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징> 프라고의 시간 2 - 1
어둠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법이지만 갑작스런 습격 때문에 프라고와 푸링은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순간 괴물 같은 것의 공격을 푸링이 손으로 막았기 때문에 프라고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지만 푸링의 붉은 피가 사방으로 난사되어 얼굴에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젠장. 야! 그거 하나 못 피해?”
푸링의 말에 프라고는 일단 소녀의 팔을 잡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트라우마 라고 불렸던 그것은 그 둘의 앞에 떨어졌다. 프라고 보다 5배는 커다란 그것은 어두운 흑색의 액체 같은 것이 형체를 계속 변형해가며 점점 더 흉측하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어떤 사람을 집어 삼키고 흡수를 하는 모양새였다.
“괜찮아요?”
“아. 젠장. 너무 급해서 보호막을 만들지도 못했어.”
둘의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그것은 다시 가슴 언저리 쪽에서 몸을 변형시켜 촉수로 만든 뒤 둘에게 뻗었다. 푸링은 이번에는 실수 없이 그 촉수를 튕겨내는 데 성공했다.
“하아. 하아. 프라고!”
소녀의 말에 프라고는 허둥지둥 대는 것을 멈추고 소녀를 바라봤다.
“자동차로 뛰어. 그리고 조수석 서랍 칸에서 신호 발생기. 그거 꺼내서 신호를 보내.”
“발생기가 뭔지 저는..”
프라고의 말에 소녀는 그것의 공격을 다시 막아내며 외쳤다.
“그냥 가면 있어. 미/친놈아!”
소녀의 말에 프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단 처음 공간이동을 한 쪽으로 달려갔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지면이라 속도를 생각만큼 빠르게 달리기는 못했지만 일단 안간힘을 다해 앞으로 나가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푸링은 트라우마를 쳐다봤다. 정확히 그것의 모습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트라우마에 집어삼켜진 인간이었다. 그것의 몸을 덮고 있던 검은 액체는 이제는 부르르 진동을 하다가 이내 온몸을 가시와 같은 뾰족한 것들로 변형시켜 주위로 뻗어버렸다.
푸링은 손쉽게 그것의 공격을 막아냈다. 소녀의 능력은 ‘공간’ 능력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것이 차원의 쌓여가는 공간의 크기와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수준이었지만 능력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일수도 혹은 보호막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것의 가시들은 곧바로 소녀의 벽에 닿았다가 다시 자신의 온몸으로 들어와 이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더 이상의 진동과 변형은 없이 이제는 검은색의 물체도 아닌 그것의 입에서 처음으로 -먹어- 가 아닌 정상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하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그것은 처음 입국심사서류에 있던 마리오네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만족감이 서려있었다. 그것은 눈을 감고 팔을 양 옆으로 뻗어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것들을 손으로 받아냈다.
푸링은 그것과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벌려놓고 있었다. 트라우마에 집어삼켜진 것의 힘은 본래의 힘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의 능력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푸링은 일단 손을 뻗어 그것의 팔에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은 그것의 오른 팔에 생성되고 곧바로 그것의 팔을 몸에서 분리시켜 버렸다. 붉은 피가 정육면체의 공간에 난사되었고 그것의 팔이 있던 곳에서 또한 피가 난사되기 시작했다.
“어? 넌 뭐지?”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표정으로 푸링을 쳐다봤다. 손으로 팔이 있던 어깨를 만져봤지만 팔은 이미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널 죽여 버릴 사람이지.”
“킥킥. 하찮은 것.”
그것의 팔을 담고 있던 투명한 공간에서 그것의 팔은 갑자기 거대하게 변하더니 마치 기다란 기둥과 같은 창으로 변해 공간의 벽을 뚫고 푸링의 오른 발 바로 앞 쪽에 박혔다. 소녀는 깜짝 놀라 오른 발을 뒤로 뺏고 다시 한 번 그것의 머리에 집중해 공간을 만들어 머리를 날려버리려 했지만 그것의 속도가 이미 그녀의 눈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것의 팔은 다시 몸에서 자라나더니 곧바로 그녀의 온 몸을 감싸고 있던 공간 바로 앞까지 뻗어 나와 소녀의 공간의 한 구석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미친. 이걸..”
보호막이 뚫린 푸링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소녀는 보호막 안에서 탈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빠져나가자 그것의 팔이 보호막에서 사방으로 가시를 내뿜으며 확장해나가 공간의 모든 구조를 파괴했다.
“쥐새끼 같군. 그냥 죽어라. 너도 편안하게 해주마.”
푸링은 프라고가 뛰어간 쪽을 쳐다봤다. 이미 프라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차 한 대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차 안에서 신호기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또 있나 보군. 하지만 이제 끝이다.”
그것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팔, 이제는 창으로 변해 버린 그것이 소녀의 작은 어깨를 관통했다. 그리고는 기역자 모양으로 변해 끝이 땅에 박히고 소녀는 공중에 떠있는 모양새였다.
“끄으윽..”
소녀는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허둥지둥 거렸다.
“자 이제. 죽어버릴 시간이야.”
하늘에서 내리는 끈적한 액체들이 소녀의 머리맡에 떨어져 얼굴을 흐르고 있었다. 소녀의 손과 어깨에서도 하늘에서 내리는 것과 같은 끈적한 피가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다. 소녀는 짜증이 밀려오는 얼굴이었다.
분명 고통에 찬 얼굴보다는 분노와 짜증이 밀려오는 얼굴이 맞았다.
“하. 프라고 개 같은 새끼. 행동이 너무 굼떠.”
“마지막 유언인가?”
“그래 마지막 유언”
푸링이 다른 한 손을 그것에게 뻗어 곧바로 주먹을 움켜쥐자 그것은 행동을 멈췄다. 그것의 양 옆으로 거대하고 두꺼운 벽을 가진 공간이 생성되어 있는 것을 그것은 전혀 눈치 채고 있지 못했다. 자신의 머리와 몸을 공격할 것은 대비했지만 주위에 생성되는 공간들은 아마 자기가 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공간은 그의 온몸을 포박하는 듯하다가 점점 그의 몸을 압박해갔다.
“너의 마지막. 개/새끼야, 일부러 맞아주니까. 내가 호구로 보이디?”
소녀는 자신의 어깨에 박힌 창의 끝을 부셔버리고 그것에게 다가가 침을 뱉었다. 그것의 표정은 아까와는 다르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소녀가 탈골되어버린 어깨를 잡고 눈썹을 살짝 내리면서 고개를 까딱 거리자 그 두 공간은 완전히 그것을 쥐포처럼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의 모습은 이제는 공중에서 투명한 공간 사이에 이음새처럼 보였다.
온몸의 뼈들과 피부, 그리고 붉은 피가 완전 곤죽이 되어 그 이음새를 메웠다.
소녀가 한숨을 쉬자. 어두운 하늘을 밝게 비추는 신호탄이 저 멀리서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 신호는 자동차 바로 옆 땅에서 하늘로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레이저같이 보였다.
“정말. 쓸모없는 놈이야. 쭈욱 입국관리자나 시켜야지. 원.”
소녀는 그것의 남은 시체를 공간에 담았다. 그리고 두 손가락에 들어갈 크기로 작게 변형시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결국 내가 하게 만드는 군. 아. 그 놈들 오면 뭐라고 둘러대지.”
소녀의 얼굴에는 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이미징> 프라고의 시간 2 - 2
공간이동을 한 인원은 모두 세 명이었다. 정예는 아니었지만 9지구 근처에 있던 인원이 모두 세 명인 것이 이유였다. 푸링의 앞에 두 명이 서있었고, 한 명은 소녀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아니. 보스. 그러니까 왜 괜한 짓을 하고 그래.”
세 명중 한명인 ‘나노’라는 남자가 말했다. 그는 마치 중학생 정도의 키에 외모를 갖고 있었고 노란 머리칼을 만지면서 소녀를 타박했다.
“세타(θ) 나인(nine,9)은 아직 만추님이 다 기록하지 못해서 위험하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말입니다. 언니는 정말..”
소녀의 곁에서 20대의 외모를 가진 금발의 미녀인 ‘큐리’가 말했다.
“그런 얼굴로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징그럽게 말야. 내가 너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구만.”
푸링의 말에 큐리는 손가락을 튕겨 그녀의 머리를 튕겼다.
“아야! 이 년이?”
“아이고 언니. 어깨 뚫리고 손바닥 뚫린 거는 안 아팠습니까?”
“그건 그렇고, 어딨습니까? 괴물 녀석.”
중년으로 보이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마지막 남자인 ‘금강’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생김새로 봐서는 아마 인상이 꽤나 살벌하게 생겼을 것 같다고 프라고는 생각했다. 프라고도 190정도의 한 덩치 하는 남자였지만 그보다 더 덩치가 큰 남자여서 그는 조용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사념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프라고는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긴박한 상황에 태연할 수 있는 저 네 명들을 보며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피가 난자하고 다치고 죽을 뻔 한 상황이었어도 그들에게는 일상생활 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러웠다.
“도망갔어. 그 녀석”
푸링의 말에 나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확히 트라우마 였어? 아니면 트라이머였어?”
“트라이머. 자아를 완전 뺏겨버렸어.”
나노의 물음에 푸링이 바로 대답했다.
“두려움이란 모르는 것들이 도망을 갔다라.. 수상하군.”
“뭐? 금강. 나 못 믿는 거야? 이씨 너 너 너.”
“아니. 푸링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상황을 못 믿는 겁니다!”
방금까지 위엄하게 서있던 금강은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팔짱을 빼고 뒷걸음질을 쳤다. 목소리도 근엄한 저음이 아닌 하이 톤이라 뭔가 웃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중년으로 보이는 것이지 중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프라고는 살짝 ‘풋’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버렸다.
다행히도 그 웃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아휴. 움직이지 말아요. 말아. 상처 덧납니다. 덧나.”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상처는 이미 다 아물어 있었다. 큐리는 치료에 특화 되어 있는 전투원 인 것 같았다.
“요새 분위기가 흉흉한데, 앵코도 죽어버리고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트라이머가 됐다니.”
나노는 말을 완전히 끝맺지 않고 조용히 서있는 프라고를 쳐다봤다.
“아. 신입! 인사가 늦었네. 난 나노.”
나노가 그에게 다가와 손을 완전히 위로 들었지만 닿지는 않았다. 프라고는 조용히 허리를 조금 숙여서 그의 손을 잡았다.
“프라고입니다.”
나노 외의 나머지도 다들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프라고를 바라봤다.
“흠. 키 큰 것들은 모두 맘에 들지 않지만. 뭐. 신입이니 많이 알려줄게. 어차피 난 전투원이라 너랑은 그렇게 많이 만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텔로스에서 만나면 챙겨줄게.”
“근데 왜 나를 쳐다보면서 말 하냐?”
나노의 말에 금강이 발끈하며 말했다.
“키 큰 것들은 둔해가지고”
“이게..”
“그만!”
푸링의 말에 다시 둘은 다투려는 것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키 큰 것들 둔한 건 맞는 말이지 왜 그래?”
“푸링님!”
푸링의 말에 금강이 이를 갈았지만 그 뿐이었다.
“내가 보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라니깐.”
“돌아가자 이 구역은 너무 찝찝해.”
푸링은 땅을 짚고 일어섰다. 큐리가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혼자서 일어나 몸을 툭툭 털어냈다. 축축한 공기는 여전했다.
***
입국심사는 무산으로 돌아갔다. 셋 중에 나머지 둘은 아예 확인도 못한 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푸링의 말로는 아마 캐피탈이나 공간해적들이 가로채 갔을 것 같다고 했다. 프라고는 그들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책상으로 돌아와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나침반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알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연스레 깨닫게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 트라우마, 트라이머라 불리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부터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한 것이다.
그는 앉아서 상념에 빠지는 것을 그만 두고 12층으로 향했다. 만추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오. 살아 돌아왔구나. 트라이머를 만났다며.”
만추가 그를 반기며 말했다. 일어나서 껴안거나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목소리에서는 어느 정도의 반가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의 책상은 전과는 다르게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프라고가 찾아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궁금한 게 있어서요.”
프라고가 말했다.
“그래. 신입이니 궁금한 게 많을 테지. 귀찮긴 하지만 알려줘야 하는 게 선배의 도리지 흠흠. 그런데 말이야.”
“네?”
그는 수염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프라고를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 트라이머가 도망가는 거 눈으로 확인 했나?”
-못 봤겠지. 아마도.
그의 사념이 프라고의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프라고는 더 이상의 사념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의심의 감정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프라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래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못 봤어요. 저는 신호 발생기를 찾고 있었거든요. 제가 신호를 보내고 나머지 직원 분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그건 도망가고 없었어요. 푸링님은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었구요.”
“그랬군. 의외군. 푸링이 직접 안가고 너한테 직접 신호기를 찾게 한 건가?”
“맞아요.”
“고마워 성실히 대답해주는 군. 나도 대답해줄게. 물어봐.”
프라고는 낌새가 좋지 않은 것을 느꼈지만 일단 자신이 궁금한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먼저 트라우마와 트라이머에 대해 물었다. 만추는 그의 질문에 의자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말을 시작했다.
“트라우마는 이 세계에서 돌아다니는 괴물 중 하나야. 그것들은 루믹스톤이 넘치는 곳에서 많이 출몰하곤 하지. 아직 밝혀진 건 많이 없지만 캐피탈에서 찾아낸 정보로는 이 것들이 우리 개개인에 대응돼서 하나씩 존재한다고 들 한다구. 그것들은 인간의 자아를 먹고 사는데 인간의 자아를 먹게 되면 그 인간에 잠식 돼. 잠식이 되면 인간은 트라이머가 되지. 트라이머가 되는 순간 그 인간은 트라우마가 가진 고유의 성격과 능력을 가지게 되고 자아는 사라져 버려. 말 그대로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인간이라는 뜻이야. 그것들은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얻게 돼.”
“대응돼서 하나씩 존재한다는 말씀은..”
“네가 존재한다면 또 다른 너인 것이 존재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것은 널 잡아먹기 위해서 어디선가 너를 찾고 있다는 거지.”
만추의 말에 프라고는 조용해졌다.
“이 세계의 공간들은 계속해서 자라나. 입국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 곳으로 들어온다면 그에 상응하는 트라우마도 이 곳으로 온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사람들에 따라 각각의 힘도 천차만별이야. 이번에 만난 놈은 아마도 그렇게 강력한 놈은 아니었을 거다. 모두 살아 돌아왔으니 말이야.”
“그것들을 물리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그럼 자아의 힘이 완벽해지지. 아직 그런 사람을 본적은 없지만 말야.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신이 완전히 흡수해버린 사람은 ‘초월자’가 된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 들어올 때 기억이 없는 상태로 들어와. 내가 모든 기억을 다 저장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곳에 오기전의 기억은 없는 것처럼. 너도 그렇지? 초월자가 된다면 모든 기억을 찾을 수 있다고 해. 이해가 되나?”
프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징> 프라고의 시간 2 - 3
세타 나인에서의 일로 사장인 푸링과 여러 간부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몇 시간정도 진행 된 뒤에 푸링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푸링은 자리에 앉아서 두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은 뒤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팔짱을 낀 양손의 손가락은 불안한 듯 손을 톡톡 치고 있었다.
-캐피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 알고 있지?
-허튼짓 하지 마. 푸링
-지켜보고 있겠다.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씨/발.”
한 마디의 욕지거리에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
“저희는 이 곳에서 어떤 존재인 걸 까요?”
프라고는 아직도 기록 관리실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다. 만추도 그와의 대화가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는지 그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고 있었다.
“글쎄다. 모두들 그런 생각을 다들 한 번쯤 하지. 나도 그랬고, 내가 캐피탈에 있던 적이 있다고 했었나?”
“아뇨.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푸링이나 나나 몇몇 간부들은 말이야. 원래 캐피탈에 소속된 전투원들이거나 나 같은 경우에는 인사 쪽 담당이었어. 그쪽에서 많은 것들을 습득하고 배우고 깨달았지. 캐피탈의 수장인 코스모스는 엄청난 능력자이면서 이 세계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였어. 이곳에서 불리는 트라우마나, 트라이머, 루믹스톤 많은 단어들도 모두 그의 입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었지. 그는 우리에게는 거의 선구자였고 우리는 그를 따라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가기를 바랐지.”
“하지만 알지 못하게 된 거군요.”
만추는 눈을 감아서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 하다 이내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그렇지. 캐피탈 쪽도 이곳의 안정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었어. 그러다 한번 나이트메어들의 습격이 있었지.”
“나이트메어요?”
“거대 트라이머들의 집단이야.”
그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게 되었다. 애초에 알고 있던 것이 많이 없는 것도 이유기는 했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열망이 프라고에게 생겨버린 탓도 있었다.
“트라이머들은 다들 자아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런 집단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뭔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난 거지. 그들에게. 그 습격은 거의 전쟁과도 같았어. 나이트메어의 거의 모든 병력이 캐피탈에 도착했으니 전쟁 정도의 규모가 확실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어. 캐피탈에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체계만 준비했었지 원래 있던 자아는 없지만 생각을 할 수 있는 트라이머들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전투에서 죽었어. 트라이머들은 자신들을 공간해적이라 부르며 캐피탈의 루믹스톤을 강탈해 갔지. 하지만 캐피탈에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어. 코스모스가 나이트메어의 1대 지도자를 처단하고부터 전투는 캐피탈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어. 물론 많은 수의 루믹스톤은 이미 약탈당한 뒤였지만 그들은 캐피탈에서 결국 후퇴를 했지.”
“코스모스란 사람이 결국 해낸 거군요. 얼마나 강하길래. 트라이머들의 수장을..”
프라고의 말에 만추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게 문제였어. 너무 강하다는 거.”
“네?”
“우리 텔로스가 생긴 이유가 바로 그거야. 우리는 그 또한 트라이머라고 생각했어. 혹은 초월자로 생각한 거지. 그 전쟁이 있고나서 모든 루믹스톤은 그가 관리하게 되었어. 힘을 비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지. 간부들은 모두 이 전쟁으로 가장 많은 힘을 갖게 된 사람이 누구냐에 집중했어. 그러다 도달한 것이 바로 코스모스라는 사람이었지. 그는 원래 캐피탈의 상징 같은 사람이었지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 그의 능력도 전투에 특화 된 것이 아닌 국정관리에 특화된 능력이었기에 권력을 가진 왕의 느낌 보다는 캐피탈의 운영 책임자, 혹은 관리자의 느낌이었어. 모든 권력은 각 관할 부서에 나눠져 있었지. 하지만 전쟁이 나고부터 모든 권력은 그에게 집중이 되었어. 의사 결정권, 루믹스톤의 보유와 관리, 입국 심사. 모든 것들이 그의 손을 거쳐야했지. 그는 한 순간에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거야.”
“하지만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그 모든 힘이 옳게 쓰일 거 아니에요.”
“우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그러다 푸링이 뭔가를 알아냈다고 했어. 그가 이 막대한 루믹스톤을 모아 이 세계의 균열을 만들려고 한다는 거였어. 그가 초월자라면 우리를 구원하겠지만 트라이머라면 이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둘 중 하나가 거의 확실하다면 도박을 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컸으니까, 결국 사람을 모아 다른 세력을 만들어버린 거지.”
만추의 말에는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그와 대화를 해본 적은 없어요?”
“누구?”
“코스모스란 사람이요.”
만추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있지.
“없어. 우린 확고했거든.”
그의 생각과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프라고는 일단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가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띵동
그 둘의 대화가 계속되다 엘리베이터의 소리가 들렸다. 둘은 모두 엘리베이터 문을 주시했고, 그쪽에서는 금강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신입도 있었네?”
여전히 그의 하이 톤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거야?”
만추가 그에게 손을 들며 말했다. 프라고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끝난 것 같아요. 만추님. 밖에서 대기하라는 말만 있었지 참여할 수는 없었어요. 간부진들 만 회의에 참석해서. 별다른 기록을 남길 거리는 없었습니다.”
“기록관리자를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기록을 하라는 말이야. 하여간 운영진 놈들은 하나 같이 멍청해.”
만추가 일어나며 말했다.
“뭐. 높으신 분들의 생각을 저는 모르니까..”
“프라고. 자리 좀 비켜줄래? 금강과 이야기할 게 좀 있어서.”
만추의 말에 프라고는 알겠다고 답했다. 금강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프라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
푸링은 차를 타고 프라고가 처음 이 곳으로 왔던 하얀 숲으로 떠났다. 아무런 동행 없이 그녀는 조용히 하얀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공기는 다른 어떤 공간의 공기보다 맑고 깨끗했다. 코로 스며들어오는 숲속의 향기는 어느 꽃의 향기보다 향기로웠다.
그녀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주위의 빛이 그것에서 산란되어 찬란하게 빛났다. 무언가 영롱한 빛이 주위로 발산되는 그것은 루믹스톤이었다. 그녀의 손에 있는 루믹스톤의 크기는 알사탕처럼 작았지만 빛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것을 삼켰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마치 어딘가로 끌려가듯 그녀의 정신은 다른 어떤 곳으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다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 이레네.”
그녀의 정신은 마치 실체가 있는 형상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에 그 여자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푸링!”
***
프라고의 시간 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