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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7반 정동수, 학생인권부장 고창석 선생님 생일입니다.
게시물ID : sewol_511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르조미워
추천 : 16
조회수 : 72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07/19 09:51:27
세월호 참사 826일을 맞이하는 7월 19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정동수 학생과 학생인권부장 고창석 선생님의 생일입니다. 
(학생부터 소개합니다.)

2-7 정동수.jpg

정동수 학생입니다.

동수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 두 남매의 맏이입니다. 집안 사정이 풍족한 편은 아니고 부모님도 두 분 다 맞벌이를 하셔서 동수는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잘 하는 얌전하고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집이 작아서 여동생은 자기 방이 있었지만 동수는 방이 없어 거실에서 지내다가, 동수가 단원고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서 집이 이사를 하면서 동수도 자기 방이 생겼습니다. 동수는 자기만의 공간이 생긴 것을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 소중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동수는 딱 8개월을 살고 떠났습니다.

동수네 집은 경기도 시흥으로 이사했는데, 시흥과 안산은 행정구역상 이웃해 있지만 고등학생이 매일 다니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동수는 버스 타고 40분씩 걸려 통학을 하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겨울이면 손과 얼굴이 추위에 부르터도 별로 신경쓰지 않고 그냥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동수가 항상 안쓰럽고 대견하셨다고 합니다.

동수는 키가 185센티미터나 되고 체격이 아주 좋았지만 순하고 여린 성격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동수는 이과반이었고 로봇 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아마 공학자의 꿈을 가졌을 것 같지만 동수 장래희망은 정확히 모릅니다. 동수 아버님을 뵐 때마다 동수 장래희망 얘기를 여쭤봐야지 생각만 하면서도 아버님이 너무 바쁘시고 너무 힘드신 것 같아서 선뜻 다가가서 동수 얘기를 여쭤보기가 어렵습니다. 동수 아버님은 416가족협의회에서 선체인양 분과장을 맡아 팽목항과 동거차도와 안산과 광화문과 국회를 오가며 선체인양 상황을 알리고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해 힘쓰고 계십니다.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동수는 "배가 기울었다"고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머님은 일하시느라 너무 바빠서 동수가 보낸 문자를 한 시간 뒤에야 확인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전화하셨지만 동수는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린이날이 하루 지난 5월 6일에 동수는 학생증과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채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실종 상태이신 고창석 선생님도 오늘 동수와 함께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고창석 선생님 생신은 음력 6월 16일입니다. 음력 생신이라 매년 날짜가 조금씩 다릅니다.)

고창석-521.jpg

학생인권부장 고창석 선생님이십니다.

고창석 선생님의 담당 과목은 체육입니다. 체육선생님이지만 고창석 선생님은 출근하실 때 언제나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머리도 깔끔하게 스타일링을 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출근하셨습니다. 머리카락을 고슴도치처럼 전부 세웠다고 학생들이 부르는 별명은 "또치쌤"이었습니다. 고창석 선생님은 점심 시간이면 학생들이 축구할 때 심판을 맡아주시기도 하고, 생활지도부 선생님으로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전교생이 다 알 정도로 다정하고 재미있는 선생님이셨다고 합니다. 

고창석 선생님은 원광대학교를 졸업하시고 2000년도에 안산 원일중학교에 부임해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이후 상록중학교와 원곡중학교를 거쳐서 2014년 3월에 단원고등학교에 부임하셨습니다. 상록중학교에 재직하실 때인 2005년 학생휴게실에서 불이 났던 적이 있는데, 그 때 고창석 선생님은 가장 먼저 달려와 학생들부터 모두 대피시킨 다음에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셨다고 합니다. 당시 선생님의 제자들은 불타는 휴게실에 뛰어들어가신 고창석 선생님이 한참 뒤에 소화액과 재를 머리에 하얗게 뒤집어쓰고 나와서 거울을 보시고는 크게 웃으셨던 호탕하신 모습을 기억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고창석 선생님은 학생들한테 구명조끼를 먼저 입히시고 "탈출하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며 학생들을 대피시키셨습니다. 참사 2년이 지나고 선생님은 세 번째 생신을 맞이하셨지만 아직도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고창석 선생님은 두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버지이고 따뜻한 남편이시기도 합니다. 고창석 선생님 사모님은 단원고 바로 옆에 있는 단원중학교 선생님이십니다. 사모님께서 고창석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고창석선생님_꽃.JPG

단원고 "416 기억교실" 2학년 교무실에 고창석 선생님, 그리고 함께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계시는 양승진 선생님은 햇볕이 잘 드는 창문 바로 앞에 따로 책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동영상은 2015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작년 음력 6월 16일은 양력으로 7월 31일이었기 때문에 작년 날짜 기준으로 생일이었던 정다빈 학생과 함께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로 문자 보내 동수와 고창석 선생님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한없이 순하고 착했던 동수,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부터 생각하셨던 고창석 선생님을 잊지 말아 주세요.

출처 한겨레 잊지 않겠습니다 정동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3863.html

고창석 선생님 관련기사: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6/20140426001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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