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반가운 우편이 도착했습니다!
매력Kim 님께서 나눔했던 수제 책 우편입니다.
빗속을 뚫고 도착한 아이라
조금 구겨져 있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괜찮아요!
무사히 배송해주신 것만으로도...ㅠ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개봉...!
짠!
어여쁜 보랏빛 책 한 권과 편지, 그리고
커피사탕과 티백 두 개가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Girlhood>,
소녀 시절.
누군가의 빛나던 그 때.
향수를 자극하는 제목이에요.
그래서 표지색도 마침 보랏빛인걸까요?
책장을 넘기기 전에 동봉된 티백 하나를 꺼내 뜨거운 물을 부었습니다.
레몬 그라스!
더위에 좋다고 설명해주신 것을 떠올리며
향을 조금 들이마신 후에 차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Girlhood.
늦은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5분 남짓한 시간.
거리는 항상 닭을 튀기는 냄새로 가득했고, 저는 늘 그 유혹적인 냄새를 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선선한 여름 밤, 산책로를 따라 귀가하는 길, 닭 튀기는 냄새.
이제는 그 냄새를 맡아야 비로소 아, 집에 왔구나 하며 안도하게 됩니다.
소녀는 고요한 집을 끊임없이 관찰합니다. 너무나도 외롭고 적막한 공간을
그녀만의 감성으로 보고 느끼고 기억합니다. 공간 구석구석을 샅샅이 누비며 알아갑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집이라는 묘한 공간을 익숙한 공간으로 바꾸어가며 여긴 우리집이야, 하고
안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잠깐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선명한 기억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어느 순간 각별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지.
"생크림처럼 펼쳐진 공. 단단하고 미끄러운 공."
"아무도 모르는 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엌의 조그마한 창문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의 요정" 님.
짧은 동화책을 읽듯 유쾌하면서도, 어른들은 대체 왜 그래? 하는 억울한 소녀의 심정이 공감돼
거친(?) 욕설이 나오는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푸흐흐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람의 요정님은 어릴 적 저도 즐겨 찾던 요정님이라 내심 반가웠습니다.
무더운 날 시골길을 걸어갈 때마다 바람 좀 세게 불어달라고 떼 쓰곤 했거든요.
씨, 요정님! 강풍이요, 강! 하면서요.
젠장. 요정은 하나도 일하지 않았어요!
"바람에 나부끼는 수첩 종이들이 벚꽃잎 같았다. '꼭 이루어지게 해주세요.'하는 3초짜리 기도도 잊지 않았다."
바다.
이 장에선 괜시리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어떤 장소에 대한 인상은 그곳에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결정지어지고,
또 그 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었어요.
그런데 바다에 얽힌 두 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복합적인... 네.
1의 바다에서
소녀는 물 수제비를 뜨는 아빠를 바라보고만 있지요.
소녀는 정적이고 아빠는 동적인 대비.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 때 아빠의 소원을 끝내 들을 수 없었다는 대목처럼
소녀가 아직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게..
2의 바다에서
소녀와 Y는 최선을 다해 물장구를 치고 함께 뛰어놀아요.
둘은 적어도 그 바다에선 같은 마음였겠죠.
교복을 입고 바다로 함께 떠나는 것,
정말 고된 여정이었다고 굵은 문체로 쓰여져있지만
저는 여전히 풋풋하고 로맨틱한 일처럼 느껴지는걸요!
Flower.
"언니는 사랑했던 것들이 많네요."
어쩌면 사랑했던 것들을 이렇게 아름답고 솔직하게,
담백하게 써내려갈 수 있단 말인가요.
(문맥마다 긴 고민과 상념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글쓰기 내공이 심상찮음을 느낍니다.)
구겨진 장미 한 송이가 이렇게 로맨틱할 수 있다니.
그리고 Letters to may.
책을 읽는 내내 작가님의 세계를 둥둥 떠다니며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게 에세이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읽으면서도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렸어요. 문체가 소담스럽고 유려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각각의 장면들이 이렇게도 생생하게 보여진다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에요.
특히 집중력이 약한 저 같은 독자에게는요.(ㅠㅠㅋㅋ) 그런데 작가님은 저를 보랏빛 바다에 풍덩 빠트려 버리셨네요. 정말...
사랑하는 분들께 이미 넘치는 사랑을 받으셨을 작가님이지만,
저 멀리 아파트 숲에 사는 한 독자가 작가님께 작은 사랑 보내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음 해요.
품에 쏙 안기는 작은 책이지만 읽는 내내 가슴을 콩콩 뛰게 만들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제게 기꺼이 선물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그건
작가님의 다른 책을 구매해 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ㅠㅠ 책 내주세요...! 0호 팬이 될게요.
+++
참, 매력kim 님 나눔의 답례로,
책 속에 등장한 소품들을 몇 개 그려보았습니다.
색연필+수채물감인데, 순전히 취미 실력이라 조금 조잡하지요ㅜㅜㅋㅋ
하지만 열심히 그렸습니다!
혹시라도 작가님,
원화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댓글로 의사 남겨주세요.
거대한 신발장, 거울 속의 세일러문, 물 수제비를 뜨던 돌, 수선화, 장미 한 송이,
소원을 적은 수첩 종이들, 바다 조개, 그리고 보내주신 모든 것을 그려넣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좋은 나눔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빈말이 아니라, 제겐 또다른 경험의 기회였어요.
각 장 마다 개인적인 느낌을 적었는데
혹여 이상한 말을 적은 건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네요ㅠㅠㅋㅋ
너그럽게 읽어주세요:D
후기를 읽어주신 분들, 작가님도
모두들 좋은 밤 보내시고
내일 불금이네요!? 내일을 불태워봐요!!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