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정신병자는 자기 할 말을 계속 하더랍니다.
"으응 그거 말이야 그거. 내가 옛날에 홍수 때 무덤이 무너져서 죽을 뻔했는데 너희 어머니가
구해주셔서 으응, 응. 그래서 내가 그 반가워서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 친구는 동네가 개발되기 시작한 시점에 이사를 온 친구였던 데다가, 어머니는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시기 때문에 얼굴을 보기가 정말 힘든 분이었거든요. 친구는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학교로 도망갑니다.
학교에서도 그 아저씨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면 어쩌나, 싶어서 너무 불안했지만 - 에이, 그래봤자
병신인데 기억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길할 예감은 항상 틀리질 않죠.
매번 등교길마다 그 정신병자 아저씨는 A를 잡기 시작합니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하는 기분 나쁜 중얼거림과 함께. 대화의 내용은 항상 반복이구요. 친구는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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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요. A와 저를 비롯한 몇명의 친구들은 집에 가기 위해 하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내화 갈아신고, 실내화 주머니에 실내화 넣고... 가려고 하는데 정문 앞에
그 정신병자 아저씨가 있더군요. 어린 나이에 정말 쫄리고 무서웠지만 ... 뭔가 어린 나이에는
그런 치기가 있잖아요. 무서워도 무서운 척 안 하는...
A의 이야기를 대충 들은 것도 있기에 저와 친구들은 애써 당당한 척 하며 말을 꺼냈습니다.
"올~ A! 저 아저씨 꼬봉으로 뒀냐? 이제 막 학교까지 오네."
"ㅋㅋ 저 아저씨한테 콜라 사오라고 해봐 콜라 먹고 싶다."
다만,
A의 반응은 저희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새된 비명을 지르는데... 그 초등학생들은 남자여도 비명소리
엄청 높은 거 아시죠? 진짜 창문이 깨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비명을 지르더니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몸은 덜덜 떨고 눈은 촛점을 못 맞추고....
마침 학교에서 좀 늦게들 나온지라 선생들은 회의를 들어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결국 저희는 A를 부축해서 뒷문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A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친구 한 명에게
남아 A를 좀 봐주라고 한 뒤(말했다시피 A의 어머니는 간호사. 맞벌이 집안이라 보통 A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얼마 뒤 A는 인근 도시로 전학 및 이사를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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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고 흘러 저희도 고등학생이 되었죠.
초등학생 때에 비해 뼈도 굵어지고, 키도 크고. 특히 축구랑 맨손 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A는 성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체격이 좋아져있었어요. 워낙 어려서부터 친구였던지라, 저희와
A는 A가 전학을 가고 난 뒤에도 꾸준히 연락을 해왔고 중학생 이후부턴 자주 만나게 되었지요.
그때도 농구를 좀 하다가 각자 음료수 한캔씩 사서 마시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습니다. 말미에 나온 것은 역시 그 정신병자 이야기... 이제야 무서울 것도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그때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자세히 좀 말해봐."
그러자 농구공을 쥐고 있던 A는 한번 픽 웃더니, 농구공을 튕기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너네 우리 동네에 정신병자 한 명 더 있던 거 기억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