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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무 바닥
게시물ID : panic_891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칭칭고
추천 : 17
조회수 : 109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7/10 18: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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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끼익, 발걸음 소리가 빈 복도에 울려퍼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학교에 가는 날이다.

요 며칠 동안 독감으로 아파 학교도 못 나가고 방 안에서만 지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늦잠을 자는 것이 익숙해졌는지 오늘도 푹 자버렸다. 일어나니 벌써 8시이여서 그냥 천천히

준비해서 느긋하게 집에서 나왔다.




이 놈의 학교는 언제 바닥을 바꿀 거야! 이런 낡은 나무 바닥을 언제까지 고수할 셈이냐고!!



하필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수업시간이여서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내 발자국 소리는 너무나도

민망했다. 거기다 학교바닥은 거의 세워질 적부터 있던 나무 바닥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소리가

크게 난다. 아무리 발걸음을 조심히 옮겨도 소리는 나서 포기하고 그냥 막 걸었다. 그리곤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을까 싶어 창문으로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9시 2분 전 이였다.



나 엄청 늦었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감기핑계를 댈까? 그나저나 지금 어떻게 들어가지..

앞문으로 들어가면 지각한 주제에 너무 당당하고. 쉬는 시간까지 기다렸다 조용히 들어갈까?

밖에 혼자 서있기는 궁상맞은데.. 에이, 그냥 들어가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무턱대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드르륵-



나름대로 조용히 연다고 열었는데 수업시간에 소리를 내며 열린 문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나보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서 날 보고 있다. 으아악..




" 아...하하하...제가 좀..늦었죠...? "

" 그럼, 아주 완벽하게 늦어주셨지~ "

" ..하하... "

" 감기는 좀 괜찮고? "

" 넵! 아주 푹 쉰 덕분에 깔끔하게 나았습니닷! "

" 대답은 잘 한다.. 빨리 가서 앉아, 시간 아깝다. "

" 네에~ "




뾰족하게 선 선생님의 눈초리도 내 능청맞은 대답에 누그러지고,

학생들의 시선도 다시 앞을 향했을 무렵. 나는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말에 내 자리가 어디였는지

헷갈려 앉지도 못하고 교실 뒤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런 것이, 내가 없으니

어느 한 자리는 비어있어야 하는데 빈자리가 없었다.




어라, 잘 못 봤나?

머릿속에 물음표를 잔뜩 만든 채로 다시 교실을 찬찬히 살폈다.

더 시간을 끌면 선생님께 혼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꽤 초조해져 있었다.


그 때, 내 짝을 찾았다. 그럼 그 옆이 내 자리겠지? 그런데...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내 자리에 앉은 누군가랑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누군데 남의 자리에 앉아있는 거지? 내 자리는?

점점 더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서 시선을 마구잡이로 돌리다 시계를 봤다.

분침이 막 12를 지나고 있었다. 벌써 9시였다.



뭐야. 누가 장난친 건가. 하지만.. 빈자리가 없는 걸.

다른 반 학생이 들어와서 수업을 듣는 걸 허락 하실 리도 없잖아. 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저기에, 내 자리에 앉아있는 건. 왜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 잠시 쉰 사이에 내 자리에서 공부를

하다니, 쟤 뭐야? 내 자리가 그렇게 공부하기에 좋은 자리도 아닌 거 같은데. 아님 그냥 친구가

장난치는 걸까? 그런 걸까? 차분하게 생각하자. 그래, 친구가 장난친 걸 거야. 분명 서프라이즈

같은 거겠지. 그래도 꽤 괘씸하네. 무슨 상황인지 묻는 건 뒤로 하고, 일단 저기에 누가 앉아있는 지 좀 보자. 나도 자리에 앉아야 할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고 가까이 가기위해 발을 떼는 순간,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뒤를 돌아봤다.

... 뒤를 돌아봤다.





교실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책상과, 의자와, 학생의 수가 맞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없었다.

분명 주인이 없는 책상과 의자가 하나 남았었어야 할 터였다. 그렇지만 교실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내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봤다. 내 자리에 앉아 있던 그것이 뒤를 돌아봤다.

조금 놀라서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래도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친구들은

종종 짓궂은 장난을 치곤했었으니까, 이번도 그런 것들의 연속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내 자리에 앉아있던 건 나였다.

아무리 봐도 나였다.



얼마 뒤는 방학이여서 아직 안 자른 길고 조금 구불구불한 머리와 한 쪽으로 넘긴 앞머리사이로

보이는 불긋불긋한 여드름. 밋밋한 쌍꺼풀이 없는 눈. 넉넉한 콧볼. 잘 트지만 귀찮아서 립글로즈를

안 발라서 허옇게 튼 입술도. 내가 아니라고 나도 확신할 수 없는, 부정할 수 없는 나였다.



나와 내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 학교가 조용해졌다.

선생님의 말소리도 잦아들었고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는 아이들이 웃음소리도 스르륵 사라졌다.

소리가 내 귀까지 오지 못하고 중간에 소멸해버린 듯 했다. 친구들의 움직임도 느려진 것 같았다.

놀란 내가 소리를 지르려고 벌린 입에서는 허억, 하는 숨소리만 새어나왔다. 5초, 10초. 계속 그렇게 나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나는 당혹감에 식은땀만 흘렸다. 눈앞의 다른 ' 나 '때문에 굳어진 머리는 전혀 굴러가지 않았다.





다른 나는 자연스럽게 몸의 관절을 움직여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은 학생이

수업 중에 일어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계속 수업을 진행하셨다. 심지어 선생님은 아직까지

교실 뒤편에 서있는 나에게도 눈길 한 번 주시지 않으셨다. 나랑 그것만 동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느낌 이였다. 그것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나는 아직도 또 다른 나에게 시선이 고정된 채 였다.

그것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었다.



나와 닮은 그것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바로 앞까지 왔다. 아직까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채였다. 걸음이 조금 느려진 채로 나를 보며 그것은 슬며시, 한 쪽 입 꼬리를 올렸다. 기분나쁜 웃음을

짓고있는 그것의뺨이라도 때리고 싶었지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벌벌 떨리고 있었다. 또 다른 나는 금방 웃음을 거두고 교실 뒷문의 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문을 열었다. 평소대로라면 쾅! 하는 소리가 났었어야 했다. 여전히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교실 뒷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그것은 복도를 걸었다.





그것이 교실을 나서는 순간,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직도 복도를 걷고 있었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무 바닥에서 만들어진 진동이 내 귀를 때렸다. 소름끼쳤다.

그게 시야에서 사라지자 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지만 사물함을 잡고 겨우 

버텼다.선생님은 그제야 나를 보셨다.




" 야! 너 왜 아직도 거기 서있는 거야? 다시 집에 가고 싶어? 그게 아님 빨리 자리에 앉아! "

" 네? 네.. "

" 왜 그래, 아직 감기가 다 안 나은 거야? 안색이 금세 창백해졌네..? "

" 아, 아뇨! 괜찮아요!! 저 수업 들을 수 있어요!! "

" 뭘 또 그렇게 열성적인 척 하냐? "

" .. "




선생님의 농담을 맞받아쳐줄 여력이 없어 그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의자에서는

미지근한 온도가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인가, 내가 기면증이라도 있었던 건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방금 겪었던 일이 믿기지 않는다. 또 다른 나라니..그런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을 쉬이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는 의자의 그것의 온도,

아직도 귀에서 이명처럼 들리는 끼익 거리는 소리.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봤다. 9시 4분즈음이다.

나는 그 사이의 기억이 없다. 그것과 마주친 것 빼고는. 그것과는 그리 오랜시간 마주한 것 같지

않았지만, 내가 교실에 들어와서 벌써 4분 정도가 지났다. 내가 4분동안 멍하니 서었을리가..

혹시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이 몇 번 말을 거셨을 거다. 하지만 선생님의 태도는 내가 거기에

4분이나 서있었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간은 4분이 흘렀건만. 

나는 여기에 4분이나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그 동안의 내 시간은...?

아아,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저게 뭔지는 지금당장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증명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있을까. 그것과 가까이 있던 사람...



내 짝!




" 너 아까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었어? "

" 누구? "

" 그 왜, 내 자리에 앉아있던, 너랑 계속 같이 떠들던 얘. "

" 무슨 소리야~ 나 너 없어서 쓸쓸 했는걸~ "

" 정말로, 정말로 아무도 없었어? "

" ..뭐야, 무섭게. 정말이라니까! 아무도 없었어! "

" 그, 그렇구나..무섭게 했다면 미안. "

" 아냐..뭐.. 괜찮아! "




짝도 모른다고 하였으니 그것은...그것은 꿈일 것이다.

너무나도 실감나고, 그것이 내 의자에 앉아있었던 듯한 온도까지 네게 전해져 오고 있지만.. 그리고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더 이상 그것을 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망상이니까, 마주치는 일 따윈 없어야 한다.


나와 모습이 소름끼치게 똑같아서 기분 나쁜 것 외에 그것이 내게 직접적으로 끼친 해는 없다.

그러니,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 창문 밖을 봤다. 내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서늘한 하늘이다.

새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의 여운으로, 가끔식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것이 복도를 거닐던 소리. 낡은 나무 바닥의 소리.





끼익,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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