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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민주당 8년, 공화당 8년 매번 번갈아서 했다.
클린턴 때 북한을 공격을 해야 된다고 xx을 해서
평양을 미세 폭격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이다.
그때 수도권의 2/3가 날아간다는 결론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부시가 북한과 이라크를 공동의 적으로, 두 개의 전쟁 전략.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북한을 철저히 고사시켰던 것.
· 역대 미국의 대통령 임기가 되게 중요하다.
-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 ~ 1945)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임기를 정리해 보면
조지 워싱턴을 시작으로 쭉 내려가서
우리가 관심 있는 일제강점기의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12년 동안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미국의 대통령이었고 민주당이었다.
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대통령이었다.
근데 이 사람은 소아마비 환자였다.
그래서 만약에 그 당시에 TV 토론이 있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아마비 환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통령 업무를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굉장히 우수한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역대 아주 훌륭한 대통령 중에 한 사람이다.
그다음 [민주당] *해리 트루먼 대통령(1945 ~ 1953)이 8년 동안 또 민주당이 했다.
1933년부터 1953년까지 20년을 민주당이 하면서
2차대전을 승리하고, 53년까지 전후의 냉전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와 경쟁자였다.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미국으로 복귀하라 복귀하라 했는데
맥아더가 말 안 듣고 동북아를 차지하려 했던 것이 트루먼 때였다.
트루먼 때 안타깝게 우리나라에는 한국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때 이 트루먼과 맥아더가 달랐고 한국 전쟁을 맥아더가 주도했다.
맥아더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무리한 고집을 피웠고,
한국 전쟁이 이 트루먼 때 벌어지게 된다.
- 존 케네디의 저격과 통킹만 사건, 월남전의 시작
그리고 [공화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 ~ 1961)가 8년 동안 집권한다.
다시 [민주당] *존 케네디(1961 ~ 1963)]가 2년밖에 못하고 1963년에 저격이 된다.
그리고 [민주당] *린든 존슨(1963 ~ 1969)]이 되고 이때 통킹만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을 근거로 월남전에 참전을 하게 된다.
존슨 대통령 때 존슨이 원한 것이 아니다.
트루먼 때 맥아더가 했던 것처럼 존슨 때도 미국의 군부가 일으킨 일이다.
케네디는 전면전을 반대했는데 통킹만 사건이라는 것을 조작을 해서
미국의 여론을 무기산업자와 언론이 막 전쟁으로 몰아간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월남전이 시작이 된다.
그리고 [공화당] *리처드 닉슨(1969 ~ 1974) 대통령이 69년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 재선되는 과정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져서 하야하게 되고
그다음 [공화당] *제럴드 포드(1974 ~ 1977) 대통령이 한 번밖에 못하고
[민주당] *지미 카터(1977 ~ 1981)에게 뺏기게 되는데 카터 대통령도 한 번밖에 못한다.
공화당이 69~74(닉슨) 74~77(포드) 8년을 하고 민주당 카터가 됐는데
한 번씩 밖에 못 했던 이유가 이때가 월남 전 때다.
특히 1965년부터 70년까지는 월남전에 이겨야 된다는 광풍이 불었다.
근데 70년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10년이 간 전쟁을 두고 너무 긴 것 아니냐며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퍼진다.
그래서 이 전쟁에 대한 회의론 때문에 임기가 짤막짤막했던 것.
닉슨이 월남전을 주도했었을 것이고 그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나게 되고
포드까지가 공화당을 했는데
- 히피 운동
결국엔 공화당 정부가 월남전을 무리하게, 길게 끌고 갔다.
그래서 70년대에 미국에 히피 운동이 벌어진다.
그 히피 운동이 소위 미국의 자유주의 운동이다.
그래서 우리가 히피 하면 마약쟁이 생각하는데
그것이 나중에 다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히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사실 만들어진 이미지이고
원래 그 히피들이 뜻했던 것이 월남전 반대 운동이다.
전쟁 반대 평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고, 평화와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서
이 사람들이 '물질을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자' 이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근데 이런 사람들을 마약쟁이라고 몰아가게 됐던 것. 70년대에 있었던 일.
- 신자유주의
카터가 81년까지 대통령을 했는데 이때가 소위 신자유주의가 나오던 때다.
지미 카터가 한 번밖에 못하던 이유는
오일쇼크 때문에 미국 경제가 어려웠고 그 책임을 지미 카터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1981 ~ 1989)이 당선되게 되고 8년 동안 했고
이때 미국이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재벌이 성장할 때가 이때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때가 전두환 때인데 미국도 재벌들이 성장하고
우리나라도 대재벌이 성장하던 그런 때였다.
레이건 다음이 [공화당] *조지 부시(1989 ~ 1993)가 대통령이 돼서 4년밖에 못한다.
아버지 부시 때 걸프전이 벌어지면서 4년밖에 못하고
- 빌 클린턴, 한반도 평화 비약적인 노력
그다음 [민주당] *빌 클린턴(1993 ~ 2001)으로 넘어가서 8년 동안 빌 클린턴이 했고
이때 후반기에 재선됐을 때, 김대중 대통령과 같이 임기를 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급진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빌 클린턴 때 6.15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이다.
빌 클린턴 때 김대중 대통령이 98년부터 임기가 시작이 돼서
겹치는 4년간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8년이 지나서 (8년까지밖에 안되니)
[공화당] *조지 부시 2세(2001 ~ 2009)가 대통령이 되는데
이 빌 클린턴 재선 앞두고 터진 것이 르윈스키 사건이다.
그래서 르윈스키 사건이 수상한 사건이다.
빌 클린턴이 재선을 앞두고 있을 때
르윈스키 사건이 터져서 클린턴을 쫓아내려 했던 것. 전쟁광들이.
근데 국민들이 빌 클린턴을 선택했다.
대통령을 쫓아내려 했던 스캔들이었는데 극복했고,
재선에 당당하게 된 뒤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애쓰게 되는 것.
- 조지 부시 2세. 9.11 사건과 이라크 전쟁
그다음 조지 부시 2세가 8년 동안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
조지 부시 2세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 9.11 사건이 터진다.
그래서 그 9.11 사건을 근거로 해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을 한다고 어마어마한 빚을 지며
미국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것.
그리고 이때 어마어마한 총기사건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조지 부시 2세 때 총기 사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2009 ~ 현재)가 2009년에 대통령이 돼서
현재까지 되는 것.
미국 대통령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를 비교해서 보니 굉장히 재미있다.
- 공화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유일하게 공화당이 아니었던 전쟁이 트루먼 대통령 때다.
그래서 미국에서 오래된 논쟁이 그것이다. 맥아더와 트루먼.
해리 트루먼이 1953년까지 임기였는데
트루먼이 맥아더 보고 들어와라 들어와라 그랬는데
이 기간 동안 맥아더가 안 오고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래서 미국이 맥아더를 미워하는 것이다. '맥아더 아주 월권을 했다'
그래서 나중에 결국은 강제로 미국으로 송환된다.
거의 강제로 잘리다시피해서 끌려간다.
그래서 한국 전쟁이 53년에 끝나는 것이다.
그 맥아더가 소위 군수산업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군부가 전부 군수산업의 첨병들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 맥아더 때문에 한국이 분단된 것이다.
- 생각이 달랐던 맥아더
한반도가 분단되게 된 원인. 맥아더와 관계되어 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가 2차대전,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태평양 전쟁이 1945년도에 미국의 원폭 투하로 갑자기 끝나게 되면서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패망을 하고
그리곤 '한반도 어떻게 할 것이냐, 일본의 식민지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데 그 당시 연합군이 소련과 미국이 한 편이었다.
그래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맞서싸운 연합군 중에
영국, 미국, 소련이 다 같은 편이었다.
그래서 소련이 북 쪽을 맡고, 남쪽을 미국이 맡은 것이다.
그래서 미군과 소련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의 점령군으로 들어와서 북쪽과 남쪽을 맡은 것.
근데 이 소련은 그 당시 혁명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련은 빨리 한반도에서 빠지고 싶은데 맥아더는 생각이 달랐던 것.
- 미소공동위원회
한반도 독립과 관계되어 있는 국제 회담들이 있었다.
포츠담 선언이니 이런 것들.
그런 것을 하다 나중에 모스크바삼상회의를 하고 결정하는 것이
'미소공동위원회를 만들어서 한반도 문제를 정리해라'
이렇게 넘기는 것이다.
그 미소공동위원회에서 4개월 간 논의를 한 게 무엇이냐
한반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소련은 '자기네는 한반도에 신경 쓸 수 없다. 적어도 3년 안에 빠지겠다.'
그게 소련의 신탁통치안이었고
미국은 '왜 시안을 정하냐. 시안을 정하지 말고 조선이 준비가 되면 독립을 시키자.
1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준비된 상태에서 독립을 시켜야 된다.' 그렇게 주장한다
그래서 그게 4개월 동안 논쟁이 된 것이다.
이게 협상이 안되고 확정이 안되니 결국 이걸 UN으로 넘기기로 한 것.
당연히 국제회의에서는 '소련 안이 맞다. 3년 안에 무조건 빠진다.'
그렇게 가야된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
- 70년 전부터 속여 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45년 12월 28일에 공식 발표가 나는데
발표하기 하루 전 12월 27일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하려고 한다. 미국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
이때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미국은 무기한 신탁 통치고, 소련은 3년 시한부 신탁통치인데
이것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왜곡을 해서 거짓말로 얘기를 하는 것이다.
거짓말의 내용이
소련은 신탁통치안. 미국은 반탁 통치 (소련의 신탁통치의 반대한다)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김구 선생님이 열받아서 반탁운동을 선언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이승만을 중심으로 반탁운동을 주도하려 했었는데
김구 선생님이 반탁을 선언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반탁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
왜냐하면 김구 선생님의 발언이 당시 굉장히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이 반탁을 선언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반탁이 우세가 된다.
그래서 반탁운동을 며칠 했는데 이때 김원봉이나 여운형이나 이런 사람들이 알아보니
거짓말을 알게 된 것.
그때 소련은 시한부 신탁 통치고, 미국은 무기한 신탁통치였다는 것을 알려지게 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좌파들이 찬탁을 하게 되는 것.
소련식 유기한 신탁통치에 찬성한다.
미국의 무기한 신탁통치에 반대한다.
이런 운동을 하게 되는 것.
그래서 이 신탁통치와 반탁 통치로 좌우 대립이 생기는 것.
근데 이것을 뒤에서 밀어주고 주도했던 것이 맥아더였던 것.
- 그때 맥아더가 45년에 일본에 주둔을 하는 것.
일본에 주둔을 하면서 일본의 전범인 왜왕과 전범들을 다 죽였어야 됐다.
다 처벌했어야 됐는데 이 맥아더가 딴 생각을 품은 것.
아마 일본의 군인들이 맥아더에게 풀 서비스를 했겠지.
그래서 이 맥아더가 동북아의 왕이 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국왕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되는데 살려준다. 전범 장군들도.
그래서 일본의 전범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게 된다.
이게 맥아더다. 맥아더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제까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이렇게 시달리느냐.
그게 다 맥아더 때문이다.
그 일본의 전범들을 살려주고 일본에 주둔한 상태에서
한반도를 분단시키는 주범이 맥아더다.
그래서 38선으로 그어놓고 남북이 분단되게 되는.
- 쓰라린 70여 년 질곡의 시작.
결국 48년도가 소련이 얘기했던 신탁통치가 끝나는 해였다.
48년도에는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이 반탁 통치를 했다가 나중에 뭔가 잘못된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이 김구 선생님이 '큰일 났다. 이대로 가면 한반도가 영구 분단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는 것이다.
'절대 단독정부를 수립하면 안 된다. 반드시 통일 한반도를 만들어야 된다.'
김구 선생님이 47년도에 김일성을 설득하러 간다.
그런데 이미 이승만이 46년에 정읍에 가서 처음으로 연설을 한다. 정읍 발언.
'안 되면 남한만의 단독선거라도 해야 된다.' 그 얘기를 맨 처음 발언한 것이 46년
그러면서 맥아더에게 계속 편지를 보낸다.
자기에게 군대를 빌려달라. 그럼 북진통일을 하겠다
북한으로 쳐들어가서 멸공통일. 김일성을 무찌르고 한반도를 통일할 테니
군대를 동원해달라고 계속 편지를 보낸 것이 이승만이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하겠다. 북한으로 쳐들어가게 해달라'
그것을 계속 주장했다. 맥아더에게 충성 맹세를 계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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