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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잡다 좀비영화 찍은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635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뭘더바래
추천 : 5
조회수 : 108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7/14 14:51:54

본인의 글이 어제 베스트에 처음 가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음슴체.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278124&s_no=1278124&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343985



특공대로 자대 배치받고 나서 난 누규? 여긴 어디? 하는 멘붕 속에서도

멘탈의 끝을 잡고 있는 내가 더 이상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음.

그런 와중에 그래도 편하고 배부르고 등 따숩게 지낼 수 있었던 건 내 아버지 덕분인데,

그 분은 별명이 '개구리'인 갱상도 출신의 병장 2호봉이었고

꽤 꼬인 군번이었기 때문에 아들을 늦게 받게 되어서인지 나한테 엄청 잘 해주었음.

엄할 땐 엄하고, 잘 가르쳐주고, 먹을 거 잘 챙겨주고...

물론 장난은 좀 심하긴 했지만.



쨌든 그랬는데, '개구리'의 아들이 되었기에, 나는 당연히 '올챙이'라고 불림. -ㅁ-;;;;;;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본인도 외모와 상관없이 나처럼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된 것이었음...

본인의 아버지가 제대하면 개구리로 올라가는 다단계 시스템인 것임.

도대체 몇 대째 내려온 족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차후 내 아들도 올챙이가 되었고...

아마 지금도 그 부대의 누군가는 개구리고 올챙이일 것임. 백퍼. 조낸 뫼비우스의 띠임.



"야 올챙아~"

"이병 XXX!"

"이 새끼 이거 피죽도 못 먹었나...니 북한군이가? 일루 와봐라...

니 이래 갖고 언제 뒷다리 나오고 앞다리 나오고 개구리 될끼고? 따라 온나"



본인은 입대 전 179에 54키로였음.(지금은 햐...)

신검 전 5키로만 빼면 면제각이라며 2달 내내 술로 달리고 매일 토를 하고 가로등과 춤을 추었지만,

술도 칼로리가 있는지라 제로썸 게임이었음...ㅠ.ㅠ

이런 빼쩍 꼴은 내가 특공대로 왔다는 것이 더 멘붕이었음.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건강상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고,

틈만 나면 PX를 데려가 냉동을 흡입시킴.

본인은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아 짬도 입에 착 붙어서 밥도 엄청 많이 먹을 때였음.

단지 바닷가 출신 엄마의 영향으로 생선 위주의 식단에 적응된 난 고기를 거의 못 먹었음.

특유의 고기 잡내가 싫었고 소나 닭은 배고픈 군바리니 먹었는데 돼지고기는 쳐다도 안 봄.

그러다 보니 고참들 보기에 애새끼가 그 맛있는 돼지고기는 입도 안 대면서

밥은 산더미처럼 받아 와서는 똥국에 말아서 후루룩 잘도 쳐먹으니 신기했을 것임.



그렇게 한두달의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조금씩 적응해 나갈 때쯤이었음.(두둥)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했나 암튼 중대가 회식을 하게 됨.

(말이 체육대회지...훈련임 훈련... 종목이 ㅎㄷㄷ함. 군장메고 이어달리기 같은 거...)

참고로 특공대는 한 소대가 13명이 완T/O임. 소대장, 부소대장(부사관) 포함.

지금도 부사관은 모자란 형편이니 그 때는 뭐...

그리고 늘 T/O보다는 1~2명씩 부족했기에 보통 한 소대가 10명 내외였고

일반 4소대 + 지원화기(60미리 박격포) 1소대 합쳐 한 중대가 50명 내외였음.



우리 인사계(우리는 왠지 행보관이라 안 하고 인사계라고 불렀음)는 대대 내 선임이었고

우리대대는 독립대대라 꽤 후리한 여건에서 생활했음.

즉, 회식도 윗 눈치 안보고 맘대로 할 수 있었던 것임.

우리 인사계는 이 곳 포천에서 군생활을 오래 한 터라 주변에 형, 동생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근처 아는 형님네 돼지 목장에서 돼지 한 마릴 헐값에 받아왔음.



"야 당직. (병장 XXX, 빠르고 조용하게) 우리 중대에 정육점 집 아들 있냐?"

"네 있지 말입니다. 무슨 일 땜에 그러십니까?"

"요번 회식 때 돼지고기 파티 할라고...걔가 돼지 잡을 줄 아나?"

"함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잠시 후) 몇 마리 잡아 봤답니다."

"그래? 잘 됐네. 그러면...아니지 우리가 지금 이등병이 몇 명이냐?"

"......14명 정도 되지 말입니다."

"걔네 니가 보기엔 어떠냐? 잘 하고 있냐?"

"뭐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애기들이지 말입니다. 잘 가르쳐야지 말입니다."

"그러면 말이야..."



인사계의 계획은 이러했음.

아마도 회식비용 영수증은 가라로 처리하고 산 돼지를 직접 잡아서

남는 돈을 슬쩍하려고 했을 것임.

다행히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할 전문인력도 있겠다...

단지 명분이 필요했을 것임. 이런 귀찮은 일을 벌이는 것에 대한 명분.

육사 출신의 승진에 눈이 멀은, 1등 중대에 집착을 보이는 중대장을 설득할 명분.

그래서 이등병들 정신교육을 위한 핑계를 대고 회식날 돼지를 잡기로 함.

하지만 돼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14+1(전문인력)=15명이나 투입할 순 없었으므로

서울경기권 뺀질이를 골라내게 됨.



그리하여 나는 돼지암살작전에 투입되게 되었음.

금요일에, 훈련도 열외되고 취사장 한 켠으로 보내짐.

(이 땐 좋았다...이제부터 헬파티가 펼쳐지는 줄도 모르고...)

그 곳엔 쇠말뚝에 묶여진 튼실한 돼지 한 마리가 있었음.

평소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기에 이렇게나 큰 것인가 하고 놀랐음.

암튼 한 명의 전문인력에 의해 작업은 진행됨.



"일단 말이여~돼지는 말이여~앞발 뒷발 다 묶어. 앞발 둘 묶고~ 뒷발 둘 묶고~

그 담에 말이여~옳지. 일단 뜨거운 물을 한 솥 팔팔 끓여. 나중에 털 벗길 때 필요한께.

에 또...그리고 이 함마로 돼지 정수리를 빡~후려쳐서 기절을 시켜야.

그리고 이 식칼루다가 거시기를, 멱을 따는 것이재~

그라고는 돼지 피가 좀 빠졌다 할 때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솔솔 끼얹음서

돼지 껍데기에서 털을 식칼로 살살 밀면 다 벗겨져...일케 하는 것이제~

근데 말여~인사계님이 이거 꼭 니네 뺀질이들 시키라고 신신당부 했단 말여...

니들 얼굴도 희여멀건해갖고 삽질도 부실하고 정신교육 시켜야 된다꼬 말여...

내는 나중에 부위별로 각을 뜰랑께 잡는 건 니들이 해야 되는 거여...알겄냐?"



시방 일이 워치케...아니 지금 일이 어떠케 돌아가는 것인지...

돼지를 잡으라고? 살아있는 돼지를?

정육점 아들 선임만 믿고 따까리나 좀 해주면 되나 싶었드만 이게 뭔 ㅈㄹ이여...

아...서울 출신 손 들라고 할 때 실은 강원도서 7살때까지 살았드래요~할 걸...

아무튼 난감한 우리를 뒤로 하고 작업 준비를 마친 선임은 업무분장을 한다고 함.



"니들...누가 멱 딸겨? 정해야제? 누가 할겨?"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음. 이 때 갑자기 내 잔머리 풀파워 가동됨.

경험은 없지만 다리 묶는 거, 털 벗기는 게 쉬워 보이고

오함마 치는 거랑 멱 따는 건 어려울 거 같음.

근데 또 맨 첨에 손들고 제가 다리 묶는 거 하겠슴돠! 하면 넘 뺀질댄다고 찍힐 테고...

그래서 내가 젤 먼저 손 번쩍 들고 제가 오함마 들겠슴돠! 하고 내지름.

이것도 하긴 싫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적의 목을 따는 최악의 사태는 면하는 것이니까...

다들 뭥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나의 작전을 눈치채고 머리 제법 썼는데 하는 표정이 됨.

그 뒤론 뭐...눈치 게임 벌이느라 아무도 안 나서서 선임이 업무분장을 지시.



여튼 일은 착착 진행되어 앞발 꽁꽁꽁~ 뒷발 꽁꽁꽁~ 묶인 불쌍한 돼지괴뢰군이 누워 있고

그 앞에 나는 오함마를 들고 서 있었음. ㅆㅂ...

암튼 선임은 정확히 정수리를 노려서 씨게 치라고 했고 난 한낱 가녀린 이등병일 뿐이고...

나름 세게 친다고 쳤는데 한 방에 될리가 있겠음? 돼지는 꽥꽥~ 나는 엉엉엉엉엉엉~



"얌마~올챙이~ 시방 장난허냐? 뭐 돼지 안마허냐? 씨게 안 치냐?

씨게 잽싸게 후려줘야 쟤도 편하고 니도 편하고 우리도 편하지 않겄냐?"

세 방, 네 방쯤 후려 쳤을 때야 비로소 돼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기절한 듯 보였음.

'이제 내 할일은 끝났다...전우들이여... 고생하시게... 나 먼저 가네...'

하는 마음으로 나는 탈진하여 구석으로 가 찌끄러짐.



운도 없게시리 젤 얼굴이 하얗고 뽀얀 터로 멱잡이로 당첨된 내 한달 고참은

더욱 유난히 창백해져서 오히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흰 얼굴이 보라빛으로 물들어 감.

쨌든 인사계는 좀 유난스러운 사람이므로 일은 빨리 정확히 끝나야 했음.

식칼을 손에 들고 터벅터벅 걸어간 선임은...긴 한숨과 몇 번의 심호흡을 하더니

예상 외로 빠르게 돼지 멱을 공략함. 올~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나 봄.



"야야...잘 쑤셨구마이~ 이이~ 마저 마저...좀만 더...잉 그만~됐어야~

쫌 들 들어갔나? 뭐 끊어졌겄재...내도 실은 멱은 따 본적이 없어서잉~(에? 나니?)

아따 올챙이랑 니들 둘이 일 다 했구마...이게 젤 어려운 거여...잘 했어들~

이제 피가 좀 빠져부려야 고기가 맛낭께 담배 한 대 피믄서 쉬고 마자 하자고"



담배를 피며 마치 영웅처럼 자랑스럽게 오함마질과 멱 딴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갑자기 꽥~꽥~하는 소리에 놀라 취사장으로 부리나케 들어 옴.

돼지가 앞발은 풀려서 뒷다리를 질질 끌며

공포영화의 괴물같은 소릴 내며 발버둥 치다 앞발로 일어나서는

앉은뱅이 맨치로 기어다니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목에서는 피가 철철~우리도 정신이 탈영하여 위수지역 이탈하고...

정육점집 아들이라 죽은 고기덩어리들만 상대해 봤던 선임은

이런 상황은 첨이라 뭐 우리랑 똑같은 상황이고...

워킹데드나 28일후에 나오는 좀비처럼 문뜩 우리를 한 순간 쳐다보다

다시 꽥꽥~~그렇게 울음소리가 구슬프고 무섭고 기괴할 수가 없음...

뒷다리는 그나마 꽉 묶어 놔선지 안 풀렸는데 안 그랬음

그 돼지가 사방팔방 뛰댕겼을 거임...그리고 부대 내를 돌아다녔다면?

우린 인사계에게 된통 당했겠지....(식은땀) 



"야 올챙이~~ 니가 오함마로 제대로 기절 못 시켰구마이~니 다시 한번 쳐라잉~"

"이병 XXX! 잘 못 들었씀돠?"

"씨바 함 더 내려치라꼬! 기절 시키라꼬~ 내가 하까?"

뒤늦게라도 정신을 수습한 선임의 명령.

꽤 정확한 명령임. 저렇게 난리치는 돼지를 칼로 제압하는 건 무리였을 것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이등병 나부랭이일 뿐이고...시키면 군말없이 해야할 뿐이고...

윈드밀을 포함한 온갖 브레이크댄스를 시전하는 돼지를 향해 다가간 난

돼지야~ 돼지야~ 미안해...미안해~ 난 어쩔 수 없는 이등병인가 봐~하며

오함마로 정수리를 한 대 팍! 내리쳤음.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는지 돼지가 앞 다리를 쭉 뻗은 상태로 프리즈를 시전함.

우리는 땀인지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분비물을 닦으며 안도했고

돼지는 헤드샷을 맞고 확실한 멱따기를 당한 후 더 이상 이 세상 존재가 아니게 됨.



이후는 선임이 돼지해체쇼를 시전.

우리의 신뢰가 떨어진 것을 감지했는지, 현란한 발골, 해체쇼를 보여줬는데

꽤 재미있고 흥미로웠음. 약간 행위예술같다라는 느낌적인 느낌도 느낌.

그 큰 돼지를 내장 따고 이러저러 분리시키는데 30분? 정도 걸린 거 같음.

돼지 쓸개를 따다가는 이게 몸에 좋다고 생으로 멕이려고 하는데

토 나와서 뒷걸음침...



암튼 인사계에겐 불미스러운 좀비호러쇼 부분은 삭제되고 보고되었는지

아니면 챙기게 된 뒷돈이 꽤 짭잘했는지 우리를 불러 칭찬했고

황공하게도 특별히 멱 딴 선임과 난 구국의 영웅 수준의 칭찬을 듣게 됨.

씨바...무슨 돼지 잡고 용사 대접 받냐고...ㅠ.ㅠ



훈련이 힘들어서인지 회식도 주말에 안 하고 금욜 훈련 일찍 쫑내고 4신가 부터 시작함.

돼지고기들이 맛있게 삶아지고 구워지고...그러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었음.

원래 못 먹기도 하지만...마지막 돼지의 눈망울이 떠올라...차마...

는 개뿔. 회식인지라 석식은 없고 그냥 돼지고기가 그날 저녁의 끝임.

배 고픈 이등병이 가리게 생김? 돼지 눈망울이고 뭐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잘 구워진 돼지고기를 한 점 삼키는데...윙? 돼지고기 왤케 맛남?

내가 잡은 거야~ 그러니까 내가 젤 많이 먹을꺼야 하며 육식에 눈 뜨게 됨.

또 포천이 이동막걸리가 유명해가지고...하여간 막걸리+돼지고기는 진리임.

그 날 꽤 술 취해서 뻗었는데 훈련군기는 쎄도 그런 걸로는 꽤 편한 부대여서

선임들이 엎어서 내무반에 매트리스 깔고 모포 깔고 침낭 덮어줌...



음...너무 길어진 거 같으므로 여기서 이만...

다음에 또 쓰게 되면 특공대의 꽃, 공수훈련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음...

고소공포증을 가진 내가 왜 석가탄신일에도 막타워에 올라 심청이가 되었는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20년 전 포천 어느 한 켠에서의 내 기억...(90%의 사실과 10%의 MSG로 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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