 모든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으로 만들고 세금을 대폭 올렸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몇년만에 국고가 가득하고 강성해졌다.
진나라 백성들중 추호라도 법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모두 잡아 위수 가로 압송하여 목을 베었는데 하루에 처형당하는 수가 700여명이었고 죄수가 많아서 옥이 넘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법이 무서워서 백성들은 법을지키게 되었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고 산에는 도적이 없었다.
생활은 풍족해지고 전쟁에는 용감하였으며 사사로운 싸움은 겁을 먹었다.
진나라는 잘 다스려 졌다.
 
진나라는  영토를 늘릴셈으로 이웃의 위(魏)나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위앙은 진나라 장수가 되어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한편 위나라는 공자 앙(卬)을 장수로 삼아 진나라 군사를 막게 하였다.
 
원래 위나라에서부터 공자앙과 가깝게 지내던 위앙은 공자앙에게 편지를 보내어 예전의 친분을 말하고
서로 만나서 화친할것을 청하였다.
그래서 위나라 공자 앙은 이를 허락하고 회맹을 하게 되었는데
맹약을 마친후 서로 술잔을 주고받을때 위앙이 매복해놓은 군사가 공자앙을 사로잡고 위나라군사는 여지없이 참패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위나라는 자주 진나라와 싸웠으나 매번 패하여 병력은 줄고 많은 땅을 빼았기고 말았다.
진나라가 두려워진 위혜왕은 땅을 갈라 진나라에 바치고 도읍을 대량땅으로 옮겨버렸다.
위혜왕은 공숙좌의 말을 듣지않고 위앙을 등용하지 않은것을 후회하였으나 이는 다 지난 일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나라에서는 위앙에게 상(商)땅과 어(於)땅을 하사하고 위앙을 상군(商君)에 봉했다.
사람들이 그 이후 위앙을 상군 또는 상앙 이라 부르게 되었다.
 
상군은 조량 이란사람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귈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조량은 "저는 싫습니다"
라고 거절하였다.
상군이 그 이유를 묻자 조량은
"상군의 법이 가혹하고 남의 원한을 많이 샀기때문에 인심을 잃어서 천수를 다 누릴수 없을것이다"
라고 하였다.
조량은 또 
"당신이 아무리 재상이라도 지금의 왕이 갑자기 죽고나면 당신은 한순간에 파멸할수도 있습니다."
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상군은 그말을 애써무시하고 말았다.
 
약 5개월후에 진효공이 갑자기 죽고 태자가 즉위했다.
그가 바로 진혜문공(秦惠文公)이었다.
 
진혜문공은 상앙이 자기스승들의 코를 베고 얼굴에 문신을 떴던 일때문에 상앙을 몹시 미워하였다.
그때 그런 형벌을 받았던 공자건과 공손가 등이 나서서
"진나라엔 상군의 법이 있을뿐 임금의 법은 없다" 고 말하며 상군을 벌할것을 청하였다.
진혜문공은 상앙이 선왕의 신하이기때문에 바로 처벌하지 않고 정승의 인수를 거두게 하였다.
 
정승의 자리에서 물러난 상앙은 호화로운 수레를 타고 함양을 떠나 자기의 영지인 상 땅으로 돌아갔는데
그 행렬의 화려하기가 마치 왕의 행차와도 같았다.
그것을 본 공손가와 공자건의 무리가 진혜문공에게 가서
"상앙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임금이 정승자리를 뺏은것을 원망하여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고 고하여 바쳤다.
이에 대로한 진혜문공은 군사를 보내어 상앙을 잡도록 하였는데 이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우리도 함께가서 상앙을 잡아 죽이자"고 합세하여 그 수가 몇만인지 셀수 없을 정도였다.
다급해진 상앙은 관복을 벗고 수레를 버리고 도망하여 산길로 숨어다니다가
함곡관 부근의 한 객사에 들어가 숙박을 하려 했다.
객사주인은 그가 상앙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에게 통행증을 보여줄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통행증을 가졌을리 없는 상앙은 깜빡잊고 안가져왔다고 둘러댔고 객사의 주인은
상앙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놈은 상군의 법도 모르느냐?
통행증이 없는자를 재워줬다가 나까지 목이 달아나는꼴을 보고싶은것이냐?
여러소리 말고 썩 이곳에서 나가라."
객사에서 쫒겨난 상앙은 밤길을 걸으며 서글피 탄식했다.
"내가만든법에 내가 걸려들줄이야 어찌알았겠는가?"
 
상앙은 밤을 이용하여 국경을 벗어나 위나라로 도망쳐 갔다.
그러나 상앙의 속임수때문에 장수 공자 앙을 잃고 매번 그에게 패전한것을 원망하고 있던 위나라가 그를 받아줄리 없었다.
위나라는 상앙을 잡아서 진나라로 압송하려 했다.
하는수없이 자기의 본거지인 상 땅으로 도망쳐간 상앙은 공손가에게 사로잡혀
진나라 도읍인 함양으로 압송 되었다.
진혜문공은 상앙의 죄를 꾸짖고 그를 거열(오우분시)형에 처했다.
상앙은 무참한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가족도 멸족 되고 말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마천은 이 상군열전의 끝에 상앙을 이렇게 평하였다.
 
"상군은 천성이 각박한 사람이다.
효공에게 벼슬을 얻기위해 처음부터 맘에도 없는 제왕의 도를 늘어놓은것은 속임수이다.
효공을 만나는데 총신 경감을 이용한것도 교묘하다.
 
그후 공자건을 처형하고 위나라 장군 공자 앙을 속이고 조량의 진실된 충고도 듣지 않았으니
이것은 상군이 은정이 없다는것을 증명한다.
상군이 진나라에서 악명을 떨친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 상군열전편을 이야기 해 보았다.
앞머리에서도 말했듯이 형법의 학문은 항상 각박하고 온정이 없어서
처음에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듯 하나 종국에는 자신의 몸을 망치고 백성들도 각박하게 만들고 만다.
군주들은 당장의 성과를 위해 제왕의 도를 펴지 않고 패도만을 좇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위정자들의
조급함이 국가를 어찌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의 사상과 학문에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는 필자는 이 형명학이 어째서 노자의 도가에서 비롯된것인지 알수가 없다.
무위와 도덕을 말한 노자의 학문이 애초에 이처럼 각박하지는 않았을것인데 그 도가의 학문을 바탕으로
나왔다는 형명가의 학문은 참으로 사납고 인정이 없으니 이는 원래 뿌리인 도학의 깊이를 깊이 통달하지 않고
당세의 성공만을 연구한 때문은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추리해볼 뿐이다.
 
원래가 인문학의 목적이 인간의 깊이있는 통찰과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하는것인데 그 뿌리를 깊게 찾지 않고 성공의 방편으로만 생각하는 요즈음의 세태와 별반 다름이 없다는것이 또한 필자를 슬프게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상앙은 은정이 없는 법으로 국가를 부강시켰으나 그 국민들에게 끼친 폐해또한 적지 않으니
그 이후에 이 법을 바탕으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백성들은 예의를 모르게 되었고 오직 이익만을 탐하게 되어 싱군의 이후에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각국의 군주는 주 왕실을 업신여기게 되어 서로 왕이라 참칭하고
세상을 전란의 도탄속에 빠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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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군의 시대로부터 이천 몇백년이 흐른 근래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라의 법은 점점 복잡해지고 촘촘한 그물망처럼 빠져나갈곳이 없으며 그법은 또한 가혹하기 그지없다.
 
예전 진시황의 통일진제국을 무너뜨리고 한 제국을 창건한 고조유방은 진나라의 법이 가혹하고 복잡한것을 꺼려하여 약법삼장 이라하여 법을 단 세가지만 만들어 공표하였다.
 
지금 법이 촘촘하기는 하나 세상에 그 법을 지키지 않는자가 없는가?
법이 아무리 촘촘하다 하여도 또한 그 법망을 뚫는 탈법이 얼마든지 있다.
또한 권세와 돈을 쥔 사람들은 그 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서 처벌을 받지 않기때문에
가혹한 법의 처벌을 받는것은 오직 힘없는 서민들 뿐이다.
법이 공정하지 않고 평등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 법을 믿지 않고 서로가 그 법을 빠져나갈수있는 권세만을 쫒게 되었다.
지금은 대기업이 총수나 정치인들은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거나 같은죄를 지어도 약한처벌을 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어느 한 범죄인의 입에서 나온말임에도 불구하고 천하에
회자되고 있음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수 없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이 되어야 하고 누구나 공정하게 적용받을수있어야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수 있다.
혹자는 우리가 그런 기회를 잃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회를 잃은것이 아니고 그 기회가 약간 늦춰진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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