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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파트
게시물ID : panic_89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lon마법사
추천 : 10
조회수 : 11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7/26 22: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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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수는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새벽 3. 늘 그렇듯이 이 늦은 시간에 길게 늘어선 아파트 복도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침묵이 감돌고는 했다. 간혹 가다 소주 한잔 걸치고 오는 날이면 그의 예민한 감수성은 이 조용한 길을 흡사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비장하면서 쓸쓸한 기운이 느껴지도록 상상하게 만들었다.

 

흠칫.

 

걸어가는 도중 진수의 등 뒤로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진수는 평소와는 다른 이 갑작스런 느낌이 너무나 생소했다. 그건 마치 미지의 생물이 그의 목 뒤를, 긴 혀로 햛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름끼쳤다. 진수는 이 불쾌한 느낌의 근원지를 찾아내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것은 늘 그렇듯이 굳게 닫혀 있는 수많은 아파트 문들뿐이었다.

 

착각이었나?’

 

 진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늘 그는 평소보다 꽤 많은 업무량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평소보다 족히 수배는 되는 심력을 소비하여 고생을 하였다. 그래,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거야. 진수는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바로 옆문에 적혀 져 있는 번호는 1007호다. 이제 문 8개만 지나면 진수의 집이 나올 것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얼마 전 귀농을 한 터라 부득이하게 작지만 이 큰집은 이제는 진수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 그마저도 집이 팔린다면 직장 근처 고시원으로 들어갈 예정이라 진수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휴양지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그의 인생에 있어 혼자서 이렇게 큰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일이 앞으로도 다시 있을까 싶어 이 남은 시간을 좀 더 즐기기로 했다.

 

 1008호를 지나가고 그가 다섯 걸음 지났을 때 1009호가 나왔다. 그 때였다. 진수의 등 뒤로 예의 그 불쾌한 느낌이 다시금 들었다. 진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아 착각이구나. 진수는 다시 걸음을 걸었다. 1010호가 그의 옆으로 지나갔다.

 

 1011, 1012. 그가 정확히 1013호에서 세 발자국 정도 걸어갔을 때 갑작스럽게 1014호 의 문이 열렸다.

 

, 두 발자국만 앞에 있었다면 맞을 뻔 했네.’

 

 상념에 젖어있던 진수를 깜짝 놀라게 하며 문이 열렸다. 게다가 늦은 밤인지라 인기척도 없이 너무 확 열려 버린터라 진수는 순간적으로 평소보다 더 몸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수는 순간적이지만 머리 뒷부분이 확 땅기는 느낌을 받았다.

 

 진수는 화가 났다. 이 늦은 밤 이런 경험은 그에게 별로 달갑지 않았고 피곤에 절어있던 그의 몸은 방금 전의 일로 확실하게 더 부담스러워 하는 듯 했다. 진수는 자신의 기분을 망쳐버린 사람이 누군지 얼굴을 보고자 고개를 확 돌렸다. 그의 눈은 마치 내가 얼마나 화났는지 넌 알아야해 같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열린 문으로 다급하게 검은 바지와 회색 야상외투, 그리고 짙은 색의 군청색 모자를 쓴 30대 후반 정도의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사내가 나왔다. 꽤나 말라 있어서 그의 세모난 얼굴과 작은 눈은 제법 강단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진수는 그의 외관과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고 그가 뱃일을 하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차를 타고 좀만 가면 항구이기도 했고 그의 옷에서 비릿한 향이 진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아 냄새.’

 

 진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코로 가져다 댈 뻔 했지만 당사자 앞에서의 이런 행동은 실례인지라 가슴팍까지 올라가던 손을 다급하게 다시 내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의 일에 대해서 약간의 항의를 하려고 했던 생각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생각해보면 늦은 밤이었고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상대방에게 화를 낼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절묘했을 뿐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이 아파트에서 꽤 오래 기거한 터라 그는 적어도 같은 층의 이웃들의 얼굴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인가?’

 

 그러고 보니 언 뜻 듣기로는 이번 주에 1013호에선가 1014호에서인가 이사를 온다고 했던 것 같았다.

 

 문이 닫히면서 상대방도 진수를 인식한 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진수는 안면도 틀 겸 으레 그렇듯이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물론 거기에다 이왕 마주친 거 빨리 인사하고 집으로 들어가서 쉬자 싶어 재 빨리 말을 꺼낸 이유도 있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사내가 진수를 보았다. 그는 진수를 보고 갑자기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행동은 꽤나 과장된 모습으로까지 비춰졌는데 그것은 진수에게도 조금은 불안한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뭐지? 뭐 들킨 것처럼 놀라네

 

 진수는 그를 아래에서 위로 다시 올려 다 보았다.

 온통 어두운 색의 옷과 깊게 눌러쓴 모자도 그렇고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는 문에 가려져서 못 봤던 꽤나 커 보이는 캐리어가 들려있었다. 이 비릿한 냄새의 근원지는 사내의 옷이 아니라 저 캐리어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진수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보이던 뉴스에서의 살인사건 cctv영상을 봤을 때 나오는 살인자들의 행색과 앞에 서 있는 이 사내의 인상착의와 행동이 꽤나 일치했다.

 

 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두 발자국 정도 뒷걸음질 했고 그러다 아차 싶었다. 상대방에게 너무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구나. 만약 자신의 상상이 맞다면 이러다 자기까지 제 2의 피해자가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공포감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내가 손에 들려있던 캐리어를 놓고 빠르게 진수에게 다가왔다.

 

, , 왜이러..세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발음이 꼬이고 떨렸다. 목소리에서 공포감을 읽었을까? 사내가 다급해 보이는 표정으로 진수의 팔목을 잡았다. 재빨리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마른 체형과 달리 힘은 어찌나 억센지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씨발, 이 새끼가 확실히 뱃일하는 새끼구나 뭐 이리 힘이 쎄

 

 진수의 머릿속에서 다급한 상념들이 무수히 지나쳐갔다. 살인, 납치, 강간(?)등의 수많은 범죄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는 납치되어 40년 동안 염전노예 생활을 했다던 기사도 봤는지라 그의 마음은 더 다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진수는 머릿속에 자신이 멍한 눈으로 수십년간 바닷바람 맞으며 노예생활을 하는 모습이 그려지자 더 다급해졌다.

 

아 씨팔 노라고!! 여기 사람 살려요!!”

 

 진수는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사내가 당황했는지 잡고있던 진수의 손목을 놓았다.

 

이정도면 아파트 주민들이 다 나와 보겠지? 좋아, 난 살았어. 주민들이 나올때까지 일단 거리를 벌리자

 

 진수는 뒤돌아서 사내를 등지고 빠르게 아파트 복도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살려~!”

 

 그리고 주민들이 좀 더 빨리 알 수 있도록 크게 소리 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서 거리좀 벌렸겠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사내가 다급하게 뛰어 오고 있었다.

 

뭐야 이정도면 오히려 저쪽이 도망가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이정도 소란이면 저 사내가 범죄자라면 오히려 도망을 가는 것이 더 좋은 판단이었을거 같았다. 아니면 그마저도 잊어 먹을 정도로 저 사내가 살인에 미쳐있는 걸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정도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수는 다시금 다리를 털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때 진수는 의아함을 느꼈다. 진수가 기억했을 때 아파트 복도는 이렇게 길지 않았다.

 

뭐지, 복도가 왜 이리 길어?’

 

 다시 뒤돌아보니 사내가 뒤에서 한참의 거리를 두고 뛰어 오는게 보였다.

 

이렇게 거리가 차이가 났었나?’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사내가 입을 움직이며 뭔가를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특이하게도 그의 입에서 이상하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진수는 집중해서 사내의 입을 좀 더 자세히 보았다. 동시에 진수의 입도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위해 사내의 입모양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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