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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양이를 찾아서.
게시물ID : panic_89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2222
추천 : 19
조회수 : 129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7/13 0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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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무엇이든 하는 사무실을 연지 석달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이곳이 복덕방인지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무엇이나 할 수 있지만 자격증없는 건 못한다. 당연하지 않나. 군대에서 야매로 해바라기 수술도 해봤지만, 지금와서 그런 걸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왠만하면 병원에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반면에 무엇이든 한다면서 아무 것도 안한다고 투정부리는 사람도 많았다. 정말 오해다. 정말 뭐든지 다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왜 안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한 사람은 30대 중반의 아가씨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서요. 왜 안된다는 거예요.”

또랑또랑 정확한 발성으로 그렇게 말하자 나는 귀찮아졌다. 어서 빨리 보내야 겠다.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울산까지 가려면, 동대구까지 KTX를 타고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해요. 그렇게 왕복을 하면 움직이는데만 하루를 다쓰는 거죠. 교통비, 시간, 숙박비까지 내셔야 한다구요. 그리고 그 큰 도시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장담하겠어요. 비용도 많이 들고, 결과도 안나옵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지만, 뭐든 다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요.”

손님은 바로 답했다. 

“삼일치 출장비를 선금으로 드리고, 고등어를 찾아 오시면 그만큼 사례비로 드리겠어요.”

“네. 출발하겠습니다.”

나도 바로 답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A4지에 “용역 업무로 출장중.”이라고 당당하게 붙였다. 역으로 가면서 교보 문고에 들린다. 고양이 키우기 한 주만에 끝내기, 우리 고양이와 오래오래 살기, 고양이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지내기, 고양이 밥 해결하기. 고양이... 고양이... 잃어버린 고양이 찾기라는 책은 없다. 고양이를 잃어버려서 찾고 싶은 사람들은 없나. 2천원으로 술 안주 만들기같은 책은 수두룩한데 사람들이 술만 마시고 고양이는 안찾나. 길고양이의 생태에 관한 책을 두 권 사서 나왔다. 

울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버터 오징어를 씹으며 고양이의 생태에 대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내가 그 고등어를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마른 입으로 마른 오징어를 씹으니 옆 자리 의뢰인이 짜증을 냈다. 

“좀 조용히 드세요. 기차 전세냈어요?”

“아니. 오징어를 씹을 뿐인데, 시끄러워봐야 봐야 얼마나 시끄럽다고. 오징어를 쫙쫙 씹지. 쪽쪽 씹나. 이런 버터오징어를. 먹고 싶으면 하나 달라고 하던가.”

“저 신경 날카로워요. 5만원 더 드릴테니 먹을 때 짭짭거리지만 마세요. 안그래도 그런 인간 때문에 인생 피곤하거든요.”

여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안대를 하고 누워 버렸다. 나는 버터 오징어를 쪽쪽 빨며 고양이의 생태를 계속 읽어 나갔다. 

고양이는 낯선 곳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기 나와바리에서 왕초 노릇을 하던 고양이도 객지에 나서면 쫄보가 된다. 진취적이지 못한 겁쟁이들인 것이다. 낯선 곳에선 집중력도 떨어지고 패닉에 빠진다. 하루도 고등어와 떨어져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 의뢰인이 면접보러 울산에 갈 때, 고양이를 데리고 간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왜 데리고 갔나요?”
“직장 부근이 과연 살만한 곳인지 궁금했거든요. 강변에서 산책은 하기 좋은지, 항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떤지. 해수욕장 물은 더럽지나 않은지. 태화강변 산책길은 걷기 좋은지. 유니클로 세일 상품은 서울과 같은지.”
“그래서요?”
“고양이가 사는 곳에 예민하잖아요. 까다로운 고등어가 쾌적해하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한거죠.”

의뢰인은 면접을 보러 가면서 고양이 케이지 기능도 하는 앙증맞은 백팩을 맸다. 사용회수는 얼핏 봐도 딱 한번. 우주선 모양의 아크릴 돔이 있는 특이한 제품을 구입한 것이다. 신상을 해외직구한 이후에, 그 쓸모를 찾아 나선 것이다. 신상을 개시하고픈 속마음을 내 앞에서 감출순 없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이 직업으로 먹고 살 수 있다. 그녀의 마음이야 어찌되었든 제법 똑똑한 고등어는 오른발을 뻗어 가방의 후크를 벗겨낸 다음 재빨리 신세계로 뛰쳐 나가 그녀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울산역에서도 번영 사거리까지는 한참 걸렸다. 그곳에서 태화강변까지는 1.4킬로.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다. 그곳에서 방파제 끝까지 뛰어가면 5킬로 정도. 직장을 그곳에 잡으면 조깅 코스로 하려했다고 했다. 강변은 좁아서 고양이가 숨을 구석이 거의 없었다. 

“공단만 있는줄 알았더니, 제법 산책도 할 만하네요.” 
“이 날씨면 춥지는 않을까요.”
“설마요. 고양이가 잘 얼어죽지는 않는데요. 아사할 수는 있어도. 굶어 죽은 다음에 꽁꽁 어는 거지요.”

의뢰인은 해질 때 까지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날씨가 추운게 내 탓이라도 되는 양. 고양이 수색을 하려면 반드시 해가 져야 한다. 낯선 곳에 있는 고양이는 안정이 될 때 까지 구석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은신처라고 생각하는 한 곳에만 있는다. 은신처가 더이상 은신처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버리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영영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발언한 사람은 인터넷의 전설적인 고양이 탐정 김봉규씨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고양이는 잃어버린 곳에서 백 미터도 못갔을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한 녀석들이 아니다. 총총 걸어가는 것 같지만 남들 시야가 없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 바로 눕는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우리는 멀리서 찾으려 애쓴다. 잃어버린 것과 점점 더 멀어진다. 멀어지는 만큼 더 갈구하고, 더 먼곳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파랑새를 찾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길가메시처럼. 답은 바로 코 앞에 있을텐데.

“바로 코 앞에 있을 텐데.”하며 나는 랜턴을 한 곳에 비추었다. 고등어가 그곳에 겁먹은 얼굴로 멍하니 있었다. 고등어에게 두번 물리고, 앞발로 한번 뒷발로 다섯번쯤 긁혀가며 그녀의 신상 백팩에 고양이를 집어 넣었다. 그녀는 글썽글썽한 눈으로 가방을 꼭 안았다. 다치고 아프고 피나는 것은 나인데. 혹시 광견병 같은 거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나 쪽은 쳐다 보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물려도 광견병이 걸리던가. 그래서 내가 물었다.

“뭐래요? 울산도 살만한 곳이라 하던가요?”

그녀는 백팩 입구를 꽉 잠그고 말한다.

“가요. 저녁 먹으러. 여기 오징어 물회가 맛있어요. 저도 오징어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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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번건 공포도 아니고, 괴담도 아닌 것 같죠.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공포스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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