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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허각-모노드라마)
게시물ID : readers_123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가멜가가멜
추천 : 0
조회수 : 2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19 18:30:59
 
 
 
-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름은 찰스였단다. 칠십이 넘었어도 항상 정장에 중절모만 고집하는 멋쟁이 노신사였지. 글을 쓰는 게 취미였어. 정확하게는 로맨스 소설이지. 제목이... 그래. ‘사랑을 위해서라면이었다. 이 할애비도 나이가 먹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그래도 그 날은 평생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그 날, 찰스는 내게 자신의 소설책 사랑을 위해서라면을 선물해줬고, 너무나 재밌는 나머지 밤이 새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읽었단다. 젊은 남녀의 멋진 사랑이야기지. 둘은 정말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해 여자가 남자에게 이별통보를 하게 되는데, 남자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단다. 결국 둘은 재회하게 돼 열망하던 사랑을 쟁취하지. 하지만 결말은 좋지 않았어. 병에 걸린 여자가 입원을 하게 됐지뭐냐. 하지만 질병도 두 사람의 사이는 갈라놓지 못했고, 두 사람은 열광적인 사랑을 이어나갔지. 남자는 여느 날처럼 여자에게 병문안을 가고 있었어. 휠체어에 가녀린 몸을 실은 여자가 남자의 병문안 생각에 들떠 병원 앞 횡단보도까지 마중을 나왔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따스한 시선이 교차됐지. 신호는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여자가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단다. 거기서 사단이 난 거야. 도시 외곽에 위치한 병원이라 인적보단 화물트럭의 운행이 잦았단다. 그 때도 마침 트럭 한 대가 도로를 내달리고 있었지. 그런데 트럭운전수의 상태가 영 좋지 못했어. 전날 친구들과의 과음으로 피로가 심했던 게지. 깜빡 졸고 말았던 운전수가 제때 정지를 하지 못했고, 찰스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안내 안나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단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할아버지?”
 
그래. 계속 이야기를 해주마. 미안한데 커피에 설탕 좀 넣어주련? 그래, 하나. 고맙다 얘야. 이후로 찰스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공황장애를 겪었어. 젊었을 땐 미친 사람처럼 떠돌아다니며 하루살이 인생을 살다가 나이가 들어선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됐지. 가족 하나 없는 그였기에 외로움과 쓸쓸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을게야. 그러던 와중에 네 할미를 만나게 된 거야. 당시에 네 할미는 유명 출판사의 사장이었고, 난 그 밑에 부하 직원이었지. 네 할미는 찰스의 재능을 알아보고선 그를 스카우트했어. 찰스는 그를 썼단다. 매일 같은 소설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한 거지. ‘사랑을 위해서라면과 같은 내용에 제목이나 문장만 조금 달랐을 뿐이야. 나를 포함한 출판사 식구가 찰스의 이상행동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해주었단다. 찰스는 여전히 이별 중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도울 수 없었거든. 언제는 나와 네 할미가 저녁식사에 찰스를 초대했어. 근데 오지를 않더구나.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오지를 않자 걱정이 된 우리 둘이 찰스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불은 켜져 있었는데 아무도 없더구나. 책상엔 재떨이와 그 위에 아직 꺼지지 않은 담배 한개피가 놓여 있었어. 네 할미가 그랬지.
 
< 찰스는 종종 과거로 돌아가 아내를 구하기 위해 병원 앞 횡단보도로 달려가. 도착한 그는 파도에 휩쓸린 해변가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며 과거가 아닌 현실에 있는 자신에게 절망한다. <
 
라고 말이야. 의사들은 그 질병을 치매라 정의한다 하더구나. 문제는 찰스가 담배를 단 한번도 태운적이 없다는 거였어. 우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택시를 잡아 병원까지 달려갔지.“
 
여보. 밖에 벚꽃이 이뻐요. 같이 보러 안 갈래요?”
 
그럼요, 가야죠. 조금만 시간을 주겠소? 우리 귀여운 손녀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오. 그럼 계속하마. 병원 앞에 도착하니 역시나, 찰스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더구나. 신호등은 고장이 났는지 작동을 하지 않고 있었고 차들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섣불리 접근하면 위험하니 1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우리와 찰스가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에 찰스는 차도로 몸을 던졌는데, 그 전에 찰스는 이렇게 말했단다.
 
< 저는 멀쩡해요. 미친 듯 종종 이 곳을 찾곤했죠. 또 미친 듯 같은 내용의 소설을 쓰기도 했고요. 그래요. 전 치매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하늘 끝에 매달려 지옥으로 떨이지지 않게 발악했을 뿐입니다. 이것마저 놔버리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아서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내를 잃었을 때와, 그 이후 정신을 놔버리고 싶던 절 도와주던 수정양을.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되겠어요. 죽음이 또 하나의 해답이 될 수도 있을거예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
 
찰스 할아버지. 한국 이름으론 차현우씨가 그렇게 자살을 했지. 어떻게 손 써볼 방도도 없이 말이야.”
 
차현우? 저도 사랑을 위해서라면을 읽었다구요. 남자 주인공 이름이 차현우였는데.. 여자 주인공은 김현주이고...”
 
그래. 찰스와 안나의 본명이란다. 그 책의 내용은 찰스 할아버지의 이야기지. 벌써 50년 전이구나.. 헌제 지금도 생생해. 집필활동에 열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미건조한 눈동자를 하던 찰스 할아버지를 말이야.. 멋진 사람이었지. 로맨티스트야. 우리 귀여운 강아지도 나중에 자라면 꼭 그런 멋진 남자를 만나거라. 알겠니?”
 
, 할아버지!”
, 그럼 그만 엄마한테 가보려무나. 난 데이트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찰스는 같은 내용의 제목만 다른 책 5권을 냈었다. 그 책들의 제목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워요.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하겠어요. 난 어쩌죠? 너무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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