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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있는 정의당 게시판글이지만 명문이라 옮겨와봅니다
게시물ID : sisa_7462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글이
추천 : 12
조회수 : 7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3 16:07:50
제목: 남자 청년들의 삶은 철저히 피폐해지고 망가졌습니다. (http://www.justice21.org/68692)
글쓴이: 쯤쯤이

이번 문예위 논평 사건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지만, 그 중 당장 제 관심을 사로잡는 건 왜 우리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인가 입니다. 저도 사실 그 당시 메갈에서 보이는 여러 표현들을 보고 충격 받아서, 감정에 못 이겨 메갈을 옹호하시던 분과 말다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좀 진정이 되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드는 게 있어요,
과연 우리의 분노가 제대로 된 구심점이 있었나요?
페미니즘을 빙자한 남성혐오 발언이라는 사실 자체는 분노할 만한 것이지만, 그 분노를 좀 더 깊이 있으면서 체계적인 방식으로 풀어볼 구심점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른바 ‘미러링’이라는 것에 대한 ‘역미러링’이나, 메갈 옹호자들의 실수를 한껏 비웃고 조롱하는 것 말곤 전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입장을 의미있게 공론화하기엔 너무나 빈약합니다.
 
제 생각은 이래요, 만약 우리가 메갈 사이트 회원분들의 비난과 조롱을 담담하게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삶이 튼튼하고 내실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남자 청년들의 삶이 비난받고 조롱받고 부정당했는데, 그럼에도 우리 남자 청년들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면, 굳이 그들에게 항변하고 반박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을 거라고 말이에요.
 
저는 이제 진보 정당에서나마 2010년대 현실을 살아가는 ‘남자’ ‘청년들’의 삶에 대해 되새겨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넥슨의 계약 해지가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했는가, 또 메갈리아가 일베와 다를 바 없는 악질적인 곳인가 하는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요.
그보다는 20대에서 40대 초중반에 이르는 젊은 세대 남성 당원 분들이 왜 이렇게 맹렬하게 분노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까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를 포함한 저희 세대 남자들의 삶이 너무나 피폐해지고 망가졌으며, 그 뿐 아니라 여태껏 그 누구도 그 삶을 ‘남자로서의 삶’으로서 주목해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사회는 유교적 가부장적 전통이 오랫동안 너무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죠. 그 때문에 지난 오랜 세월 저희 어머니들과, 그 분들의 어머니들, 또 그 이상 세대의 숱한 여성분들의 삶은 철저히 억압 받고 왜곡되었습니다.
남자만 공직에 앉을 수 있고,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죠. 여성들은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역사의 슬픈 흔적으로 남아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한계도 많았지만 486세대 이상 선배 분들이 늦게나마 여성의 권리 신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유교적 전통에 의해 왜곡된 여성의 삶을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한 점은 존경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80년대, 90년대까지의 감성만으로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삶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가부장제가 그 끝 무렵에 가장 강하게 불타올랐던 시절은 바로 저희들의 삶이 시작되던 부분과 접해있기도 합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의 상당 기간에 이르기 까지, 남자 아이만 대를 이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관념에 따라, 또 발전한 의학 기술의 뒷받침에 따라 많은 여자 아이들은 감별당하고, 가차 없이 낙태 당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무렵 그 무언가 이상했던 분위기를 기억합니다. 어떤 반은 심지어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의 반 밖에 되질 않았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그 누구도 “남자라서 다행이다” 따위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어쩌면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교실에 앉아 수업도 듣고, 같은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같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함께 어울릴 수 있었을 숱한 또래 아이들이 밝은 햇빛을 보기도 전에 수없이 죽어나갔다는 사실에 어린 마음이지만 분개해 했고,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그 마음을 고이 간직한 많은 남자 아이들은 가부장제의 모순에 맹렬히 저항하고, 양성이 동등한 가치를 가졌다는 사실을 가슴에 받아들인 채로 자라왔습니다.
저희는 이전 세대들과 달리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일종의 원죄처럼, 또 떼어 낼 수 없는 혹처럼 여기고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죠.
저희들 중 그 누구도 또래 친구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나가길 바란 적도 없는데, 저희가 손 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체로 선생님들은 훨씬 수가 적은 여자아이들을 예뻐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또래 여자 아이들은 ‘여자는 학교 같은데 다니는 거 아니다!’ 같은 되먹지도 않은 가치관이 지배하는 시대를 피할 수는 있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저희와 함께 마칠 수 있었고, 심지어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들을 훨씬 앞지르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여학생들이 더 잘하고, 말썽피우다 혼나는 건 남학생들이 더 많았죠. 그걸 반영하듯, 교과서에는 항상 말썽피우는 사례에 남자아이들의 그림을 집어넣고, 올바른 일을 하고 웃어른들게 칭찬받는 사례에는 여자아이들의 그림을 넣었습니다.
몇몇 교육자분들이 현존 교육 제도와 교육 현황이 보다 활동적인 발달과정을 거치는 남학생들에게 불완전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가끔 듣곤 했지만, 그리 제대로 공론화 된 적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보수적인 학교 재단은 학생들에게 경제언론인 M사의 청소년 신문을 배급해 주었습니다.
거기에 자주 나오던 기사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여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 질 것이고, 남학생들은 위축될 것이라는 것, 그래서 ‘알파걸’들이 대두될 동안 ‘베타남’들도 짙게 깔릴 거라는 것.
이제 중앙 무대는 여자들의 것이랍니다.
 
이런 상황을 모두가 박수치며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모두들 저희에게 함께 박수치라고 했습니다.
예, 물론 여학생들이 취업 시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저희가 그걸 갖고 뭐라 항변하려 한다면 그거야 말로 성차별적이며 이기적인 태도겠지요.
저도 그런 분위기에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뭘까요,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내심은 소외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는 주변부인가...
여학생들이 진보하는 서사의 엑스트라이며, 극복당해야 할 패배자 역을 맡은 3류들이란 말인가.
함께 하자고 했는데,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공존하자고 했는데, 여자들이 남자 아이들을 비웃고 조롱하다 못해 무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도, 그것은 오히려 여권신장을 위한 용기라며 칭찬을 받았습니다. 반대 상황이었으면 매장당했겠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성 평등에 관심이 많아서, 페미니즘 문학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여자 강사 분께서 강의를 하셨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이것 뿐입니다. 남자들은 짐승보다 못해서 하루 종일 야한 생각만하고, 발정나 있다는 것.
그 때가 2010년이었고, 일베도 메갈도 생기기 전이었어요.
 
여자들의 남성성에 대한 성적 희롱과 농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이든 상사나 교수들, 선배들의 경솔한 성희롱에 대해 보복당해야 했고, 혼쭐이 나며 경고 당해야 했던 것은 항상 저희 세대였습니다. 그것을 당연한 듯이 동조해주고, 받아들여 주어야 하는 게 우리 세대의 미덕이었죠.

반면 저는 솔직히 키 작고, 못 생겼고, 운동 못 한다는 소릴 여러 번 들었어요. 그 중 상당수는 웃어넘길 수 있는 농담이라 아무 문제가 되질 않지만, 때론 독하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거에 대해 그 어떤 항변도 절대로 하면 안 되고, 꾹꾹 참아야 했죠. 그게 착한거니까, 그게 미덕이니까.
 
교수님들이 남학생들만 편애한다면 그건 손가락질 받고 질타당할 일이지만,
자칭 ‘진보적이며 성 평등적’이라는 남자 교수들이 예뻐하는 여학생들을 앞자리에 앉혀 호의를 베풀고 높은 점수를 주더라는 소문들은 때론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퍼져나가곤 했습니다.
 
가부장 시절에 누릴 걸 다 누린 어른들은 항상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자들에게 양보해야 남자다운 거라고, 옛날에 본인들 때엔 또래 여자애들이 당하는 게 불쌍해서 그런다며 우리 세대에게 짐을 냅다 떠안겼어요.
 
저희가 무슨 쓰레기장인가요?
왜 저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차별들을 저희가 다 보상해주어야 하지요?
 
죄송하지만, 이제는 곁에 계신 아내 분께나 잘해주십시오. 가부장제적 성차별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분들은 바로 그 분들입니다.
젊은 여자애들 너무 좋아해서, 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도 괜히 안쓰러워 보여서 걔들 권리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지만, ‘조건만남’을 검색하고 하는 마인드로 그러지는 마시구요.
 
찌질해 보이시죠?
네, 맞습니다. 저희 정말 찌질해요. 찌질이들 투성이에요.
길거리를 걷다보면 자신감도 없고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남자애들, 이젠 정말 찌질해보이고 불쌍해요.
 
성비가 가장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게 저희 세대인거 알고 계시죠?
혈기왕성한 남자애들, 사랑스런 눈빛 하나 주고받을 짝이 없어요.
메갈들은 두 손들고 환영할 겁니다. 그들 목적이 ‘씹치남 도태’니까. 근데 사실 메갈이 없었어도 우리는 서서히 말라가버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도 사랑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어요. 왜, 안 되나요? 우리가 뜨거운 마음을 품는게 죄가 되나요?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모두들 사춘기 시절의 플라토닉한 근사한 몽상에 젖어 연애를 꿈꾸는 데에서 시작하니까요.
 
그러나 순애보를 바치고 싶어도, 밤하늘에 펼쳐진 별빛을 바라보며, 그만큼 오래갈 미래를 계획하고 싶어도, 어두운 밤길에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기사도를 발휘하고 싶어도 우리는 빈털터리에, 남아도는 잉여들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가장 오랫동안 어려운 공부를 해왔는데도 가장 손에 쥐어지는 게 적은 세대네요. 열심히 알바 나가서 돈을 벌어도 손에 쥐어지는 건 몇 푼 뿐, 아, 참고로 알바 일자리는 여자들이 더 많아요.
줄 수 있는 거라곤 노래 한 곡, 농담 한 마디 밖에 없지만, 그나마도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로 넘쳐나고, 여자아이들은 그 중에 더 잘난 놈을 골라가겠죠.

그놈의 연애한다는 게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 찌질해졌네요. 솔로대첩이라고 행사를 열었는데 손 한 번 못 잡아본 시커먼 남자애들만 북적이고...
 
자기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운 걸 알지만, 창피한 걸 알지만 오늘도 야동을 틀고 만화를 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여자들은 더 싫어하겠죠, 뭐...
이 상황을 마치 바퀴벌레 보듯 경멸하면서도 여유롭게 비웃을 수 있는 당신들이 차라리 부러워요. 그러면서도 성차별 반대니, 여권신장이니 하면서 우리를 흡사 불가촉천민 보듯 대하면서도 옳은 일을 했답시고 칭찬을 받겠죠.
 
예, 맞습니다.
저희 소심하다면 소심하고, 찌질하다면 찌질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찌질이들로 내쳐져서 바닥을 나뒹구는 게 일종의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의혹 하나 정도는 품어 볼 수 없나요?
경제격차에 대해서도, 교육격차에 대해서도 항상 사회구조적 원인을 들이대는 진보주의자들이잖아요.
 
저희 솔직히 상처 정말 많아요. 진짜로 많아요.
20세기까지 모든 시대를 통틀어 20대, 30대 혈기왕성한 남자들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이번만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저희가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모두 자기 나이에서, 자기 성별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당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죄송하지만 메갈 분들께서 하고 계신 것, 그런 모욕들 감당하고 그 분들을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아요. 그런식의 페미니즘은 설령 의도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도 상처 많은 분들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상처 많은 사람들만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서로에 대한 가시 돋친 말은 그 무엇보다도 해악이 더 큽니다. 저는 메퇘지라는 표현도 정말 싫어합니다.
 
메갈 분들 본인들이 정확하게 확인했듯, 저희 정말 별 볼품없어요. 찌질하고 하찮아요.
메갈에서 이야기하는 여성혐오적 분위기, 여성혐오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는지 불명확하고자 하지만, 사실 하나하나 깨고 보면 저희도 많은 부분 공감해요.
하지만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사실 그런 문제들의 원인이 저희 젊은 세대도 아니에요.
 
기업의 유리장벽이요? 저희도 반대합니다. 능력이 아닌 성별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건 잘못된 행태입니다. 하지만 그게 저희 때문인가요? 기업에서 인사권을 쥐고 계신 높으신 분들 책임이죠. 그것에 대해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기껏해야 반대 시위를 나가서 맹렬히 싸우는 것뿐인데, 저희가 그런 시위로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는 어떠한가요? 저희가 무엇을 했나요? 오히려 저희도 육아를 위해 아쉽게 직장 문을 나서야 하는 분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힘이 없어요. 이것 역시 높으신 분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또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눈치 안 보고 육아 휴가를 나갈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떻게 손쓸 수도 없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요? 물론 저도 저보다 네 댓살 많은 형들 중에 생각 없이 말하는 형들 몇 명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저희 책임이 맞네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더욱더 성희롱이라는 관념에 무감각한 더 높으신 분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건 바뀌지 않겠죠.
 
메갈 분들이 흔히 타겟으로 삼는 찌질남들, 상당수는 애초에 취업조차 못했기 때문에 직장 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없어요. 사실 현실적으로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성 불평등 문제는 대부분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인데, 우리 세대 젊은 남자들은 위치도 낮고 힘도 없는 을 중의 을이라 그런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안 됩니다.
 
개별 남자들을 실컷 비웃고 조롱하고 헐뜯어도 저희를 공격한다고 저희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저희가 아무리 뭣 잡고 반성을 한들 그 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단순히 그럼으로써 본인들 울분을 삭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목적이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그게 페미니즘은 아니죠.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괜히 타겟이 된 저희가 반발하는 것도 정당하게 되구요.
 
그럼 다른 문제는 어떠한가요.
성범죄자들이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요? 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마찬가지로 성범죄자들을 혐오하고 미워합니다. 남자들끼리만 있는 분위기에서도 김길태 같은 인간들 욕 많이 해요. 오히려 강제로 여자에게 손을 댄 남자들은 남자들 집단 내에서 가장 찌질하고 가치 없는 인간 취급당합니다.
 
여전히 집안에 가부장제가 남아 있나요? 그거 저희도 제발 좀, 제발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오신 어른 분들 의식이 그리 쉽게 변하질 않네요.
 
이러고 보니 저희 정말 무력하네요.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려 했어요. 무엇보다 전자발찌 달고 다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한다거나,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다거나, 길거리를 지나는 여자들을 손찌검한다거나 하는 추접스러운 짓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었구요,
 
나보다 물리적으로 약한 여자들이 위협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지, 절대로 추접한 짓을 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고, 삶을 짓밟지 말아야지, 그게 남자로서의 책임감이죠.
그런 자긍심이 그나마 조촐한 자존심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였어요.
어떤 사람들은 저희를 모두다 싸그리 잠재적 범죄자라고 하죠, 심지어 여성혐오적 사회구조에 안주하고 있는 실질적 범죄자라고까지 하네요?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긍정적인 남성상을 꿈꿔볼 수조차 없었어요. 우리 세대부터 남성성 자체는 죄악시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네요. 왜 하필 우리 세대부터... 왜 하필 우리 세대부터... 이런 생각이 이기적이라는 건 알지만, 사실은 그래요.
 
우리가 추구할 만한 긍정적인 남성상이 없는 건가요? 저희의 망가진 삶을 다시 쌓아 올릴 토대가 될 만한 남성상은 필요가 없는건가요?
 
TV에 나오는 걸그룹들은 남자들은 필요 없고, 우리가 당당하면 된다, 이젠 우리 세대다! 하는 식의 노래를 부릅니다. 10년 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던가요? 20년 전에는요?
태어나자마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오질 않으면 감이 안 오실 겁니다.
 
또래 여자애들은 그들의 삶을 축복하고, 그들의 삶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그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추켜올리는 매체로 둘러싸여서 살아갑니다. 마치 세상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전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 남자애들은 그렇지 않아요. 종래의 마초적인 남성성 뿐 아니라, 아예 남성성 자체가 사정없이 짓밟혀 버렸는데, 새로이 꿈꿔볼 만한 그 어떠한 대안 조차도 없고, 그런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진지한 의식조차도 없어요.
‘젊은이의 삶’, ‘젊은 여성의 삶’은 어디서든 가치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젊은 남성의 삶’을 새로이 생각해보는 경우는 잘 없어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진보정당이 보수적인 거대한 세 정당보다 빠르게 이런 문제를 이해하고, 젊은 남성들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정책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우리가 좋은 정체성을 갖고, 우리를 받아주고 포용해주며, 우리의 삶을 하찮다 여기지 않는 그러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공론화라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참고로 어쩌면 여러 의미에서 가장 민감할 수 있는 군 복무 문제는 여기서 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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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님의 나이도 모르지만, 마치 동시대에 태어나신 분 같아서 정말 마음에 울렸습니다.
명문인거 같아서 퍼왔습니다.

허나 불펌입니다. 당원도 아니므로 쪽지나 댓글등 일체의 허락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불펌으로 인한 책임은 스스로 전부 지겠습니다.
출처 http://www.justice21.org/6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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