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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적 인간 - 부당한 불편함과 사회적 안전에 대해.
게시물ID : phil_124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ung.K
추천 : 1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9/21 11: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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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A 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10 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소모해야 할 비용이 5 라면 A 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적은 손해를 가져오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소모해야 할 비용이 9 라면?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손해가 적다.
하지만 문제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10 인데, 문제 해결을 위해 소모해야 할 비용이 11이나 혹은 그 이상이라면, A 는 자신의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 보다 적은 손해를 입기 위해 취해야 하는 행동이 된다.

이는 길이 쓰러진 나무로 막혔을 때, 나무를 치우고 지나가는 시간이 길을 돌아가는 시간보다 명백히 큰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단, 길을 지나는 일은 이번 한 번뿐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길은 혼자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A 의 앞을 막아서 시간적 손실을 입힌 나무는 B 와 C 및 일련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시간적 손실을 강요하게 된다.

나무로 인한 시간적 손실의 문제를 문제 Tree 라고 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Solusion-Tree 라고 하자.
문제 T 에 의한  손실이 10 이고, 문제해결 S-T 에 들어가는 비용은 문제 T 에 의한 손실값을 상회하는 임의의 값인 30 으로 가정한다.
이 때, 길을 지나는 사람이 많아지면 문제 T에 의한 손실값도 정비례하여 증가한다.
하지만 문제해결 S-T 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정값이며, 다수가 분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 전체 손실비용과 해결비용에 대한 그래프는 다음과 같이 된다.

정상문제.JPG

즉, 상호 협의가 가능한 통행인이 3명을 초과해 길을 지나가는 경우, 이들은 나무를 치우고 지나가는 것이 보다 적은 시간적 손실을 위한 행동이 된다.
심지어 인간은 홀로 길을 지날 때에도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통행자를 '가정'하여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통행인 A가 자신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한 많은 동행인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럼 이제 또 다른 가정을 해 보자.
만약, 문제가 확산될 수록 해결비용이 같이 증가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전염성 눈병을 예로 들 수 있다.
눈병에 걸리면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못하면 10 의 손해가 생긴다. 그리고 이후 눈병은 자연스럽게 낫는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눈병 치료를 위해 30의 대가를 요구한다고 할 때눈병에 걸린 사람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것이 보다 적은 손실을 위한 선택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눈병 감염자가 아무리 증가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즉, 문제의 확산과 해결 비용이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는 경우이다.

무리문제.JPG


병원에 가는 것만이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일 경우, 문제가 아무리 확산되더라도 아무도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며, 전체 손실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눈병에 걸린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고 격리되어 홀로 손실을 감수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눈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받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눈병에 걸린 사람이 필연적으로 주변의 건강한 사람을 감염시킬 것이 예고될 경우, 주변의 건강한 사람은 각자 최대 9 만큼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눈병에 걸린 사람의 병원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 이득이 된다.
눈병에 걸린 사람이 한 명일 경우, 그 손실비용과 해결비용의 그래프는 앞서 길을 막고 있는 나무를 치울 때의 손실-해결 그래프와 동일하게 되며, 따라서, 잠정적 손실을 계산하는 감염 위험자의 비율이 '손실:해결' 비용의 비율보다 클 경우, 즉, 눈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된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눈병에 걸린 사람의 손해는 줄어들게 된다.

또는 잠정적 손실을 계산하는 감염 위험자의 숫자가 감염자의 증가 속도보다 빠를 경우(사회적 공포가 지수함수적으로 확산될 경우), 손실비용에 대한 가정으로 인해, 실제 해결비용이 가정된 손실비용보다 적어짐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교차점이 생기게 된다.

공포확산.JPG


위 그래프에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주위로 확산되며 그 자신의 손해가 최소화되긴 하지만, 홀로 문제를 감당하는 것보다는 사회 전체적으로 소모하게 된 비용이 훨씬 큰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재발한다면 어떨까?

눈병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여 병원균을 박멸하지 않을 경우, 이 문제가 다시 재발한다면?

이 경우, 문제 해결비용은 위의 그래프와 동일하다.
그러나 손실비용은 문제가 재발될 때마다 누적되어 증가하며, 문제가 3번을 초과할 경우엔 이미 초기 해결비용을 상회하게 된다.

문제재발.JPG

즉, 문제 반복 회수가 손실-해결 비용의 비율보다 클 경우, 문제를 초기에 해결하는 것이 장기적인 손해를 막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다면?

문제가 반복될지 반복되지 않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제가 닥치는 매 상황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방치하는 것이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위 그래프에서 보았듯, 사회적 비용 손실이 큰 상황에서도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가능하다.
문제가 생긴 개인이 홀로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긴 개인으로 인해 보다 큰 잠정적 손해가 예고될 경우이다.

위위 그래프에서, 눈병이 생긴 A가 주변에 눈병을 전염시키고 사회적 공포를 야기하며 발생한 총 손해는 125 이다.
이상적인 경우, 그가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의 눈병을 스스로 치료하며 생긴 손해는 30이다.

그리고 모두가 착한 세상에서, 눈병에 걸린 사람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10의 손해를 보았을 때, 눈병이 13 번 이상 재발할 경우, 선량한 개인의 선택은 보다 큰 사회적 손해를 야기하게 된다.

13 번은 한 개인에게 반복되기엔 좀 많은 숫자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회 집단 전체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가 끝없이 반복되어 장기적인 손해를 끼칠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 해도, 먼저 나서서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피해자가 될 기대값을 감안하더라도 잠자코 닥치고 있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니까.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13 번은 개인에게 반복되기엔 너무 많은 숫자니까다.

매 번 집을 나설 때마다 발에 채이는 돌덩이를 치우는 정도라면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 돌덩이는 내일도, 모래도 발에 채일 테고, 빨리 치우면 치울 수록 손실이 적을 것이 확실하니까.
하지만 창고에서 간간히 쥐 피해가 발생하는 도시에서 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하수로를 비롯한 쥐 서식지를 모두 소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쥐는 어차피 들어올 구멍을 만들어 놨기에 들어오는 것이고, 고양이를 키우든 약을 놓든 다들 알아서 조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쥐는 계속 발생하고, 수십 년이 지나면 누적된 피해는 쥐 소탕에 필요한 예산을 상회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쥐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 이득이다.
그 자녀세대에서 다시 그 자녀세대로 이어질 때까지도.

쥐 피해를 입은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사회의 쥐에 대한 잠재적 손실 비용을 과다평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시위를 하거나,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의 집에 쥐를 풀어놓거나, 혹은 시장집 침대에 쥐를 풀어놓는 진상짓이라도 벌이던가.
이 사람의 시위 및 진상 행동으로 인해 쥐 서식지를 모조리 소탕할 때까지의 피해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의 행위는 결국 도시의 장기적인 손해를 방지하게 된다.

각종 시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시위의 정당성이 전제될 때) 누군가가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위해 시위를 하고, 시위와 파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만, 그들에게 닥친 부당함은 결국 사회의 문제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점을 볼 때, 그들로 인한 부당함의 개선은 장기적으로 보아 사회 전체의 안전망으로 이어진다.
오히려 시위와 파업은 보다 많은 관계 없는 보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고통받게 하고 괴롭혀야 한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시위와 파업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세상을 전제로 하자.
이런 세상에서는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상관도 없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사회의 손실을 방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와 상관 없는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좀 더 관용적으로 대해도 되지 않을까?

혹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살고자 하는 우리들에겐 좀 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타인들에게 호소하는 뻔뻔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출처 http://todayhumor.com/?phil_1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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