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고] 선택적 정의와 진보의 가치…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 다 다릅니다.
몸무게 100킬로가 넘는 거구의 남성 A와 50킬로를 겨우 넘는 왜소한 남성 B가 있다. 둘은 평소 서로 때리며 대화를 하는 습관이 있다.
어느 날 몸이 약한 B의 분노가 폭발했다.
B: 야, 때리지 마. 너무 아프잖아. 나쁜 놈아!
A: 너도 나 때리잖아. 지금도 때리고.
B: 야, 니가 내 덩치의 두 배인데 이게 무슨 때리는 거냐?!
이 경우 둘 사이의 몸무게 차이라는 조건과, 폭력이라는 행위 중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강자가 약자를 때리면 아프니까 안 되는 것인지, 폭력은 누구에게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물어보자.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대부분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A는 강자라서 아프지 않으니까 약자인 B의 타격은 허용해도 된다고 하면 폭력이라는 부정의를 선택적으로 용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정의와 불의의 대결이 아닙니다.
게임 유저들은 바로 이 지점을 말하고 있다. 남성이 하면 혐오이고, 여성이 하면 왜 혐오가 아닌지,
여성의 불매는 왜 정당한 사회운동이고, 남성의 불매는 왜 여성혐오자들의 준동인지.
성적대상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성적대상화의 전형으로 욕먹는 게임의 성우로 참여하는 건 괜찮은데,
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변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왜 여성 대상의 성애물은 문제가 아니고 남성 대상의 성애물은 옷차림에서 캐릭터의 표정, 동작 하나까지 여성혐오인지.
정의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적인 정의, 즉 불편부당함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정의와 부정의의 판단이 일관되게 적용되길 원하는 것이지 내 폭력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3.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아닙니다.
4. 착한 낙인은 없습니다.
5. 공론의 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곧 우리가 바꾸려는 세상의 모습이다.”
운동 진영에서 내부 성찰을 주장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 신념의 윤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책임의 윤리에 기반한 행동을 시작하는 게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이 공론의 장을 회복하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를 들어가보시면 장문이지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가 아닌가싶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여태 나온 기사들중 사실관계파악이 가장 잘 된 기사같네요.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2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