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다음에 설민석 강사가 성종을 "자식농사는 실패한 불행한 왕"으로 묘사를 하더군요.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잘 보면 그게 성종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연산군이 조선왕조의 Top 을 달리는 견공자제분이라 그런 것일 뿐이죠. 연산군과 Top 을 달리는 견공자제분은 사실 더 있습니다. 그나마...연산군의 경우는 아버지가 대놓고 연산군을 미워하거나 한 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참혹하고 살벌했던, 그리고 간간히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하는 조선의 왕과 왕자들의 관계를 한번 지켜보도록 하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적통인 대군과 공주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적통이 아닌 서자인 경우는 "대군"이 아닌 그냥 "군"이고, 딸 역시 "공주"가 아니라 "옹주"입니다. 조선 전반기엔 아이를 많이많이 낳아서 적통만 해도 수두룩 했지만 성종의 아버지였던 세조가 판을 한번 엎은 뒤에는 기이하게도 적통의 수가 많이 줄어듭니다. 심지어 아예 후반기에는 적통인 대군의 자손이 아닌 경우에도 왕위를 물려받기도 합니다.
1. 태조
자식들끼리 죽이니 살리니, 그것도 두번씩이나
이방우 - 태조 2년 사망
이방과 - 정종
이방의
이방간
이방원 - 태종
이방연
경신공주
경선공주
이방번
이방석
경순공주
태조는 두번의 결혼을 통해 왕비가 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째 부인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아들을 둔 덕에, 후계자 걱정은 특별히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후계자를 할만한 아들들이 너무 많았기에, 언제든 후계자의 난이 일어날 확률이 있었습니다. 결국 후계자의 난은 한번도 아니고 두번식이나 발생하고 맙니다. 일단 첫째 부인의 아들들 중 태종인 방원의 공이 제일 컸고, 다른 아들들은 욕심은 있되 방원만큼의 공도, 인물도 가지고 있진 않았죠. 그런데 말입니다. 태조가 무슨 생각인지 둘째 왕비의 아들, 그것도 막내 아들인 방석에게 덜컥 세자 자리를 주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조가 조선을 세운 공로는 지금 세자보다는 첫째 왕비의 아들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첫째 마누라의 자식들이 둘째 마누라인 작은 어머니의 가족들을 슥삭해버린 게 1차 왕자의 난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한 번 일어난 일은 두번도 일어날 수 있죠. 넷째 방간이 왕위에 욕심을 부려서 쿠데타를 일으킨 게 제 2차 왕자의 난입니다. 그런데 방간은 방원만큼 지지를 받지 못해서 다른 신하들이 방간보고 "하지마. 하면 너 죽는다." 라고 말렸는데도 쿠데타를 일으켰고 저승구경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동복형제였기 때문에 조카들은 살려두었으나 태종의 아들 세종님하가 이 사촌조카를 잡아 죽이시는 군요. 역시나 왕권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였고 가족들은 노비로 삼거나 죽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래 지적하신 대로 방간은 죽지는 않고 귀양만 갔습니다. 역시 동복 아우를 죽이진 않았군요. 태종 막장도 일부 감소했습니다.(16-08-09 수정)
자식들이 아버지가 멀쩡히 왕위에 올라있는 상태에서 서로 죽이고 살리고 했으니 일단 아버지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거시기한 상태가 되겠습니다. 참 지지리 말도 안듣는 아들을 둔 태조가 좋은 아버지였을까, 아니면 태종이 나쁜 새끼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판이하게 달라졌겠죠. 뭐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정도전파를 갈아버린 거로 나오긴 합니다만.
일단 그만큼 태종 이방원의 빠와가 세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고려를 멸망시킨 업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참고로 태종은 본인이 직접 방석을 죽인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태종이 있지 않아 죽인 장소와 시간을 알지 못할 뿐이죠.
출처 : 태종실록 22권, 태종 11년 11월 6일 계해 3번째기사
2. 정종
정종은 정실부인에게서 자식이 없습니다. 대신 서자만 15남 8녀나 됩니다. 그러니까 첫째부인이 불임이었다는 거죠. 조선 후기였다면 이 서자들에게도 왕위계승권이 있었겠지만, 정종 자체가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에 눈치를 보기 위한 갈아타기 허수아비 왕이었던 관계로, 서자들에게 왕위계승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골때리는 건, 태종의 즉위는 정종이 양위하는 것으로 하게 되는데, 몸이 아프거나 해서 물려준 것도 아니고, 조선 왕조사상 처음으로 3명의 왕이 동시에 살아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1400년에 양위를 했는데, 이 때 태조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태조가 죽는 1408년까지, 태종 위로 상왕이 2명이 있는 참으로 빤톼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게 된 거죠. 즉, 태상왕-노상왕-왕 의 구조로 8년동안 이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종은 상왕 짓을 18년동안 하므로 건강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과연 좋은 아버지였을까? 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정종은 존재감 자체가 희미하니까요.
*아래 지적해 주신대로 제가 오타가 있었습니다. 정조는 -> 정종은 으로 수정합니다. 어쨋든 역사상에서 꽤 특이한 경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보니 고려 제2대 왕도 존재 자체가 희미하네요.
3. 태종
아버지께 배워서 그렇습니다! - 양녕대군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양녕대군 - 폐세자. 자손이 아주 대번성
효령대군 - 90세까지 장수. 역시 자손이 대번성함.
충녕대군 - 세종. 서자포함 18남 3녀. 이 분 못하는 게 뭐지?
정선공주
성녕대군
태종은 형제를 슥삭했던 경력이 있었기에, 자식들도 우애가 있길 바랬습니다. 실제로 태종의 아들들은 우애가 돈독한 편이었습니다. 양녕대군은 세자에서 물러난 뒤로, 세종이 따로 극진히 챙겼고, 그 형이었던 효령대군 역시 잘 챙겨서 장수했습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은 싸가지가 영 없었으며 개차반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도 너무 닮았는데 그게 나쁜 쪽으로 닮은 거라...
속썩이는 것도 뭐가 있었는지 할아버지를 괴롭힌 아버지마냥 속을 썩여 결국은 세자에서 내려오게 되었죠. 뭐 충녕에게 물려주고 왕 노릇하기 싫어서 그랬다- 고도 하지만 기록에서 나오는 양녕은 그냥 아버지 믿고 나대는 권력자의 아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만약에 그대로 폐세자를 하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면 연산군보다 먼저 왕위에서 내려왔겠죠. 그러나 양녕은 눈치는 빨랐습니다. 조카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먼저 달려가 수양대군을 지지한 게 바로 양녕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버지랑 또옥~같이 물론 스케일은 조금 작긴 하지만, 아버지 속을 아작낸 아들이 있다는 건 똑같군요. 그래도 태조보단 낫습니다. 자식들끼리 서로 죽이니 살리니를 하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인데 태종은 양녕대군과 명나라의 황녀를 결혼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시인 황엄에게 넌지시 물어봤다가 대답이 없자 그냥 김한로의 딸과 결혼시켰죠. 그런데 어떻게든 이 결혼을 성사시키자! 라고 조찬, 하윤 등이 황엄에게 "왕의 말이 잘못 전해졌소. 세자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황녀와의 결혼을 알아봐주시오." 라고 전하려고 했으나 발각됩니다. 왕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므로 엄청 큰일이긴 한데 태종은 그냥 "좋은 의도였고 공신이니 봐주자." 해서 넘어갑니다. 만약 이 결혼이 성사가 되었다면? 동북아시아 역사는 새로운 소용돌이를 맞았겠죠.
출처 :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6월 8일 경인 1번째기사
4. 세종
아들을 너무 몰랐던 아버지
정소공주 - 10살 사망
세자 - 문종 38세 사망
정의공주
수양대군 - 세조
안평대군 - 35세 사망. 자식들이 아버지 죽기 1년 전후로 사망. 사망원인은 형 수양대군이 라이벌이라 죽였음. 끝.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 세조한테 대들어 단종 복위운동하다가 발각대어 끔살.
평원대군
영응대군
세종대왕은 아이를 참 많이 낳으신, 정력도 참 충만하신 왕입니다. 정치도 잘하고 외교도 잘하고 과학과 문화도 발전시키고, 아이도 많이 낳고, 정말 못하는 게 없었건만, 이 모든 것을 잘 하신 분이 첫째 아들 문종은 참 아내복이 없었습니다. 그냥...문종이 좀 특이하게 여자에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종의 아내복은 문종 란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저쨌든 문종은 즉위기간만 짧았다 뿐이지 이미 세종이 살아있을 때부터 대리청정을 8년이나 해서, 세종 말년의 치적은 사실 문종이 한 겁니다. 세종이 잘못한 거라면 사실 아들들을 너무 몰랐다는 거죠. 문종이 건강할 때는 그러한 야심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문종이 죽자 둘째 수양과 셋째 안평의 야심은 겉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나마 세종은 본인 살아있을 때 그꼴을 보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5. 문종
아빠가 먼저 죽어서 미안해
경혜공주 -37세 사망. 살아 있을 때 갖은 고초를 거쳤고 아들은 잘 키워냈다.
단종 - 작은 아버지(수양대군, 세조) 한테 죽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들과는 달리 문종은 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던 공돌이 왕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마누라는 지지리 복이 없어, 첫째 마누라는 문종이 도무지 자신과 자려 하지 않자 다른 궁녀들의 신발을 태워 문종에게 먹이려 하다 쫓겨납니다. 둘째 마누라 역시 문종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 마누라는 첫째 마누라랑은 좀 색달랐는데, 무려 레즈비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셋째 마누라는 왕비를 따로 뽑지 않고 그냥 문종이랑 친했던 궁녀 중 한명이 됩니다. 그런데 그 궁녀가 단종을 낫다가 죽네요. 거기에 문종도 일찍 죽습니다.(재위 2년만에 사망) 문종이 동생들을 특별히 경계하거나 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 역시 형이 몸이 안 좋자 먼저 찾아가서 형이 죽으면 안되네 어쩌네 하면서 의관을 들들 볶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이 죽자...동생인 안평대군과 파워게임을 벌이게 됩니다. 문종이 만약 5년 정도만 더 살았어도 수양과 안평은 그냥 양녕과 효령처럼 유유자적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딸바보였다고 합니다. 딸인 경혜공주가 결혼을 하게 되어 집을 짓게 되자, 민가를 헐게 되었는데, 그 헐은 민가가 30채나 된다고 신하들이 상소를 올립니다. 그러자 문종은 "내가 알아보니 고작 5채 허물었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신하들 쫑코를 주었다고 합니다. 만약 조금만 더 살았다면 단종을 위해 주변을 정리정돈해 주었겠지만, 문종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년이었습니다.
*신하들이 세조랑 안평대군을 벌주자는 의견은 있었습니다. 세조/안평대군 모두 궁궐 내에서 불공을 들이지 말자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 것은 세종이 하는 일을 반대하는 거라고 세종 엿먹이는 것 아니냐, 란 반대가 1차였고, 승려에게 칼을 씌워 체포했는데(도첩이 없는 승려가 여염집에 들어갈 경우 법에 어긋납니다만, 문종은 칼은 씌우지 말라고 합니다.) 수양이 그자를 풀어주었다 해서 2차로 벌을 주자 합니다. 거기에 안평대군이 수많은 추종자를 이끌고 절에서 잔치를 벌인다며 신하들이 벌주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문종은 모두 무시합니다.
문종실록 10권, 문종 1년 10월 8일 계유 2번째기사
**문종이 몸이 안좋아서 누워있자, 수양대군이 찾아와 "왜 청심원을 쓰지 않는가?" 라고 와서 통곡했으나 이미 늦었다고 합니다.
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5월 14일 병오 2번째기사
6. 세조
내 아들을 위해선 친척이고 뭐고 없다.
의경세자 - 덕종, 성종의 아버지
*덕종은 추존입니다. 일단 세자는 추존이 가능한데, 훗날 인조는 병크를 터뜨립니다. 자기 아버지인 대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했죠. 세자는 제 2의 임금이었기에 추존이 일단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조의 아버지(정원군)는 워낙 막장인 인간이라 세자를 한 적이 없어요. 정원군은 고모였던 하원군(선조의 맏형) 부인을 감금하고 두들겨 팬 인간이기도 합니다.
혜양대군 - 예종
의숙공주
갑자기 자식수가 급감합니다. 세조는 심지어 서자조차 많지 않은데, 왕위에 즉위할 때까지 당시로서는 꽤 오랜 시간동안 대군이어서 그렇습니다. 문종이 갑자기 죽자, 수양대군의 스탠스가 참 애매해 집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김종서 등의 신하들이 가지고 있었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건 오히려 셋째 안평대군이었죠. 예나 지금이나 중간에 낀 형제는 존재감이 희미합니다. 수양대군 역시 처음에는 안평대군에게 밀렸고, 왕위찬탈을 할 때도 이거 성공못하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하던 왕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왕위에 오르자...안평대군을 "정리" 하고 그 가족도 전부 "정리"합니다. 그리고 동생이었던 금성대군은 조카인 단종을 복위하려다가 역시 "정리"당합니다. 형제 둘을 죽인 왕인 것이죠. 우리는 이렇게 왕권을 위해 형제를 정리한 예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태종이지요. 신기하게도 태종이 한 걸 세조가 고대로 해 줍니다. 이로서 우리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정실부인이 오래오래 살면서 너무 정숙하면, 애가 많지 않게 됩니다. 세조도 같은 케이스로, 적통은 2남1녀뿐입니다. 다만 첫째는 일찍 죽었고, 둘째는 왕을 하긴 합니다만...
7. 예종
아빠가 일찍 죽어서 미안해 (2)
인성대군 - 2살 때 사망
제안대군 - 조선의 유선(?) 예종이 오래 살았다면 왕이 될 팔자 or 단종 Ver 2.0
현숙공주
혜순공주
예종은, 1년 3개월만에 세상을 듭니다. 2년만에 세상을 뜬 문종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문종은 죽기 전 8년간 대리청정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은 닦았고, 단종도 아주 어린 것만은 아닌 14살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종은 나이도 어렸고, 그가 죽었을 대 제안대군은 고작 2살이었습니다. 이 예종이 죽는 바람에 여러 사람의 인생이 꼬이게 되죠.
인생 꼬인 사람
1. 제안대군 - 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대군으로 살다 죽었다.
2. 월산대군 - 성종의 형이어서 왕위계승권이 더 높았는데 동생 마누라 뒷배경이 더 세서(한명회의 딸) 대군으로 살다 죽었다.
8. 성종
니 엄마 내가 죽였다.
연산군 - 폐위당하면서 아들내미들 몰살
진성대군 - 훗날의 중종
포함 16남 12녀
예종이 죽는 바람에, 그리고 할머니의 배려로 왕이 된 성종입니다. 성종은 보다시피 여색을 밝혔고, 어우동을 재판하면서 어우동은 죽이고 관계된 양반남자들은 사면했으며, 아내를 죽인 냥반입니다. 음...메갈이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종 즉위시에 만들어진 경국대전에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항목이 적힌 이후로, 여성의 인권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지요. 어쨌든 성종은 연산군을 낳은 윤씨를 왕비로 만든지 2년만에 죽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연산군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만, 2살 때 죽은 엄마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쨌든 새어머니와 연산군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고 합니다.
*아래 댓글에서 언급하신 거와 같이, 세조는 성종의 할아버지입니다.
9. 연산군
아들아 아빠가 미안해
폐세자
그외 아들 4명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알기에 연산군은 조선왕조 Top of 견공자제분에 속합니다만, 조선 후반기에 연산군과 쌍벽을 이루는 견공자제분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과연 연산군이 Top of Top 인가? 하는 의문점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패륜을 마구 저질렀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연산군이 미친Nom 이다- 라고 알고 있긴 하지만 처음 10년간은 그냥 그럭저럭 중간은 가는 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아버지가 남긴 빅엿인 대간들에게 들들 볶이다 못해 "안되겠어 이새끼들 정리해야겠어" 라고 맘을 먹고 사화를 일으키고, 자기 맘에 안든 신하들을 말그대로 정리해 버리죠. 그리고 얻은 강력한 왕권으로 그냥 놀아제낍니다. 그냥 놀기만 하면 잘 놀다가 죽은 왕이 되고, 연산군의 왕자들은 어쨌든 아버지마냥 개차반은 아니었으니 적당하게 살다 갔겠습니다만, 연산군은 시도 때도 없이 신하들을 협박했고, 신하들의 아내도 공유했고, 저승구경 투어티켓도 종종 내준 모양입니다. 결국 그 저승티켓 투어를 가족동반으로 끊어서 생각보다 일찍 저승투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10. 중종
너 죽어라
복성군 - 인종의 서자로 인종의 형. 중종의 명으로 죽임을 당함, 연산군 Gae새끼
세자 - 인종
효혜공주
의혜공주
효순공주
경현공주
경원대군 -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
인순공주
덕흥대원군 - 최초의 대원군으로 선조의 아버지
연산군의 미친짓을 끝내기 위해 신하들은 연산군을 끌어내고 연산군의 동생 중종을 앉힙니다. 만약 연산군이 중종을 정리했다면, 조선왕조는 상당히 일찍 대가 끊겨서 위로 거슬러올라갔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음대인 명종에서 사실상의 적통 계승은 끝이 나고, 최초의 방계 계승인 선조가 즉위를 하거든요.
중종은 조선 왕조 최초로 왕인 아버지가 아들을 죽입니다. 그것도 잘 살아 있는 맏아들을. 그냥 내버려둬도 월산대군이나 제안대군의 예가 있는데 대체 왜? 라는 물음이 들 수 있겠는데, 복성군은 참 안타깝게 죽었습니다. 복성군은 세자였던 인종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고 인종이 꽤 늦게 태어난 터라, 복성군의 어머니는 중종의 총애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복성군을 세자로 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종이 태어났고, 어느 날 온몸이 지져진 쥐와 함께 세자의 팔자가 적힌 저주의 글이 발견됩니다. 그걸 빌미로 복성군 및 복성군의 어머니는 사약을 받고 죽게 되지요. 권신이었던 김안로와 그의 아들 김희가 꾸민 일이었으나, 당시 김안로는 세력이 충만한 때였고, 세자를 위해 중종이 밀어준 것이기도 합니다. 김안로를 정리하고 나서야 복성군이 죽은 것은 사실 김안로가 꾸민 것이다~ 라고 밝혀지긴 하는데, 이미 죽은 지 오래인 복성군은 얼마나 억울할까요.
아버지로서의 중종을 보자면, 자식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적통이 아닌 서자였던 딸 효정옹주가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부마는 첩을 두면 안된다는 법을 어기고 첩을 둔 부마(조의정)를 벌을 주려 하죠. 하지만 효정옹주가 말려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를 말리던 효정옹주가 난산으로 오늘 내일 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중종은 급히 의녀를 파견했으나, 조의정의 첩 풍가이는 의녀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아 효정옹주는 죽고 맙니다. 사랑하던 딸이 어처구니없이 사망하자 중종은 풍가이도, 조의정도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외손주들이 있었기에 조의정은 재산을 몰수하고 귀양을 보냈고, 풍가이는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나름 효녀라(...) 신하들이 봐주자 해서 곤장 100대만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10일간 가둬두었다고 하네요. 딸이 죽은 방법 그대로 돌려주는 복수귀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게 워낙에 큰 충격이었던 나머지, 딸이 죽은지 몇 달 안되어 중종도 죽고 맙니다.
하지만 모든 자식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죠. 앞의 복성군을 보면 복성군의 두 누이도 같이 죽이려 했으나 우리 어진 인종이 요청하여 옹주 둘만은 살려주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인종 역시 복성군처럼 저승행 투어티켓을 일찍 받을 뻔 했습니다. 복성군의 처소에 불이 났는데 이게 문정왕후가 명종을 왕으로 삼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그래서 "안될거야. 그냥 죽자." 라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중종이 처소 앞으로 뛰어와 엉엉 울고 맙니다. 아버지가 우는 소리를 들은 인종이 "아부지!" 하면서 뛰어나가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제가 보기엔 본인이 처단한 첫아들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인종도 금방 죽으면서 명종이 즉위하고, 결국 문정왕후가 승리하게 됩니다.
11. 인종
야! 그게 효가 아니야!
자식 없음
인종은 즉위한 지 6개월만에 사망합니다. 인종은 아버지 중종의 상을 치루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나 단종(17세) 예종(20세) 보다는 조금 더 살았으니 아주 단명한 왕도 아니죠. 그리고 예종처럼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것도 아니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먼저 죽은 이복형 복성군이 참 아쉽죠. 중종이 이꼴을 봤으면 참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보니 효정옹주-중종-인종 줄초상이 나는군요.
12. 명종
마마보이
순회세자 - 14세때 사망
최종 승리자 문정왕후 아니 문정여왕의 아들 명종입니다. 아들이 있긴 있었습니다. 순회세자라고. 그런데 어렸을 때 이 외아들이 죽음으로써 조카인 하성군(훗날 선조)을 후계로 삼습니다만 이게 명종이 "이 사람을 내 후계로 삼는다." 라고 한 게 아닙니다. 명종비 심시가 이 하성군을 예뻐했기 때문이지요. 하성군은 형이 둘이 더 있었습니다만 명종비에게 잘 보여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명종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하성군을 그닥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명종은 33세 때 죽었습니다. 저보다도 어린 나이에 죽었죠. 물론 33세란 나이는 당시 왕들의 평균수명으로 치면 결코 적은 게 아닙니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한 기간까지 포함해서 22년간 즉위했으니 말입니다.
명종으로 조선의 적통은 끊깁니다. 선조는 서자였던 덕흥군(덕흥대원군으로 최초의 대원군입니다.)의 셋째아들이었기 때문에 선조는 최초의 서자출신 왕이 됩니다. 그리고 선조의 아들 광해군, 선조의 손자 인조 모두 서자 출신입니다. 그리고 효종-현종-숙종-경종 까지 적통, 서자였던 영조, 효장세자-정조-순조-헌종 까지 적통, 다시 서자였던 철종, 고종으로 넘어가게 되는 거죠.
적통 계승으로 보면 조선은 명종까지가 1기, 경종까지가 2기, 그 이후가 3기입니다만, 조선역사에서는 보통 전후기는 임진왜란을 기점, 후반기를 다시 나울 때는 정조를 기점으로 나눕니다. 정조 이후부터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거든요.
일단 전반기의 막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태종 - 동생을 슥삭
2. 세조 - 조카를 슥삭
3. 성종 - 아내를 슥삭
4. 연산군 - 설명이 필요없음
5. 중종 - 아들을 슥삭
그래도 최소한 부모를 슥삭...하는 경우는 없군요. 저 5명의 막장도는
연산군 >>>>>>넘사벽>>>>>세조>>태종>>중종>성종 순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막장드라마라고 하는데 막장드라마의 원조는 조선 및 고려시대라고 하겠습니다. 고려는 조선 시대 끝나면 한번 올릴게요. 희대의 개족보가 고려 초기거든요. ^^