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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이미징> 선구의 시간 cp.2
게시물ID : readers_257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컨빌리
추천 : 0
조회수 : 28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3 07:06:11
처음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어서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는 것도 처음이고
장편을 쓰게 되는 것도 처음이라 뭔가 서투네요.
 
제가봐도
글은 다듬으면 다듬을 수 록 말끔해지고 좋아지는 건데,
시간에 쫓기니 다듬을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고
 
좋은 결과를 얻고는 싶지만 어느정도 이제는 자기만족으로 글을 쓰는 것 같네요.
그나마 제 글을 봐주면서 저와 이야기를 해주는 건 제 여자친구 한명뿐이네요.
여자친구는 글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고 재미를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제가 쓴 글이라고 재밌게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힘을 내게 되네요.
 
혹시 피드백 해주실 점이 있거나, 재밌게 읽으신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보완 하면서 글을 수정해 나가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 혹시나 읽어주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지금에서야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__)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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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징> 선구의 시간 2 - 1
 

 

깊은 우물 안에서 얼마동안 갇혀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이었다가 다시 위로 보이는 둥근 우물 입구에서 나오는 빛이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거머리들이 몸을 감싸고 살갗을 기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것들은 선구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을 떼어내려 애를 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을 그냥 내비 두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우물 밖에서 흘러들어오고 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서 더 이상 칠흑 같은 어둠은 없었다.
 

조용히 눈을 감으니 차가운 바람이 그의 피부에 닿았고, 물은 잔잔하게 그의 몸을 적셨다. 사실 이렇게 우물 속에 갇힌 적이 적지 않았다. 요즘 들어 자주 우물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귀뚜라미 소리와 보름달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모두 느끼고 있을 때 거머리가 몸에서 모든 피를 다 빨아먹어 버리고 삶을 포기하는 그 순간에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언제 한번 이런 적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 그때 꿈이었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을 때 그는 우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꿈에서 그는 날아다닐 수 있었다. 굳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서도 그는 꿈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그는 꿈속에서 활동을 하는 것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언제 한 번 웹툰에 소재로 쓰기 위해 서적도 사서 읽어보기도 하며 실제로 그것을 연습해 본 적도 많았다.
 

그것은 자각몽이었다. 물론 약을 하고 부터는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에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약을 끊은 후로부터는 마치 그동안의 꿈을 한꺼번에 꾸고 있는 듯이 매번 눈을 감을 때마다 꿈을 꾸곤 했다. 그도 웹툰 연재를 멈추고 나서 시간이 많았기에 매번 잠을 자면서 꿈에서 우주를 찾고는 했다.
 

303. 그가 준 메시지를 아직도 선구는 잊지 않고 있었다.
 

우물에서 나올 때 선구는 꿈에서 깨어났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는 노트에 꾼 꿈에 대해 적어놓았다. 혹시나 단서가 될 것이 있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깨고 나서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내용들을 모두 빠짐없이 적었다.
 

노트에 내용들을 모두 적은 후 그는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물을 틀으니 차가운 물줄기가 그의 머리로 쏟아져 내려왔다. 그는 눈을 감으며 차가운 물줄기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휴재를 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필승이 다녀간 후로 삼 일간은 중식의 집에서 술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물론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술을 먹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인이 선구에게 눈치를 주고 나서부터 그는 집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자주 빠졌다.
 

더럽다 더러워. 라고 말하며 중식에서 엿을 날려주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물론 서운한 감정도 있긴 했지만 오히려 말끔한 정신으로 생각에 잠길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이게 고객님의 재산 목록이었습니다.”
 

형의 변호사가 찾아온 것은 불과 하루 전 일이었다. 그는 재산 상속의 문제로 최우선 상속인이자 유일한 상속자였던 나에게 찾아왔다.
 

이미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와서 알려주고 갔는데요? 이미 다 확인해 봤습니다.”
 

난데없이 찾아온 변호사가 심기를 거슬리게 했지만 조용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마시는 차 한 잔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화를 내지는 않고 조용히 변호사가 건네준 서류들을 받았다.
 

. 그건 우주 씨가 재산등록을 했던 목록들이구요. 이건 그 분이 따로 등록을 하시지는 않았던 목록입니다. 자신이 만약에 사라지면 동생인 선구 씨에게 이 목록들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선구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봤다.
 

“5년이면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그가 떠난 지 벌써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선구는 조용히 화를 참아보려고 했지만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조용했던 카페 안의 분위기는 이내 조금은 달궈지고 있었다. 다행히 손님은 많지 않았고 선구의 목소리도 다른 손님들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었다.
 

이쪽에서도 그 분께서 남기고 가신 게 많았던 터라. 정리할 것이 많았습니다. 법적으로 꽤 이슈가 됐던 사건이기도 했구요. 유명인사셨잖습니까. 고객님 자체가.”
 

유명인사건 뭐건.”
 

그는 무언가를 더 따지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변호사의 표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선구는 더 이상 화를 내도 이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눈치 챘다.
 

일단 보시죠. 그 중에 수원 쪽 별장이 그 분께서 자주 이용하셨던 곳입니다.”
 

수원이요?”
 

변호사가 손으로 가리킨 쪽을 보니 별장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외에도 은행의 개인금고나 그런 잡다한 것이 있었지만 선구는 별장을 보고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순간 생각했다.
 

이곳에 가야한다.
 

확인 하셨으면 이 곳에 사인을 좀.”
 

.”
 

선구는 빠르게 사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제가 할게요.”
 

몇 번의 배려에도 변호사는 완고하게 거절했다. 변호사가 카운터에서 카드로 계산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집에서 형의 별장을 가기위해 준비를 했다. 며칠을 머무를지 모르기에 옷가지들을 캐리어에 챙기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10조의 자산가임에도 그는 형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작은 소형차를 몰고 다녔다. 그가 처음 웹툰작가가 되었을 때 마련한 노란 소형차. 키로 수는 아직 8년이 된 차임에도 2000을 넘기지 못했다. 스토리 관련 작은 영화화 계약이나 웹툰 회사로 찾아가 연봉협상을 할 때 빼고는 거의 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차는 아직도 깨끗했다.
 

오토키로 차문을 열고 들어가니 뒷 자석에 예전에 써놓은 시놉시스가 적힌 종이들이 어지럽혀 있었다. 운전석 앞에 있던 라벤더향 방향제는 이미 다 떨어져 더 이상 향기를 내뿜지 않았다. 그는 캐리어를 조수석에 올려 두고 운전석에 앉았다.
 

짧은 심호흡을 하고 안전벨트를 매니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드디어 형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다.
 

운전대를 잡고 네비게이션을 켰다.
 

그렇게 먼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조금은 신나는 음악을 틀며 출발했다.
 

* * *
 

차가 많지 않은 오후였다. 인공 태양이 아닌 진짜 태양 빛은 따갑게 느껴졌다. 왼손에 찬 가죽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서울이었던 원룸을 나와서 수원에 도착하는 데에는 한 시간도 체 걸리지 않았다. 시내를 넘어 조금은 변두리에 그의 별장이 있었다. 우거진 산 속은 아니었지만 주위에 건물들이 보이지는 않는 곳이었다. 논두렁을 지나면서 바퀴가 많이 지저분해지고 진흙도 튀어 여기저기 묻었지만 선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위에는 어린 시절 그와 형이 자주 놀던 상수리나무 숲의 그것과 같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여름이라 매미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듯 했다. 인공태양이 발명되고 서울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어려웠지만 아직 이곳에는 조금은 살아있는 듯 했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내려오고 그 햇빛 아래 단 하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별장은 마치 선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 하는 느낌이었다.
 

별장은 참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오두막집이었다. 원목을 깎아서 만든 형태가 아닌 통나무로 벽을 장식한 올드한 느낌의 집이었다.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한 탓인지 주위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집의 하부에는 버섯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는 잠시 주위를 살펴봤다. 오두막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안이 원룸이라면 약 10명 정도가 안에서 누워서 잘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고 밖에 있는 베란다처럼 생긴 창가 쪽으로 안이 보였는데 안은 두 개의 방으로 되어 있는 구조처럼 보였다. 창가로 보인 곳은 우주의 서재처럼 보였다. 습기가 차서 안쪽에 곰팡이가 슬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바퀴를 둘러 봤지만 다른 뭔가가 있지는 않았다. 그냥 잡초가 무성한 곳에 시멘트로 대충 덧대어 있는 수돗가와, 녹슬어 버린 도끼가 널브러져 있는 장작을 패는 그루터기, 그리고 차를 두 대 정도 댈 수 있게 만들어진 평지가 전부였다.
 

선구는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갔다.
 

오두막의 문은 다행히도 잠겨있지 않았다.
 

 

 

 

 

 

 

 

 

 

 

 

 

<이미징> 선구의 시간 2 - 2
 

뜨거운 햇살이 살갗을 괴롭히는 바깥과는 달리 오두막 안은 에어컨이 없는 데도 꽤나 시원했다. 밖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안은 인적이 없는 집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형이 실종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가 사라진 후 오두막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 같이 안에는 몇 군데 곰팡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미줄도 없이 깔끔했다. 물론 숲 속에 있는 집이라 바닥에 여러 곱등이나, 쥐며느리 같은 벌레들은 있었지만 적막한 공기는 아니었다. 그는 커다란 안방을 둘러보다 안방의 끝에 있는 건조대 쪽에 눈이 갔다.
 

그곳에는 빨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옷들이 걸려있었다. 옷은 사이즈가 작았고, 브래지어나 팬티를 보면 여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의 스타일이나 사이즈가 거의 한 종류였기 때문에 집에 있을 사람은 한 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이제는 조용히 서재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형이 읽던 두꺼운 서적들과 형이 쓴 여러 논문들이 보였다. 책꽂이에 꼽혀 있는 책들에서는 숲 속에서 나는 나무 향기와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났다. 오랜 책방에 들어가면 책들 사이에서 세어나오는 책의 냄새. 그것을 맡으면 그는 머릿속에서 숨어있는 기억을 종종 떠올릴 수 있었다.
 

선구는 갑자기 떠오르려는 사념을 다시 멈추고 책상 쪽으로 돌아섰다. 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에는 여러 논문들과 누군가의 메모들이 즐비하게 어지럽혀있었고, 바로 그 옆에 명함하나가 보였다.
 

- 새천년 교회 -
- 때가 왔다. 구원의 시대가 도래 했다. -
 

그는 명함을 들어 뒤편을 봤다. 인쇄로 쓰여 있는 앞과는 달리 뒤편에는 누군가의 필체로 쓰여 있었다.
 

신의 심판이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선구는 그 명함을 조심히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 사이에 집어넣었다. 심장이 뛰었다. 명함의 색이 바랜 걸 보니 최근에 받은 것은 아닌 느낌이 들었다. 이 교회에서 만약에 이 메시지를 보냈다면 분명 그의 실종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천년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이 된 뒤에 갑작스럽게 그 개체수가 늘어난 계파였다. 그들은 원래 대한 장로교에 속해 있었으나 혼란한 사회의 틈을 타 좀 더 급진적이고 계몽적인 모임으로 빠져나와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신도들을 보유한 곳이 되었다.
 

그들은 실종에 대해 재앙이 아닌 구원이라고 믿었다. 신께서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방주에 사람들을 실어버린 것이라고 그들은 이야기 했다. 그리고 가족들을 잃은 아픔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그런 말에 오히려 더욱 믿음을 주었다. 그들이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다면 그들의 그런 슬픔이 조금은 작아지게 되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그런 구원이라는 말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오히려 너 나 할 것 없이 구원을 해달라고 기도하고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우주가 사람들이 실종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한 것은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이라도 해낸 다면 지금껏 신도들에게 했던 모든 신앙의 언어들이 그저 미친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간언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이 진화를 했다는 것도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부류였다. 이것은 바로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실종 사건이고, 진화는 이미 오랜 시간 시간이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선구는 신의 심판이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라는 문구를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그리곤 서재를 나와 다시 안방으로 걸어갔다. 집에 인적이 있는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오래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형의 집에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왔던 흔적들을 지우면서 오두막을 나왔다. 그리곤 다시 차를 몰아 숲 속 깊은 곳으로 몰아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으로 운전을 해서 들어갔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자갈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지만 숲 속의 나무들이 그것을 막아줄 거라 생각했다. 소형차는 아주 대담하게 험한 숲길을 해쳐나갔다.
우물가에 도착했을 때 선구는 그곳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바라보니 그곳에만 특이하게 하늘을 나무들의 이파리가 막아서지 않는 곳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이 햇빛을 아래로 내려 쏘고 있었다.
 

그는 우물을 보며 그동안 꿈에서 그가 갇혀 있던 그것을 떠올렸다. 어두컴컴한 우물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봤던 그곳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니 그는 조심스럽게 우물에 다가갔다.
 

우물은 화강암을 깎아 벽돌처럼 쌓아올린 턱이 있었다. 물을 끌어올리는 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깊은 우물만이 그 자리에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턱을 잡고 안을 바라봤다. 어두컴컴한 안은 햇빛이 세어 들어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검게 보이는 물에는 태양이 둥둥 떠 있었고 그의 얼굴도 물에 비쳐 동그랗게 있었다.
 

그는 땅에 있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돌을 우물에 떨어트렸다. 돌은 물에 빠지며 퐁당 하는 소리를 냈고 수면이 흔들거리고 동그란 파동을 만들어 태양을 잠시 동안 뒤틀어 버렸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의 꿈과는 다르게 그 우물 안에 갇혀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반짝 거리는 빛과 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반짝이는 것이 태양에 비친 수면이라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마치 하얀 모래 백사장에서 모래알들이 빛나는 것과 흡사했지만 선구에게 그건 그렇게 중요하게 와 닿지 않았고 단지 그 안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발길을 돌렸다.
 

그는 우물가로 왔던 길을 이제는 도보로 되돌아가 갔다. 오두막에 누군가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았기에 숨어서 그 누군가를 볼 심산이었다. 여자라는 것을 거의 확신했기 때문에 무력으로 제압하면 쉽게 정체를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물론 여자와 누군가가 더 있다면 위험해 질 수 있었기에 그 누군가가 오기 전에 숨어서 그것을 관찰하는 작전을 세웠다. 다행히 커다란 상수리나무들은 그의 몸을 숨기기에 적합했고 30분정도를 걸어가니 다시 오두막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오두막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마치 군대에서 포복을 하는 듯한 포즈로 조용히 엎드렸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오두막을 바라보며 그는 지갑에서 다시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보낸 곳은 여의도에 있는 새천년 교회의 중앙 교회였다. 어째서 이것이 형의 오두막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는 꼭 밝혀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히려 정처 없이 떠난 여행에 이정표가 생긴 것 같아 그는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이제부터 그는 그의 앞에 있는 길을 따라 그저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주위에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뿐이었다. 다시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는 오후 세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는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숲속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워지기 전에 그 여자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바스락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자 순간 팔로 엎드려 있던 몸을 세워 뒤를 돌아봤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예리한 바늘 같은 것이 그의 목을 쑤시고 들어왔다. 척추가 뜨거워지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순간 다리를 전기톱으로 자른 것처럼 아무런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곧바로 선구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눈에는 흙이 많이 묻어있는 운동화만이 보였다.
 

 

 

 

 

 

 

 

 

 

 

 

 

 

 

 

 

 

 

 

 

<이미징> 선구의 시간 2 - 3
 

우주가 사라지기 전 언제 한번 선구는 우주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통화 음질은 그렇게 좋지 못했고 지지직 하는 잡음이 들렸지만 오랜만에 그와 하는 통화여서 그는 기쁘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4차원이 뭔지 아니?”
 

우주의 말은 또박또박하게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시간이잖아. .”
 

바보인 줄 아냐는 식으로 선구는 바로 답을 했다. 아무래도 우주는 직업상 과학자였기에 그런 면에서 좀 더 빠삭한 면이 있었지만 선구도 공상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만화에 자주 쓰이는 소재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5차원은?”
 

. 5차원부터는 내가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그리고 사람마다 말도 다르고. 뭔데 형.”
 

그의 말에 우주는 잠시 뜸을 들였다. 전화기에는 미세한 잡음만이 들리다 이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세상의 질서를 만드는 게 뭐라고 생각해 너는?”
 

... ?”
 

“5차원이 바로 그 질서를 만들어주는 거야. 우리가 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이 세상의 질서를 만드는 거지. 빛에는 어둠이 있고, 양에는 음이 있고, 암컷에는 수컷이 있고, 중력에는 반 중력이 있고, 세상은 하나의 작용만 있는 게 아니야. 그 반대편에서 그것의 조화를 만들어주는 게 있다고. 그게 바로 5차원이야. 밸런스(Balance) 차원.”
 

어렵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는 알기 쉽고 흥미롭다. .”
 

그렇지?”
 

***
 

머리가 지끈 거렸다.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팔과 다리가 의자에 완벽하게 결박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선구는 자신이 오두막의 안방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바로 금방 전에 이곳에 들어왔었기에 그는 주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가랑이에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아마 아까 쓰러지면서 오줌이 세어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뒤쪽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충분히 돌아가지는 않았다.
 

당신 누구야. 당신이 왜 이 명함을 들고 있지?”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마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일 거라 선구는 생각했다. 그녀의 손에는 그가 잠시 꺼내서 보고 있던 새천년 교회의 명함이 들려있었다. 선구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 길래 제 형의 별장에 있는 거죠?”
 

그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형이라는 말에 당황해 하며 한자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에 빠졌다. 선구도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이 박사님의 동생이라고요?”
 

그녀는 결국에는 그의 앞으로 이동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전혀 닮지 않았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흉악한 사이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결박된 왼쪽 다리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제 형 이름은 이우주. 제 이름은 이선구. 형이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나요? 제 이쪽 주머니에 지갑이 들어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가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허둥대는 그녀의 인상착의를 익힐 수 있었다. 그녀는 160 정도의 키에 붉은 빛을 내는 머리칼을 갖고 있었다. 머리는 단발이었지만 산속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았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서 검게 타있었고 반팔을 남방을 입어 밖으로 보이는 팔뚝은 빨갛게 그을려 있었다. 바지와 남방은 마치 사파리에 있는 공원의 직원처럼 베이지색의 양복재질로 된 옷이었고 신발은 쓰러지기 전에 봤던 것처럼 흙들이 많이 묻어있는 파란 운동화였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지다 가까이 다가와 그의 왼쪽 엉덩이 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선구는 그녀가 쉽게 지갑을 가져갈 수 있도록 엉덩이 쪽을 살짝 들었고, 바로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는 그에게서 바로 거리를 두고 도망쳤다. 다행히 그녀의 손에는 그의 지갑이 들려있었다.
 

끄으..”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로 바닥에 부딪혀 선구는 짧은 신음을 냈다. 머리의 고통이 뒷목으로 전해져 손으로 잡고 싶었지만 결박은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충격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 쪽을 바라봤다.
 

일단 저를...”
그는 자신을 세워 달라고 말하려 했으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지갑에 있던 신분증을 꺼냈다.
 

이선구. 분명 박사님이 이야기 하신 적이 있어요. 웹툰을 그리는 동생이 있다고.”
 

지갑에 제 명함도 있어요. 그 걸 보시면.”
 

그녀는 그의 말을 다 듣지 않았다. 곧바로 지갑을 뒤져 명함을 빼냈다. 그곳에는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웹툰 작가라는 표시가 있었다.
 

이제 확인이 됐으니 절 풀어 주세요.”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먼저 그의 의자를 바로 세워줬다. 아직까지 결박을 풀어줄 생각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요. 왜 이곳에 찾아왔죠? 박사님이 사라진지 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녀는 따지듯이 선구에게 쏘아붙였다. 선구는 손목이 아파오고 다리가 저려와 순간 짜증이 나서 그녀에게 똑같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려면 일단 당신이 누군지 저에게 말을 해줘야 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 이 걸 풀어주지 않는 다는 것 까진 제가 이해할 수 있어요. 당신이 절 못 믿는다는 것도 제가 이해 할 수 있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당신의 뭘 믿고 말을 해야하는 거죠?”
 

물론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야하는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목에 칼을 들이밀고 이유를 이야기 하라고 하면 끝인 일이었다. 선구도 말을 하면서 아차 하는 심정이었지만 그녀가 무슨 악당이나 킬러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자신을 보고 당황해하고 겁을 먹을 필요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주머니를 뒤적였다. 주머니에서 파란 담배갑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바로 그 담배갑을 열어 담배하나를 꺼내 물었다. 손이 미새하게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지만 선구는 그저 바라만 보기로 했다.
 

그녀는 얇고 긴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빨간 부싯돌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바로 담배에 불이 붙었고 그녀가 한 입 크게 빨아들이자 빨간 불똥이 빠르게 대를 따라 타들어갔다. 그녀는 눈을 잠시 감고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레네 에요.”
 

선구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박사님의 조수이자, 아모르(amor)였어요.”
 

아모르?”
 

이레네의 말에 선구는 아모르 라는 말을 생각해봤으나,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여인이었습니다.”
 

선구는 머리가 다시 지끈거려왔다. 형은 자신에게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여자에 관한 건 선구의 전문 분야였지 형은 그저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를 원하는 구도자였을 뿐 단 한 번도 사랑에 관한 것에 흥미를 두지 않는 타입이었다. 때문에 이레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선구의 말에 이레네는 베이지색 반팔 남방의 가슴에 있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 사진이었다. 항상 몸에 갖고 다녔는지 색이 조금 바래버린 사진 안에는 강에서 유유히 움직이는 카누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이레네와 무언가를 응시하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우주의 모습이 있었다.
 

믿고 말고는 당신의 선택이죠. 이제 제가 물을 차례에요.”
 

 

 

 

 

 

 

 

 

 

 

<이미징> 선구의 시간 2 - 4
 

 

언젠가는 형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겐 하나뿐인 가족이었어요. 처음에 형이 실종됐을 때 경찰에 연락도하고 국제 실종 대책 위원회에 부탁도 해봤어요. 말이 안 된다고, 형이 사라진 게 다른 사람들의 실종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믿을 수 없었죠.”
 

이레네의 질문에 선구는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바라볼 수 있는 쪽의 벽에 기대어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형이 그동안 저에게 해줬던 말들. 그리고 사람들이 실종되어 가는 것에 대한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형이 말하고 싶어 했던 밝히고 싶어 했던 진실들을 제 딴에는 어떻게든 이어가보겠다고 했지만 막히고 말았죠. 그러다 이곳에 대한 단서를 찾았고, 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오게 된 거에요. 물론 이렇게 꽁꽁 묶인 상태가 되었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결박된 것을 가리켰다. 그녀는 그런 그의 행동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체 다시 질문했다.
 

그 명함은 왜 갖고 있어요?”
 

새천년 교회?”
 

.”
 

아까도 말했잖아요. 전 형의 실종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형을 납치했다고 생각 한다 구요. 그래서 명함을 가지고 가려고 한 거에요. 이곳에 가서 따지려고.”
 

선구의 말에 이레네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소용없어요. 제가 이미 그곳에 가봤어요.”
 

소용없다니. 무슨..”
 

그녀는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처음에 그곳에 가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었어요. 처음에 그들은 저의 그런 행동을 보며 비웃었죠. 물론 제가 박사님의 여자라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한 달을 넘게 그렇게 교회 앞에서 시위를 하니 그 망할 놈들이 저를 쫓아내려고 했어요. 경찰들을 동원해서, 그 명함의 주인인 김원균이라는 사람은 얼굴도 볼 수 없었어요. 그들은 마치 제가 나쁜 사람이라는 듯이 취급했어요. 법적으로 잡아간다느니 어려운 말을 막 하면서 저를 밀치고 피켓을 부시고..”
 

이레네는 두 손으로 양팔을 감싸며 덜덜 떨었다. 담뱃재가 서서히 타들어가 반쯤 생겼을 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포기했나요?”
 

아뇨. 그때 그 김원균이라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저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죠. 하나님의 은총 어쩌고 지껄이면서.”
 

선구는 그녀의 말을 조금 더 가까이서 듣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귀에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를 풀어주시고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죄송해요. 그건 안돼요. 당신을 아직 믿을 수 없어요. 완전히는.”
 

그녀의 한국어 말투는 조금은 어눌했다. 얼굴을 봐서는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는 결박을 풀어주는 것에 대해 체념을 하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바지에서 스믈스믈 올라오는 지린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씻을 수라도 있게 해주세요. 바지라도. 냄새 때문에.”
 

역시나. 오리나(orina) 한 거죠? 뚜스(tus)!”
그 오리난지 뭔지가 오줌이라면 맞아요.”
 

그는 그녀가 무척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 좀 씻게 해주세요. 사람 이렇게 기절시켜서 오줌 지리게 만들어 놓고 이런 식으로 묶어 두시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그의 말에 일어나 허둥지둥 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기요!”
 

선구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해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속으로 도망친 건 아니겠지. 무슨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레네는 곧바로 어디서 받아놓은 것인지도 모를 커다란 대야 하나를 들고 그에게 왔다.
 

저기. 저기요. 이레네씨. 설마
 

죄송해요.”
 

그녀는 단 한마디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는 곧바로 대야를 번쩍 들어 그의 아랫도리에 힘껏 부어버렸다. 물이 지린내가 진동하는 그의 바지에 철퍽 엎질러지고 순간 그의 온몸과 얼굴에 튀기는 중에도 그는 다행히 얼굴에다는 안 뿌렸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차가운 물을 갑작스럽게 부어버리니 순간 깜짝 놀라 다시 한번 오줌이 찔끔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화도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묶여있는 건 을인 자신이었고 갑은 바로 앞에 있는 이 여자였기 때문에 그는 그냥 조용히 생각했다. 다시는 풀어달라고 하면 안 되겠다고. 이 여자는 도저히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여자라고.
 

푸우.”
 

그는 입에 들어간 물을 뱉어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 김원균이라는 사람. 목사잖아요. 그것도 그 교회에서 제일 높은.”
 

. 맞아요.”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요?”
 

이제는 지린내는 더 이상 나지 않았지만 산속이라 그런지 깜깜해진 바깥의 날씨에 몸이 으슬으슬 춥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일단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별말은 없었어요. 제 정체가 뭔지 알았어요. 그 사람. 제가 박사님. 여자라는 걸요.”
 

어떻게 그걸?”
 

저도 잘은 몰라요. 다만 그는 저에게 말했어요. 자기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자기가 자비를 베풀어 당신을 체포하지 않을 거라고. 돌아가라고 했어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곳에 돌아왔어요. 박사님의 흔적을 버릴 수 없어서. 이곳에서.”
 

포기하지 않은 거예요. 당신은. 이곳에서 형을 기다렸잖아요.”
 

그녀의 눈은 더 이상 눈물을 머금고 있지 않고 와락 쏟아버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묶여있다는 사실에 곧 포기하고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물론 묶여있는 자신의 처지가 그녀의 처지보다는 더 안쓰러운 상황이었지만 내색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저 차갑게 스며드는 밤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그녀를 쳐다볼 뿐.
 

웹툰은 그림동화 같은 거죠? 애니메이션 같은.”
 

이레네는 콧물을 훌쩍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 맞아요. 애니메이션 같은 거죠. 인터넷에 올린 거예요.”
 

박사님의 이야기 해줄게요. 당신이 원하는 것. 웹툰이라는 거에 그릴 수 있도록.”
 

정말요?”
 

선구의 눈이 번뜩였다. 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일단. 저 씻을 게요. 너무 찝찝해서.”
 

저기요. 잠시. 말을 해주고 씻으세요. 아니면 저를 풀어주시던가.”
 

이레네가 일어나서 그의 등 뒤로 걸어가자 그는 황급하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순간 목뒤가 소름이 끼쳐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고개는 바로 뒤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씻어야겠어요. 그래야 말할 수 있어요. 당신한테.”
 

그녀의 손에는 중형 라이플처럼 생긴 마취총이 들려 있었다.
 

. . . 씻어요. 방해하지 않을게요.”
 

아니에요. 저 씻는 동안 당신은 주무시고 계세요.”
 

? 잠깐만요!”
 

그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향해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디오스(adios)."
 

분명 보고 있지 않을 때 그것을 맞았을 때는 아픔 보다는 깜짝 놀란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두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그것을 맞으니 고통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레네는 조준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그의 쇄골 바로 아래쪽의 살에 깊숙히 바늘이 꽂혔고 마치 살을 째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그는 다시 오줌을 질질 싸면서 기절을 해버렸다.
그녀는 쓰러진 선구의 볼을 오른손으로 찰싹 두 번 정도를 때리고는 완전히 기절한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옷을 벗어내렸다. 160센티의 어느 정도 아담한 키와는 다르게 볼륨감과 허리의 잘록함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몸이었다.
그녀의 검게 그을린 팔과 다리와는 다르게 옷에 가려져 있던 속살은 매우 뽀얗게 보였다.
 

그녀는 다시한번 선구의 고개를 흔들고는 몸을 씻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선구의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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