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익산에 가서 학교 생활을 한적이 있었다. 거긴 기숙학교라 학교에서 삼시세끼를 다 먹는 구조여서 집에 있을때 처럼 끼니를 거르는 일이 없어서 좋지만, 매달 10만원이 안되는 식비를 구하는게 힘들었다. 매달 작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식비만 받는 것도 무척이나 죄스럽고, 신세타령 어린 잔소리 역시 듣기 힘들었다. 게다가 주말에는 방을 비워야 했지만, 당장 집에 갈 차비 또한 구할길이 없어 막막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 없다고 친구 희훈이가 막노동을 하면 된다고 하여 일을 하기로 결심 했다.
그 래서 평일 오전 5시 어둠이 채 가시기전 동이 터오르지 않은 새벽, 인력사무소 앞에 갔다. 아직 어린 나이 때문에 혹여나 일 못할까봐 전전 긍긍하며 얼굴을 푹 숙인채 사무소에 등록을 하려 했다. 다행이 나이에 관해서는 묻지도 않고 대충 인적사항만 적는 걸로 등록은 끝났다. 그러면서 사무소 소장은 일을 마치고 들려 소개비 10프로를 내놓거나 다음에 올때 소개비를 달라고 하였다. '하긴 일을 하지도 않고 소개비를 줄수는 없지, 게다가 만약 일을 하더라도 소개비를 안주면 다음에 그 사무소를 못가니 떼어 먹힐일은 거의 없구나 싶었다.' 그러고 시장에 내놓은 물건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온 아저씨들 말로는 재수가 없으면 일도 못 나간채 빈손으로 갈때도 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자 꽤나 앞이 깜깜할 정도로 막막해졌다. 30분 정도 기다리다 보니 밤새 못잔 졸음이 쏟아 졌다. 그렇게 막연한 불안함과 잠과 싸우던 중에 봉고차 한대가 왔다. 거기에 내린 누가봐도 건설 현장 소장 같이 생긴 분이 차에서 내려 나와 다른 분을 지목하여 차에 태웠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하루 일하면 그래도 당장 식비는 아니라더라고 집에갈 차비는 벌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동력의 댓가 만큼이나 아직 덜 여문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엔 일의 강도는 꽤나 가혹했다. 6시에 현장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다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과 체조를 하고 난뒤 소장이 일을 배정 해주었다. 내가 맡은 일은 벽돌을 쌓을때 필요한 시멘트를 계속 나르는 일이었다. 그나마 벽돌을 나르지 않는게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였다. 꽤나 커 보이는 시멘트자루를 어깨에 매자 허리가 휘청 거리며 중심을 힘들었다. 비틀거리며 겨우 시멘트자루를 계단 위로 날랐다.
이제 힘겨운 노동의 시작이다. 요령 없이, 계속 일하다 보니 어느새 등 허리에 땀이 흥건히 흘러 나왔고, 바지 역시 땀에 절어 축축했다. 계단을 오르는 다리는 후들 거리고 흘린 땀 만큼이나 정말 물 한모금이 간절 했다. 그러다 시멘트 섞는 수돗물이 생각나 입대고 마시기 까지 했다. 몇 시간이 흘렀나? 해가 어느덧 떠올라 찌는듯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때 휴식을 알리는 싸인이 들렸다.
이제 점심이겠지 하며 안도를 했지만, 그게 아니였다. 시간은 10시 지금은 새참시간이라 했다. 마침 배고팠는데 잘 됬다 생각하며 새참으로 나온 라면을 허겁지겁 마시듯이 먹었다. 달콤했던 휴식시간은 화살같이 지나가 다시 현장으로 갈 시간이 됬다. 하지만 이제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가혹한 육체 노동은 정말 아니지 싶었다. 하여 소장에게 너무 힘들다 얘기하니, 소장은 최소 점심 시간까지 해야 돈을 주겠다며 엄포를 했다. '씨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어쩔수 없이 밭을 가는 소가 멍에를 메듯이 시멘트자루를 어깨에 지고 계단으로 향했다.
점심이 지나고 이제 중간이 지났으니 3시간만 더 하면 일이 마친다며 소장은 나를 독려하며 일당보다 좀더 주고 다음에는 인력사무실에 소개비 안줘도 되게 직접 나를 쓰겠다고 했다. '아.. 이사람 사람을 부릴줄 아는구나' 그 말에 넘어가 이제 아무런 감각이 없는 어깨에 아틀라스가 짊어진 하늘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시멘트자루를 메고 계단을 오르낙 내리락 거렸다.
그렇게 지옥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일이 끝났다. 그러고 받은 일당을 보자 사람의 마음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끔찍했던 오늘 하루 일은 언제든지 다시 할수 있을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하라면 그냥 도망가겠지만' 어쨋던 그렇게 일당을 받고, 대충 현장에 수돗물로 씻은 뒤 미리 가저간 옷으로 갈아 입었다.
당장 주머니에 돈이 들어 오자 갑자기 먹고 싶은게 생각나며 허기가 졌다. 주변에 식당을 두리번 거리다가 눈에 보인 김밥천국에 들어 갔다. 메뉴를 살펴보다가 스페셜 정식이라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돈까스+쫄면+김밥의 구성을 단돈 6000원에 먹을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주문하고 잠깐 시간이 지나자 큼지막한 접시에 감격 스러운 비주얼로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보니 꽤나 뿌듯하고, 이제 내가 돈을 벌수 있으니 다시는 손을 벌리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익산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간간히 막노동을 하며 자급자족하고 지내며 일이 끝나고는 항상 스페셜 정식을 먹었다. 그게 나에게는 최소한의 위로이자 보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