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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우유 마시는 인형
게시물ID : panic_892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5
조회수 : 181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7/15 20:52:44
우유 마시는 인형

이건 내가 어릴 때 겪은 기묘한 체험이다.

우리 아빠는 째째한 사람이라, 우리 집 근처의 쓰레기 두는 곳에서
망가진 가정 용품이나 잡동사니 같은 게 보이면
"아깝게시리"라며 가지고 오셨다.
처음에는 "창피하니까 좀 그러지 마요"라고 말했지만
중간에 관두실 성미가 아니란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점차 포기하게 되었다.

아빠가 주워오시는 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중에 "이건 대체 왜 주워온 거야?"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것도 꽤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제목의 저 인형이다.

어느 날 집에 가보니 나와 동생이 같이 쓰는 방에 처음보는 인형이 있었다.
보나마나 아빠가 주워온 거겠지.
"지저분한 인형은 왜 주워온 거야.."하고 진절머리내며 인형을 바라봤다.
어린 애들 팔에 딱 들어갈 정도되는 우유 마시는 인형이었다.
긴 속눈썹에 땡그란 갈색 눈동자.
우유를 마시기 위해 약간 벌어진 입술은 당장이라도 말할 것만 같았다.
새 것이었으면 아마 귀여운 인형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주인이 험하게 다뤘는지 매끈한 흰 뺨에 매직으로 낙서가 된 데다
눕히면 눈을 감아야 하는데, 한쪽만 감기는데다 그마저도 반 밖에 감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쪽 눈이 뭉개진 것 같은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무리봐도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걸 아빠는 왜 가지고 온 걸까.
아니, 나나 내 동생이나 인형 놀이하는 건 좋아했으니
방에는 여러 마론 인형부터 봉제 인형까지 인형이 한 가득 있었다.
그 안에 누가봐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인형이 놓여 있었다.
다른 인형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것들이라 애착도 있었고
다들 있을 자리에 놓였달까, 이상하단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우유 마시는 인형만큼은 아니었다.
그 인형은 침대에서 자는 날 아무 말 없이 눈동자로 매일밤 지켜보는 것만 같아서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빠가 주워온 걸 또 버리기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방에 두었다.

그리고 며칠 정도 지났을 때 기묘한 체험을 했다.
침대 위에서 잠이 들려던 그때, 귓가에서 누군가 말하는 게 들렸다.
어린아이? 내 귓가, 그것도 매우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아이가 웃었다.
키득키득 장난기를 가득 품은 즐거운 듯한 웃음 소리였다.
처음엔 한 명.
그리고 점점 잔파도가 일듯이 웅성웅성하고 다른 웃음 소리도 들렸다.
둘? 셋? 정도 되지 않을까.
모두 다 앳된 순수한 웃음 소리였다.
그러더니 소근소근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이웃집 애가 놀고 있나 생각했는데
이런 한밤중에 아이가 밖에서 놀리가 없지.
게다가 소리는 내 귓가에서 들리니까...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몰랐는데,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자나? 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위에서 누군가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럿의 시선이 느껴졌다.
갑자기 나타난 그들이 내가 잠들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자는지 어떤지 확인해 보자"라고 했다.
그 순간 내 몸이 생선처럼 움찔거리며 떨리더니 온 몸에 털이 쭈뼛섰다.
아마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온 몸이 뻣뻣해졌다.
눈 뜨면 안 돼. 눈 뜨고 보면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거야. 절대로 봐선 안 돼.
그런 느낌이 들었고, 나는 마음 속에서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하고 기도했다.
여전히 베갯머리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이 소근거렸다.

그후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찝찝한 꿈을 다 꿨네.. 라고 생각하며 날이 밝은 것에 안도했다.

그런데 꿈은 그 날만 꾼 게 아니었다.
그날부터 나는 똑같은 꿈을 계속 꾸게 된 것이다.
침대에서 잘라치면 어디선가 아이들 웃음 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이야기 소리였는데, 점차 베갯맡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녔다.
둘 셋 밖에 없었는데, 점점 수가 늘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끌벅적 뛰어다니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고,
그 소리는 모두 아이들 목소리였다.
순진무구한 듯 웃는 소리, 뛰어다니는 소리.
그 중에서도 나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내 귓가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즐겁게 "자? 자?"하고 말을 건다.
답을 해선 안 돼. 눈을 떠선 안 돼.
나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굳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나는 부들 부들 떨며 공포에 맞서싸우며 꿈이 깨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또 누군가가 내 바로 옆을 달려갔다.
많은 사람이 팔짝팔짝 뛰는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나는 이층 침대의 윗칸에서 자는데...
그들은 발소리를 내며 허공 위를 뛰어다니는 셈이다.

그런 무서운 꿈을 연달아 꾸다보니 나는 우울증이 생겼다.
그게 누구 짓인지를 깨달은 건
낮에 꾸벅꾸벅 낮잠을 잘 때였다.
반은 자고, 반은 깬 그런 몽롱한 상태에서 또 그 꿈을 꿨다.
"자? 자? 슬슬 자나?"하고 말하는 아이들 기척을 느꼈고
나는 왠지 이건 그 인형이구나하고 눈을 감은 채 느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근거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냥 틀림없이 그 인형이라 생각했다.
..분명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집요하게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는 "그 놈"은
"우유 먹는 인형"이 아니라, "우유 먹는 인형 안에 숨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미친 거 아니냐고 할 게 뻔해서 잠자코 있었지만
이층 침대 아랫칸에서 자는 동생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지만 동생은 이상하단 표정으로 "그런 거 없었어"라고 했다.

우유 마시는 인형이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는 어린 나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이러다 미치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겁도 나고, 진짜 미칠 것 같았다.

왜 나에게만 그 소리가 들리는 걸까, 왜 내 귓가에 찾아오는 걸까.
예전에 나는 희미한 여자 유령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나에게 약간이지만 귀신을 보는 힘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둠 속에 숨은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지는 건 아닐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또 그들이 찾아와서 귓가에서 떠들었다.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본 건 아니지만
기척 상으로는 20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온 방 안에 이야기 소리가 울려퍼졌고, 귀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시끄러웠다.
그 중 다섯 정도는 꼭 내 베개맡에 와서 "자? 자?"하고 말을 걸었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건 아무래도 그 인형인 것만 같았다.
아이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깨어 있어, 분명 깨어 있을 걸"
그러자 주변의 아이들도
"깨 있겠지, 맞아 맞아"하고 일제히 말했다.
순진무구한 목소리 사이에서 분명한 악의가 느껴졌다.
"이제 슬슬 괜찮겠지?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들어가도 괜찮을 걸. 들어가볼래? 들어가볼까?"
"들어가자 들어가자"
그때 나는 '얘들이 내 몸을 빼앗으려고 해!'라는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런데 여전히 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내가 아는 불경 부분을 머릿 속에서 외웠다.
어린 애라서 제대로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일단 아는 부분만 계속 미친 듯이 외어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건 꿈 꾼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꿈이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 일 후 얼마 안 되어 우리가 살던 셋방을 철거한다고 해서
우리 가족은 새 집으로 이사갔다.
그 인형은 이사하던 중에 사라졌다.
이삿짐을 싸면서 엄마가 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서랍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
신기하게도 새 집으로 이사간 후 그런 이상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체험이었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 하고 가슴 속에 품어둔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마음이 개운하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92306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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