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아빠는 고아입니다. 고아 아닌 고아였지요. 6.25전쟁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작은 장터로 아들을 데리고 가서 작은 주머니에 떡을 넣어 주시고는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7살 어린 나이에 아빠는 3일을 기다리다가 걸어서 지금의 발안에서 용인까지 기억을 더듬고 물어물어 집을 찾아갔는데 일주일 만에 또 다시 할머니 손에 이끌려 좀 더 먼 곳에 버려졌습니다. 그 때부터 아빠는 머슴살이를 하셨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목돈을 준다는 주인 말만 믿고 동전 한 닢 받지 않고 하루에 한 끼, 아니면 막걸리 찌꺼기로 끼니를 때우면서 바보처럼 일만 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이젠 분가해서 나간다고 하니 주인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먼 곳으로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3일이나 걸려 심부름을 다녀왔더니 주인집은 모든 것을 처분하고 이사를 한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마음이 상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게 아빠의 고생은 또 다시 시작되었고 그 고생 속에서 엄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지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을 보신 아빠는 자신을 두 번이나 버린 어머니를 찾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하셨고 결국 만나셨습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아빠는 울기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사셨어도 우는 모습 보인 적 없고, 슬퍼하시는 모습도 보인 적 없는 아빠의 큰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 같으면 왜 나를 두 번이나 버렸냐고 원망도 했을 텐데 바보 같은 우리 아빠는 한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었노라고... - 새벽편지 가족 - ========================================= 누군가의 사연인데.. 읽으면서 눈물이 끊이질 않네요 공산당들이 젊은 사람은 죄다 전쟁터로 끌고 가거나 아니면 죽여서 전쟁만 피해서 혹은 사흘만 피했다가 돌아오마... 하구선 이산가족이 되고.. 제 선친께서도 그렇게 함경도 신포를 떠나.. ... 아버님 생각이 너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