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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변호사가 맡았던 사건들.txt
게시물ID : sisa_1233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춧현안함게이
추천 : 12
조회수 : 73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10/24 15:16:5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ozogak&logNo=140712956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등

이 사건들의 공통점을 당신은 아시는가?
당시로서는 감히 수면위로 끌어올릴 수 없었던, 두려워서 감히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던 이 사건들.

서슬퍼렇던 권력에 감히 목숨걸고 대항하는, 수임료도 기대할 수 없는 이 약자를 위한 투쟁이었던 사건들은 모두 박원순 변호사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등
 
이 사건들의 공통점을 당신은 아시는가?
당시로서는 감히 수면위로 끌어올릴 수 없었던, 두려워서 감히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던 이 사건들.
서슬퍼렇던 권력에 감히 목숨걸고 대항하는, 수임료도 기대할 수 없는 이 약자를 위한 투쟁이었던 사건들은
모두 '박원순 변호사'라는 지금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박원순 후보'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 사건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출처: 위키백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으로 재학중이었던 박종철은 1987년 전두환 공안당국에 붙잡혀 취조실로 끌려가게 된다.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철과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물고문 등을 가하여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대한 성공회 서울교구,주임사제:이한우 바우로 신부)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박원순은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서울대학교 우 모 조교가 교수였던 신 모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이었다. 6년간의 법정투쟁이 이어졌고, 결국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도 명백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우 조교의 변호는 박원순 변호사가 맡았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당시 부천경찰서(지금의 부천 소사경찰서)의 경장이던 문귀동이 조사과정에서 당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성적으로 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공권력이 추악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권력에 굴복하여 불의를 용인한 사법부와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또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 수단인 보도 지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등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 권인숙 씨의 변론을 박원순이 맡았다.
 
여성국제전범법정(일본 강제징용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소송):
2000년 12월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일본군의 전쟁범죄 특히 일본군 위안부 조직과 강제연행, 위안부 소내 강간·고문·상해·학대·살인 행위를 비판·검증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민간 법정이다. 개정 첫날 남북한 공동검사단은 일본 왕을 군위안부 강제 성노동 착취 전범으로 기소하였다.
남한측 검사로 참여한 박원순은 "한반도는 10만 명 이상이 군대위안부로 동원된 최대 피해국이었고 식민지 지배가 그 배경이었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 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했다.
8개 피해국과 일본 각국에서 1000여명이 참석한 이 법정에는 단 한명의 일본 정부 인사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피고측 변호인으로 나온 이마무라 쓰구오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이미 오래 전 사망했기 때문에 재판이 성립될 수 없으며 이들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유죄판결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출처]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누가 변호했을까요|작성자 민주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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