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인상이 너무 좋았습니다. 집은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아파트였고, 베란다를 열면 공원이 내다보였습니다.
시티와 거리는 좀 멀었지만, 버스를 타면 금방 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너라는 분은 자기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형님'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또 어려운 일 있으면 자기한테 물어보라면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말 그대로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형님'같은 분이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는 이 집에 살기로 했습니다. 1주당 85불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2주치 170불을 계약금 형식으로 예치해놨습니다. 이 계약금은 급작스럽게 나가거나 집안 물건 파손시를 대비해 받아두는 돈이었습니다.
이틀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는 식당에서 일하고 늦은 밤까지 일했습니다. 끝나면 저녁 10시 반쯤 되었지요. 당연히 저녁은 못 먹기 일쑤였습니다.
대신에 주방을 마무리하면서 쉐프가 챙겨둔 저녁 도시락을 싸가지고 집으로 가서 먹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쉐프와 친했습니다. 쉐프에게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이번에 집을 새롭게 옮겼는데, 같이 사는 친구들과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평소보다 많은 도시락을 싸줬습니다. '오너 형님' 것도 준비했구요.
그렇게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너 형님'은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 쉐어하우스에는 오너 형님을 포함해 총 8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펼쳐놓으니 다들 좋아하더라구요. 서로 통성명하고 어디서 왔냐 물어보면서 친하게 말을 텄습니다.
서로 밥을 나눠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오너형님' 조심하라고 말을 꺼내더라구요. 처음에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척하는데, 완전 폭군이라면서. 저는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 있던 찰나에.
오너 형님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반갑게 인사하면서 "이것좀 드세요"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님의 얼굴이 어제 서글하게 웃던 표정에서 정색하는 표정으로 확연히 바뀌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집 안에서 10시 이후에 밥 먹지마."
저는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너형님은 다시 쐐기를 박더라구요.
"앞으로 10시 이후에 밥먹지말라고. 왜 말이 없냐?"
저는 제 사정을 말했습니다. 제 친구와 저는 같이 일하는 동안 저녁을 못먹어서 이렇게 일이 끝난 후에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다구. 배고픈거 참으면서 일하는데 사정좀 봐달라고 말했습니다.
오너 형님은 단호했습니다. "안돼. 먹지마. 먹을거면 밖에서 먹고 들어와."
갑자기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혹시 그 룰은 원래부터 있던건가요?"
오너형님 "아니 지금부터 만든거야."
제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말이었습니다.
"만약 그 룰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저는 이 집에 안들어왔을 겁니다."
오너형님 "그럼 나가."
저와 제 친구는 뻥진 얼굴로 오너형님을 쳐다만 봤습니다.
오너형님 "그럼 나가라고."
화가 났지만 제 친구가 화를 삭히라는 제스쳐를 취했습니다. 친구를 생각해서 차분히 말했습니다.
"형님, 갑자기 그런 룰을 만드시면 너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10시 말고 11시까지만으로 해주세요. 저희가 집에 와서 빨리 먹고 잘게요."
오너형님은 여전히 단호했습니다. "안돼 10시까지야."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대꾸를 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정하시는 게 어딨습니까. 최소한 1주일 전에는 말씀해주셔야죠.
그리고 그렇게 강요하시면 어떡합니까."
오너형님 "룰 안지키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살 수 없다. 나가"
화났던 나머지 말했습니다.
"나가겠습니다. 예치금과 미리 선불로 지불한 1주일치 돈 주시죠."
오너형님
"1주일치는 주는데, 예치금은 안돼."
오너형님은 막무가내로 한 거였습니다. 제겐 피같은 돈이었습니다. 일자리 구한지도 얼마 안된 때라서 한푼이 궁하던 시기였으니까요.
호주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 주변 분들이 '한국인을 조심해라'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제가 강하게 따져 물었습니다.
애초부터 이런 쉐어하우스는 불법 아니냐.
내가 일하고 있는 식당의 매니저(호주인)에게 말해서 도움을 청한뒤 호주 정부에 신고하는 등조치를 취하겠다.
다 신고하겠다.
이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얼굴이 새빨게 지면서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너 지금 당장나가. 예치금 줄테니까 너 지금 당장나가."
당시 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간으로 곧 새벽 1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내일 나갈꺼라고, 지금 새벽에 어떻게 나가냐고 반문했습니다.
오너형님은 1시간 내로 안나가면 주택무단침입죄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했죠.
짐을 싸고 있는데, 아까 같이 도시락을 나눠먹던 쉐어하우스 사람들이 오더니 격려해줍니다.
자신들도 엄청 당했다구요. 예치금을 빌미로 이런저런 규제를 하지 않나.
샤워는 10분내로 하라고 강요하지 않나.
과자 부스러기 카페트에 흘렸는데, 그걸로 100불짜리 청소업체 불러서 청소하라고 압박도 했고.
어차피 예치금에서 까버릴테니까. 불가피하게 줘야했다는 말도 꺼내놨구요.
온갖 수모의 경험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믿지말 껄....하는 마음을 절실하게 느낀 뒤에...
그 오너로부터 예치금을 받고 새벽에 쫓겨 나게 됐습니다...
새벽에 어떻게 했냐구요?
공원에서 밤 샜습니다.
뜬 눈으로 밤샜어요.
그렇게 6시간을 호주에서 선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아래는 밤을 꼴딱 새우고..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이것도 추억 아니겠냐?" 하면서 찍었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